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화,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 내내 볼까 말까 망설였다. 시간이 되고 여건이 되어 보긴 봤는데, 나오면서 역시나 후회하고 있었다. 그럴 뻔히 알면서, 매번 찾아가 확인하는 것은 대체 무슨 심사인지 모르겠다.

 

사는 힘겹다고 말하는 영화들이 있다. 삶의 의미를 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들. 그런 것들은 쉽게 있다.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고, 거기서 나름의 의미만 찾으면 그만이다. 보기엔 말이야, 저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거야, 이런 저런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 의미는 결국 이게 아니겠어,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있다. 혹은 삶과 연결짓고, 혹은 비웃어주고, 혹은 감동을 받는다. 그렇게 쉽게 떠들 있는 영화가, 나는 좋다.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정확히 반대편에 위치한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게,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골 마을, 부모를 잃고 졸지에 가장이 되어 버린 12 소년과 동생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팔려가다시피 결혼을 하는 아직은 어린 소녀에게, 삶이란 말이야 힘겨운 거야, 라고 말할 용기가 당신에겐 있나. 그들의 모습을 앞에 두고 삶의 의미를 얘기할 있나. 실제로 그토록 고통스럽게 목숨을 부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 그들의 힘겨움을 아는 있나. 나는 못하겠다.

 

싫은 점은, 영화를 보면서, 보고 나서 내가 어찌해야 하는지 도무지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힘겨움을 함께 느끼며 눈물 흘릴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감동할까, 좋은 영화 봤다고 행복해 하기라도 할까. 아니면, 이란의 굶고 있는 어린이들을 구제하자고 캠페인이라도 벌일까. 내가 있는 일이 대체 뭔가. 철저하게 무력감을 느낄 뿐이다.

 

어제 영화를 보고 나와서 박물관을 돌아보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좋아라 했다. 행복해 했다. 그리고 지금, 글을 쓰면서 나는 눈물 짓는다. 누구나 행복할 있는 세상을 염원하고, 푼의 기부금을 내고, 이런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는 것으로, 나는 행복을 정당화한다. 영화는 그런 모습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이 글은 오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통스럽고, 이런 식으로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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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09-1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럴까봐 안봤어요. 내가 속해있는 세상이 괜찮아 보일까봐... (이건 또 무슨 심뽀인지..큭.)

하얀마녀 2004-09-1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외람될 지 몰라도 전 '러브 하우스'인가? 그것도 안 봅니다. 쩝...
눈을 돌리고 싶어지더라구요.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고.

가을산 2004-09-1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로드무비 2004-09-1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이렇게 진실한 마음으로 쓰셨잖아요.
고스란히 그 마음이 전달됩니다.^^

어디에도 2004-09-13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렇군요... 님은 솔직하세요.
저는 이런 영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제가 조금은 나아진다고 느끼니... 허영이겠죠.

hanicare 2004-09-1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 봅니다. 그러나 너의 블루님이 보시는 이유는 저같은 사람에게 리뷰를 남기기 위해서이고 그래서 저 영화 절대 안봐야지 하는 정보를 주시기 위함입니다^^(피융~이 부분에서 돌날아 오는 소리). 어쩔 수 없지요. 저는 천성이 이기주의자여서.

urblue 2004-09-1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는 이런 영화 안 볼랍니다, 누가누가 옆에서 아무리 꼬드겨도.
 


살다 보면, '더 이상 살 수 없다'거나, '죽을 것 같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사랑에 배신당했을 때, 큰 사건을 겪었을 때 등등. 정신이 아득해지고 온 몸에 힘이 없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순간들.

허나 그런 순간들은 의외로 쉽게 극복된다. 어쨌거나 인간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야 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그 사람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라고 외쳐도, 대개의 사람들은, 결국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피폐해진 영혼을 치료하고 극복하는 데야 다른 노력이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육신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건 너무나 쉽다.

아들을 잃고, 그 여파로 이혼을 하고, 직업 훈련소에서 아이들에게 목공을 가르치는 남자 올리비에. 그가 가르치는 소년들은 죄를 짓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던, 다시 사회로 돌아가고자 노력하는 아이들이다. 그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나름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건, 5년 전 아들을 살해한 아이 모르간. 열 여섯 소년답지 않게 작고 여려 보이는 그 아이는 소년원에서 5년을 보냈고, 목공을 배우러 왔다. 올리비에는 이 소년에게 어떻게 할까.

