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쓴 글
김현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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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편의 소설 중, 단연 주목할 만한 소설은 "까마귀가 쓴 글"이다. 까마귀의 시선으로 현실을 벗어난 세계를 꼼꼼히 그려내고 있다. 예전 고등학교 다닐 적에 문학교과서에 실렸던 "오감도"를 떠올리며 소설을 읽어 나갔고, 표제작 "까마귀가 쓴 글"은 독특한 구성으로 인간 세계를 예리하게 비판한 풍자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정해놓은 잣대가 모두 옳다고 믿고 무조건 그것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어떤 의미에서 살펴보면, "비슷한 수준, 비슷한 취향, 비슷한 마인드"를 원하는 "진정 평등한 세상"에 개인화의 욕망은 녹아들 수 없음에서 현대인들은 모두가 까마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반항해도 운명이 써놓은 소설의 끝을 바꿀 순 없는 것이다.” 체제 밖으로 튕겨져 나가도, 체제 안으로 들어와도 내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작가의 말-

'신개념 워드 프로세서’에는 예술작품에서조차 측량 가능한 감동만을 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문학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젊은 작가의 고민이 녹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자란 ‘나’는 직장생활에서 첫 실패를 겪는다. 모욕감으로 사표를 내는 그는 정체 불명의 메일, ‘신개념 워드 프로세스 프로그램’을 받는다. 머릿속의 구상을 자동적으로 완벽하게 소설로 써내는 이 프로그램으로 그는 “적당히 신선하고, 적당히 충격적인” 소설을 완성해 한순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실패자에 가까웠지만 뛰어난 소설가-자신의 육필로 글을 쓰는-가 된 강중연의 그림자는 그를 괴롭힌다. 작가는 이를 통해 표준화한 삶과 그에 투항하는 규범적 글쓰기에 대해 반성적인 성찰을 시도한다.
(줄거리)

이 소설은 메타포, 모티브 면에서는 각각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반복되는 일상의 균열이 가져다주는 반항 심리, 일그러진 욕망을 곳곳에 새기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우리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인생이라 당당히 말하며 설 수 있는 자리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는 건가?? 라는 생각이 소설 읽는 내내 들어 나를 괴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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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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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 제 북로그에 올렸던 것입니다.
쭉 올리고 나서, 새로운 리뷰 쓸 예정입니다.

 

머뭇머뭇했다. 평(그 외 비슷한 거)을 쓰려고 하면, 반드시 동반되는 묘한 감정. 꽤 어렵다. 책을 읽을 때는 유난히 쉬운 문장이라 급속도로 빨리 읽혀짐에도 불구하고 느낀 점을 낱낱이 파헤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고 들면, 으레 부닥치는 난감함. 여느 때처럼 한동안 주저하다가, 무작정 덤벼보는 것이다(;;)

이전에도 얘기했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이것저것 따지며 읽는 편이다. 보통 이런 책은 감성을 자극하는 쪽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문장이 꼼꼼한지, 단어 선정이 잘 되었는지, 문장과 문장의 호응이 되는지, 문단을 잘 나누었는지, 전개가 느슨하지 않는지, 등등을 먼저 파악하려 들기 때문에 충분한 여유를 가지지 않는 탓이겠지.

주위에 다른 분들이 자신들의 지나온 사랑을 바나나의 소설과 결부시킨 것을 종종 봤는데, 나는 그런 경험 또한 없어 더욱 휘둘리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뭐, 어느 쪽이라도 그다지 상관은 없는 듯하다(;;)

내가 바나나의 소설을 이제껏 좋아해 온 이유를 꼽자면, 그녀가 눈에 띌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도, 소설의 기본을 꾸준히 지켜온 것도,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끼친 것이, 책을 읽으면서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음이 제일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언제나 꿈을 꾸고 있지만, 지루한 일상을 견뎌 내기에는 평소 내가 이름만 나와도 열광하는 대단한 작가, "사르트르", "이청준",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등등의 유명한 작가의 작품만을 읽어서는 따분함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일명 "시간 때우기 용"으로 무턱대고 선정한 책이었다.(어째 건방져 보임;;;)

