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진실 -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이해준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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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 방송 3사에서 얼마 전에 신설한 뉴스프로그램으로 상당한 시청률을 자랑했다. 최근에는 케이블 텔레비전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있다.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을 보는 목적은 감추어진 사기행각을 들춰내서 소비자들에게 그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자기가 어떻게 속았는지 그 프로그램을 통해 확실히 인지한다.

소비자가 사기 당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알든 모르든 제품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소비자는 당하게끔 돼 있는 것이 후기 자본주의 시대이다. 일명 정보의 비대칭성. 사는 사람은 어떤 게 좋은 제품인지 모른다. 아는 것은 광고뿐이 없는데, 그 광고가 허위광고이거나 과대 광고가 대부분이다. 빙과류와 라면 그리고 화장품과 건강식품이 그 대표적이다. 제품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가격은 오르고 독이 들어있는 것을 미의 화신 운운하면서 화장품을 팔아먹고 싸구려 불량품을 건강식품으로 둔갑시켜 팔아먹고 있다.

 광고로 쉽게 소비자를 등쳐먹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것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했고 이런 고발프로그램은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모르는 실상을 알게해 주니, 꽤 좋은 프로그램인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그 본질을 파헤쳐 자본주의 구조가 사기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물론 일부 경제학자 중에서 이런 면을 파헤치지 않은 학자는 없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분들도 자본주의의 사기 행각을 조심스럽게 진단한 분들도 있다.

경제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이마트가 최저가격보상제를 시행한다고 할 때 '우리는 담합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이면의 본질을 파악하여 매우 불쾌했을 것이다. 최저가격보상제야 말로 우리사회에서 가장 뻔뻔하게 소비자를 우롱하는 조치였다. 소수의 사람들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것을 대중에게 알리는데에는 미흡했다.

그런데, 여기 거시경제 구조를 움직이는 그런 사기행각을 고발한 석학의 유고가 있다.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경제의 진실>이 바로 그것이다. 시니컬한 풍자와 신랄한 비판의 대명사로 불리는 경제학계의 전설 토스타인 베블런의 문체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만큼 비판의 수위는 상당하지만 재미있다. 그가 가고 없으니 신간을 읽는 재미는 이제 마지막이리라. (아마도 이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크루그만일 것이다.)

그의 주저에서도 그렇듯이 이 책에서도 신랄한 비판은 여전하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가 움직이는 본질을 사기로 보았다. 이 사기 행각이야 말로 미국 경제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경제 이면의 본질이라고 한다. 그가 보는 사기행각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미국보다 우리가 그 본질에 우선함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더 사기 경제학의 첨단을 걷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어떻게 사기 행위가 무죄일 수 있는가? 어떻게 결백한 사기성이 짙을 수 있는가?" 하지만 갤브레이스는 이에 대한 대답이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결백하고 적법한 사기행위가 사적이나 공적인 대화에 의심할바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이런 신념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이들은" 죄의식이나 책임감은 눈꼽만큼도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경제학적 매카니즘이 이 사기행위에 권위를 덧입혀 주기 때문이다.

갤브레이스는 자본주의에 가려진 사기행각을 추적한다. 우선 용어부터가 사기라고 한다. 품위를 떨어뜨리는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버리고나서 쓸만한 타당한 명칭을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기업경영'과 '시장체제'라는 온화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용어의 혼상은 이 시대에 가장 교모한 것이고 최근에 와서는 가장 명백한 사기 행위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이 용어로부터 시작해서 갤브레이스는 사기의 행각을 차례로 들춰내 보인다.

"경제적 민주주의는 교과서에서조차 계속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했다."(26)

"소비자의 선택은 수요곡선에 맞춰진다. 투표 제도 덕분에 시민이 권력을 갖게 된 것처럼, 경제생활에서는 수요곡선이 소비자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사기성이 농후하다. 투표와 구매행위 모두 돈으로 대중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광고와 마케팅의 세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대학 교육에서도 용인하는 사기행위다."(33)

"GDP의 규모와 구성 그리고 명성에서 우리 사회에 가장 널리 퍼진 사기의 한 형태가 발견된다. 즉 GDP의 구성은 일반 국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요소를 생산하는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36)

"일이라는 단어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묘사하는 경우에도, 그리고 스스로 열렬히 추구하고 그 자체를 만끽하며 충분한 명성과 급료를 받는 일을 묘사하는 경우에도 공통적으로 쓰이는 단어다. 두 개의 다른 상황에 대해 같은 단어를사용하는 데서 이미 사기 행위가 분명히 드러나는 셈이다."(41)

"소규모 기업들, 특히 가족농업 형태로 남아 있는 기업들은 지난 몇 백년간 교과서에 고전적으로 묘사된 경제체제 그 자체인데, 이것은 현대세계가 아니다. 이 모든 체제에 가격과 비용의 압력이 반복해서 가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기업과 가족 농업을 정치, 사회적으로 계속 찬양하는 것 또한 사기 행위다.(50)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더욱 극적인 증거를 더이상 물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됐다. 기업들은 이제 물류 지원에서 전투 훈련까지 현역 군인들을 위해 모든 부문을 지원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은 군복을 입고 신병모집관으로 활동하면서 차세대군인들을 선발하고 훈련 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게 바로 현실이고, 평화의 때와 마찬가지로 전시에도 민간부문이 공공부문의 역할을 한다."(64-65)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나뉘어져 있다고 더이상 사기치지 말라는 것이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그럴싸한 차이가 허위라는 점이 닷 밝혀진 셈이다. 바로 여기서 유리한 계약을 따냄으로써 이득을 보는 기업 세력의 존재가 분명히 입증되는데,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경고한 군산복합체가 바로 그것이다."(91)

