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마오리족의 조상 파이키아는 카누를 타고 새로운 땅을 찾아 바다 위를 떠돌았다. 카누가 뒤집히자 그는 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고래가 그를 태우고 새로운 (뉴질랜드) 도착했다. 그리고 언젠가 고래를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 마오리족을 빛으로 이끌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영화는 죽음과 탄생으로 시작한다. 엄마와 쌍둥이 오빠의 죽음으로 태어난 여자 아이.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에게 파이키아라는 이름을 준다. 그리고 씩씩한 소녀로 자란 파이.

 

전통을 보존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찾으려고 평생 애써온 파이 할아버지와 자신들에게 지워진 짐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파이 아버지 세대들, 족장이 되기 위한 수업에 억지로 참여해야 하는 장남 아이들, 배우고 싶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할아버지에 의해 거부당하는 파이. 영화 안에는 다양한 갈등이 있지만, 역시 주된 것은 할아버지와 파이의 갈등이다.

 

파이키아 직계 후손으로서 의무를 다하려는 의지와 손녀에 대한 사랑이 할아버지의 내면에서 충돌하지만 언제나 이기는 쪽은 의무이다. 반면 파이는 지도자가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고 배우고 싶지만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 이들은 어쩔 없이 대립하고 상처 입는다.

 

결론은? 물론 감동적이다. 애초에 영화의 목적은 대립이 아니라 갈등의 해소와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려는 것이니까.

 

영화 자체는 조금 지루한 편이다. 같이 친구는, 시작은 다큐멘터리요 중간은 드라마, 결론은 나디아 식의 애니 같다고 평했다. 마오리 족의 전투 의식을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이해 부족 탓인지 여기저기서 과할 정도의 웃음이 터져 나왔고, ‘Whale Rider’라는 제목답게 고래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는 결말은 다소 맥빠진다. 그렇지만 예쁜 영화다. 토론토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영화를 보면서 씁쓸하더라.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여자는 무조건 배제한다는 파이 할아버지의 무서운 고집을, 우리도 똑같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제를 폐지하면 가족 제도 자체가 붕괴하고 나라가 망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우리의 어른들에게 영화를 단체 관람시켜야 하는 아닐까.

 

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상처를 주면서 지켜나가야 하는 전통이라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지, , 한숨만 나온다.

 

 

사족. 요즘은 영화를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휴대폰의 불빛이 신경을 몹시 거스른다. 어제도, 옆자리의 지지배가 계속 문자질을 하고 결국 통화까지 하는 바람에 짜증 왕창이었다. 2시간도 휴대폰을 꺼놓지 못할 상황이라면, 이것들아, 제발 집에서 비디오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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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0-11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이들이 부시럭거리며 그러는 게 짜증나서 집에서 비디오 봅니다. 흑흑.

urblue 2004-10-1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성질 더러운 제가 집에서 비디오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구두 2004-10-1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말씀은 꼭 제 성질 드러분 거 아신다는 야그처럼 들리네여. 흐흐.

urblue 2004-10-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뭐..흐흐..

숨은아이 2004-10-1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줄에 동감입니다. ^^

마냐 2004-10-1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리뷰가 드물군요...궁금했는데...고맙슴다. 안볼거 같아요. ^^;;;

urblue 2004-10-1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권하고 싶지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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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일반적인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8일 오전 11시 50분, 개막작 <2046>으로 내한한 왕가위 감독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언제나 선글라스로 자신과 타인의 시선을 막아버리는 차가운 개인주의자. 그러나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유쾌한 미소는 그 거리감을 가까이 좁힌다. 냉정과 열정을 하나의 이야기에 담고 몽환적인 비주얼 속에 무수한 사랑의 정의를 박아넣는 독특한 거장 왕가위. 그는 자신의 신작 <2046>을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어제 개막식에서 영화를 시사 한 소감은?

추운 날에도 많은 관중이 와주셔서 고마웠다. 하지만 야외상영이어서 각도나 소리가 좋지않아 안타까웠다. 갈수록 마음이 불안해져서 일찍 자리를 떴다.(웃음)

칸에 출품한 작품에서 편집이 더해졌는데,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나?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칸에 출품할 때는 미흡한 것이 있던 걸 이후 3개월 동안 매만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파티참석에 비유하다면, 칸에는 보통차림으로 간 것이라고 부산영화제 때는 좀 더 공을 들여 화장하고 옷도 예쁜 것을 입은 것이다.

