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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ㅣ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평점 :
잊혀지는 것과 기억되는 것, 무엇이 더 두려울까? - 기억술사 1 _ 스토리매니악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내용을 떠나, 기억을 잊는다는 것이 참 공포스럽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감퇴하거나, 치매로 저항하지 못하는 기억력 상실이라면 어떨까?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그 답답한 공포는 몸을 부르르 떨리게 만든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너무나 잊고 싶지만,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기억. 너무나 괴롭고 자기자신을 좀 먹는 기억이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라는 것은 그 나름대로 다른 의미의 공포다. 누구나 살며 정말 잊고 싶은 기억 한 두가지 쯤은 있다. 그러나 결코 지워지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그 기억은 살아 있는 내내 자신을 괴롭힐테니 말이다.
이 소설 <기억술사>는 바로 이런 기억의 상반된 공포를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다. 꼭 잊고 싶은 것을 지워주는 도시전설 속 괴인 '기억술사', 그 기억술사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에 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경험,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어우려졌을 때의 공포, 감성적이지만 슬쩍 한기가 드는 이야기다.
애달픈 호러, 노스탤직 호러 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호러라는 장르를 붙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공포라는 감정이 드러나고, 이를 표출하는 장치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 소설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굵직한 힘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요즘 대다수의 소설이 그렇듯, 약간의 호러적인 설정, 약간의 미스터리적 장치, 약간의 로맨스적 구성이 잘 버무려져 있다 하겠다.
'기억' 이라는, 추상적이라 더 감상적인 느낌이 드는 이 단어가 이야기를 좀 더 신비스럽게 만들고, 몽롱한 분위기 안에 가벼운 호러적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써, 캐릭터들이 어떻게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하게 만드는 유용한 장치로 기능하기도 한다. 미지의 정체인 기억술사에게 다가가기 위한 기본 설정이 좀 아쉬운 감은 있지만, 이야기 내내 긴장감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야기의 분위기에 잘 빠져들 수 있다면, 다양한 장르의 재미가 어우러진 소설로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존재를 안고 조여드는 긴장감을 맛볼 수도 있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둥둥 떠다니는 몽롱한 기운을 느낄 수도 있으며, 그 과정을 따라가며 느끼는 미스터리적 풀이의 만족감을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좋게 보면 다양한 장르의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다 하겠지만, 그 분위기에 젖어들지 못하면, 이도저도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다.
모호한 지점에 서서, 신비스런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소설이었다. 시리즈 도서인데, 이제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느낌을 즐기기에는 충분했지 싶다. 뒤의 이야기를 읽게 되는 것은, 온전히 주인공들의 다음 이야기, 기억술사의 정체에 대한 또 다른 결말이 궁금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