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이 영화는 사전 정보가 없으면 없을수록 재미있다' 라고 쓴 걸 보았다. 틀림없는 말이다. 간단한 시놉시스조차도, 감독이 저 유명한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것조차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샤말란 감독의 영화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당신도 어쩔 수 없이 '반전'을 떠올리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식스 센스> 외에 샤말란 감독의 다른 영화들은 보지 않았다. 그가 반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평 때문이었다. <식스 센스> 이후로 많은 영화들이 보다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주려고 애썼고, 나는 그 반전이 지겨웠다. 왜 하던 얘기를 모두 뒤집어버리는 반전이나 숨겨진 얘기 따위가 반드시 필요한 거라고 믿는지 알 수가 없다. 좀 다른 얘기지만,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과 이동건이 숨겨진 형제가 아니라도 진행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을 거다. 오히려 나이 차이 적은 삼촌과 조카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설정이 그럴 듯하고 그걸로 재미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쨌거나, 반전을 위한 반전 따위 제발 집어치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샤말란 감독이 가명으로 영화를 제작할까 고민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반전을 만들어내기 위해 영화를 좀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가 반전에 꽤나 집착하는게 사실인가보다. 결국은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충분히 결말을 예측할 수 있으니까. 뭔가 색다른 결말을 예상하면서 또랑또랑하게 화면을 주시하고, 이 얘기가 나중에 어떻게 뒤집어질까를 상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끝나버리니 허탈할 밖에.
그러나 이 영화를 샤말란 감독의 작품인지 모르고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반전에 집착하지 않고 영화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면 잔재미도 꽤 있고 생각할 거리도 있다. (영화 홍보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샤말란이라는 이름만 팔려고 하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해 얘기하자면 스포일러를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릴테니 좀 난감하다.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음...어쩔 수 없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아래로는 읽지 마시길. 이건 엄청난 스포일러다.
이 영화는 스릴러도, 호러도 아니다. 차라리 정치적 우화에 가깝다. 영화를 보고 떠오른 게 마이크 레스닉의 <키리냐가>이다.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유토피아를 건설한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그 세계에 속하게 된 후손들 간의 갈등과 충돌. 아버지 세대가 피땀으로 일군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자식 세대에게도 여전히 유토피아일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상황을 자식 세대에게 똑같이 알려주고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자면 지금까지의 유토피아는 필경 파괴되어야 한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영화에서는 이런 고민을 <키리냐가>에서처럼 깊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슬쩍슬쩍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얘기하고, 그 속에서 상처받은 인간의 영혼을 보여주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묻고, 사랑의 힘을 주장한다. 정리가 덜 된 감도 있지만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루시어스(호아킨 피닉스)와 아이비(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의 진한 로맨스도 아름답다. (진한 로맨스라는 표현에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시라.)
또 하나,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감독 론 하워드의 딸이란다.)라는 배우의 발견이 중요하다. 영화는 처음이라는 이 젊은 배우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른 거 다 빼고, 그를 본 것만으로도 수확이다.
샤말란을 흥행 감독이라고 한단다. 다른 작품들을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식스 센스>와 <빌리지>만을 놓고 본다면, 이 사람은 단순한 흥행 감독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얘기를 풀어내는 괜찮은 감독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뭐 내 생각이다. 본인은 흥행 감독이 더 좋은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