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아내가 있다 - 세상에 내 편인 오직 한 사람, 마녀 아내에게 바치는 시인 남편의 미련한 고백
전윤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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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이면서도 한번 관계가 틀어지면 자칫 세상에서 가장 먼 관계가 될 위험성을 내포한 관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부부관계는 혈연관계가 아닌 계약관계이기 때문이다. 혈연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인 반면, 계약관계는 서로간의 신뢰가 깨져버리면 언제라도 끊을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 자식 간의 관계와 달리 부부관계는 때론 위험하고 위태로운 줄타기가 연출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말하듯이 부부야말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있게 될 사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부부 사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언제라도 깨어져버릴 수 있는 관계이면서도 또 한편으로 인생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관계임에도 여전히 돌이켜 보면, 잘 해준 것보다는 못해준 아쉬움이 남는 사이가 부부사이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이 책 『나에겐 아내가 있다』는 바로 그러한 부부관계, 특히, 시인인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며 고백하는 시와 그 시 이면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시인들이 직접 타인의 시를 읽어주며 해설해주는 책들이 시중에는 참 많다. 그런 책들도 참 좋지만, 이 책은 그런 책들과는 다른 힘이 있다. 그건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이다.

 

남의 시를 해설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시인의 원래 의도와 달리 독자의 입장에서의 해석이 가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시라는 것이 시인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자의 것이 되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시에 대한 해설은 원 시와는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 게다가 때론 시인이 말하고자 함과 다른 접근이 있을 수도 있겠고, 시가 전해주는 감정적 접근보다 분석과 해석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시인이 직접 그 시를 잉태하게 된 삶의 못자리들을 전해주기에 추상적이지도, 그리고 학문적이지도, 분석적이지도 않다. 시를 잉태한 삶, 그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대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뿐더러 시인의 시는 지나치게 추상적이지도, 함축적이지도 않다. 아내를 향한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솔직하면서도 편안하게 읽혀지는 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지 않나 여겨진다.

 

시인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다. 언제나 고생시키는 철부지 남편으로서의 미안함, 그리고 고생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애틋함이 많이 느껴진다.

 

“옛날에는 주인이 죽으면 부하나 하인들은 산 채로 순장되었다. 권력이 강한 자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순장되었다. 그런데 나처럼 못난 자에게도 순장자가 있다. 그 사실이 가슴 아프다. 도대체 난 무슨 권리로 그녀의 삶을 희생시킨 것일까.”(33쪽)

 

시인의 이 물음이 가슴을 울린다. “도대체 난 무슨 권리로 그녀의 삶을 희생시킨 것일까.” 나 역시 내 아내를 순장자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부끄러우며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사실 사직서는 나보다 아내가 더 쓰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중략) 그러니 아내는 아마 사직서를 회사보다는 내게 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내게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참고 참았을 뿐이다.”(124쪽)

 

이런 시인의 모습이 날 보는 것 같다. 부끄러운 남편이지만, 여전히 사직서를 내지 않고, 묵묵히 참아내고 있는 고마운 아내, 여전히 내 곁의 자리를 굳게 지켜주며, 세상 누구보다 더 큰 힘으로 날 응원하는 아내에게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을 가득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 책은 남편이라면 모두 공감할 그런 내용들로 가득 담겨져 있지 않을까 싶다.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거짓말로 아내를 내 삶의 순장자로 만들고, 그럼에도 여전히 철부지 남편으로 아내를 힘겹게 하는 남편들이여. 이 책을 읽고 회개함이 어떨까? 아울러 언제나 나에게 사직서를 쓰지 않고 묵묵히 참아내는 강한 아내에게 진심을 담은 감사를 전하는 것은 어떨까?

 

난 신혼 때부터 아내를 ‘안해’라 불렀다. 안에 있는 태양이란 의미로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내를 향해,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안해’로 다가가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행복하게 안해. 잘해주지 안해. 가정에 충실하지 안해. 호강시키지 안해. 만약 그렇다면 곤란할 것이다. 왜?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부부관계는 계약관계니까. 언제나 적절한 긴장감을 잃지 말고, 영원한 내편인 안해에게 잘 하길 다짐해본다. 진정한 안해로 다시 떠오르게 되도록.

 

“나에게도 안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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