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마 이 영화가 개봉하고서부터였나보다. 계속 추천 멘트가 날라왔다. 책도 나왔다. 하지만 계속 우선순위로부터 뒤로 밀리게 되었다. 올 해 되어서도 주위에서 이 영화가 괜찮다고들 하는 소리가 여전히 내 귀에 들렸다.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는 딱 질색이라서, 일부러 멀리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쨋건 이틀 전 이 7년전 영화를 구해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본 후에 감동을 먹은 작품은 꽤 돼지만 이 작품은 데미지가 엄청나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겨우 추스려 언어로 옮겨본 것이 아래의 감상평이다. 언어로 옮길 수조차 없어서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정리했다.

이런 영화는 언어로 뭐라 지껄이는 것이 온당하지 않지만 그래도 꼭 영화 감상의 느낌을 글로 가둬두고 싶었다.



1

「언젠간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 조제를 만난 지 1년 후 츠네오가 사강의 속편을 조제에게 사다주며 조제가 읽는 대목


「해저..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안 불고 비도 안 와. 정적만이 있을 뿐이지.
외로웠겠다 (츠네오)
별로 외롭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거기로 돌아가진 못할 거야.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개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해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함께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물고기가 그려진 모텔에서 조제의 독백


이별할 줄 알고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 결국 남자가 도망침으로해서 담백한 이별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의 사랑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도망친 츠네오의 눈물이 말해준다.

도망칠 수 있고, 다른 연인으로 그 외형적인 빈 자리를 대치할 수는 있지만 육체와 영혼에 주입된 사랑은 그것이 남긴 자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카나에를 옆에 두고도 도로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며 흘러나오는 츠네오의 독백은 이를 방증한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츠네오의 독백을 뒤로하고 장면이 바뀌어 조제가 자동휠체어를 타고 간다.

조제가 타고가는 자동휠체어의 뒷모습을 보면서..

혼자 집에서 생선을 굽고 있는 조제를 보면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2

인간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이 진부한 물음. 왜 이별을 예정한 두 사람의 사랑 속에는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뭔가가 있을까? 아니, 질문을 조금만 더 문학적 깊이가 느껴지게끔 해보자.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이 영혼을 잠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랑의 비현실적인 가능성이 이토록 사무치게 다가오는 것일까? 영화 속의 장면일 수밖에 없는데, 왜 이리도 가슴이 저린 것일까?
준비된 답변: 생길 수 없는 사랑이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까닭은 그들 각자에게 모든 것이 바로 그와 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고통이며 잔인한 경험 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사랑의 발견이 품고 있는 이 파괴적인 격렬함. 자아의 어떤 것도 더 이상 자아에 남아 있지 못하는 것. 바로 그 점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3

누군가 그랬다. 사랑의 발견은 매혹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영화에 매혹되었고, 조제에게 매혹 당했다. 걷지 못하고 하반신을 끌면서 움직이는 가녀린 그녀를 보면서, (그녀 스스로 말한) 해저 밑의 조개로 그녀가 정확히 유비됐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던 이미지는 불현듯 스크린 상에 나타나 영혼을 불러들이는 신기루가 되어 고정된 눈안으로 들어온다. 부재의 밑바닥에서 꿈속으로 떠오르는 갈망의 이미지가 스크린에 현현한다. 요리를 하러 가는 그녀, 책을 읽는 그녀 그리고 츠네오에게 말을 건네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선 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매혹된 자는 하나의 시선이다. 바라보는 자가 보여지는 자 안으로 시선을 통해 옮아간다. 매혹된 자는 자신을 제압하는 독선적인 형태 앞에서 느끼는 황홀경에 빠진 한 순간이 된다.

그 한 순간이 지나니, 조제는 영화 뒤로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불면의 밤이 어떤 건지를 알게 했다.


4

세월에 흐름에 따라서 감정은 무뎌지는 경향이 있다. 무덤덤한 시간 속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생각지도 않는 길을 통해 언어로 치환할 수 없는 격정을 경험한다.

이 격정은 언어표현의 파괴를 요구하고 수면도 없는 불면의 밤을 요청한다. 이것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은 어깨를 들썩이는 흐느낌밖엔 없다.


무의식 속에 잠재된 감정은 호시탐탐 사랑을 노리고 있나보다. 

 

 

 * 파란색 표시는 <은밀한 생>에 나오는 구절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