예전에 <2046>의 프로모션 필름을 봤을 때는 장만옥에 대한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원래는 장만옥에게 어떤 역할을 주고 싶었는지, 촬영하면서 변한 부분이 있는지.

<2046>에서 나온 장만옥은 <화양연화>의 모습이 나온 것이다. 차우(양조위)가 <화양연화> 속의 수리첸(장만옥)을 추억하는 장면이며 그때를 회상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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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에서 차우가 만나는 세 여인은 차우(양조위)가 과거를 잊기 위해 만든 가상의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하는 인물이다. 룰루(유가령), 수리첸(공리), 바이 링(장쯔이)은 차우를 투영하는 거울같은 역할을 하도록 설정했다. 이 여인들은 <화양연화>의 장만옥을 연상시키며, 그녀와 관련된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그녀들은 차우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를 잊지 못하는 수리첸은 사랑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차우다. 그러나 가면을 쓰고 사는 여자 룰루 역시 그의 모습이다. 차우는 룰루에게 자신과 만난 적이 있고 나를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녀는 그런 적이 없다고 외면한다. 추억을 지우고 가면을 쓰고, 자신을 바꾸려 하는 모습은 차우가 사랑했던 기억을 잊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가 야한 소설로 번 돈을 여자들과 쾌락을 즐기는데 사용하면서 이전의 자신을 바꾸려는 모습 역시 그렇다.

이런 면에서 룰루와 수리첸은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시에 빠져나오려고 하는 차우의 두 모습이다. 왕페이가 연기한 미래사회의 인조인간은 마음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어도 그 당시에는 그것을 인지하거나 표현하지 못하는데 이 역시 추억이 된 다음에야 그 사랑을 그리워하는 차우의 모습과 같다.

반면, 바이 링의 사랑을 희롱하는 차우의 모습은 그가 가진 또 다른 내면이라 할 수 있다. 실제적인 남녀관계를 통해 보여지는 차우는 <화양연화>에서 지순한 사랑을 했던 차우와는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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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의 설정과 인물들은 왕가위 감독의 이전 작품과 유사함과 동시에 심화되었다고. 이 작품을 통해 이전까지의 작품을 정리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그저 <2046>은 기억, 회상에 관한 영화다. 4년 전 사귀었던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그가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는 변하지 않고 4년 전 그를 기억하는 우리의 인식이 바뀐 것이다. 사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대했을 때 사물보다는 우리의 인식이 변한 경우가 많다. 처음에 저장한 추억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사물을 바라보게 되는 거다.

전작들은 홍콩반환과 관련해 해석되고 있는데, 그점에 동의하는가? 그때와는 홍콩이 많이 바뀌었는데 당신의 작품도 영향을 받았는가?

관객들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물론 내가 홍콩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화양연화>는 3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되던 <2046>의 에피소드 중 하나를 따로 떼어내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제 <2046>은 <화양연화>의 후일담, 속편으로 보여진다. 처음에 기획되었던 <2046>에서 어떻게 달라졌는가?

처음에 생각했던 <2046>은 3개의 에피소드로 된 간단한 구조의 영화였다. 그러나 <화양연화>를 만들면서 좀더 세밀한 부분을 다룰 수 있게 됐고, 구조적인 면에서 영화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2046>에 차우와 수리첸이 나온다고는 해도 이 영화는 <화양연화>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영화다. <화양연화>가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면, <2046>은 '사랑에 관한 영화'다.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사랑이야기는 남녀의 사랑이 전개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영화라면 <2046>은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집중한다. 이 영화에 장만옥이 나오면 사람들은 <화양연화>를 떠올리며 그 이야기를 다시 할 것이고 유가령을 보면 <아비정전>의 모습이 떠올라 그 영화를 찾아볼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46>은 <화양연화> 한편 뿐 아니라 내가 해온 이야기 모두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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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의 다른 점은 왕가위 감독 영화중 처음으로 미래장면이 나왔다는 것이다.