영화는 삶을 흉내낸다. 되도록 일상의 모습과 닮아 보이기 위해 애쓰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현실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야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없다. 내가 사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라면, 관객들은 굳이 극장을 찾지 않을게다.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각색과 과장과 편집이 필요하고, 인물들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알맞은 때에 적당한 음악을 깔아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영화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 이런 모든 것들을 무시한다. 카메라는 올리비에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핸드 헬드의 카메라가 주로 올리비에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고, 올리비에와 전 부인, 올리비에와 모르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롱테이크가 이어지고, 그 안에 담긴 건, 그저 나날이 이어지는 올리비에의 일상 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간단한 운동을 하는 올리비에, 모르간에게 자꾸 시선을 주는 올리비에. 음악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얼마 안 되는 대사와 주변의 평이한 소음들 뿐.

그러니까, 영혼을 울리는 감동적인 화해, 따위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는 거다, 이 영화에서는. 당신이, 당신의 아이를 죽인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그를 해칠까. 울고 소리지르고 발작이라도 일으킬까. 아니면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며 아름다운 눈물을 흘릴까. 이 영화는 용서와 화해와 감동이라는 일반적인 영화의 주제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건 영화니까. 사람의 삶은 영화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고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일상만이 있을 뿐이다.

평범한 감동을 권하지 않기에 오히려 감동이 되는 영화, 현실을 적당히 흉내내는 게 아니라 진짜 삶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영화. 가슴이 먹먹하다.

사족 한 가지. 평소에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음악을 잘 듣지 못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화면도 대사도 생각이 나는데, 음악만은 전혀 기억을 못한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면서 음악이 쓰이지 않은 것에 대해 특별한 감흥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무 소리가 없다는 것, 극장 안이 침묵으로 가득했다는 것만은 특이했다. 그리고 그건, '단절'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영화 자체는 진짜 삶 같았는데, 역시 허구라는 것, 이제 영화가 끝났으니 당신들은 다시 당신들의 생활로 돌아가라는 메시지, 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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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2004-09-06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신다더니 이거 보셨나봐요. 전 못본건데 님의 수려한 글을 읽으니 마구 구미가 당깁니다. 갑자기 많은 페이퍼를 올리시니 제가 정신없이 보기는 봤는데 글마다 다 댓글을 달자니 적잖이 망설여지더군요.(제가 스토커인거 들통나기 싫어요!)
근데 극장에 가시는 줄 알았는데요...?
(자빠져 자느라 스토킹을 제대로 못한 어설픈 스토커의 구차한 질문;)

urblue 2004-09-0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커라고 진작에 고백하셔놓고 뭘 또 새삼스럽게... ^^
토요일에 영화보고 들어와서 DVD랑 만화랑 또 보고, 일요일엔 하루 종일 집에서 굴렀답니다. 침대 커버랑 패드랑 싹 빨고 청소하고 한바탕 했지요. (이게 대답 맞는지 좀 헷갈리네...)

로드무비 2004-09-0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가 있었어요?
요즘 정신이 온통 적립금 5천 원에 팔려가지고설라무네...
저도 감상을 배제한 영화가 좋아요.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시선으로 등장인물을 따라가는...
보고싶네요.^^

urblue 2004-09-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방 끝날거에요. 빨리 보셔요. 하이퍼텍 나다에서 한답니다. 님 댁에서 좀 먼가...

에레혼 2004-09-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를 보셨군요. 저도 갈망하는 영화인데.....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극장용으로 보기 어려울 듯하고, 나중에 디브이디라도 출시되면 구해서 봐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느낌...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전해지네요.

