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완 작가. 그가 또 신간을 냈나부다. 도서관에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 사람의 책들. 도서관에서 저자의 책이 나올 때마다 선전한다. 삼성전자 다니다 나와서 3년 간 책 1만권을 읽고 50여 권의 책을 쓰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어쩌구 저쩌구..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3년 간 1만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수치는 뭔가가 이상하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일하면서 책만 줄기차게 읽을 때도 1년에 1천권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것도 상당수는 발췌독이었다. 뭐, 내가 읽었던 책들이 거의가 사회학이나 철학, 자연과학 이론서들이었기에 그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얄팍한 자게서 위주로 읽는다 쳐도 3년 간 1만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책들에서, 자신이 독서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처음 1년간은 매우 고생했었노라고 고백한 부분이 있어서다.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도 책을 처음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후레쉬맨 시절, 독서 이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잡고 읽는 책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고, 읽는 속도도 너무 느렸다. 당시 내 소박한 소원은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읽으면서 술술 이해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김병완 작가도 회사를 때려치고 독서를 하기 시작한 때, 그 독서 수준이 내 후레쉬맨 시절과 거의 같았다. 그런데, 그는 이런 시행착오를 아주 단번에 뛰어넘어 3년에 1만 권이란다. 자기 고백은 9천 몇백권이라는데, 난 이것도 믿을 수 없다!

 

왜냐구? 내가 한달 동안 밥만 먹고 책만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는데, 그걸 내가 맡은 적이 있다. 내가 때를 써서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덤탱이를 썼다. 그때 대표가 준비할 한 달 간의 시간을 줬다. (이런 케이스는 거의 없는데, 시간을 안 주면 일 때려 치겠다고 했기에)

 

그래서 내가 한 일이란 것이 필요한 책을 쌓아 놓고 줄창 책을 읽는 거였다. 출근해서 정해진 분량의 책을 가열차게 읽고 보고서 비슷한 걸 만들어 발표하는 거였다. 쓰는 건 이틀이면 됐기에 책을 읽는 작업이 매우 중요했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했다.

 

난, 고시공부를 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앉아서 책보는 거는 너무도 익숙하고 내가 그나마 잘하는 몇 가지 일 중 하나라서 신나게 프로젝트를 완료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두꺼운 하드커버의 이론서들로 400페이지 ~ 600페이지 정도의 책 500여 권이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아침 10시까지 출근이었지만) 새벽 1시까지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조리 독서에 할애했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정리해 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집중하여 읽어야 하는 그런 독서였다. 물론 완독한 책은 정확히 28권이었다. 나머지 책들은 전부 발췌독이었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예컨대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하루에 본다는 건, 정말 말이 쉽지 피말리는 작업이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독서란 집중해서 좋긴 한데, 압박감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은 아침부터 시작된 독서가 밤 9시 정도가 되서야 끝을 볼 수 있었다. 중요 부분에 줄을 치며 집중하면서 초스피드로 읽은 덕택이다. 물론 흥미진진한 내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머지 완독한 28권의 책들은 새벽1-2시가 되어서야 완독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당시 읽은 책들의 목록 일부가 지금도 생각나는데, <전략의 본질>, <의사결정의 원칙>, <게임이론>, <이타적 인간의 출현>, <의사결정의 함정>, <매킨지식 전략 시나리오>, <로지컬 싱킹>, <유쾌한 딜레마 여행>, <자유주의>(미제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실용논리학>, <선택의 논리학>, <세상을 바꾼 30가지 심리 실험> 따위의 책이었다.

 

 

 

 

 

 

 

 

 

 

 

 

 

 

 

 

 

 

