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미술대회(전국 규모 미술 공모전)에 참가한 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이하 미전=국전)과 민전 그리고 시도전에 대한 인상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특히 비구상 작가들은 꼭 읽어보기 바란다. 다 같은 민전이 아니다. 미술대전이라는 타이틀로 공모전을 열지만 여기에는 구상 작품만 선발하는 대회가 있다. 주최측의 성향을 잘 파악하여 응모해야 하는데, 구상을 주로 선발하는 공모전에 비구상을 아무리 잘 그려봐야 소용이 없기에 그렇다. 처음에는 모르고 응모했다가 탈락해서 이전 대회 수상작들을 대회마다 둘러봤는데, 그제야 알았다. 공모전에 응모하기 전에는 꼭 주최측의 의도를 알아야 하는데, 그 표본이 전 대회 수상작들이다.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해 봐도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포스트는 찾을 수 없었다. 하도 답답해서 미술대회 참가 경험을 토대로 각 미술대전의 특징과 인상을 적어 본다. 내가 서양화 비구상 평면 작업을 하기에 분야는 평면(서양화 및 동양화)에 한정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알아서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다. 우리나라 미술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재미로 봐주시면 좋겠다. 너무 분량이 많아 2회 분으로 나누어 올린다.


우선 본인이 생각하는 권위있는 대회라고 생각하는 공모전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권위있다는 건 심사의 공정성과 수상작들의 평균적 수준을 말한다. 이것도 지극히 주관적이라 하겠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이전의 국전. 올해로 42회째를 맞았다. 두 차례 부정 심사 사건으로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이전 시대(소위 국전시대)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다. 참가해서 출품작들을 쭉 보았는데, 타 대회와는 비교 불가 수준의 작품들이 즐비하다. 100호 이내인데 거의가 100호를 낸다. 그만큼 타 대회에 비해 그 퀄러티가 압도적으로 높다. ·군전 및 도전보다 분명히 한 두 단계 위의 대회라는 걸 응모작을 보면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참여하는 작가들 수준이 정말 많이 다른 듯하다


시도전에서 본상 이상을 수상한 작가들도 미전에서는 수상하지 못하는 케이스가 종종 발생한다. 대개는 시도전 본상(장려상 이상)을 받는 작가들이 미전에서 입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 미술학원 선생님들이 국전 도전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입상하면 미술학원이 잘된다나. 어쨌거나 미전(=국전)은 전체적으로 다른 미술 공모전에 비해 출품작들의 수준이 평균적으로 매우 높은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도 본상 수상작 중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수상작이 있고, 특선작이 입선작보다 못한 작품들이 꽤 있다. 비구상 심사 기준을 완벽히 위배하는 작품임에도 심사위원들은 잘도 본상으로 선정하는 듯하다. 미전도 출품작 전시회를 보면서 한계가 뚜렷하긴 했다. 제발 심사위원들 중 교수 비율을 좀 높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접수비 16, 도록 12(도록은 선택). 전시장은 안산 예술의 전당.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


미전이 두 차례 심사의 불공정이라는 홍역을 치루고 그 위상이 격하된 반면 불교미술대전은 심사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모전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런데 불교미술대전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건 미술 평론가나 교수들이 계속 지적해 온 병폐인데, 2023년까지 불교미술대전을 주관하는 주최 측은 자신들의 기조를 바꿀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여기에 출품했고, 출품하기 전에 내가 색면추상을 주로 작업하는 작가라는 걸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평면 회화를 전공했던 입체를 전공했던 분명히 말하지만 일반 미술작가들은 이 공모전에 절대 진입이 불가하다. 불화를 그리지 않는 한. 일단 앞에서 지적했던 불교미술대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대략적이나마 언급해 본다.


불교미술대전에 입상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불교적 이미지를 직접 형상화해야 한다. 미술대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에 불교적 사유를 현대미술에 접목하여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줄로 아는데, 여긴 이게 아예 불가하다. 그냥 고려시대 양류관음상 그림을 복제하는 수준으로 그려서 내야 수상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수상작 8할 이상이 부처나 나한도와 같은 도상이다. 1회부터 올해까지 불교미술대전이란 타이틀은 바뀌어야만 한다. 여긴 미술대회가 아니라 기능대회다. 단순히 과거의 문화제를 복제하는 차원을 넘지 못한다. 홈페이지 들어가면 역대 수상작들을 전부 볼 수 있는데 불교적 이상을 현대미술 작품으로 구현한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없다. 진정한 불교미술대전이 되려면 불교적 사유가 과거에 집착하며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세계를 포착하여 재해석되고 재창조되어야만 한다. 여전히 과거 유물의 복제화 단계로만 머물러 있어서는 미술인들의 조롱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지난 수상작들을 검색하면서 여기 응모를 할까말까 고민 끝에 사무국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지난 수상작들이 전부 불교화만 있는데, 나는 색면추상을 한다. 나와 같은 추상화도 응모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사무국 담당자는 올해부터 미술대전이 현대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응모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주제만 불교적이면 된다고 해서 응모해 봤다. 무슨 주제냐고 해서 해심밀경에 나오는 유식삼성설을 주제로 잡았다고 하니 출품해도 된다고 해서 출품했다. 나중에 수상작들을 보고 맥이 빠졌다. 전부 이전 수상작들과 대동소이한 작품들만 선정했다. 여긴 변화가 필요하지만 절대 변할 거 같지 않다.


