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성냥갑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15~20년 전 이탈리아 유력 주간지 '레스프레소'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칼럼의 일부를 모아 출간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서론이 좀 길다.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전혀 모르는 것도 있다. 너무 이탈리아적이다. 각주가 없으면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책의 5분의 1은 각주다.

이탈리아 인명, 지명 사전 쯤 되는 이탈리아 상식사전. 하지만 일부 에세이들, 그러니까 책의 절반정도는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 언론, 방송, 출판 그리고 시대에 대한 해박하고 날카로운 비판은 15년 이상의 시간적 차이를 갖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도 그대로 들어맞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그러고 보면, 어느 나라나 문제의 근본은 같은 것 같다.

이 책은 칼럼집이다. 헌데, 신문과 잡지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이러 저러한 보무도 당당한 칼럼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전혀 무겁지 않지만 비판의 신랄함은 문제의 정곡을 찌른다.

이 칼럼이 이탈리아에서 오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에코의 글쓰기 방식에 있다. 에코는 중요한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와중에도 웃긴 말을 너무도 뻔뻔스럽게 잘도 한다.

심각하고 논쟁적인 사안(이 책의 '정보매체들에 대한 논쟁', '여론조사에 대한 여론 조사' 등)에서도, 에코는 너무도 웃긴 상스런 욕을 고상하게, 또는 고상한 욕을 상스럽게 잘도 한다. 두꺼운 안경을 쓴 그 유명한 뚱뚱한 노 교수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걸 생각해보면, 배를 잡고 뒹굴 수밖에 없다.

(얼마나 웃긴지는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에코의 글에 중독된 나는 적어도 배를 잡고 뒹굴 수밖에 없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에코를 본 적이 꽤 있었는데,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와중에도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웃긴 말들을 마구 뱉어 낸다. 그의 풍채와 유명세를 생각해보면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상스럽게 빈정거리는 그 말이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비판이다! 얼마나 절묘한가? 내가 에코의 책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네르바 성냥갑>에 실린 에코의 글들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글쓰기를 허물어뜨린 칼럼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분량도 알맞다. 어떤 사건을 분석하고 비평하기에 너무 간략하지도 너무 산만하지도 않다. 2장의 분량(약 4페이지)은 에코적 비판능력을 발휘하기엔 충분한 분량이라 생각된다.

97년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2002년 <바우돌리노> 이후 다시 에코의 글을 만나니 즐겁기 그지없다. 2권은 조금 있다 읽어야겠다. 너무 빨리 읽어버리면 아쉬울 거 같아서. 

 

현재, 대한민국에도 유용한 보편적 내용을 담고 있는 에세이 제목을 발췌해 본다. 각 타이틀만으로 그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에코 에세이 타이틀은 탁월하다.

장엄하고 발전적인 운명
문학과 예술의 이삭줍기
진실한 말들의 고귀한 거울
책에서 웹을 거쳐 하이퍼텍스트로
정보매체들에 대한 논쟁
어느 미친과학자가 나를 복제하기로 결정했다
우생학은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무엇때문에 책은 우리의 삶을 연장시키는가
고전의 찬양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란게 도대체 뭐야?
개념과 개념주의
프라이버시 교육하기
도시심리학에 관한 몇 가지 메모
잡담은 진지한 것이었다
참조한 책들과 읽어야할 책들
TV중계재판
여론 조사에 대한 여론조사
뉴스를 재활용하지 못하면서 뉴스를 제공하는 방법

[덧붙임]
에코와 동시대에 살면서 그의 재치넘치고 박학다식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번역을 해준 이탈리아어 종사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열린책들에서 에코 매니아를 위한 전집을 내고 있는 것이 더 없이 반갑다. 예전에는 새물결에서 에세이들을, 열린책들에서 소설들을 출간해서 니체 전집처럼 한 출판사에서 전집을 내 주길 기대했었는데, 그 기대가 실현 되어 기쁘기 그지 없다. 한 권 한 권 컬렉션 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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