대부분 심리학, 경영 전략, 경제이론, 논리학 등에 관한 이론서들이었다. 자게서로 분류되는 책은 거의 없었고, 굳이 꼽자면 <의사결정의 원칙> 정도 있겠다. 하지만 <핑>이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같은 책은 아니다. 비즈니스의 경영 사례로부터 올바른 의사결정을 훈련하는 실용서이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거의 고시 공부하다시피 읽은 책들이라, 신났지만 매우 힘겹게 읽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영화도 보고 놀이도 하면서 집중했던 머리를 식혀줬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지만 이런 류의 책들을 1년 내내 읽는다면, 그것도 곤욕일 거라 생각했다. 청명하고 좋은 날씨에는 놀러 가는 게 독서하는 것보다 이롭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그런 독서를 한다손치더라도 1년이면 365권이다. 3년을 수인처럼 책만 읽는다하더라도 1천여 권 정도 뿐이 안된다. <안나 카레리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잡는 순간 1년 365권은 도달할 수 없게 된다. 분권된 것을 한권씩 셈해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한 권의 분량이 하루만에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속독법을 배워서 읽은들 무리다. 아니, 이런 류의 책들은 속독으로 읽을 수가 없다. 문장마다 비수처럼 꽂히는데 어떻게 휘딱 읽을 수 있을까? <안나 카레리나>를 속독으로 읽는다? 그건 바보같은 독서다. 적어도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읽는 데에 있어서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단언한다. 김병완 작가가 말하는(적어도 항상 광고지에서 책선전 하는) 3년 간 1만권은 완전 뻥이라고! 1만권을 읽기 위해서는 아주 얄팍한 책들 위주로 쉴새 없이 읽어야한다. 하루 10권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야 3600권이다. 그래야 3년간 1만권에 도달한다.

 

근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수인(囚人) 생활을 하면 가능할 지 모르겠다. 주로 자게서를 읽어야 하루 10권을 채울 수 있다. 발췌독이라도 보통일이 아니다. 일단 <안나 카레리나>와 같은 장편소설을 잡는 순간 하루 10권은 절대 채울 수가 없다. 살림문고 10권이라도 정말 빠듯하다. <살사>나 <초콜릿 이야기>와 같은 쉬운 책을 3권만 읽어도 7시간은 족히 간다. (시간 재고 읽어봐서 안다.)

 

 

 

 

 

 

 

 

더욱이 김병완 작가는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아템포, 2013)에서 처음 직장 때려친 1년 간은 읽는 행위가 어려웠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 하루 10권은 어림도 없다. 도서관에서 책쌓아 놓고 한 권에 10여 페이지씩 발췌독 한 걸 모두 읽은 권수에 넣는다면 모를까.

 

아마도 내 생각엔 김병완 작가가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살았다고 하니, 하루 1-2권 정도는 완독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넘는 권수는 분명 발췌독한 것과 이리저리 넘겨 본 걸 모두 합산했을 거다. 비슷한 주제를 갖고 읽어 나가면 훑어본 것도 대충 읽은 거라 생각이 들기에. 그래도 미심쩍긴 매한가지다.

 

왜냐? 도서관은 적어도 한 달에 4번 휴관한다. 그리고 빨간날은 죄다 논다. 도서관 휴관이 매달 4일 이상은 족히 된다. 이런 날 집에서 도서관처럼 생산적인 읽기를 하기도 힘들 거다. 김 작가는 결혼도 했기에, 여러가지 경조사나 집안 일로 어른들을 만날 일이 꽤 될 것이다. 이런 걸 모두 제껴두고 책만 읽는다는 건 상황상 이해가 불가하다. 

 

고시공부와 같은 어떤 중차대한 목표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그런 수인생활을 감내해 준다. 근데, 김병완 작가는 그런 것도 아닌, 자기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책을 읽은 거 아닌가.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도 공부라는 목표가 없으면 쉽지 않다.

 

뭐, 그래 이 부분은 공감해 주자. 김 작가가 투철한 목표의식을 3년간 지속했다라는 걸. 그런데, 언제나 그렇지만 환경은 자기가 콘트롤할 수 없다. 3년 간 한번도 아프지 않아야하며, 어떤 가족의 대소사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수인생활을 3년 간 지속해야 1만 권에 도달한다. 하루라도 삐끗하면 그 다음날 20권이 쌓이고 이틀이면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난 적어도 비슷한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하루 분량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지 감이 잡힌다. 그런데, 김병완 작가가 저걸 가뿐히 해치웠다는 데에 못된 심술이 도진거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해 줄 수가 없다. 그가 이전에 계속 직장을 다니면서 독서이력을 쌓아 왔다면 어느 정도 공감해 줄 수도 있었을 거다. 속독력과 이해력이 높아지니.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전혀 아니었다.