처음 스타트를 끊었을 때는 여태껏 읽어 온 여느 작가들과는 다른 일본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던 거 같다(일본소설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다;). 바나나는 자신만의 소설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그 점을 엄청나게 부러워했었다(;;)
아무튼, 달구어진(;;)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독서를 했지만, 초등학교 때(원대한 꿈을 가지고 동화 세계에서 살았던 무렵)의 기억이 떠올라 새삼 그 시절이 그리워져 한층 책에 매달리다시피 했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목록에 올라와 있어 어느 정도 질책(문장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고 해둘까;;;)은 하지만,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쓰다 보니, 다른 길로 많이 빠져 있는데, 뭐 그렇다는 거다. 결론은, 앞으로도 바나나를 많이 응원할 거라는 거(??)라고 하면 딱_이겠다.

그녀의 데뷔작이라 은근히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문장을 만드는 중에도 갈팡질팡한다. 또한, 처음 읽었던 때와 지금 새로 들고 읽을 때 사뭇 다르다는 걸 안다. 다른 소설도 그랬지만, 흥분마저 이는 것이 진기한 경험인 듯 아주 색다르다. 상처 치유라는 작가의 의식이 담겨 극심한 피로감으로 똘똘 뭉쳐 있거나, 혹은 지극히 싫어하는 주위의 아니꼬운 시선으로 스트레스에 휩쓸려 있을 때 읽으면 제대로 씻길 거라는 생각을 한다.(<-이런 것도 자잘한 상처니까;;;)

뭔가 엄청난 것을 해낸 듯 여유가 생겨 해방감마저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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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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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 제 북로그에 올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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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속의 파워를 어딘가에 밀봉해두고 싶다. 납 상자 같은 데 가두어놓고, 그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걸 보면서 문장을 쓰고 싶다."

자유분방한 글쓰기의 묘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칭해놓았다. 과연 눈에 띄는 구절이다. 나 스스로가 그런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라고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즐거움이란 요소가 덧붙여 시간을 채워나가면 아무래도 진정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건 쉬운 게 아니지만, 그만큼 굉장한 것이다. 왠지 폭발력(;;)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한 하루키의 파워를 사랑한다.
하루키는 나의 스타일과 약간 닮았다. 한편의 단편소설은 문득 떠오른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고 어디선가(인터뷰, 혹은 책 뒤의 저자의 말에서 봤을 수도)밝혀놓았다. 무턱대고 덤비는 거라고, 나 또한 막무가내로 소설 쓰기를 시작했을 무렵, 그랬던 기억이 있다. 쿡-하고 웃어 버렸지만, 왠지 끌리는 무엇이 있었다. 그때부터였을 게다. 하루키에게 애정을 쏟기 시작한 것은.
이 단편집은 하루키의 납 상자와도 같다. 무수한 것을 담으려고 덤볐다. 잘하고 못하고 결과를 떠나서, 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서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만큼, 대단한 열정이다.
갖가지 과일을 잔뜩 담아놓은 예쁜 바구니처럼 이 단편집은 그러한 면모를 띄고 있다. 특이하고 다양한 색깔의 소재와 모티브,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달려나가는 전개 방식, 머뭇거리며 바탕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지 않는 투명한 문체, 호흡이 상당히 짧은 간결한 문장, 특별하고 진기한 주제의식…….

하루키의 소설은 내게 한 잔의 커피 같다. 하루도 빼놓을 수 없고, 한 잔으로는 뭔가 부족한 듯한(잠깐의 목마름은 식혀주지만,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아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은), 그렇지만 사소한 것이라 치부할 수는 없는 그런 것. 시간 나는 대로 손에 잡고 싶은 그런 것.

덧붙여, 중독성이 강해 읽기를 중단할 수도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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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짧은 기억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서영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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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더드 재즈를 넘버를 매겨 소제목으로 하는 구성을 취하는 소설.

