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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이 대수롭지 않게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살고싶어했던 내일이다"
이 말, 누가한지조차 희미한,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오히려 진부해져버린 그 말.
이 소설의 힘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혹은 별로 알고싶지 않았던 삶의 진실을
어느 사형수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윤수라는 극단적인 인물을 세워
유쾌하지만은 않은 상황설정으로 독자들에게 삶의 간절함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
누구나 다 알고있지만 잊고있었던 것들을.
공지영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서평을 보고 한번쯤 읽고 싶어졌다.
사형수. 죽음. 햇살 눈부신 아침을 매일 두려움속에서 맞아야 하는 그들의 아픔은
겪어본 사람 혹은 그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소설에 묘사된, 2만원이 없어 겨울옷을 해입지 못한다거나
손이 묶인채로 지내 밥도 제대로 못먹는다거나
6개월동안 영치금이 천원이 안되는 사람이 1000명에 달한다거나
그런 얼룩덜룩 그려진 현실들보다도 더 가슴아픈건
언젠가는 모두 죽어야 할 사람들인데, 누구는 단 하루라도 더 살려고 발버둥치는 반면
누구는 일부러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고,
인간이 유일하게 죽을날을 결정할 수 있는 그 사람들이
정작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자신의 죽음을 선고받는것
그래서, 매일 새벽녘마다, 태양이 떠오르면 나는 죽으리라 하고 생각하게 하는것
감히 말한다면, 사형수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고문하는것은
죽음의 순간들보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러나 결코 안오지는 않을 그 순간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리라.
이 책의 구성은, 어렸을 때 사촌오빠에게 강간 당한후
다른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아니 오히려 은폐당해야만 했던 그 상처난 가슴을
매일매일 새로 쥐어뜯으며 죽지못해 살아가는, 그래서 세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어느 여자가
윤수라는 사형수를 만나면서 가지게 되는 변화, 그리고 주변상황들에 대한 그여자의 서술
그리고 BLUE NOTE라는, 윤수의 회고록이 교차하고 있다.
윤수의 내면은 거의 직접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그의 일그러진 어린시절, 그의 외모, 말, 행동으로 간접적으로 묘사될 뿐
그에비해, 유정의 심리상태는 너무도 적나라하게 잘 묘사된다.
사형수들은 책에서 조차 베일에 싸여있는 것인가.
작가의 의도야 어쨌든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이다.
유정과 윤수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그 "진짜 이야기"들이
좀 더 내밀하게 서술되고, 또 유정과 윤수가 만나면서 서로의 굴곡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새로운 의미가 되는
그 순간순간들을 좀 더 면면으로 보여줬으면 좋았을 걸
심하게 말하면, 둘이 만나서 공감하는가 싶더니
윤수는 떠나고 알고보니 둘은 사랑했었다. 이런얘기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매일매일 죽음을 기다리는,
그 차가운 감옥속의 따뜻한 피 흐르는 인간의 얘기를 그려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죽음을 몰라 삶을 모르는, 눈 먼 우리들에게 삶의 새로운 빛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