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씻는 냇물 북멘토 가치동화 30
홍종의 지음, 박세영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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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른들이 다툴 때 곧잘 사용하던 욕설 가운데 화냥년이란 욕이 있었습니다. ‘화냥년이란 욕설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에서 기녀를 가리키는 말 화낭(花娘)’이 있는데, 정유재란이나 병자호란 때 적들에게 잡혀갔다 돌아온 여인들을 가리켜 화낭과 비슷한 발음의 환향녀(還鄕女)로 빗대 쓴 듯하다. 이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오랑캐들의 노리개 노릇을 하다 왔다고 하여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결혼한 여성의 경우 이혼을 당하기도 했다. 인조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환향녀란 이유로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출처,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1000가지에서.

 

나라가 백성을 지켜주지 못해 겪었던 끔찍한 일들. 그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하기보다는 내치고 외면하고 돌아온 가족을 오히려 부끄러워했던 남성들(남성들만은 아닐 겁니다. 가문에 속한 이들이 모두 화냥년이라며 부끄러워했겠죠.)의 모습이 같은 남성으로서 부끄럽습니다.

 

동화 몸을 씻는 냇물은 바로 이런 환향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조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만이 아니라, 이들을 포용하고 용납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내를 지정해 냇물로 몸을 씻은 환향녀에 대해서는 과거를 묻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정된 내가 바로 홍제천입니다. 동화 몸을 씻는 냇물은 바로 이 홍제천을 가리킵니다.

 

그럼, 잠깐 동화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주인공 우마의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 오랑캐와 싸우다 한 줌 뼛가루가 되어 돌아옵니다. 이렇게 해서 우마는 병약한 엄마와 단둘이 살아갑니다. 그 생활이 얼마나 힘겨울지 상상이 갑니다. 우마란 이름의 뜻 역시 아들이 소와 말을 갖길 바라는 부모님의 소소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아들을 위한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 뭉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그 삶이 힘겹고 팍팍했으면, 소나 말을 갖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야 했던가 싶어 먹먹하기도 했답니다.

 

이런 우마의 힘겨운 삶은 우마의 엄마가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서도 표현됩니다. 언제나 정직한 삶을 살길 말하던 엄마였는데, 언젠가부터 양심이나 인정보다는 쌀 한줌에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도덕적 양심이나 정()조차 가난 앞에 쉬이 힘을 잃게 됨을 알려줄뿐더러, 당시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환향녀 당사자들의 절망과 애환에 눈이 갑니다. 아무도 반기는 이 없지만 그럼에도 고향으로 향하는 이들, 넘어지면 기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이들의 마음이 먹먹함을 넘어서게 됩니다. 가족조차 수치로 여기며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도 같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인들을 보듬어 안고 새로운 삶을 향해 당차게 일어서는 이대감 댁 딸 화홍의 모습은 연약함 껍질 안에 감춰진 전사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이런 여인들에게 홍제천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임금님의 명이 내려졌으니, 이 냇물에 몸을 씻으면 악몽같은 순간들이 다 지워질 것이라는 희망의 냇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현실 속에선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시간들, 외면하는 가족의 몰인정함에 몸을 떨어야만 했던 절망의 냇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또 씻는 것밖에 없던 수많은 여인들. 동화 속에서 그 여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는 건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화홍이었습니다. 결국엔 상처 입은 영혼들의 연대가 새 희망을 열어간다는 의미 아닐까요?

 

어쩌면 오늘도 자신만의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또 씻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희망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야말로 밝은 미래를 열어갈 자격이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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