그리고 여긴 출품하기 위한 서류가 매우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특이한 건 작품설명서부분이다. 되게 신기한 게 다른 미술 공모전의 경우 300~200자 내외의 작품설명이나 이미지 첨부로 끝난다. 헌데 불교미술대전은 응모 원서에 작품설명 부분 이외에 따로 작품설명서를 작성해야 한다. 가로15×세로13cm의 이미지를 첨부하고 그 아래에 작품소개, 제작의도, 제작기간 및 세부제작 과정을 약 300자씩 총 1000자 가량 써야 한다. 이건 뭐 대학 논술 시험도 아니고 여간 고역이 아니다. 글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쥐약이다. 난 이러한 분량을 요구하는 공모전은 처음 본다. 미전도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 여튼 이 대회는 개선이 필요한 대회인데, 개설될 것 같지가 않아 자신들만의 축제로 내버려둬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현대 미술을 전공하거나 현대 미술 작가분들은 절대 여기 응모할 필요가 없겠다.


접수비 15, 도록비 없음. 200호 이내. 특이하게도 접수할 때 자기 작품을 얼마로 할 건지 물어봄. 보험처리 때문이라고. 200호 이내라서 겁나 큰 그림이 되게 많다. 전시장은 아라 아트센터



중앙회화전


이 대회가 중앙일보사에서 시행하는 중앙미술대전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올 해로 3회째를 맞는 대회인데 중앙미술대전에서 분리해서 회화전만 따로 시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별개의 대회인지 알 수가 없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주최자만 중앙일보사로 동일하다


여기도 1차 심사와 2차 심사로 나뉜다. 1차 심사는 사진 심사고, 2차는 실물 심사인데, 여기는 정말 특이하게도 1차 심사를 통과하고 2차 실물 심사를 안 받아도 입선으로 확정된다. 실물을 반입하지 않고도 상을 주는 곳은 중앙회화전밖에 없다. 그런데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2차 심사비가 무려 30만원이다. 1차 심사비 2만원에 비하면 10배가 넘는다. 30만원이면 일반 공모전 장려상 상금이다. 30만원 내고 2차 심사에 참여했는데 입선이나 특선이면 30만원만 날리는 거다. 그래서 주최측은 2차 참가를 안 해도 상을 주기로 했나보다. 아마도 1,2차 심사가 있는 대회에서 이러한 결정을 한 대회는 중앙회화전이 유일할 듯. 이런 대회강요는 정말 처음 본다. 보통은 1차 심사할 때 출품료가 결정되고, 2차 심사할 때는 작품만 반입하며, 만일 반입하지 않으면 탈락한다. 당연할 줄 알았는데, 중앙회화전 보면서 이 상식이 무너졌다


어쨌거나 중앙회화전은 약 100일 이상 1차 심사작을 공모하여 2차 본선 심사 대상작 300점을 선발하는데, 300점 안에 들면 1차 발표날 중앙일보 전면광고에 그림 300점이 실린다. 일간지에 자신의 그림이 실리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튼 우리나라에서 회화만 선발하는 거의 유일한 공모전이라 할 수 있다


100일 이상 공모하여 800점 이상 응모했다는 건 평면 신진 작가들은 거의 다 참가하는 대회이지 않나 생각한다. 실험성 강한 작품도 상당수 선발되고 추상화 입상작도 많다. 자신의 작품이 실험성 짙은 작품을 추구한다 싶으면 여기 응모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듯. 작년까지는 40호인가 제한이 있었는데 올해부터 100호 이내로 확대됐다.


접수비 : 1차 사진심사 2만원, 2차 실물심사 30만원. 도록비 없음. 전시장은 인사동 한국미술관. 참고로 여기 1차 심사비는 진짜 저렴하다. 그래서 최고의 가성비는 1차 심사만 통과하면 2차를 포기하는 거다. 2만원에 상장과 도록을 받을 수 있다! 2차 참가를 안하는 작가도 있는 듯한데, 나는 과감히 안냈다. 실물 심사로 본상 수상에 실패한 경험만 3회나 된다. 내 그림은 현재 내가 잘 안다....ㅎㅎㅎ



[덧]

미술공모전 당선작을 모아 놓은 도록이 있다. 철 지난 도록도 많은데 이런 걸 왜 파나 했더니 자료집으로 의의가 있다고. 신진작가들의 경우 미술대전 지난 도록을 보는 것도 작업을 하는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헌데 너무 비싸다. 2013년도 것도 올해 것과 마찬가지로 12만원. 살 사람이 아무도 없을듯..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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