유어블루님, 좋은 영화도 보시고, 좋은 리뷰도 쓰시고, 스토커도 있으시고^^, 부러워요!

urblue 2004-09-06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라도 안 보면 어디서 삶의 재미를 찾겠어요. ㅠ.ㅠ

어디에도 2004-09-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다에서 이거 해요? 안 그래도 어제 영화가 보고 싶어서 아니지
극장에 아주 가고 싶어서 뭔 영화들이 있나 한참 뒤적거렸었는데, 이건 못봤네요.
흑. 사실은 전 동네극장만 가요. 제가 좋아하는 씨네큐브, 하이퍼텍나다, 코아아트홀도 못가요. 흑흑. 왜냐고는 묻지 마세요.
제 몫까지 블루님이 영화 많이 보시고 이렇게 글 올려주세요. 네? ^^
 

예매하기 찾아본 영화평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절대 보지 말라는 코멘트가 붙은 반개와 , 인간의 잔혹성을 밝혀내는 수작이라며 혹은 다섯 . 그래서 평균 개다.

 

호러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장면을 차마 수가 없다. 그래서 영화도 피하려고 했으나, 마무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서, 게다가 친구도 영화를 주장하여, 결국 낙찰.

Cut

 

박찬욱도 이병헌도 영화가 웃긴다고 말한다. 정의하자면 잔혹 코미디정도라고, 웃긴 장면에서 스스럼없이 웃으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코믹한 장면이 없는 아니다. 그런데 장면에서 웃는 관객, 명도 없었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코미디적 요소에 웃을 있는 심적 여유를 영화는 주지 않는다. 안의 다른 내가 얼마나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정에서,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웃을 있다면, 이미 완벽하게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고 있거나 아예 관심 따위 두지 않거나 하나일거다.

 

가진 사람은 이승에서 지을 일이 없으므로 저승에 가서도 살거고, 가진 사람은 이승에서 죄를 지을 밖에 없으니 저승에서도 벌을 받게 거라는 임원희의 대사에 아프게 공감한다.

 

이병헌이 촬영하는 영화와 겹쳐지는 대사와 이미지가 상당수다. 영화 속에서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듯, 영화도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경계란 모호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수작. 사람의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강혜정은, 대사도 없는 상황에서 남자에게 눌리지 않는다. 다만, 심장 약한 사람이나 인간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보지 말기를.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하다.

Box

 

모호한 영화다. 마지막 장면이 다소 충격적이긴 하다. <식스센스> 봤을 , 반전을 알고 나서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장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느라 바빴다. 영화도 조금 비슷한 구석이 있다. 푸르스름하고 창백한 화면이 느리게 흘러가는데, 생각없이 보게 된다. 꿈인지 현실인지 상상인지 없는 일들이 펼쳐지고, 드디어 마지막 장면이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하는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앞의 장면이 이런 의미였나 다시 생각해야 한다.

Dumplings

 

가장 끔찍하달 있는 작품이다. 인간에게 육체가 무엇이고 젊음이 무엇인지. 젊어지고자 하는 것은 육체의 욕망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무섭고, 욕망을 이루고자 저돌하는 집념이 무섭고, 치명적인 중독은 더더욱 무섭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가장 충격적이고 섬뜩하고 끔찍한 장면인데, 인간이 가장 무섭다. Cut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잔혹성을 보여준다면, 작품은 갈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임산부는 절대로 보지 일이다. 하나, 영화가 끝나도 소리는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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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2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리몬스터를 꼭 봐야겠네요.
조금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들마저 매혹적으로 들리네요.^^

urblue 2004-08-2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시려면 식사 하기 전은 피하세요. 뭐 그런 거 신경안쓰는 강심장이시라면 또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영화가 감독인지 시나리오 작가인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글을 읽었다. 그럴 법도 하다.

 

외삼촌과 이모 분과 고모 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다. 이모 분과 고모 분은 미국인과 결혼을 했으니, 이민이라고 하기는 그렇다. 분의 아이들은, 혼혈이긴 하지만 완벽한 미국인이다. 커서 만난 사촌에게 나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낄 없었다. 다른 분의 자식들은 모두, 20 년을 미국에서 살았으면서도, 한국인과 결혼했다. 외삼촌네 언니의 경우에는, 혼기가 차도록 남자가 없자, 외삼촌이 신랑감 찾으러 한국에 보낸다는 말도 나왔었다. 어찌어찌 그곳에서 한국 남자를 만나는 바람에 한국에 들어올 일은 없어져버렸지만. 그런 얘기들을 전해 들으면서 나는, 사촌들이 미국인과 연애를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하나같이 한국인과 결혼을 수가 있을까 궁금해 했더랬다.

