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샤갈전> 보고 나서, 친구가 파주의 해이리 축제에 가자고 하는 그냥 보냈다. 우울해서, 친구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혼자 <나쁜 교육> 보러 갔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커플이 엘리베이터에서 얘길 나눈다. 정말 만들었다, 마음에 들어요, 군더더기가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 생각엔 짧게 만들 있는 영화야. 그래요? 그렇지만 (어쩌구 저쩌구…)

 

만들었는지, 군더더기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생각 내겐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내내 멍했다. 단어, ‘욕망외에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인간의 욕망이란 타인에게 전염되는 모양이다. 나쁜 교육, 이라는 제목은 욕망의 전이를 말하고 있는 하다. 어린 소년에 대한 마놀로 신부의 욕망은 그대로 소년에게 옮아간다. 이나시오는 여자가 되고 싶어하고, 약을 끊고 싶어하고, 엔리케를 만나고 싶어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마놀로를 협박한다. 후안은 갖고 싶은 있고, 배우가 되고 싶고, 그래서 이나시오와 마놀로 신부를 이용한다. 한편 엔리케는, 자리를 구걸하는 배우 따위 관심없다, 말로 친구를 외면했으면서, 다른 욕망을 위해 친구를, 친구의 동생을 곁에 둔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무얼까. 어쩌면 사랑으로 시작했을 이들의 행동은 점점 사랑과는 거리가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 남자, 아니 그저 명의 인간이 보여주는 욕망의 변주곡.

 

소년 이나시오가 부르는 Moonriver 아름답다. 어쩌면 아름다움이 마놀로 신부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욕망을 깨웠는지 모른다. 아름다움에 대한, 혹은 사랑에 대한 인간의 감정은 조금만 방향을 틀면 무시무시한 욕망으로 변하고야 만다.

 

영화를 보고 나와 무슨 일인지 평소에 이용하지 않는 버스를 덥석 집어 탔다. 지하철로 20 거리를, 만원 버스로 1시간이 넘게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생각을 했다. 내가 우울한 이유가 뭘까, 타인에 대한 나의 집착, 욕망, 그런 것이 나를 괴롭히는 아닐까, 누구의 탓이라기보다 그저 욕심이 나를 좀먹고 있는 아닌가 하는 생각들.

 

어려운 문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만, 집착해서는 된다는 . 욕구를 채우자고,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누군가를 괴롭혀서는 된다는 . 그러나 이것조차 내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기에 생기는 문제임을 잊지 않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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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9-2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렀어도...아마 절대 못 알아봤겠지요?
그 인파라니.... 누군가 "저....혹시, 진/우맘님?"하고 말 걸어주는 광경을 상상하며 웃었던 제가 무색하더군요. 쩝.

urblue 2004-09-2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는 일요일에 갔다 왔어요. 비 오니까 토요일에는 나가기가 싫더라구요. 토요일에 가면 님을 찾아봐야지 생각했었는데...^^

로드무비 2004-09-2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착 좀 하면 어떻습네까!
마음가는 대로 하세요.^^
기운 차린 것 같아 다행입니다.

urblue 2004-09-2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에 브리핑에서 <집착 좀 하면...> 하는 구절만 보고 로드무비님인 줄 알아봤네요.

진/우맘 2004-09-21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구나~ 일요일엔 아영엄마님이 가셨는데!^^

hanicare 2004-09-21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욕망이란 타인에게 전염되는 모양이다.이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도네요.그저 내 욕심이 나를 좀먹고 있는 건 아닌가. 에너지로 연소되지 못한 욕망의 그을음이 내 몸을 해치지요.때론 남까지.그러나 경전에 잘 나오는 말.집착하지 마라.사랑하되 집착하지 말라는 건 고도의 경지에서나 가능할거에요.스포츠를 배울 때 초보자는 늘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자기를 과도하게 의식하지요.그러고보면 늘 나는 초보자였나봐요. 조금 해보고 금세 나가떨어지는.

urblue 2004-09-2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eadspace님, 저 역시, 늘 초보자였던 듯 합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님의 코멘트에는 뭐라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숨은아이 2004-09-2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멍해진 마음으로 창 밖을 보기엔 전철보다 버스가 좋지요. ^^

urblue 2004-09-2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래서 무작정 버스를 탔는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