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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문제와 관련된 논쟁이 벌어졌을 때, 앵무새처럼 "모든 여성이 그렇지 않다." 라는 주장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라는 논리는 실제로 그러하거나, 항상 그럴 준비가 되어 있거나, 반론에 대한 도피처로서의 자기방어이거나, 실제로 그러하다고 믿고 있거나... 전형적인 자기방어, 자기변명일 뿐이다.
"모든 여자가 그렇지 않다."는 논리는, 실제로 "모든 여성이 그러하거나 그럴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정말로 그렇다고 믿고 있다면, 단지 여성들 개개인의 외부적인 상대적 차이점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다고 믿고 싶어하는 희망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윤리적 학습과 자신의 감정과 본능을 통제하는 하나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가치관의 세계가 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과 그로 인해 받을 상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타 등등의 이유로 그러하리라 할 수 있다.
남성운동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이다. 이것은 하나의 현실에 대한 도피처를 제공하는 해악일 뿐입니다. 남성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아편을 입에 물려주고 현실을 외면하게끔 유도하는 의미 이상의 것은 없다.
여성단체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남과 여의 전체적인 극심한 대립이다. 여성단체... 페미들이 지향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가족해체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겉으로는 가족해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있어서 비빌 언덕이 될 수 있어야 그들이 생존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보수적 가치관들 중에 자신들의 존립 여부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는 부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단계적 수정을 통해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적 페미니즘의 가장 큰 요인중 하나는, 여성부의 의도적인 변형된 전통관습 유지에 기인한다. 정상적이거나 아니면 아예 폐지 시켜버리면 세상이 엉망이 되더라도 나름의 균형이 생길 수 있지만, 남성들에게 보이지 않는 희망과 권리란 탈을 쓴 의무를 부여하기 위하다 보니 눈에 띄게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주어진 현실이 잘못 되었다 여긴다면, 그것이 어떠한 방향으로건 균형을 갖추길 원한다면, 그 현실을 물러설 공간이 없다는 뼈저린 자각을 통한 인식을 통해,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모든 여성들이 다 그렇다."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남성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인식해야만, 세상을 바꿀수가 있는 거죠.
"모두가 그렇지 않다"라는 논리는, 현실도피를 불러오고 남성들이 원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부분들에 대한 가능성으로 인해 남녀간의 문제에 있어서 현실적인 해결 의지를 잊어버리게 한다.
항상 단순한 인간들이 고정멘트로 달고 다니는 말..
"니 엄마, 니 여동생, 누나, 딸... 어쩌고..." 처음에는 전부 여자들이 썼다. 그녀들이 알바였는지...사전공작에 의해 주입된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수의 남성들도 이 말을 좋아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말은 절대적으로 "여성 취향"의 논리적 접근과 사고방식에 근거해야만 나올 수 있는 말들이다. 저는 이해가 안 가는 것 중 하나가, 미성년과 성관계를 맺은 남성들을 보고 "자신의 딸을 생각해 보라"는 주장들입니다. 그럼 결혼을 할때는 자신의 누이를 떠올리며 상대를 고르고, 잠자리를 가질때도 누이를 떠올리라는 것인지... 결혼 상대자와의 연령차가 정확히 몇 년 몇 개월이 되어야 하고, 연애 상대자 또한 그래야 하는 것인지...
가족은 가족이고 남녀관계는 남녀관계일 따름입니다. 가족은 나와의 관계일 뿐이지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나와 똑같은 가족이 아닌 것이다.
(응답맨 註 : 참고로 니 엄마, 니 여동생이란 말을 달고 다니는 무뇌충 페미들에게 이런말을 "니 오빠, 니 아들, 니 아버지였다면?"..라고 반문하라. 니 엄마니 여동생이니 이런 말은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이다. 즉 남자는 무조건 강자, 여자는 무조건 약자이고 무능력한 존재인 하등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데서 나오는 말이다. 즉 여자를 남자와 동등한 시각으로 본다면 절대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들이다)
이것은, 공과 사의 구분을 못하는 전형적인 여성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또한, 유아적 사고에 기인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은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평생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는 정신연령이 굳어지는 시기가 있고 그 시기의 정신적 수준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여성의 경우는 이러한 시기가 굉장히 빨리 찾아오는데, 바로 초경을 전후해서 생긴다. 신체적 변화와 더불어 굳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임신과 출산과 결혼생활에 적합한 신체적 환경과 더불어 정신도 그에 걸맞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2세의 출산과 육아를 위해 능동적인 배우자 선택이 아닌 수동적인 배우자 선택이라는 본성으로 인해 언제 불시에 선택당해 2세를 위한 환경에 돌입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찍 완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에는 10세를 전후해서 대부분 초경을 치른다.