 

그건, 그의 책 몇 권을 읽어보니 확실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생활을 하자면서, 자본이 주는 안락함의 힘을 예찬하고 있었다. 인용한 책들도 대부분 자게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인용부분도 여러 권을 쓸 때 알차게 중복 활용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확신했다. 그는 절대 <안나 카레리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그리고 <레미제라블>같은 책은 읽었을 리가 없을 거라고. (읽는 순간 목표량을 채울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강연을 다니면서 독서의 대가처럼 말하고 다닌다. 난, 이게 싫은 거다. 거짓말 같아서. <기적의 고전 독서법>이니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같은 책을 내고 전문가인양 가이드해 주는 걸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그는 고전을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를 하루만에 처음 읽는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어느 정도 독서 이력을 쌓아서, 그래서 책을 겁나게 빨리 쓰는 재주를 가진 건 정말 부러운 재능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책 한권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군다나 내는 책마다 책이 팔리고 어느 정도 이름이 나고 강연을 다니는 걸 보면, 그냥 상황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환경이 자기를 택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난 환경결정론자라 항상 이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근데, 그는 오로지 자신의 우월한 능력 때문에 그리 된 줄 착각하고 있는 듯보인다. 독서 전문가라고 활게치고 다니는 현재 그의 행태가 그렇다. 자신이 정말 독서전문가로 인식받고 싶으면 1만권을 어떻게 읽었고, 중요 책들의 리뷰라도 정리해서 책을 내는 것이 순리리라.

 

3년 간 1만권은 우스운 숫자가 아니다. 책을 낼때마다 계속 우려먹고 있는데, 1만권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헤아려보시길. 그의 책을 사서 보는 독자들도 생각해 보시길! 1만권을 읽고 쓴 그의 책들을 읽어 보니, 깊이는 커녕 이율배반적인 얘기를 자기도 인지하지 못하고 쓰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들어 이런 글을 쓰게 됐다.

 

물론, 그가 천재여서 그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일 수도 있다. 내가 오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자기 책에서 자기의 평범성을 대놓고 강조하고 있었다. 자기도 일반 대한민국 사람들과 같다고. 그의 책에서 그런 내용을 공감하고 보니, 책좀 읽는 나로서는 당연히 의심을 가질만 했고, 책 1만권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좀 헤아려보자는 의도에서 이 페이퍼를 쓰게 된 것임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난, 그에게 엇가 심정이 없다. 단지, 3년 간 1만권을 읽었다는 거에 태클을 걸고 싶었던 것일 뿐! 도서관에서 다시 김 작가의 포스터를 보니 본의 아니게 울컥하여 생각해 두엇던 것을 페이퍼로 쓰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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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새 2015-01-0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에 지나가는 길에 읽고 오늘은 구글링해서 겨우 이 글 찾았네요.
좀 퍼가도 되겠습니까?
격하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yamoo 2015-01-15 22: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음껏 퍼가시길^^

요롤레이요 2015-12-2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크...아직 대학교 1학년 학생이지만 전 하루에 책 한권읽기도 벅차네요..

전공은 공학이지만 주로 심리학이나 사회과학 경제학 역사학관련 서적을 읽는데 아직 1일 1권은 힘들더군요. 이번 방학 70일간 50권읽는것이 목표입니다 ㅋㅋ

yamoo 2015-12-27 19:01   좋아요 0 | URL
사회과학, 역사, 경제학 서적은 하루만에 읽기가 무지 힘듭니다. 낼 셤에 책에서 시험 낼꺼라고 하지 않는 이상 1권 읽기는 정말 무리입니다~ 300페이지 교양 경제학 책만 일독한다고 하더라도 10시간 이상은 집중해서 봐야되지 않을까 합니다~

AARRR 2017-11-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내용을 이해하고 요약하고, 기억하고, 실제로 평상시에 적절한 타이밍에 무리없이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의 정독으로는 아무리 뛰어나도 최대치는 연 200권 정도라고 봅니다. 실제 다독가들이 말하는 얘기들도 종합 해 보면 최대치가 보통 연 200권입니다. 일을 하고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 거의 전부를 책을 읽어도 연 100권쯤이 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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