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습관을 다룬 대부분의 처세용 책들의 요점은 단 하나로 수렴한다. 그것은 ‘습관은 자신을 바꾸는 힘이다’라는 것. 습관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는다고 한다.
요컨대, 좋은 습관을 기르면 좋은 행동이 형성되고, 나쁜 습관이 들면 나쁜 행동으로 나타나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행동을 뿌리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뿌리면 성격을 거두고, 성격을 뿌리면 운명을 거둔다.”는 G. D. Boardman의 경구는 이를 뒷받침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유명한 사람들은 모두 좋은 습관을 가졌다는 주장은 좋은 습관을 갖지 않은 유명인사가 소개되지 않는 한 계속 타당한 위력을 떨칠 것 같다.
헌데, 과연 습관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지는 좀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할 것 같다. 아니, 논의의 차원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이 필요한 부분 같다. 이 점이 내가 관심을 갖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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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습관’에 대한 철학책을 찾아봤지만 전무했다. 심리학과 자기계발서에 관계된 책만 잔뜩 있었다. 전옥편 <이기는 습관>, <습관부터 바꿔라>, 김경모 <습관-나를 변화시키는 힘>, 브라이언 트레이시 <백만불짜리 습관>, 양창순의 <마인드 포스>, 이시형의 <세로토닌하라> 등등.
집에서 가까운 대형 서점에 나가 살펴 보았지만, 전부 자계서 뿐이었다. 왜 습관에 대한 철학적 분석서는 없는지....의구심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 흔한 철학적 잠언서도 없다니~
이런 생각에 집에 있는 책들도 뒤적거려 봤지만, 역시 관련 책이 있을 턱이 없다. 책은 없었고, 습관에 관해서 내가 찾은 유일한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9장 “행복은 학습이나 관습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인가, 혹은 신이 보내주시는 것인가, 또 그렇지 않으면 우연히 얻게 되는 것인가”가 유일했다. 흠, 하나는 발견했다. 책은 아니지만..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읽던 책이나 읽기 시작했다. 그제부터 읽고 있는 책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베르그송의 원 저작에 입문하기에는 이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최고라는 전문가의 말에 읽기 시작했다.
‘역시, 베르그송은 천재야’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무심코 책장 하단에 눈길이 가게 되었다. 그 칸은 현대의 지성 시리즈를 모아놓은 곳이다. 내가 언제 사 놓았는지 모르는 <베르그송 연구>란 책이 거기 꽂혀 있었다.
도대체 이 책을 언제 샀는지 기억에도 없거니와, 내가 이 책을 왜 샀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현대의 지성시리즈라서 그냥 덥석 구매한 모양이다. 물론 지금까지 들춰보지도 않았었다.
베르그송의 주저들을 읽기로 결심했으니, 구경이나 할 겸 펴들었는데, 나는 이 책으로부터 2번 놀라게 되었다.
타이틀만 보고 중요 부분만 훑었는데도, 저자 김진성은 완전히 베르그송을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료한 언어로 베르그송의 핵심 사상을 체계적으로 건저올리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37세에 요절했다는 것이고, 이 책이 김남두 교수에 의해 유고집으로 출간된 책이라는 점이다.
김남두 교수와 동료 교수들이 그의 죽음을 매우 애석해할만 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짧은 논문 10여 편을 모아 놓은 유고집이었지만 정말 대단한 연구 성과로 비쳤기 때문이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베르그송의 사상체계를 한눈에 파악할 정도다)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세계적인 헤겔 전문가인 임석진 교수에 버금가는 베르그송 연구의 대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런데, 또 한 번 놀란 건, 이 책의 7번째 소논문 때문이다. 이 소논문은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의 습관에 대한 고찰>이다. 여기에는 내가 의구심을 가졌던 바로 그 내용들이 논문의 첫머리부터 펼쳐져 있었다.
“습관이 과연 철학의 문제가 될 수 있는가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존재․이성 또는 본질과 같은 철학적 개념에 익숙한 사람은 이 대수롭지 않은 심리적 사실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학사를 조금만 꼼꼼히 살펴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습관과 덕의 관계를 논한 이후로 데이비드 흄에 이르러 습관이 인과율의 성립근거로 제시되기까지, 그것은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 등에서 중요한 철학적 주제였음을 알 수 있다.
습관의 문제는 발(J. Wahl)이 정확히 지적하듯 특히 프랑스 철학에서 주목의 대상이었다. 데카르트, 루소, 파스칼, 비랑, 라베송, 부트루, 베르그송 그리고 현대의 리쾨르에 이르기까지 습관은 여러차원에서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다. 예컨대 파스칼은 습관에서 상상력과 함께 가장 커다란 오류의 원리를 찾는다. 순수한 감정을 이성보다 높이 평가한 루소 역시 습관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습관은 감정의 신선한 유출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에밀>에서 “어린이에게는 오직 하나의 습관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습관을 갖지 않는 습관을”이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들의 철학은 습관론에 근거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랑, 라베송, 베르그송 철학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이 논문은 이들, 특히 베르그송에 있어서의 습관의 문제를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pp154-155)
있었다! 습관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이. 아쉽게도 ‘습관’이라는 타이틀을 단 책은 아직까지 없었지만 주요 철학자들의 ‘논의’들은 있었다. 저자의 소개대로 흄의 책 <정념에 관하여>를 펼쳐보니 제3부 제5절에 ‘습관의 영향력에 관하여’라는 부분이 있다. 헌데, 2페이지 분량밖에 안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요 철학자들이 ‘습관’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이다. 아쉬운 것은 주요 저작 속에 절이나 세항목 속에 포함되어져 있기 때문에 저작을 읽지 않으면 철학자들이 ‘습관’을 다루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 이 점이 참 아쉽다.
물론 무식한 소치의 원인은 바로 나에게 있지만 <습관에 대해서>라는 편집된 책 1권만 출간돼 있었더라면 이런 의구심은 조금 더 일찍 풀렸지 않나 하는 푸념을 하게 된다.
뭐, 이런 쓰잘때기 없는 생각 때문에 김진성이라는 대단한 철학자도 알게 되고, 흄의 저서를 다시금 들춰보는 수확도 얻을 수 있었으니,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런 상념 때문에 귀중한 휴가의 하루가 날라간 것은 되돌릴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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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습관’을 논한 철학책을 아시는 분은 무지한 야무에게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