성장이 지금보다 더디었던 과거에도 대부분 지금보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이러한 나이 때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부분이 강한 편이다.
세상의 중심은 나이고, 나를 중심으로 가족이 형성되고, 그 가족을 중심으로 세상이 형성되었다. 아무리 덜떨어진 사람이라도 성인남성이라면, 이와 정반대의 개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남녀의 가장 큰 의식차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어긋남의 하나가 이것에 기인한다.
유아적 정신연령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 모든 사물을 자신을 둘러싼 가족에 비쳐보기에 "니네 엄마, 니네 딸..." 운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성은 공과 사의 구분을 잘 못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공과 사를 구분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시야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여성이, 특정한 사상적 학문이나 주변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100% 필연적으로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고 주변을 원망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는 것과 똑같다고 보면 정확하다.
(응답맨 註 : 제가 항상 하는 말 "아마에"와 같은 의미이다. "아마에"라는 것은 애들이 하는 것이지 성인이 하면 덜떨어진 애 취급 받아야 한다는 생각)
"모든 여성이 그렇지 않다"는 논리는 남성들의 자기권익뿐만이 아니라, 여성들 자신의 성숙을 위해서도 독만 될 뿐이다. A 수준의 것들을 남성들이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그렇지 않다"란 논리로 인한 남성들의 자기안위와 현실무시는, A에 대해 어느 정도 적응된 시점에서 등장한 진행된 B가 나올수 있는 시간만 벌어줄 뿐이고, 이는 최종적으로 Z의 결과가 나오도록 만들 뿐이다. A 에서 문제인식을 제대로 했다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A선에서 확실하게 막을수 있는 것들도 분명 많다.
2.
여성은, 선악의 개념이 자신에게 이익이냐 손해냐에 따른다.
순결을 중요시 하는 여성이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손해가 중요한 것이며, 수단만 있다면 수많은 남성과 관계를 맺고도 태연하게 자신이 순결한 척 행동할 수가 있으며, 또한 이러한 면들이 젊어서는 자유분방한 연애와 성을 주장하다가 결혼할 때에 현실인정이라는 표현을 통해 드러나는 실재적인 그들의 속마음이다.
한국의 현실은 보수적(?)이어서 순결하지 못하면 질타를 받는다라는 이유가 아니라, 젊어서는 놀고 즐기는게 이익이고 그로 인한 손해는 거의 없기 때문이며, 결혼 후에는 그 반대가 손익이기 때문이며, 상대 남성의 남성이 가진 근본적인 본성을 억제시키고 자신만을 위한 노예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명분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가진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모든 여성이 그러하지 않다라고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망상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것... 남성과 여성의 상생(?)은 끝없는 요구의 연속이라는 여성이 가진 속성에 이끌리기만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제대로 된 조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여성의 치마자락을 붙잡지 말고 당당히 남성들이 홀로 서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그것이 남성만을 위한 것이건, 남녀 모두를 위한 이상적인 방향을 향해 나가는 것이건 가능해질 수 있다는것...
조선속담에, "여자와 입씨름하는 남자 치고 제대로 된 남자 없다..." 라는 말이 있죠.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여자가 하는 요구와 주장들을 그냥 들어주고 잠잠코 침묵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옮고 그른 것을 따지기에는 상대로서 적합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의 의견을 듣고 또 설득해 봐야 쓸데 없는 시간낭비라는 뜻인 것이다. 조선시대는 남녀의 역할구분과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구분지었고 그 선을 명확하게 나누었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한 세상이 되버렸다.
그러니 다시금 어떠한 방향으로건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날의 우리는 옮고 그름을 논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그렇지 않다." 라는 논리는 옮고 그름을 공의적으로 논할 필요와 명분이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과, 정말로 소수만의 문제라면, 남성들이 느끼는 분노감의 색채는 지금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며, 수많은 대다수의 여성들이 자신의 이익이 침해받는 것에 대한 감정적 반발로 인해 그들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