영화 속 미래는 차우가 쓰는 소설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영화에 나오는 미래도시는 60년대 사람이 상상하는 미래이다. 그러나 결국 그 미래도 과거를 그리워하는 미래의 이야기다.

당신의 영화는 언제나 놀라운 비주얼을 보여준다. <2046>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디자인한 부분은 어디인가?

미래도시를 만듦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기차 안이다. <화양연화>의 차우는 가정이 있고 안락한 집에서 살았지만 <2046>에서는 호텔과 여관을 전전한다. 기차여행을 통해서 그가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2046>의 차우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아비를 닮았다. <2046>에서 차우가 머무는 호텔 이름이 오리엔탈인데 그것은 장국영이 자살을 한 호텔 이름이기도 하다. 의도한 것인가?

그가 자살한 호텔 이름이 오리엔탈이었는지 난 몰랐다. <2046>의 차우는 30대지만 <아비정전>에서 아비는 20대니까 차우는 아비의 미래? 아,농담이다. <아비정전>의 아비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전형적인 형태로 그린 것이다. 차우와 연결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맥스무비 / 이미선 기자 suua@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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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10-10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가위 감독 영화는 대체로 챙겨보는 편인데 이 영화도 무척 보고 싶은걸요.
블루님도 보고 싶으신가 보다. ^^
참, 블루님, 오늘 로드무비님이 빌려주신다던 그 책들 받았어요.
깔끔하게 포장된 책 받는 것,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에요. 고마워요!

에레혼 2004-10-10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이야기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
<2046>... <화양연화>와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니 저도 보고 싶네요
올해는 부산 영화제에도 못 가 보고 ㅜㅜ

로드무비 2004-10-1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어나셨구랴.
제 바뀐 서재 사진 예쁘죠?ㅎㅎ
아침은 드셨수?

urblue 2004-10-1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46>은, 칸 영화제에서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쭉 기다리고 있었지요. 부산 영화제에서 예매 시작한지 5분도 안 되어 매진됐다잖아요. 이번 주말 볼 영화 1순위랍니다.

urblue 2004-10-1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오셨네요. ^^ 아유 반가워라.
주하 사진 물론 예쁘죠~ 어제 밤에 보면서 혼자 귀여워했는걸요.
지금 치즈 케잌 먹고 있답니다. 어제 데이트 한 녀석이 안겨준 거. ㅋㅋ

플레져 2004-10-1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가위 데려 갈려고 왔는데, 치즈 케잌에 침 질질...^^

urblue 2004-10-1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눠 드리면 좋을텐데. 혼자 너무 많이 먹어서 느끼해 죽겠어요. ^^;

로드무비 2004-10-10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빨리 치카님 방으로 와요.
이벤트 중인데 두 명이 모자라네.^^

stella.K 2004-10-10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왕가위 감독이 장예모 보다 낮다는 생각이 들어요. 둘이 다르긴 하지만요. 이거 퍼갑니다.^^

urblue 2004-10-10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장예모 감독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누군가가 '이 영화는 사전 정보가 없으면 없을수록 재미있다' 라고 쓴 걸 보았다. 틀림없는 말이다. 간단한 시놉시스조차도, 감독이 저 유명한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것조차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샤말란 감독의 영화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당신도 어쩔 수 없이 '반전'을 떠올리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식스 센스> 외에 샤말란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보지 않았다. 그가 반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평 때문이었다. <식스 센스> 이후로 많은 영화들이 보다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려고 애썼고, 나는 그 반전이 지겨웠다. 왜 하던 얘기를 모두 뒤집어버리는 반전이나 숨겨진 얘기 따위가 반드시 필요한 거라고 믿는지 알 수가 없다. 좀 다른 얘기지만,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과 이동건이 숨겨진 형제가 아니라도 진행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을 거다. 오히려 나이 차이 적은 삼촌과 조카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설정이 그럴 듯하고 그걸로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쨌거나, 반전을 위한 반전 따위 제발 집어치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샤말란 감독이 가명으로 영화를 제작할까 고민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반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영화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가 반전에 꽤나 집착하는게 사실인가보다. 결국은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충분히 결말을 예측할 수 있으니까. 뭔가 색다른 결말을 예상하면서 또랑또랑하게 화면을 주시하고, 이 얘기가 나중에 어떻게 뒤집어질까를 상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끝나버리니 허탈할 밖에. 

