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의 늪 허우적대는 음울하고 참담한 ‘나의 세대’


… 그러나 돈이 없다. 병석은 유일한 재산인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결혼식 장면을 찍으러 다닌다. 갈비 집에서 숯불도 피우고, 선배를 따라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성인 비디오도 팔아본다. 그사이에 형은 자기 이름으로 대출을 한 다음이고, 이제 그 빚을 떠안게 된다. 처음에는 직원이 찾아오고, 다음에는 깡패가 찾아온다. 그러는 동안 병석의 애인 재경은 사채업자 사무실에 취직하지만 우울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짤린다’. 인터넷 홈쇼핑에서 물건을 떼어 친구들에게 팔려고 하지만 피라미드 사기에 말려든 것을 알게 된다. 병석은 비디오 카메라를 팔아야 하고, 재경은 카드깡 업자를 찾아 전전한다. 이제 그들의 청춘은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끝난 것일지도 모른다.

노동석이 각본을 쓰고 (그의 영화 아카데미 동기들을 이끌고) 연출한 첫 번째 (디지털)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의 주인공은 사실상 신용카드다. 카드는 병석과 재경의 삶을 휘저어 놓는다. 그들은 하여튼 카드를 채워 놓아야 한다. 은행 현금출납기의 친절한 (녹음) 목소리는 매정하고, 그들의 휴대폰으로 돈 때문에 쉴 사이 없이 그들을 찾는다. 배고픈 카드는 그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사정없이 조른다. 이 유령 같은 물신의 관계 속에서 (모노로 촬영된) 흑백화면은 사실주의적이기는커녕 차라리 카드 물신주의 시대의 추상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음울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세계에 거의 멈춰선 카메라는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절망감의 알레고리다. 그들이 만나는 인간들은 모두 돈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무 아래서 서성거리면서 배가 떨어지기만 기다릴 뿐이다. 배는 그들이 그곳을 떠난 다음에야 떨어진다. 상영시간 85분 동안 단 한 차례도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여기에는 정치적 비전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과의 싸움도 없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얼 해볼 수도 없다. 이것이 노동석이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저 보기만 해도 짜증스러운’ 나의 세대다.

빈곤의 미학으로 찍힌 이 영화는 대부분 지루한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야기는 거의 진행되지 않는다. 인물들은 무표정하며, 가끔 대사로만 그들의 감정을 드러낼 뿐이다. 영화는 종종 길을 잃듯이 세상의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 어디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은 만날 수 없고, 다만 세상을 이루는 단편들이 두서없이 웅성거린다. 그러나 그 어떤 영화적 기복도 없이 장소와 상황만 있는 이 외로운 영화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사소한 시간들에 있다. ‘나의 세대’가 만나는 세상은 그 사소한 잔인함의 일상생활로 넘쳐난다.

그런 그들이 희망을 안고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서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그 카메라를 팔아야 한다. 병석은 재경의 진실을 담고 싶다. 그래서 그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몇 번이고 묻는다. 재경은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한다. “카메라 끄면 대답할게.” 그러면 길게 이어지는 게임 속의 자동차를 보면서 영화는 끝난다. 떠날 데 없는 탈출 불가능의 참담함. 아무런 위로도, 진실도, 비전도 담지 못하는 영화 앞에 선 무능력은 ‘나의 세대’의 유일한, 뻔한, 불가피한, 그저 그런, 하지만 그래도 버텨야 하는 메시지다. 용기를 내라고? 그러나 돈이 없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몇 년 전, 영국에서 세트와 의상 전체를 들여와 화려한 무대를 만든다고 한참 광고할 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그 전까지 뮤지컬 관람은 몇 번 없었고, 전부 소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화려했고, 재미있었고, 다소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십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진작부터 봐야지 생각했는데, 본 사람들의 평이 거의 좋지 않았다. 오늘 통화한 사람은, 영화 보러 간다고 했더니, 그거 뮤지컬이랑 똑같아서 재미없대요, 라고 초를 치기도 했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다가 의외의 재미를 발견하기도 하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제법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 재미는 영화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전에 본 뮤지컬에 기대어 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사진의 저 장면, 팬텀이 크리스틴을 자신의 지하 세계로 데려가는 장면을 볼 때, 무대 위에서 배가 움직이고, 촛불이 스르륵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을 놀라게 하던 공연이 떠올라서, 그때의 기억으로 오히려 좋아했다. 확실히 무대 공연으로는 다 보여줄 수 없는 화려하고 섬세한 극장의 모습이며, 극 중의 공연 장면들, 크리스틴 아버지의 묘지 등도 볼만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조엘 슈마허 감독이라고 광고하는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다. 아는 사람이 말했던 것처럼 뮤지컬보다 좀 더 화려하다는 것 외에는 다른 차별점을 느끼지 못하겠더라. 게다가 영화 자체로 보자면 팬텀과 크리스틴의 감정에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용서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중간에 좀 지루하기도 하다.

