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늑대들 걸어가는 늑대들
전이수 지음 / 엘리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걸어가는 늑대들이란 제목의 그림책을 접하고, 무엇보다 작가가 9살 소년이란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첫 번째 작품이 아닌 두 번째 작품이란 사실에 다시 놀랐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에 놀란 점입니다. 그 뒤 책을 펼쳐 읽고 나서 다시 놀랐습니다. 9살 소년의 생각이 이렇게 어른스럽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글을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어른이 쓴 책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습니다.

 

전이수의 그림책 걸어가는 늑대들은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가는 현대물질문명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늑대들이 한 도시를 방문합니다. 그곳은 먼지 하나 날리지 않는 깨끗한 도시입니다. 아마 흙이 사라진 콘크리트 도시를 상징하겠죠. 사람은 없고 군데군데 작은 오름들 만 가득한 도시. 그곳에서 뭔가 낯선 움직임에 놀란 늑대들은 오름에 오르게 되는데, 오름에 올라보니 오름이라 여겼던 것들이 오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오름이라 여겼던 그것들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을 로봇에게 맡겨 버리고 리모컨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자동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점차 몸이 비대해지고 마치 작은 언덕들처럼 되어버렸던 겁니다. 사람의 형상을 잃어버린 커다란 덩어리들이 되어 버린 거죠.

   

 

이런 자유로운 상상이 재미납니다. “당신들 계속 그렇게 편한 것만 좋아하고, 발달하는 과학문명이 최고의 선인 줄 착각하고 살다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아!”라고 경고하는 것 같아 내심 통쾌하기도 합니다.

 

이런 자동화와 기계화, 문명 발달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인간들(물론, 인간 스스로 자초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아니 오름이 되어버린 덩어리들의 사라진 야성을 다시 일깨우는 것은 다름 아닌 늑대들입니다. 아마 그렇기에 작가는 늑대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늑대야말로 야성의 대표적 동물이니까요.

   

 

늑대는 인간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꽃을 가꾸면서 인간은 비로소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공간임을. 자연이야말로 치유의 능력이 있는 대상임을 말하는 것이겠죠. 이렇게 어딘가로 계속하여 걸어가는 늑대들로 인해 흙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공간은 다시 회복되어집니다. 흙냄새가 살아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움직이는 것이,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아가는 깨달음, 그 회복이 인간들에게서 일어납니다.

  

  

9살 작가에게서 이런 생각, 통찰력이 나올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몇몇 문장의 경우 맞춤법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9살 소년임을 감안할 때, 맞춤법이 틀릴 수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에게도 쉽지 않은 게 맞춤법이니까요.

 

그럼에도 틀린 맞춤법을 수정하여 책을 낼 순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9살 소년임을 감안하고 그대로 출간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틀린 맞춤법들로 인해 책은 내용을 떠나 다시 9살 어린 아이의 책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은 깊은 통찰력은 오히려 어린아이답지 않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져 버렸습니다. 물론, 이는 서평을 쓰는 저의 전적인 생각입니다. 분명, 틀린 맞춤법을 그대로 실은 데에는 출판사의 협의와 결정이 있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이런 결정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런 아쉬움이 동화작가 전이수의 두 번째 작품에 대한 감탄을 반감시켰지만, 그럼에도 어린아이 같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 통찰력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아니 어쩌면 어린아이의 맑은 눈으로 바라보기에 더욱 정확하게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성숙한 후의 작품은 과연 어떤 작품들이 나오게 될지 기대되는 놀라운 천재 작가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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