그러나 이 영화를 샤말란 감독의 작품인지 모르고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반전에 집착하지 않고 영화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면 잔재미도 꽤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다. (영화 홍보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샤말란이라는 이름만 팔려고 하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해 얘기하자면 스포일러를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릴테니 좀 난감하다.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음...어쩔 수 없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아래로는 읽지 마시길. 이건 엄청난 스포일러다.

 


 

이 영화는 스릴러도, 호러도 아니다. 차라리 정치적 우화에 가깝다. 영화를 보고 떠오른 게 마이크 레스닉의 <키리냐가>이다.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유토피아를 건설한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그 세계에 속하게 된 후손들 간의 갈등과 충돌. 아버지 세대가 피땀으로 일군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자식 세대에게도 여전히 유토피아일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상황을 자식 세대에게 똑같이 알려주고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자면 지금까지의 유토피아는 필경 파괴되어야 한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영화에서는 이런 고민을 <키리냐가>에서처럼 깊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슬쩍슬쩍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얘기하고, 그 속에서 상처받은 인간의 영혼을 보여주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묻고, 사랑의 힘을 주장한다. 정리가 덜 된 감도 있지만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루시어스(호아킨 피닉스)와 아이비(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의 진한 로맨스도 아름답다. (진한 로맨스라는 표현에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시라.)

또 하나,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감독 론 하워드의 딸이란다.)라는 배우의 발견이 중요하다. 영화는 처음이라는 이 젊은 배우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른 거 다 빼고, 그를 본 것만으로도 수확이다.

샤말란을 흥행 감독이라고 한단다. 다른 작품들을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식스 센스>와 <빌리지>만을 놓고 본다면, 이 사람은 단순한 흥행 감독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얘기를 풀어내는 괜찮은 감독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뭐 내 생각이다. 본인은 흥행 감독이 더 좋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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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10-03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스포일? 저는 스포일 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읽었는데...안 보여요, 스포일.TT
영화감상 할 시간이 딸리니, 못 보고 넘어갈 것 같은 영화는 결말을 얘기해 달라고 서재주인장 붙들고 조르기도 한답니다.ㅋㅋ

urblue 2004-10-0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진우맘님, <키리냐가> 보신 분들은 아마 영화 내용을 모조리 짐작하실걸요. ^^;

로드무비 2004-10-03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의 연인> 나는 차마 두 눈 뜨고 못 봤는데......
어쩌다 친구집에서 저녁 먹으며 한번 봤는데 김정은의 오버액션에
눈살이 찌푸려지더라고요. 옛날에 박신양을 참 좋아했는데......
그런데 명동백작에 전혜린으로 나오는 연기자가 누군교?
아까 잠시 봤더니 박인환으로 짐작되는 탤런트가 "김수영이 그 자식이 어쩌고 저쩌고
취해서 해롱거려 쌓더만. 입술이 조금 비뚤어진 전헤린을 연기하는 사람이 누군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아, 빌리지 구경 잘했슴다.)


비로그인 2004-10-0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그래서 글도 안읽고 바로 내려온 거 있죠... 하지만 저야 영화볼 수가 없으니... 나중엔 글이라도 읽게 될거에요.

무비님, 전혜린 역은 이재은이 한답니다.

urblue 2004-10-0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제대로 보지는 못했는데 영화 <오구>에서 이재은이 무당으로 나옵니다. 친구가 그러는데 영화도 꽤 재미있고 이재은의 연기도 괜찮다고 하더군요.
처음과끝님, 이 영화는 금세 끝나서 비디오로 나올 거 같습니다. 극장 안이 절반도 안 찼더라구요. 토요일 점심 때였는데. 나중에 비디오로 보세요. ^^

플레져 2004-10-0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스센스를 본 이후에 모든 이야깃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내가 원하는대로 결말이 날 것 같지 않으면 반전을 기대해버리는 거죠...
더 놀랄 것도 없지요, 모...요즘 같은 세상에서 놀람은 귀여운 장난 처럼 보이네요.
그나저나 저도 간만에 영화 한편 볼까 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없네요...