"가장 널리 알려진 사기의 세계는 바로 금융계로서, 사기 행위는 명백하지만 대체로 무시되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미래경기와 경기변동의 추이는 예측과 추측이 난무하지만 어느 누구도 확실한 것을 모른다. 모든 예측은 정부의 불확실한 움직임, 기업과 개인의 알 수 없는 행동, 그리고 더 큰 맥락에서 전쟁같은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금융계에서는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예측하는 작업이 호응을 얻고 종종 두둑한 보상을 받는다.(67-68) "과거의 우연한 성공차트, 방정식, 자신감 같은 요소들은 그들의 인식의 깊이를 확인시켜 준다. 이러니 사기행위인 것이다."(69)

"FRB의 거짓된 명성에는 단단한 토대가 있다. 여기에는 은행과 은행가들의 권력과 명성, 그리고 금전에 부여된 마법이 존재한다. 문제는 아주 그럴 듯하고 전적으로 찬성할 수 있는 교과서상의 이론이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들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때 대출을 받는 것이지 금리가 낮다고 해서 대출을 받는 것이 아니다."(75-76)

"현대 대기업 경영진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최상의기회를 부여받았으며, 자기 재산 불리기를 경제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이들에 대한 기본적 보수로 인정하는 세상이었기에 기업 스캔들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82) "수익성 있는 경제적 활동을 할 자유는 필요하지만, 이러한 자유가 수입이나 부를 합법적 또는 불법적으로 횡령하기 위한 은폐장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업경영은 행동의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겉으로는 결백해 보이는 사기행위를 위해 그 권한이 부여된 것은 아니다. 기업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85)

"세금 감면 정책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소비할 이들에게는 이를 박탈하는 정책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 정책이 없는 불경기는 바로 이런 상황을 뜻한다. 경기가 호전되더라도 어떤 분명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서 이루어진 상황은 아니다. 불경기에는 구매력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타개책을 찾아야하며, 특히 소비활동을 할 빈곤층이 구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정책이 확실한 효과를 내지만, 이는 쓸모 없는 동정에 불과하다는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사회적으로 강력한 권력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종종 세금감면이라는 금전적 보상이 주어진다. 하지만 드들에게는 절박한 필요라는 게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돌아간 보상은 소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 돈을 확실히 소비할 빈민들은 이런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 돈을 저축할 것이 확실한 사람들에게만 그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96-98)

 


조금 장황하지만 갤브레이스가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사기라고 주장하는 핵심을 뽑아 본 것이다. 과거 통계와 분석자료 그리고 수학적 모델의 환상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제대로 못보고 엄청난 손실을 보면서도 전문가의 권위로 그 모든 책임을 면제받는 사람들. 작게 사기치면 감방가고 크게 사기치면 경제학자라는 우스개 소리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니 씁슬하다.

97년 외환위기가 오고 공적자금으로 부실채권을 막으면서도 결국 책임지는 경제학자나 관료는 없었다. 정말 이상했다. 문제가 있고 막대한 손실이 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알고보니 희대의 대사기였다. 이 책으로부터 명백해졌다. 그런데, 잡아서 족쳐야 속이 시원하겠는데 경제학의 기묘한 전문적 권위가 이것을 가로막고 있다. 오호~ 통재로다~!

또 하나의 통재로 다가오는 게 있다. 여전히 사기를 쳐먹는 애널리스트들. 그들에게 돈을 갖다 받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연민이 느껴진다. 로또 예측 기계를 산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콧방귀를 끼는 작자들이 증권이나 주식 전문가들의 예측을 믿고 투자를 한다는 게 너무도 아이러니 하다. 본질은 똑같은데 말이다.

이 책의 7장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금융계의 예측은 사기다. 갤브레이스가 말한것처럼 경기변동과 증시를 예측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로또 번호 예측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한마디로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은 보기좋은 뻥이다. 애널리스트들의 과거의 우연한 성공차트, 방정식, 자신감 같은 요소들에 혹하여 투자를 한다면 그 투자가들은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그 명백한 증거로서 증권 애널리스트가 추천한 종목에 종자돈을 걸어 날린 사람들에게 그 애널리스트가 보상을 해주지 않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기치는 넘들은 절대 돈을 되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기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하는 사람들. 사기당하는 것을 못참는 사람들. 그리고 국가를 움직이는 자본주의 경제학이 어떤 사기 구조로 국가의 부를 사기치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굉장히 유용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고 있지는 않다. 현대의 자본주의가 이렇게 당신을 사기치고 있으니 그 본질만 파악하라는 것이다. 대책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나 뭐라나~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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