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현재 진행형인 사랑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 그냥. 당신이 좋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사랑에 이유가 필요하다면 지금의 행복이 한순간에 사라질까 염려해서 자신을 설득시키고자 하거나, 아니면 지나간 사랑을 놓아주지 못하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랑이란 주제가 너무도 진부하지만 그토록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랑이 찬란한 시작만큼이나 초라한 결말로 끝나는 미완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타인과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삐걱거림을 내재할 수 밖에 없다. 영원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오히려 그 애절함에 빠져 이번 사랑은 다를거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서슴없이 뛰어드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간은 그렇게 무모하게 사랑에 빠지고 이별의 순간엔 세상이 무너질 듯 아파하면서도 어느샌가 다시 새로운 사랑을 향해 다시금 눈먼 장님으로 뛰어드는 용기를 갖는다는 것.

사랑에 빠져들고 서서히 그 사랑에 모든것을 다 걸어가는 행복한 연인의 마음을 철학적이면서도 유쾌하게 잘 풀어놓았다. 일상적으로 지나칠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에 이름을 부여한다고 할까. 글 쓸 당시 저자는 25살이었다고 하는데 딱 그 나이에 맞는 절절한 감정인 것 같다. 20대 초반이라면 다른사람과 거의 모든 나날들을 함께 보내고 휴가 계획을 세우며 두 사람의 삶이 겹쳐지는 것을 꿈꾸기엔 아직 어리고 30대 초반이라면 몇 번의 지독한 로맨스를 거치며 반복되는 자신의 감정에 익숙해져 무심히 흘려보냈을 순간들이 많을테니까.

현재 진행형인 사랑이 주는 달콤함에 빠진 연인 보다는 지나간 사랑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공감되는 책일 것 같다. 과거는 과거일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처럼 사랑의 정점에선 무심히 흘려보낸 것들이 지나고나면 흔한 일상 한조각조차도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 혹은 가장 슬픈 추억이 될테니까. 정이현 소설가의 말 - "하나의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은 영원을 약속하는 달콤한 순간이 아니라 지난한 이별여정을 통과한 후" - 이 공감을 얻는다면, 아마 사랑은 오히려 이별 후에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덧칠되며 의미를 부여받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죽을 것 같은 이별과정조차 사랑의 연장선이고 헤쳐졌던 마음의 조각들이 어떤 의미로서 마음에 가라앉고 나면 다시금 새로운 사랑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게 인간이 사랑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랑은 동사다. 흔히들 사랑을 "느낀다"고 하지만 love와 '사랑하다'는 엄연한 동사다. 수동적으로 상대방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타인에게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교집합을 찾아내려는 능동성이 배가될수록 교감의 쾌감은 극대화되지만 역설적으로 아주 작은 차이에도 크게 실망하는것이 사랑의 운명이다. 그러나 그 지난한 과정동안 쾌감과 아픔의 곡예 속에서 잊고 있던 혹은 미처 몰랐던 자신의 모습에 새로운 이름표를 붙여주며 조금씩 자신을 형성해 가는것이 사랑이라는 행위가 주는 특권이다. 사랑이 지나간 후에도 그 기쁨의 순간들은 영원히 마음에 남아있고 사랑하며 느낀 따뜻함과 아름다움 역시 온전히 자기것이니까. 사랑의 대상은 타인이지만 행위 자체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김선우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한번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7-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이 책 사두고 아직 못읽고 바라만 보고 있어요.
표지도 마음에 들어요. 사랑은 오히려 이별 후에 재해석되고 의미를 부여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아요^^

2007-07-09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불안의 심리학 - 뇌생물학자가 말하는 스트레스의 참얼굴
게랄트 휘터 지음, 장현숙 옮김, 하지현 감수 / 궁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그래야 삶이 축제가 되지

네게 하루하루가 사건처럼 벌어지게 하렴

꽃송이 날려 오는 바람을 마주하며 쉼 없이 그냥 걸어가는 아이처럼 "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스트레스를 행복해하는 사람 역시 없다. 흔히 현대인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위협받는다며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 말한다. 과연 그럴까?

"뇌생물학자가 말하는 스트레스의 참얼굴" - 책 소개를 보고 뇌생물학자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여러가지 신경전달물질이며 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화학 반응식들이 재미없게 나열될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일반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게 -  마치 이야기 들려주듯 - 적절한 비유와 묘사로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접속 과정들을 친근한 구어체로 설명해 준다. 챕터 앞에 짧은 시구까지 덧붙이면서 ㅡ

스트레스 자체는 좋은것도 나쁜것도 아니다. 그러나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흔히 말하듯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추락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요지는 익숙한 상황이 틀어지는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나야 뇌가 새로운 신경접속을 형성하고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컴퓨터조차 하지 못하는 - 기존의 접속을 해체하면서 스스로 새로운 경로를 찾아 형성한다!) 사고가 유연해지는, 곧 뇌가 발달한다는 것. 옮긴이의 말처럼 스트레스야 말로 "피할 수 없기 때문에"가 아니라 "우리를 살아있도록 하니까" 삶의 필수전제조건이 되야한다는 것!

