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또 읽고
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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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번에 미친듯이 푹 빠져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두고두고 조금씩 아껴읽고 싶은 책이 있다. 혹은 두번 세번 자꾸만 읽어도 새로운 책이 있다. 슬플때마다 위로해 주는 친구처럼.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읽는 사람에게 무언의 울림을 준다. 거짓이 없는, 맑고 투명한, 그러나 가볍지 않은, 진심이 담긴 글이 주는 힘이다. 처음 "감옥에서의 사색"을 보며 찡한 울림을 느꼈다. 특히 책 중간중간 엽서채로 인쇄된,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씨와 옆에 담긴 그림을 보면서. 어떤 통속적인 소설이나 딱딱한 논설문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마음의 울림 - 감정을 돋우려고 과장하지 않지만 그 슬픔이 전해져 온다든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그리고 부끄럽게 만드는 고백들이 - 은 신영복 선생님 글만이 가지는 독특한 맛이다.

가끔은 아주 익숙한 말들도 전혀 색다른 곳에서 만나면 처음 만나는 문구처럼 가슴에 달라붙을 때가 있다. 이 책에 쓰여진 말들은 대부분이 이미 알고있거나, 혹은 잊고있었던 것들을 상기시킨다. 평소라면 쉽게 지나갔을 말일수도 있겠지만 간결한 그림과 거의 비어있는 페이지의 여백 때문인지 오히려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한다. 특히, 가슴속에 아픔을 품은 사람이라면

좋은 말을 하는 책들은 많다. 그러나 뜻이 좋다고 해서 모두다 마음으로 전해오는 것은 아니다. 신선생님의 글이 감동적인건, 기나긴 감옥생활을 오히려 인생을 배운 "대학시절"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경험에서 비롯된 겸손함과 진정함 때문일 것이다. 글과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문구가 글로 써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사색과 경험이 어우러졌는지 전해오는 듯 하다.

책도 좋지만, 더 좋은건 함께 온 마음노트다. 가끔 여행갈때나 나를 낯설게 보고 싶을때 펼쳐 글을 쓰곤 하는데 같이 새겨진 문구와 그림에서 예상치 않은 위로를 받을때가 있다. 많은 경우에 노트를 펼때와 글 쓸때, 그리고 닫을때의 마음상태가 달랐다.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어느 행인이 "no gain, no pain"이라고 말하자 이에대한 선생님의 응수

"no pain, no spirit"

고통까지도 삶의 일부분으로 수용할 수 있는 마음, 아니 오히려 고통에서 삶의 의미를 끌어낼 수 있는 통찰력에 다시금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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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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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멍하니 터덜터덜 걷고 싶을 때. 간단한 행낭을 꾸려 홀린듯 전남에 왔다. 딱히 일정도 없이. 가방엔 옷 몇벌과 이 책.

최근 알랭 드 보통의 글에 푹 빠져서 그의 책과 여행을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책을 들고가야 할지 망설여졌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얇고 가벼운 외형. 두번째는 한권으로도 그의 저작 여러권을 상기시켜주는 효과

이 책은  그의 여러 저술중에서 가장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산문들을 모아 재편집한 것이다. 그의 글은 대부분 사소한 일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이끌어 낸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간에. 일관된 주제 아래 쓰여진 그의 글을 똑 떼내어진 채로 독립적으로 만나는게 신선하다. 분명 읽었던 구문인데 마치 처음보는 글처럼 다시 마음에 돌을 던지기도 하고 그 단락의 앞뒤에 있던 가슴에 남는 구절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마치 우연히 마주친 추억의 장소나 사물이 예전 기억을 불러일으키듯. 짧은 글임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의 말들과 그게 겹쳐지는 내 생각들을 하나씩 곱씹자면 아주 천천히 읽게 되는 글들이다. 시를 음미하듯이.

알랭 드 보통을 접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서 그의 글들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한번에 맛볼 수 있겠지만 가능하면 다른 글들을 읽어 본 후에 접하길 권한다. 똑같은 텍스트라도 경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테니까. 짧은 글들이다 보니 어떤 주제에 대한 드 보통 생각을 집약해 놓은듯한 구절들이 많아 아홉 개 글이 자칫 산만하게 다가올 수도 있으므로. 물론 그 짧은 글이 원래 어떤 맥락속에서 쓰였는지 한권의 책으로 다시 찾아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첫 산문인 "슬픔이 주는 기쁨"은 본래 "여행의 기술"에 있던 글인데 그림 이야기가 많다. 여행의 기술은 그 그림이 책에 실려있어 글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그림을 보며 깊이 생각할 수 있는데 그림이 없이 그림에 대한 설명과 느낌만 실려있으니 텍스트 만으로는 전해지는 울림이 부족한 듯 하다. 아무리 말을 유창하게 한들 "외로움"에 대한 언어적 설명만으로는 실제 그림이 풍기는 분위기를 절대 재현할 수 없으므로.