크리스틴 역의 에미 로썸을 칭찬하는 글이 많던데, 내 생각엔 지나치게 여린게 아닌가 싶다. 좀 더 힘있게 표현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친구는 라울이 못생겼다고,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사실 가장 눈에 띈 배우는 카를로타역의 미니 드라이버였다. 첫 장면부터, 어, 미니 드라이버 맞나, 하면서 눈여겨봤는데, 확신을 못하겠더라. (하긴, 미니 드라이버가 나온 영화라고는 굿 윌 헌팅 하나밖에 본 게 없으니.) 새된 목소리에 과장된 표정과 몸짓, 노래할 때의 가늘고 조금은 간드러지다 할 고음이 인상적이다. 완벽한 카를로타라고나 할까. 미니 드라이버가 노래를 잘 하는 배우라는 걸 처음 알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Iron Maiden의 Phantom of the Opera가 듣고 싶더라.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hika 2004-12-1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미니 드라이버 맞아요? 굿윌헌팅에서 다들 경악하던 그 목소리!!(전 좀 무딘편이어서 그닥 경악하진 않았지만 ^^a)

urblue 2004-12-1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굿윌헌팅에서 다들 경악했던가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



새벽별님, 그래도 볼 만은 한 것 같습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2-14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영화 리뷰는 왜 이리 다 보고 싶데요? 그런데 요전날 스트레스는 다 풀리셨는지요? ^^

urblue 2004-12-1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이안님, 스트레스는 그 날 다 풀어버렸습니다. 컴에서 소리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더구만요. 글을 별로 재미있게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

바람구두 2004-12-1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니 드라이버... 였군요, 고마워요. 그 배우 이름을 까 먹고 있었는데...

로드무비 2004-12-1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은 꽤 구미가 동하게 쓰셨는데 보러 갈 생각은 안 나네요.

오페라에도 관심이 있으셨구랴.^^

바람구두 2004-12-1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인디...

urblue 2004-12-1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바람구두님. ㅋㅋ 뮤지컬인데...

하얀마녀 2004-12-1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카고(영화로 봤습니다)를 괜찮게 봤으니 이것도 괜찮을라나요? ^^

urblue 2004-12-1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 저도 시카고 재밌게 봤어요. 차이점이라면, 시카고의 배우들은 워낙 유명인들이잖아요. 특히 캐서린 제타 존스 보면서는 진짜 멋지다 감탄했죠. 여기 배우들은 그런 카리스마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 경우엔, 시카고는 뮤지컬을 보지 않았으니 아마도 느낌이 달랐겠지요.

그래도 제법 볼 만 하다니까요. ^^

로드무비 2004-12-1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정신머리하고는......

그런다고...자기들끼리 속닥속닥 기분 나쁘요.

urblue 2004-12-14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로드무비님, 삐지시면 안돼요, 흑.
 

 



보아하니 조만간 극장에서 퇴출될 듯한 분위기라 땡땡이치고 영화를 보러 갔다. 예상대로 극장 안은 한산했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보고 싶었다. 변영주라는 이름과 (사실 그의 전작들은 보지 않았다.) 아일랜드로 새롭게 조명을 받은 김민정, 더 이상 가수 활동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선언한 윤계상이 모여 어떤 조합을 보여줄까 기대 반 호기심 반이었다고나 할까.



 



김민정과 윤계상이라는 배우가 19살 고등학생 역할이라는 것만 알아도, 이 영화가 성장 영화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발레 교습소가 배경이라니,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발레라는 클래식한 소재로 도전, 배움, 그리고 어려움의 극복 내지는 희망을 얘기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영화는 이러한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한참 벗어난다.



수능 시험을 끝내고 앞으로의 길이 막막한 아이들이 등장한다. 강아지조차 무서워하는 주제에 집에서 멀다는 이유만으로 제주대 수의학과를 택한 수진(김민정), 비행기 조종사인 아버지의 강권으로 항공대에 진학하고자 하지만 성적이 한참 모자라는 민재(윤계상), 공부는 뒷전이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동완, 전문 백댄서가 되고 싶은 창섭,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미래에 대한 비전은커녕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는 기태 등등. 뿐만 아니다. 발레 교습소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또 있다. 발레를 좋아하는 중국집 종업원, 비디오 가게 아저씨, IMF 때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요쿠르트 아줌마, 적은 수강생 때문에 구청에서 구박당하는 발레 선생, 아내를 잃고 아들에게 기대를 걸지만 아들과 어떤 식으로 대화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버지.



