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알고 읽은 건 아닌데, 순서대로 읽었다. 작가의 첫 작품이자, <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십각관의 살인을 예전에 만났었고(사실,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이번에 읽은 수차관의 살인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자, 작가의 <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책, 수차관의 살인에 대한 평은 호평일색이다.

 

솔직히 아야치지 유키토에 대해선 잘 모른다. 여태껏 십각관의 살인한 권을 읽었을 뿐이다. 그랬기에 당연하게도 작가의 등장을 신본격추리소설의 등장 기점으로 삼는다는 놀라운 사실도 몰랐다. 하지만, 수차관의 살인을 읽으며, 왜 이 작가에게 신본격파의 기수라는 수식을 붙이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찾아보니, 작가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상당히 많음을 알고 또 한 번 놀랐다. 여기에 한 번 더 놀란 건, <관 시리즈>의 몇 권은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절판된 책들의 중고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올라 있어, 다시 한 번 놀랐다.

 

아직 <관 시리즈>를 접한 건 두 번째에 불과하지만, <관 시리즈>는 기괴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별난 건물들을 무대로 벌어지는 기괴한 살인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이번 수차관의 살인은 당연히 수차관이란 별스러운 건물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불세출의 화가 후지누마 잇세이의 아들 기이치는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얼굴과 다리에 큰 상처를 입은 후, 자신의 전 재산을 모아 산 속 외딴 곳에 수차관을 짓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이곳 수차관에는 특별한 게 있다. 세 개의 커다란 수차도 특별하지만, 무엇보다 불세출 화가인 아버지의 작품들을 기이치가 모두 다시 사들여 자신만의 미술작품으로 삼고 수차관 회랑에 전시하기도 하고 보관실에 보관해 놓기도 한 것. 이런 사연으로 이제 후지누마 잇세이의 명작들은 더 이상 일반인들은 감상할 수 없는 작품들이 되어버리고 만다. 1년에 한 차례, 잇세이의 기일에만 수차관이 개방된다. 그것도 선택 받은 네 사람에게만.

 

각기 후지누마 가문과 개인적 연관이 있는 사람들. 미술상 오이시 겐조, 미술사 대학교수 모리 시게히코, 외과 병원장 미타무라 노리유키, 그리고 절의 부주지인 후루카와 쓰네히토, 이렇게 네 사람만이 수차관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모였던 날, 유달리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던 밤,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수차관의 상주 가정부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게 되고. 기이치의 친구이자 지난 몇 달간 수차관에서 기거하던 마사키 신고가 끔찍한 모습으로 죽게 된다. 그리고 선택 받은 방문자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후루카와 쓰네히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사건은 사라진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범인으로 판명 받게 되고 종결되었는데...

 

1년의 시간이 지나 또 다시 잇세이의 기일을 맞아, 선택받은 자들만이(이젠 세 사람으로 줄었다.) 수차관을 방문하여 명작을 감상할 특권을 누릴 날이 된다. 그런데, 또 다시 악몽이 반복된다. 또 다시 가정부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외과 병원장인 미타무가 뒤를 이어 살해된다. 자신의 손가락을 가리키는 다잉 메시지를 남긴 채. 과연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는 살인, 그 악몽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소설의 전개는 사건이 벌어졌던 일 년 전 928일과 현재(928)를 오가며 진행된다(물론, 이는 29일까지 진행된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에 벌어졌던,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가운데, 소설은 사건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사건 속에서 탐정 역할을 맡는 사람은 갑자기 수차관에 나타난 불청객 시마다 기요시다(1십각관의 살인에서도 나온다는데, 솔직히 가물가물하다. 1권을 책장에서 꺼내 들춰보니 맞다. 나온다. 그 역할은 여전히 가물가물하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언제 다시 1권을 읽어봐야 할 듯.). 시마다 기요시는 반복되는 불가해한 사건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며 진실을 드러낸다.

 

수차관의 살인은 수차관이라는 기묘한 건물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소설 전반을 감싸고 있어 미스터리 트릭의 효과를 배가시킨다(어쩌면 이 괴상한 건물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 것을 알기에 독자로서 품고 있는 조마조마한 기대감이 이런 미스터리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밀실 수수께끼, 다잉 메시지 등에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도 재미나다. 정말 본격추리소설의 진가를 보여주며, 본격추리소설의 재미에 푹 빠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처음 시작 장면에 나오는 끔찍한 범행의 현장, 특히 미사키 신고의 죽음과 시체 처리 내용들은 하나하나가 사건의 진실을 가르쳐주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다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외딴 곳에 칩거하는 기이치의 개인적 상황 역시 또 하나의 트릭을 맞물리게 만들기도 하고(이 문장은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묘미 가운데 하나는 사건의 진실이 꽁꽁 감싸여 있다가 어느 순간 탁 터지듯 작가가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독자 역시 사건의 진실을 조금씩 엿보며 범인이 누구일지 추리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마치 작가는 독자와 시합이라도 하듯 사건의 진실에 대해 꽁꽁 감싸면서도, 곳곳에 진실의 열쇠를 흘려놓음으로 한 번 풀어보시지. 난 이미 다 알려줬거든.’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진실을 맞출지도 모르겠다. 이런 힌트를 눈치 채고, 결국 자신의 추리가 맞았음을 알았을 때의 환희를 허락하는 것 역시 이 책의 묘미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가 사건 속 진실을 모두 다 알아채버릴 정도로 오픈하진 않는다(다 오픈했는데, 내가 모른 건가?). 게다가 혹시~’ 하며 생각했던 바가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 속에 감춰진 트릭이 시시하게 느낄 수준은 결코 아니다. 아울러 눈치 챘다고 해서 소설의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닐 게다(이 문장에서 난 모든 걸 눈치 채진 못했음을 실토하는 격이다.). 그만큼 작가는 맛깔나게 소설을 전개해나간다.

 

<관 시리즈> 앞으로도 6개의 작품이 더 있다고 하니 왠지 배부른 기분이다. 작가는 관 시리즈를 열 번째 작품까지 계획하고 있는데, 현재 9번째 작품인 기면관의 살인까지 발표되었고, 8번째 작품인 빗쿠리관의 살인은 국내에선 출간되지 않았기에 내가 앞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6개다. 그러니, 이런 좋은 추리소설의 즐거움을 누릴 기회가 많이 남아 있어 좋다. 절판된 작품이 많아 구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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