로드무비 2004-10-03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구 재밌게 봤어요. 이재은 괜찮았죠.
처음과끝님, 감사혀요.^^친절하기도 하셔라.
좀전에 마이리스트 하나 만들었는데 읽어봐주세요.^^

urblue 2004-10-03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요즘 같은 세상에 놀랄 일은 하도 많아서 더 이상 놀라지도 않죠. 그러니 영화가 점점 더 '반전'을 외치는가 봅니다.
안그래도 볼 영화 고르면서 무지 고민했더랍니다. 딱히 끌리는 게 없어요. 이 영화도, 친구가 가진 무료 예매권 기한이 오늘까지라 그냥 고른거거든요, 사실은. 20일쯤 되면 보고 싶은 영화들이 주르르 개봉하니까 그 주엔 바쁠 것 같습니다. ^^

비누발바닥 2004-10-0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님의 말대로 이 영화는 사전정보가 없으면 안되는것 같아요....
우리동생이 보고 아주 큰 반전이라고 해서 전 무작정 너무 큰기대만 하고 본 영화 같네요..

urblue 2004-10-03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라는 건, 실망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평이 별로 좋지 않길래 전 기대않고 봤다가 의외로 괜찮다고 좋아했습니다.

마냐 2004-10-0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만세. 넘 반가와요.
제가 저 심야에 저 영화 보고나오면서...울 옆지기에게 "이건 '키리냐가'야. 키리냐가가 무슨 얘기인고 하니.."하면서 정말 한참을 입아프게 설명했다니까요. 정말 딱 생각나는 그 책.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타까운 명작. 정말 반갑지 않을 수 없네요. ^^

urblue 2004-10-0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키리냐가도 그렇고 엔더 위긴 시리즈도 그렇고, 좋아하는게 마냐님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
 

10 , 왕가위 영화를 무진장 좋아해서 <열혈남아>, <아비정전>, <동사서독> 보고 보던 , 영화들에서 시선을 사로 잡는 배우가 있었다. 장만옥, 유가령, 유덕화, 장국영, 양조위, 라는, 생긴데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배우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고 눈길을 끌었던 조연 배우, 그는 장학우이다.

 

 


 

 

<열혈남아>에서는 유덕화의 동생으로 계속 폭력배들과 말썽을 일으켜 유덕화를 궁지에 몰아넣었고, <아비정전>에서는 장국영의 후배로 유가령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에 아파했으며, <동사서독>에서는 달걀을 들고 살인을 청탁하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던 . 장학우가 4 천왕 명이라는 , 배우보다 가수로 훨씬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음악에야 관심도 없었고, 이후 다른 영화에서 기회도 없었으므로 그는 그냥 기억에서 잊혀졌다.

 

오늘 그의 새로운 영화 소식을 들었다. 유덕화, 여문락, 진관희와 함께 출연한 <강호> 10 22일에 개봉한단다. 오랜만에 들은 반가운 이름이라 그에 대한 소식을 찾아봤는데, 동안에도 계속 노래하고 영화 찍고 했던 모양이다. 근사하게 나이가 들었다.

 

 


 

 

 

같은 왕가위의 <2046> 개봉하니 아무래도 순서에서 밀리기는 하겠지만, 어쨌든 영화를 보아야할 같다. 게다가 <무간도>에서 매력적인 모습을 선보였던 여문락과 진관희가 나온다니, 영화가 좋지 않다 하더라도 눈요기로는 전혀 문제가 없을 하다. 멋진 남자들을 보는 건,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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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2004-09-2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들고 더 멋있어진거 같아요.
쌍커풀과 나이의 압박으로 점점 느끼의 극치로 달리는 금성무나
기타등등의 배우들과 비교 해보면 말야요...^^

hanicare 2004-09-23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하게도 저 테이블이 놓여 있는 실내분위기- 간접조명은은한-이 탐나요.-_-;

urblue 2004-09-2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도님, 그쵸, 멋있어요. 그나저나 여문락이랑 진관희도 멋지지 않아요? 너무 잘 생겼다니까.
하니케어님, 이름이랑 이미지를 또 바꾸셨군요. 흑, 정신없다구요. 조명이 멋지긴 한데, 저렇게 해 놓으면 너무 어두워서 책도 못 읽을텐데요. -_-;

hanicare 2004-09-2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좀 자중할게요. 흑.
 