감독은 이 영화를 성장영화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나는 감독이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않을 생각인가, 그래서 이 한편에 하고 싶은 모든 얘기를 담으려고 한 건가 의심하게 된다. 진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고민, 사내 아이들의 우정, 첫사랑, 어른으로 살아가는 고달픔,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 그 속에 만연한 폭력, 게다가 성적 소수자의 외침까지, 에피소드마다 뭔가 하나씩은 들어가 있다. 당연히 이야기는 이리 저리 튀고, 인물들의 감정은 느닷없이 생뚱맞다. 게다가 중간중간 삽입된 유머조차도 간신히 이어질까 말까 하는 흐름을 흐트려 놓는다. (이런 지경인데도 옆자리에 앉은 여자애들은 훌쩍이는 것 같더라만.) 한마디로, 전혀 몰입이 안되는 영화다.



모든 걸 담아내고자 한다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독은 몰랐던 걸까. 과욕이 어째서 나쁜건지를 보여주는 실례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4-12-0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주 감독의 밀애를 보고 한숨만 나왔어요.

아무래도 극영화의 장르에 안착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듯 해요.

김민정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ㅊㅊ 합니다!

로드무비 2004-12-0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영화보다 <마이 제너레이션>이 보고 싶던데......

<밀애> 보고 많이 실망했거든요.

비디오로 나오면 한번 봐야지.

그나저나 블루님도 보면 꽤 신랄해요.^^

chika 2004-12-0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

urblue 2004-12-0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영주 감독이 다음 영화를 만든다면 보고 싶을까, 안그럴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신랄이라고 하시면..음...

2004-12-09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든 것을 거는 사랑과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은 사랑.


내가 내 전부를 걸고 당신을 사랑했다고 해서, 당신에게 똑같은 무게의 사랑을 요구할 수는 없다.


리, 당신도 알고 있었지? 셀비가 당신의 살인을 알고 있었듯이.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4-11-2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디오로 출시 되었나요? 비디오 가게 간 지 두 달 넘었는데, 한번 마실 삼아 가야겠군요. 즐거운 주말 보내셔요...^^

비연 2004-11-2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보았더랬슴다...흠...사실 너무 리얼해서(특히 주인공..=.=) 좀 섬뜩한 느낌으로 보기는 했지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그리고 사랑이라는 거 이렇게까지 지키고 싶어지는 거구나 느끼면서 약간은 스산해진 영화였습니다.

urblue 2004-11-2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저도 요즘은 비디오를 잘 안 봐서 오랫만에 들른겁니다. 사실 <이투마마>나 <아모레스 페로스>를 보고 싶어는데, 이 동네 비디오 가게는 너무 작아서 아무것도 없더군요. 요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게 꽂혔습니다. ^^



비연님, 영화 보고나서 밥을 먹었습니다. 뭔가 먹고 기운내고 싶더군요. 리가 끝내 사랑을 지키고 싶은 거였는지, 사랑을 지키는 건, 다른 모든 일들처럼 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건지, 못내 씁쓸하더군요.

2004-12-01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12-0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블루님이 제 말을 잘 못 이해하셨네요. ^^ 제 부탁이라는 건 같이 가자는 게 아니라, 아래 목록에서 재고 남은 것 좀 사줬으면 좋겠다는 건데...전 그냥 부탁이라고만 하면 님이 무슨 부탁인지 물어올 거라 생각하고, 그때 목록을 얘기해주려고 그랬거든요. 흐흐. 일단 목록은 남겨둘게요. 이 중에 님 눈에 띄는 대로 세 권만 대신 구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술선서
야간순찰(호스트 거슨/김화영)
회화의 역사(H. W. & D. J. 잰슨/유홍준)
카메라 루시다(롤랑 바르트/조광희)

미술문고
피카소의 게르니카(장 루이 페리에/김화영)

기타
풍경(가스통 바슐라르/이가림)

어떤 걸 사게 될지 모르니까 님 계좌를 알려주시면 내일은 그렇고, 금요일에 3만원(세권이니까 ㅎㅎ)을 부쳐 드릴게요. 나머지는 환기미술관에서 만날 때 책과 함께 처리하도록 하구요. 이런 부탁해도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혹 책 때문에 무거울까봐...

참, 잘린 라디오머리 음악은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Track&menu=m&Album=6120 여기로 가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urblue 2004-12-0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눈에 띄는 대로 사드리긴 할 테지만, 한 권 밖에 없는 건 제 차지일겁니다. ㅎㅎ

책값은 다녀와서 말씀드리도록 하죠.

토요일 오후에 홍대 앞에 계실거 아닌가요?

어차피 파주 갔다가 그리로 갈텐데, 뭐 시간되면 그때 바로 드릴 수도 있겠네요.