김선우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상처속에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상처받음은 살아있음의 생기발랄한 증거이기도 하잖아요"

여느 인문학책에서 볼 수 있는 구절 - 인간은 어쩔수 없이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 혹은 소외된 사람은 중심부에선 알 수 없는 인식론적 특권을 가진다- 이 주는 감성적 깨달음과 이성적 이해가 같이 다가오게 만드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을때는 "정신분석학과 추리소설의 완벽한 만남"이라는 부제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책이었다. 한창 정신분석입문서를 들고 끙끙대고 있었던 터라 프로이트와 융이라는 정신분석의 두 거장의 이론을 쉽고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때문이었을까. 5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두께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표지의 매혹적인 여성사진 만큼이나 내용이 매력적인건 사실이다. 여느 추리소설처럼 사건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는 숨막히는 순간에 무심하게 장면을 전환하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성부터 은밀히 관찰하는듯한 3인칭시선과 1인칭 독백의 적절한 혼합까지. 추리소설로서는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적 내용은 거칠게 말하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자세히 녹아있다는것이 전부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무의식'이라는 용어만큼 이미 너무 일상적으로 접하는 용어인지라 별반 새롭게 다가오는것이 없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가히 혁신적이었을 그 개념이 당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나 하는 '시대의 차이'를 알수있다는 정도

프로이트와 융을 내세웠지만 사실 두 인물은 소설 전개에 있어 그리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다. 융의 '배신'이란게 극적으로 나타나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적 상상력일 뿐이고, 프로이트와 대립되는 융의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이, 약간은 신비적으로 묘사되어 있는것 ㅡ 약간은 융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도 엿보이는 ㅡ 이 아쉬울 뿐이다.

다른 측면에서 책의 장점을 찾아보자면 당시 뉴욕의 풍경에 대한 자세하고 구체적인 묘사, 그리고 살인사건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 여느 영화나 수사극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빈치 코드'만큼의 열풍은 아니겠지만 ㅡ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이 풍기는 소원함 때문에서라도 ㅡ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다지 질리지 않게 읽어볼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 / 리더스북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심리학의 열풍 때문일까. 실존했던 정신분석가들의 실화에 허구적 양념을 쳐서 소설화한 책이 많다. 얼마 전 출판된 "살인의 해석"처럼. 그러나 살인의 해석이 프로이트와 융의 사상을 쉽게 설명하는 효과가 있다면 이 책은 읽는 사람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책의 주인공은 브로이어와 니체, 두 사람은 각각 베르타와 살로메라는 매혹적인 여인과의 사랑으로 인생의 빛을 얻었고,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이별의 아픔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전도되는, 체스 게임처럼 서로 엎치락 뒤치락 상대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또 그 속에서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보며 어느순간 치유의 순간을 맞는다. 줄거리 상으로는 흔한 "이별극복기"같지만,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 두께에도 불구하고 쉽게 책을 놓지 못하는 건 곳곳에 숨어있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통찰력 때문이리라

"인생은 약속된 미래의 인생 때문에 결코 변형되거나 억압될 수 없습니다. 불멸은 지금의 인생이고 지금 인 순간이죠. 다음 생이란 없어요. 지금 지향해야 할 인생의 목적지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묵시론적인 심판 같은것도 없습니다. 이 순간만이 영원히 존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당신만이 당신의 유일한 관객입니다."

"서로 충분한 관계를맺으려면 먼저 자기자신과 관계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고독을 감쌀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그저 자기 고독을 막아줄 방패막이 정도로만 이용하게 됩니다. 독수리처럼 살 수 있을 대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그런 경우에만 다른사람의 존재가 확장되도록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결혼은 신성하지만 결혼생활에 의해 파괴되느니 보다는 결혼생활을 깨는게 더 낫습니다."

니체 해설서나 정신분석 입문서 등 딱딱한 책에서 발견했다면 흔한 잠언이나 묵언처럼 지나쳐갔을 말들이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주인공들의 입에서 튀어나올 땐 스스로 그 감정에 빠져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때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그런 섬광같은 경험들과 마주할 것이고, 유한한 존재 모두가 한번쯤 직면해야 할 실존적 고민에 대해서 주인공들과 비슷한 심정으로, 혹은 전혀 반대되는 심정으로 곱씹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소설이 가진 서사적 재미에 더해 그런 자기성찰의 순간들을 성사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귀 맞은 영혼 -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장현숙 옮김 / 궁리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가슴속에 자신을 뒤흔들어놓은 한두개의 큰 상처를 안고 산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다른사람에게 인생을 바꿀 큰 상처 한두개를 주었다고 자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자신이 상처주었다는 그 사실에 되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경우가 더 많다. 과연 마음은 '상처받기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마음상함이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김선우 시인의 말처럼, "그 속에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상처는 살아있음의 생기발랄한 표현"이기도 하다. 즉, 생생하고 역동적인 대인관계일수록 서로가 마음상할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진정으로 "생기발랄"한 관계라면 상처가 치유되어 보송보송한 새 살이 돋아나는 것 역시 빠르다.

상처를 받는것은 일어난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풍부한 사례를 통해 '가해자'가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는 '피해자'들을 통해 '피해자'는 특정 사건에서 운명지워진것이 아니라 스스로 '피해자'이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슬며시 보여준다. 자신의 영혼이 전혀 다치지 않고 오히려 충만해질 수 있는데도 마치 프로그램된 것 처럼 기어이 암흑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다니! 끝없이 물고 물리는 악순환은 대개 어린시절의 큰 경험에서 기인하는데 끝없이 상처받으면서도 또 그길을 선택하는 건 정말 가혹한 형벌이다. 그러나 적절한 도움과 의지가 있다면 그 형벌이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천국의 계단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

다른책들에 비해 이 책의 장점은 스스로 피해자라고 느끼는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천천히 치유의 길로 안내해준다는 점이다. 단점이라면 비슷한 내용이 중언부언으로 반복되고, 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다 보니 치유 과정으로서의 큰 프레임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책 처음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의 추천서처럼 이미 상담받고 있는 내담자들이 상담치료와 병행하며 읽을만한 책이다. 혹은 스스로 마음을 들여다 볼 의지 - 어느정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한 - 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만으로도 상당한 마음치유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