 

미국으로 이민 그리스 가족. 수많은 삼촌과 고모와 이모와 삼십 명의 사촌들 속에서 자라고, 그리스 학교를 다니고,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일가 친척의 바람대로 성실한 그리스 남자를 만나 그리스 아이들을 잔뜩 낳고, 끊임없이 애들을 먹이는 , 이것이 그리스 여자 툴라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이다. 관객의 예상대로, 툴라는 이런 삶에 만족할 없다. 아버지를 설득해서 대학의 강의를 듣고, 이모의 여행사로 직장을 옮기고, 드디어 남자를 만난다. 그런데 남자가 그리스인이 아니라네. 당연히 아버지와의 갈등 시작.

 

툴라와 미국인 애인 이안이 아버지와 일가 친척들을 만나고, 관계를 다지고, 마음의 문을 열고, 드디어 결혼에 성공한다- 영화의 줄거리다. 외아들에 친척도 없는 이안은 툴라의 대가족을 좋아하고, 더군다나 툴라와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없으니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만무다. 대가족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여기저기서 말썽이 생기고, 서로의 일에 참견하고, 그러면서 서로간의 애정과 신뢰를 확인한다. 툴라도 자신에게 가족이란 든든한 버팀목이 있음을 깨닫는다. 확실한 해피엔딩.

 

그런데 말이지, 행복은 오로지 이안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툴라를 포함한 그리스 가족은,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모험을 감행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다. 이안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고, 툴라 부모님의 옆집에 살면서, 아이를 그리스 학교에 보낸다. 달라진 아무것도 없다. 30 넘게 살아온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있는, 이안 같은 남자가 아니라면, 이런 행복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니, 사촌들이 한국인과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 이안 같은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외삼촌도, 이모도, 고모도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바꾸지는 못했고, 자식들에게도 그것을 어느 정도 강요했을 테니까. 게다가 사촌들조차 한국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살다 건너간 이주민들이니까.

 

영화가 재미없었던 아니다. 시종일관 시끌벅적하고, 유쾌하고 경쾌하다. 다만, 낯설지 않은 풍경, 예상 가능한 사건, 익숙한 결말, 씁쓸한 뒷맛, 이라는 문제가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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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8-1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 남자배우 무지 좋아해요. 그래서 보는 동안 참 즐거웠는데.. 윈덱스만 보면 이 영화 생각 나더군요. ^^

mira95 2004-08-1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결혼해도 맞추면서 살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에고~~ 그러고 보면 전 결혼하신 분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urblue 2004-08-1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맞아요, 윈덱스..ㅋㅋ 남자배우 이름은 모르겠는데, 참 깔끔한 느낌이에요.

미라님, 제 생각에도 결혼하신 분들 대단하다니까요. 그치만 이런 남자만 만난다면 당장이라도 결혼할 수 있어요. ^^ 아, 그런데 이런 남자가 저 좋다고 해 줄라나...--a

IshaGreen 2004-08-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시기를 놓쳤죠...^^;

urblue 2004-08-1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극장에서 보려다 놓쳐서, 며칠 전에 케이블 방송으로 봤답니다. ^^V
 


가장 끔찍한 장면.

이라크에서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거리에 불을 지르던 군인들의 철모에서는, 탱크에서 틀어놓은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군인들은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생각없이, 신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 들떠서 얘기한다.

한 손은 의자의 팔걸이를 꽉 움켜쥐고, 다른 한 손은 뺨 위에서 떨린다. 어느새 나는 눈물을 떨구고 있다.

군인들의 인터뷰에 이어지는 장면은, 폭탄으로 찢긴 여자와 아이들의 시신,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냐고 묻는 이라크인, 고통에 울부짖는 상처입은 어린이들이다.

아, 기억을 되짚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이 뜨겁고 눈앞이 부얘진다. 겨우 스무살 즈음의 청년들을 그렇게 만든 건 무엇일까.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흥겨운 멜로디로 전쟁과 살상을 떠올릴까. 아프다. 너무...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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