멍청하게 걷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 꺼내보고 싶은 책이다. 두번 세번 만나도 늘 새로운 친구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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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도 못 끓이는 자취생이 만드는 요리
김경미 외 지음 / 파프리카(교문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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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라고는 정말 "라면끓이기"밖에 할 줄 모르는 (그나마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얼떨결에 혼자 나와 살게됬고, 매일 밑반찬이나 생식용 두부 등으로 끼니를 먹기 뭐해서 얼결에 집어든 책이다.

제목처럼 정말 요리 초보들을 위한 간단한 레시피등이 많다. 혼자산지 얼마 안 된 경우는 보통 집이라면 갖추고 있을 보조재료들 - 간장, 소금, 깨소금, 다진마늘, 파, 양파 등등 - 이 부실한 경우가 많다. 또 한번의 요리를 위해서 그 재료들을 사놓기도 부담스럽기에, 한번에 3~4인 가족용으로 편집된 일반 요리책은 눈요기만 될 뿐 별로 실용성이 없다. 이 책의 레시피들은 시판되는 인스턴트 제품에 약간의 열과 양념을 가해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 간편하고 준비할 것이 별로 없다. 정말 "요리"를 위한 책이라기 보단 스스로 뭔가 만든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자취생들을 위한 책이다.

일반 요리 책에서 보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요리보다는 짧은시간에 1~2인용으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많은것이 장점이다. 종류도 간단 술안주, 간단한 반찬, 간식, 어렵지 않은 찌개나 국 등 집에서는 흔하게 먹었지만 나와서 만들어 먹기는 만만치 않은 음식들 위주다.

단점이라면, 간단한 조리법 위주로 가다보니 정말 간단한 음식들 - 팥빙수나 녹차아이스크림같이 시판되는 재료를 적당히 섞기만 하면 되는, 요리라기 보다는 조합에 가까운 음식이나 삶은감자, 삶은 고구마같이 정말 간단한 조리법 - 에 대한 페이지도 군데군데 있어 '이런것까지 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리 종류를 채우기 위한 상술이라면 상술이고, 정말 초보자를 위한 배려라면 배려다.

자취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요리 초보들이라면 처음 시작하는 요리에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초보 안내서 정도다. (같이 주는 계량스푼은 사실 별 쓸모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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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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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이야기는 한마디로 니체의 책 제목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을 연상케 하는 소설이다. 절대자의 구원도 한 인간의 구체적인 아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고 마는.

이창동감독의 "밀양"을 먼저 보고 원작을 읽었다. 밀양. 잠시 secret sunshine 이란 제목안에 영화의 핵심이 들어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을 잃고 찾아온 남편의 고향. 그리고 아이의 실종. 슬픔.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용서. 그리고...

원작에서 알암이 어머니와 영화속 신애는 많은 면에서 닮았지만 또 많은 면에서 다르다. 알암이 어머니는 소설 내내 "알암이 어머니"로서 불리고, 알암이 어머니로서 정체성을 갖는다. 알암이의 실종은 그에게 삶의 끝이었고, 교회에 가서 소위 "구원"받은것도 어디까지나 그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알암이를 위함이었다. 살인자를 용서하고자 한것도 "알암이 어머니"로서..그러나 자신보다 더 평온한 얼굴로 오히려 자신을 축복하는 살인자 앞에 알암이 어머니는 다시 삶의 이유를, 아니 구원받음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 사형집행의 순간까지 자신을 축복하는 살인자 앞에서 죽은 아이의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를 따라 가는수밖에

영화 속 신애를 부르는 호칭은 크게 세가지이다.  준피아노, 원장님, 신애씨. 용서하러 갔다가 이미 용서받았다는 말에 절망하는 건 원작 소설과 같지만 신애는 시름시름 앓는 대신 용서의 권리를 앗아간 존재 - 하느님일수도 있고, 자신을 끌어들인 교인들일수도 있고, 혹은 자신처럼 "구원"받는다고 여기는 수많은 교인들에게 - 에게 "복수"할만큼 강하다. 아니, 살고자 하는 의지로 볼때 더 인간적이다. 과일먹는 일상 중에 시도한 그녀의 칼부림은 삶에의 포기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복수였으니까. 그녀를 아이의 엄마로 규정짓지 않고 늘 "신애씨"라 부르며 옆에서 지켜봐주는 종찬은 말 그대로 속물이지만 오히려 그녀에게 필요할 때 있어주는 "버팀목"이다.

