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 무라카미 류 걸작선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 교보 제 북로그에 올렸던 것입니다.
쭉 올리고 나서, 새로운 리뷰 쓸 예정입니다.

 

신경증·피해망상·대인 기피증·폭력충동·거짓말·미각장애·이상성애에 사로잡힌 18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이색 소설이다. 특정한 주인공 없이 연작으로 이어지는 단편들이 꽤 흥미롭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읽혀지는 소설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이 책을 살 당시에 뭔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을 정해 이제껏 지켜온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었고, 무작정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끌림이 있어서 별다른 확인 없이 구입했었다. 남다른 충격을 던져주었던 소설이다. 그게 퍽 황당했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저 놀라움뿐이었다는 것밖에. 우리 사회에서 이런 유의 소설은 따로 분류할 정도로 그리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은연중에 말들이 많다는 것도. 하지만 그게 어때서?? 라고 일일이 따질 생각은 없고, 그저 개개인의 취향의 문제니까 이해는 못하더라도 태클 걸 일은 없다고 본다.

각각의 단편은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로 앞 단편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이(둘 중의 하나)또 다른 인물을 만나 다음 단편을 풀어 가는 색다른 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확-하고 내 눈길을 끌었던 부분. 이런 식으로 전개를 해서 무수한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시간이었다, 한창 독서를 하고 있을 때.

언뜻 보기에 절망으로 가득 찬 소설일 것 같지만, 최저한의 출발점을 제시한 희망을 포함한 소설이라 얘기할 수 있다.

특정시점으로 이렇다하게 꼬집을 주인공은 없었지만, 딱 하나의 눈에 띄는 핵심인물이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다. 바로,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녀 "유코"
그녀는 전화선, 혹은 비디오의 케이블과 라인에 흐르고 있는 전기 신호를 모니터나 스피커를 이용하지 않고 보거나 들을 수 있다.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정신병원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자란 뒤에도 일상에서 느끼는 갈증을 성적인 것으로 풀려고 하고, 특이하게도 칸딘스키의 그림과 바그너의 음악 외에는 만족하는 것이 없으며 "누군가를 좋아한다"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 또한 고독한 존재인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녀의 신비한 능력을 통해, 다른 등장 인물들이 타인과 끊어진 선(라인)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슬쩍슬쩍 비추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18명의 인물들은 모두 타인과 단절되어 있다. 가족이나 애인에게 버림받았거나, 회사 등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 때문에 그들은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의 언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언어탈락 상태에서 인간은 비언어적 행위, 즉 육체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보이는, 아이가 부모를 때리고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폭력성이 심화된다. 이 작품에 나오는 SM(사디즘·마조히즘)도 이와 관계가 깊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함께 그 때까지의 인물을 지워 가는 방법을 취하면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등장 인물이 차례로 변하는 단편의 형식이 된 것입니다. 인물의 시추에이션이 cut back(앞서 나왔던 화면으로 되돌아간다) 풍으로 그려진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Short cuts』의 영향도 있었죠. 그런 방법으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인 상처도 소설의 무대로부터 싹 지워 가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인간은 자란 환경에 의해 속박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라거나 정신적 상처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 라는 기성관념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다빈치』 10월 호 무라카미 류 특집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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