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국에서 세트와 의상 전체를 들여와 화려한 무대를 만든다고 한참 광고할 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그 전까지 뮤지컬 관람은 몇 번 없었고, 전부 소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화려했고, 재미있었고, 다소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십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작부터 봐야지 생각했는데, 본 사람들의 평이 거의 좋지 않았다. 오늘 통화한 사람은, 영화 보러 간다고 했더니, 그거 뮤지컬이랑 똑같아서 재미없대요, 라고 초를 치기도 했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다가 의외의 재미를 발견하기도 하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제법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 재미는 영화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전에 본 뮤지컬에 기대어 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사진의 저 장면, 팬텀이 크리스틴을 자신의 지하 세계로 데려가는 장면을 볼 때, 무대 위에서 배가 움직이고, 촛불이 스르륵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을 놀라게 하던 공연이 떠올라서, 그때의 기억으로 오히려 좋아했다. 확실히 무대 공연으로는 다 보여줄 수 없는 화려하고 섬세한 극장의 모습이며, 극 중의 공연 장면들, 크리스틴 아버지의 묘지 등도 볼만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조엘 슈마허 감독이라고 광고하는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다. 아는 사람이 말했던 것처럼 뮤지컬보다 좀 더 화려하다는 것 외에는 다른 차별점을 느끼지 못하겠더라. 게다가 영화 자체로 보자면 팬텀과 크리스틴의 감정에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용서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중간에 좀 지루하기도 하다.
크리스틴 역의 에미 로썸을 칭찬하는 글이 많던데, 내 생각엔 지나치게 여린게 아닌가 싶다. 좀 더 힘있게 표현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친구는 라울이 못생겼다고,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사실 가장 눈에 띈 배우는 카를로타역의 미니 드라이버였다. 첫 장면부터, 어, 미니 드라이버 맞나, 하면서 눈여겨봤는데, 확신을 못하겠더라. (하긴, 미니 드라이버가 나온 영화라고는 굿 윌 헌팅 하나밖에 본 게 없으니.) 새된 목소리에 과장된 표정과 몸짓, 노래할 때의 가늘고 조금은 간드러지다 할 고음이 인상적이다. 완벽한 카를로타라고나 할까. 미니 드라이버가 노래를 잘 하는 배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Iron Maiden의 Phantom of the Opera가 듣고 싶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