전화드리지요.

2004-12-02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2-02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01 조제

묘하게 긁어대는 듯한, 어리광을 부리는 같다가도 문득 안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태어나서 빗질이라고는 번도 하지 않은 부스스 흩어진 머리카락

시설에서 함께 도망친 아이(이름 기억나지 않는다.)에게 엄마처럼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하던 엄숙한 얼굴

조제가 풀썩 떨어져 내린 의자와 싱크대

언젠가 너도 나를 사랑하지 않게 때가 오겠지. 나는 다시 내가 나온 심연으로 돌아갈거야. 그렇지만 그때와 똑같을 수는 없겠지.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

전동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달리고, 혼자 먹을 식사를 준비하던 담담한 표정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

아직 사랑을 시작하기 전엔 울며 가지 말라고 매달렸지만, 이미 사랑을 겪고 후엔 사랑이 변한다는 , 그것조차 삶의 일부이며 받아들일 있는 일이라는 깨달은 조제의 변화가 대견스럽다. 자신의 장애가 츠네오의 여자 친구가 말했던 무기 아니라는 누구보다 알았을 그녀.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해 이만큼 보여줄 있는 일본이기 때문일까.

 

 


 

02 츠네오

처음 조제네서 밥을 먹을 , 억지로 젓가락 입에 댔다가 너무너무 맛있게 그릇을 뚝딱 해치우던 발랄함

여자 친구 앞에서 다른 여자 생각에 커다랗게 웃는 철부지

이런 저런 핑계 대지 않고, 자신이 조제에게서 도망쳤음을 인정하는 남자

길거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던 모습

 

사랑이 변했으므로 조제를 떠난 남자. 그가 떠났기에 조제를 사랑한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도망쳐놓고, 다시는 조제를 없다는 생각에 길에서, 그것도 애인 앞에서 울어버리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건 잘못이 아니야.

 

03 할머니

조제와 마찬가지로 심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깊게 주름이 패인 어두운 얼굴

느릿느릿, 그러나 확실한 말투

 

조제가 늙으면 할머니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보다가 눈물 방울을 떨구었다. 어느 장면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조제가 불쌍해서도 아니고, 이들의 어긋난 사랑이 가슴 아파서도 아니고, 이유를 모르겠다. 풋풋하고 용감하고 꿋꿋한 조제와 츠네오 앞에서 눈물을 보일 까닭이 없었는데.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11-23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1-23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1-24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짧은 글로도 영화의 윤곽을 다 잡을 수 있군요. ^^ 영화만큼 책도 좋을까요? 전 책 읽는 게 더 가능한데. 클클.

urblue 2004-11-24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네, 저도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님 서재 다녀왔는데, 코멘트처럼 간결한 문장들이 인상적이더이다.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이안님, 저도 책이 어떨까 궁금하네요.
극장에 가기가 여의치 않으면, 나중에 비디오로라도 보시기를.

아영엄마 2004-11-2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이게 영화 제목인 거죠? 요즘 당최 이쪽 분야랑 거리가 멀어서..^^;

urblue 2004-11-2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바쁘신가 봅니다.

꽤 재미있고 산뜻한 영화라 보시면 좋을텐데요. ^^

플레져 2004-11-2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스러운 글... ㅊㅊ 합니다...

urblue 2004-11-24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스러운 글...이라 하시면 글씨가 파랑이라서? ㅎㅎ

ㄳ합니다.

로드무비 2004-11-24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다가 눈물 한 방울을 떨구었다...어느 장면일까?

나는요, 츠네오를 사이에 두고 조제와 그 여친이 서로 뺨을 갈길 때

이상하게 뭉클했다오.

그래 꽁치김치찌개는 맛있었나요?

요즘 내 방에 잘 오지도 않더니만 밤새 댓글을 몇 개나......

반가워서 달려왔다오.

캡쳐해 준 것 고마워요.

<반지의 약속>(1~4완) 읽었어요? 싸게 팔길래 한 세트 사뒀는데...

읽고 싶다면 선물하리다.^^


2004-11-24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1-24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4-11-2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꼭 봐야겠네요...^^

urblue 2004-11-2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뭐 별로 아픈 사연은 아닙니다. 기회되면 말씀드리지요. ^^



비연님, 상영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 서두르셔야 할 듯. ^^

2004-11-25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4-11-2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저는 가능한 못되게 살려고 합니다만.

가끔 위악을 부린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착한 거, 저는 싫어요.

착한 척하며 사는 건, 글쎄, 나름대로 사는 맛이 있지 않을까요?

남이 말한 건 대개 그대로 믿는 저는, 님의 말씀도 믿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군요.

2005-08-18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