 

어제 <샤갈전> 보고 나서, 친구가 파주의 해이리 축제에 가자고 하는 그냥 보냈다. 우울해서, 친구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혼자 <나쁜 교육> 보러 갔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커플이 엘리베이터에서 얘길 나눈다. 정말 만들었다, 마음에 들어요, 군더더기가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 생각엔 짧게 만들 있는 영화야. 그래요? 그렇지만 (어쩌구 저쩌구…)

 

만들었는지, 군더더기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생각 내겐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내내 멍했다. 단어, ‘욕망외에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인간의 욕망이란 타인에게 전염되는 모양이다. 나쁜 교육, 이라는 제목은 욕망의 전이를 말하고 있는 하다. 어린 소년에 대한 마놀로 신부의 욕망은 그대로 소년에게 옮아간다. 이나시오는 여자가 되고 싶어하고, 약을 끊고 싶어하고, 엔리케를 만나고 싶어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마놀로를 협박한다. 후안은 갖고 싶은 있고, 배우가 되고 싶고, 그래서 이나시오와 마놀로 신부를 이용한다. 한편 엔리케는, 자리를 구걸하는 배우 따위 관심없다, 말로 친구를 외면했으면서, 다른 욕망을 위해 친구를, 친구의 동생을 곁에 둔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무얼까. 어쩌면 사랑으로 시작했을 이들의 행동은 점점 사랑과는 거리가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 남자, 아니 그저 명의 인간이 보여주는 욕망의 변주곡.

 

소년 이나시오가 부르는 Moonriver 아름답다. 어쩌면 아름다움이 마놀로 신부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욕망을 깨웠는지 모른다. 아름다움에 대한, 혹은 사랑에 대한 인간의 감정은 조금만 방향을 틀면 무시무시한 욕망으로 변하고야 만다.

 

영화를 보고 나와 무슨 일인지 평소에 이용하지 않는 버스를 덥석 집어 탔다. 지하철로 20 거리를, 만원 버스로 1시간이 넘게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생각을 했다. 내가 우울한 이유가 뭘까, 타인에 대한 나의 집착, 욕망, 그런 것이 나를 괴롭히는 아닐까, 누구의 탓이라기보다 그저 욕심이 나를 좀먹고 있는 아닌가 하는 생각들.

 

어려운 문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만, 집착해서는 된다는 . 욕구를 채우자고,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누군가를 괴롭혀서는 된다는 . 그러나 이것조차 내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기에 생기는 문제임을 잊지 않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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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9-2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렀어도...아마 절대 못 알아봤겠지요?
그 인파라니.... 누군가 "저....혹시, 진/우맘님?"하고 말 걸어주는 광경을 상상하며 웃었던 제가 무색하더군요. 쩝.

urblue 2004-09-2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는 일요일에 갔다 왔어요. 비 오니까 토요일에는 나가기가 싫더라구요. 토요일에 가면 님을 찾아봐야지 생각했었는데...^^

로드무비 2004-09-2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착 좀 하면 어떻습네까!
마음가는 대로 하세요.^^
기운 차린 것 같아 다행입니다.

urblue 2004-09-2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브리핑에서 <집착 좀 하면...> 하는 구절만 보고 로드무비님인 줄 알아봤네요.

진/우맘 2004-09-21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구나~ 일요일엔 아영엄마님이 가셨는데!^^

hanicare 2004-09-21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욕망이란 타인에게 전염되는 모양이다.이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도네요.그저 내 욕심이 나를 좀먹고 있는 건 아닌가. 에너지로 연소되지 못한 욕망의 그을음이 내 몸을 해치지요.때론 남까지.그러나 경전에 잘 나오는 말.집착하지 마라.사랑하되 집착하지 말라는 건 고도의 경지에서나 가능할거에요.스포츠를 배울 때 초보자는 늘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자기를 과도하게 의식하지요.그러고보면 늘 나는 초보자였나봐요. 조금 해보고 금세 나가떨어지는.

urblue 2004-09-2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eadspace님, 저 역시, 늘 초보자였던 듯 합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님의 코멘트에는 뭐라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숨은아이 2004-09-2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멍해진 마음으로 창 밖을 보기엔 전철보다 버스가 좋지요. ^^

urblue 2004-09-2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래서 무작정 버스를 탔는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