원작은 여주인공의 자살로 끝나고 영화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결말 - 영화는 쨍한 해가 비치는 하늘로 시작해서 햇살이 비치는 수채구멍을 비추다 끝난다 - 을 볼때, 이청준씨와 이창동씨가 말하고자 했던 요지는 약간 다르겠지만 - 내 생각으론 이창동 감독은 비현실적 절대자보다 속물이 낫다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의도 같다 - 두 작품 모두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사람마다 판단 기준이 다를테고, 또 아이의 죽음같은 극단적 슬픔은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말하지 못할 어려운 문제다. 글쎄, 김집사의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여기 비치는 햇빛 한조각에도 다 주님의 뜻이 담겨있어요.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도 다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그 큰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받아들여야지요"

햇빛 한 조각에 담긴게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자기 생명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 매 순간순간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용서란 것도 결국 더 온전히 살기위한 행동 - 자신의 마음이 그곳에 고착되어 있길 거부한다는 면에서 - 이라면. "인간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고통받는다"라는 말은, 사실은 생명이 가지는 삶의 의지를 달리 표현한것이라면.

 문득 영화를 보고 난 후 혹은 원작 소설에 대한 교인들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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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5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6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자의 영혼은 뇌에서 길들여진다 - 여자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지혜로운 뇌
모나 리자 슐츠 지음, 유혜경 옮김 / 애플트리태일즈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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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표지에 그려진 모나리자를 보고 왜 이 그림이 있을까 의아했다. 저자 이름이 모나리자슐츠여서 그런가. 아니면 모나리자 얼굴에 가득한 미소인지 슬픔인지 모를 그윽함을 '여자의 영혼'과 관련지으려 그러나. 어쨌건 "인간의 영혼"도 아닌 "여자의 영혼"이 뇌에서 길들여 진다는 - 어찌보면 당연하고 어찌보면 터무니없는 - 제목에 이끌려 책에 빠져들었다.

크리스티안 노스럽 박사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는 스승처럼 여성의 직관능력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여성의 직관이라고? 그럼 남자는 직관이 없나? 흔히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예감"이 좋다고들 한다. 이 책은 그 신비한 능력이 남자와는 다른 여성 고유의 뇌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점점 남성화되는 사회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여성의 뇌를 발달시키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신경정신과 의사이자 직관치료사이다. 직관이란 말은 심하게 말하면 점쟁이 비슷한 분위기를 지어내 과학적 엄밀함과 냉철함으로 무장되어야 할 의사와는 어울리지 않는듯한 단어지만 슐츠 박사는 인정받는 정신과 의사로서 직관을 치료에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녀가 말하는 직관이란 멀리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신기"로서 보다는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느끼고 적절히 판단하는 능력쪽에 가깝다. (물론 책에 나온 사례중에는 직관을 따라 행동하다보니 큰 행운이 뒤따르는 경우도 있지만!)저자는 직관이란 타로카드나 심령술같은 주술적인 세계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뇌와 몸의 자연스런 산물이라며 뇌와 몸을 가지고 밤에 잠을 자는 사람이라면 직관적인 사람이 되기에 충분하다며 독자들을 직관의 세계로 안내한다.

좌뇌와 우뇌의 기능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뇌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선 이미 많은 책들이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 여성은 좌뇌/우뇌 연결이 긴밀하고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고 등등 - 그러나 현대에는 소위 여성적/남성적이라는 특성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기 보다 생활환경이나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다. 저자는 이것을 확장시켜 환자가 '전통적 여성의 뇌', '비전통적 여성의 뇌', '전통적 남성의 뇌', '비전통적 남성의 뇌' 중에서 어떤 스타일인지 판단하여 한쪽으로 치우쳐 진 사고패턴을 바꿈으로서 치료의 길로 접어들고자 한다. 어느쪽 뇌를 가졌느냐에 따라 호르몬수치, 감정표현, 통증역치 등 신체의 모든 반응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당연히 치료도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완전히 떨어뜨려 설명하는 이분법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의 많은 부분이 허황되게 보일것이다. 그러나 마음과 몸의 긴밀한 상관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 더 나아가 내면의 자기치유력을 믿는 사람이라면 - 저자의 말에 많은 영감을 받을 수도 있다. 저자가 정신과의사이다 보니 감정적인 면이 어떻게 신체증상으로 표출되는지, 특히 우울증이나 신경과민 등 정신적 요소에 기반한 질병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책이 코드에 맞는 독자라면 읽고 난 후 숨죽여왔던 자신의 직관능력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신뢰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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