누구도 정확한 위치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런 장소, 재즈바에서 그때, 그때 적절히 흘러나오는 노래에 얽힌 추억, 떠나간 사랑, 가슴 깊이 스며든 고통 등에 관한 짧은 기록. 이제껏 그의 소설을 읽어오면서 받았던 극단적 충격, 남다른 취향에 근접한 소설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나쁜 건 아니었고, 먹먹한 가슴을 확 풀어주는 작은 감동이 존재하기에 다소 즐거웠던 감정을 되새길 수 있다.
환상 속의 재즈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소제목이 된 노래들. 주목할 만한 특정 가사를 적어 둔 부분에서 왠지 노래를 직접 찾아서 들으며 소설을 읽는다면, 몸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특별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나중에 행동으로 옮겨 봐야지(;;)
풍성한 추억의 잔상이 표지를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훈훈하게 해준다. 각각 사연의 아쉬움은 후에 빛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새록새록 솟아나 훌훌 털어 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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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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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피해망상·대인 기피증·폭력충동·거짓말·미각장애·이상성애에 사로잡힌 18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색 소설이다. 특정한 주인공 없이 연작으로 이어지는 단편들이 꽤 흥미롭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읽혀지는 소설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이 책을 살 당시에 뭔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을 정해 이제껏 지켜온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었고, 무작정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끌림이 있어서 별다른 확인 없이 구입했었다. 남다른 충격을 던져주었던 소설이다. 그게 퍽 황당했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저 놀라움뿐이었다는 것밖에. 우리 사회에서 이런 유의 소설은 따로 분류할 정도로 그리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은연중에 말들이 많다는 것도. 하지만 그게 어때서?? 라고 일일이 따질 생각은 없고, 그저 개개인의 취향의 문제니까 이해는 못하더라도 태클 걸 일은 없다고 본다.

각각의 단편은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로 앞 단편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이(둘 중의 하나)또 다른 인물을 만나 다음 단편을 풀어 가는 색다른 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확-하고 내 눈길을 끌었던 부분. 이런 식으로 전개를 해서 무수한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시간이었다, 한창 독서를 하고 있을 때.

언뜻 보기에 절망으로 가득 찬 소설일 것 같지만, 최저한의 출발점을 제시한 희망을 포함한 소설이라 얘기할 수 있다.

특정시점으로 이렇다하게 꼬집을 주인공은 없었지만, 딱 하나의 눈에 띄는 핵심인물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다. 바로,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녀 "유코"
그녀는 전화선, 혹은 비디오의 케이블과 라인에 흐르고 있는 전기 신호를 모니터나 스피커를 이용하지 않고 보거나 들을 수 있다.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정신병원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자란 뒤에도 일상에서 느끼는 갈증을 성적인 것으로 풀려고 하고, 특이하게도 칸딘스키의 그림과 바그너의 음악 외에는 만족하는 것이 없으며 "누군가를 좋아한다"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 또한 고독한 존재인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녀의 신비한 능력을 통해, 다른 등장 인물들이 타인과 끊어진 선(라인)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슬쩍슬쩍 비추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18명의 인물들은 모두 타인과 단절되어 있다. 가족이나 애인에게 버림받았거나, 회사 등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 때문에 그들은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의 언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언어탈락 상태에서 인간은 비언어적 행위, 즉 육체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보이는, 아이가 부모를 때리고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폭력성이 심화된다. 이 작품에 나오는 SM(사디즘·마조히즘)도 이와 관계가 깊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함께 그 때까지의 인물을 지워 가는 방법을 취하면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등장 인물이 차례로 변하는 단편의 형식이 된 것입니다. 인물의 시추에이션이 cut back(앞서 나왔던 화면으로 되돌아간다) 풍으로 그려진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Short cuts』의 영향도 있었죠. 그런 방법으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인 상처도 소설의 무대로부터 싹 지워 가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인간은 자란 환경에 의해 속박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라거나 정신적 상처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 라는 기성관념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다빈치』 10월 호 무라카미 류 특집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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