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하루키 작품을 꼭 읽어 보라고 신신 당부하는 사람이 있었다. 왠지 <상실의 시대>는 읽기 싫었고 <해변의 카프카>는 분량이 넘 많았다. 그러던 중 눈에 띈게 <어둠의 저편>이었다. 순전히 아주 멋진 하드커버 책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타이틀도 멋지다. 어둠의 저편이라니...책 타이틀 맨 위에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른 무라카미 하루키 데뷔 25주년 기념 작품"으로 돼있다. 순전히 책 선전인 줄 알면서도 특별함을 부여했다. 내가 접하는 하루키의 첫 작품이니.. 그리고 읽기시작했다. 첫장을 편지 5시간 동안 꼼짝않고 마지막 장을 덮었다. 별 내용은 없는거 같은데 뭔가가 발목을 잡는다. '지금 거기에 있는 나'랄까..
 
먼저 눈길을 끄는게 독특한 구조적 형식이다. 오후 11:56부터 다음 날 오전 06:52사이, 약 7시간의 서로 다른 공간을 하나의 시간 축과 하나의 카메라 시선을 통해 연결시키고 있다. 중요한 것은 7시간이 밤이라는 사실. 밤은 수면 시간이다.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간에 우리의 주인공들인 아사이 마리, 아사이 에리, 다하하시 테쯔야, 시라가와, 카오루 등은 서로 얽힌 관계속에 공허한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에게 밤은 부조리를 쏟아내는 안식처였다.
 
<어둠의 저편>은 서로 다른 공간속에서 동일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전게되고 있다. 서로 다른 공간은 마리와 테쯔야가 머무는 어둠의 도시 그리고 언니 에리가 잠든 어둠의 방이 이분화 되어 교차하고 있다. 하루키는 카메라 영상기법을 도입하여 어둠의 방과 어둠의 도시를 번갈아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우리는 어둠의 도시에서의 낯선 사건들은 아사히 에리가 꿈꾸는 도시라 보아도 무방하겠다. 


2. 

밤에 잠을 안자고 활보하는 인간들은 어떤 족속들일까? 직업이 없는 한량이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대학생, 아니면 조폭 그도 아니면 야근하는 샐러리맨들 그리고 러브호텔을 찾는 인간 군상일 것이다.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음 날을 위해 잠을 자야 한다.) 밤은 일탈을 부추긴다. 밤은 모든 사악함과 부조리를 어둠으로 덮는다. 나약한 인간들은 그 어둠속에서만 잠시나마 위안을 찾는다. 

<어둠의 저편>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나약한 인간들이다. 자기의 약점을 감추고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 에리에게 깊은 외모적 열등감을 갖는 동생 마리, 유명한 잡지 모델인 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어둠속에서 방황한다. 다카하시 테쯔야, 전과자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음악에 침잠한다. 밤에 주로 연습하는 도중 아사히 에리를 만난다. 카오루, 전직 여자 프로레슬러. 돈에 대해 밝지 못해 궁지에 몰리게 되고 결국 러브호텔 알파빌에서 지배인을 하는 심야형 인간. 알파빌에서 중국인 소녀 접대부를 폭행하고 그녀의 모든 소지품을 빼앗아간 야누스적 인물 시라가와.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시스템설계자 이자 이 소설에서 사건을 일으킨 유일한 장본인. 그외 아픔을 간직한 요모기와 아오모기. 이렇듯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밤이 필요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밤에 활동하고 말하며 증폭된 에너지는 폭행을 가할정도로 넘쳐난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올수록 그들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이야기는 소원해지며 관계는 절연된다. 아침이 올수록 밤의 사건은 기억의 저편을 사라지고 추억이 된다. 아침을 맞는 인간은 밤의 추억-어제의 기억 으로 삶의 의지를 얻는다.
  

  
3.


 인간에게 있어 밤은 생의 절반이다. 꿈을 꾸건 밤새워 일을 하건 술을 마시든 밤은 밝아오는 아침과 함께 과거가 된다. 생의 절반인 밤은 순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어둠의 저편'은 '밝음의 이편'과 함께 사라져가는 '기억의 저편'이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모든 기억을 <어둠의 저편>에 묻어두고 온 나이다. 나는 나이되 어제와 똑같은 나는 없다. 나는 힘차게 '밝음의 이편'을 살것이고 그리고 나서 밤을 맞을 것이며 밝음의 세계의 부산물을 어둠의 저편에 쏟아낼 것이다. 나의 나약함, 증오, 좌절, 번민, 집착 등의 부조리. 어둠은 나의 부조리한 모든 것을 덮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다시 아침이 밝아오고 밤과함께 이전의 나는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