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동안 읽었던 책들 중 내게 좋았던 책을 추려본다.



1.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한국 현대사에 기여한 지성인들 60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종교,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망라되어 있어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각 지성인을 선정한 이유와 대표작을 훓어보고 저자의 간단한 평가까지 덧붙여 놓았다. 

선정된 지성인 중 처음 듣는 이름도 간혹 있어서 체크한 경우도 있었고 '이 사람이 지성인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지성인 중 몇몇은 체크해놓고  저작을 구매하기도 했다. 

한국사상사를 쓴 박종홍의 경우가 그랬다. 

이런 책은 두고 두고 읽을 책은 아니지만 한번 읽어 놓으면 나만의 목록을 만들어 더 깊이 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2.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상반기에 북클럽을 통해 한국통사를 공부했다. 

그런데 조선의 개혁들 중 가장 혁신적이라고 평가받는 대동법에 대해서 너무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런 내 갈증을 해소해 주기에 알맞은 책이 있었으니 이 책이었다.  

중요한 개혁이라고 학교 다닐 때도 대동법에 대해서는 꽤 분량을 들여 가르친다. 

하지만 대동법의 자세한 내용과 변천사, 관련된 인물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책은 이 모두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의 공물 수취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대동에서부터 경대동, 호서대동법과 경기선혜법의 수정. 그리고 대동법의 전국화에 이르기까지 100년에 걸친 제도의 정비는 중간에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쟁의 변수가 있었음에도 꾸준한 시도 끝에 정착될 수 있었다. 

역시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다.


3. 올리버 트위스트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인간이 유전, 환경 중 환경만으로 개선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생각이 들었다.

올리버가 로즈와 브라운로를 만나기 전까지는 운명이 왜 이리도 기구할까 생각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인지 해가 되는 사람인지 구분을 지으며 살기에는 너무나 피곤하지 않은가.

소설 속에는 마치 빛과 어둠을 대비하듯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주며 선악을 대표하는 인물을 통해 재미를 더해주었다.

디킨스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을 글로 묘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개입시켜 놓은 부분이 흥미로웠다.

독자가 작가의 생각과 같거나 비슷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졌는지 비교하며 느껴보는 묘미를 챙길 수 있어서다.


 

4. 휴먼카인드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로운 접근.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기적 유전자를 비롯한 많은 저서에서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며 쉽게 나쁜 것에 휘둘리는 존재로 말해서 그것에 우리는 익숙하다. 

뉴스를 봐도 나쁜 소식들로만 가득하고 최악이 존재할까 할 때 그보다 더 최악이 존재할 때를 많이 접하며 어느샌가 비관론적 사람이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은 연대와 상호작용을 갈망하는 존재이며 우리의 몸이 음식을 갈망하듯이 우리의 영혼은 유대를 갈망한다고 이야기한다. 

호모 퍼피가 큰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같은 갈망 때문이라고.

더 나은 희망이 존재할 수 있고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100%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희망 중 일부라도 붙잡고 싶어지는 주문 같은 책이었다.


5. 불편한 편의점

편의점이란 공간은 수많은 개인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일하는 사람은 기계적으로 물건을 팔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담배를 사는 것처럼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는다면 말 꺼낼 일도 없다.

저자가 하필이면 편의점이란 공간을 선택한 것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 제목과는 반대로 이런 곳이라면 꼭 들르고 싶은 편의점이었다.

이 곳엔 따뜻한 어묵 국물 같은 소시민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쓸쓸함을 느꼈을 때 읽으면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틀리다고 생각하고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경계를 긋는 세상에서

손을 내민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니 말이다.


6. 옥저와 읍루

이 책은 우리 고대사 중 옥저와 읍루에 대한 역사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교양서라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반도, 그것도 남한의 시선에서 북방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그곳이 쉽게 가볼 수 없는 지역인데다 고대사의 특성상 기록이 소략하므로 멀게 느끼기 때문이다.

고대사 유물과 유적은 새로 발굴되므로 끊임없이 업데이트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최신 자료를 이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러시아와 가깝다 보니 러시아 정보가 하루가 다르게 업데이트되는데 그 점을 충실히 반영하였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우리 역사책에는 없는 옥저인과 읍루인을 만날 수 있다.


7. 제2의 성

이 책은 지금까지의 여성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투쟁의 역사도 알려주지만

성 이론, 그리고 남성과 여성. 성 정체성. 주변과의 관계.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기 때문에

모두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 시절 보부아르는 참 선구안적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보부아르가 목놓아 주장하던 여성 해방의 길은 멀게만 느껴지고

모두가 해야 할 일은 산재해 있다.

책을 읽으며 한국 근대 여성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봉건 타파를 넘어 노동자, 계급 투쟁에 이르는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여성들도 분연히 일어났다.

부르주아 여성들이 주장한 여성 교육부터 시작해서 1920년대 사회주의 유입으로 '여성=민중' 이라는 의식이 움트며 여성 해방을 주장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의 특수적인 상황도 있고 해서 현실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갈 길은 멀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올해 중반에는 책을 열심히 읽지 못해서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에는 꾸준히 읽는 한해가 되도록 해야겠다.

이미 사둔 책들이 많아서 굵직한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대변혁은 결국 올해 안에 읽을 수 없을 것 같고(1월 안에 반드시!)

역사의 원전, 중국철학사와 하버드 중국사도 있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도 있군.

그리고 한국근현대사 책들은 꾸준히 채워서 읽을 작정이다.

지금 읽고 있는 대한계년사를 마저 10권까지 다 읽고 매천야록도 이어서 읽으려고 한다.



































 









내년도 어김없이 이렇게 읽다 보면 한해가 금방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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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2-26 21: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벽돌책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래놓고 책을 많이 못 읽으셧다고 하시면
저 같은 사람은 웃픕니다.ㅠㅋㅋ
내년에 이 책들 읽으시려면 부지런히 읽으셔야겠네요.
응원합니다.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복되고 힘찬 새해 맞으십시오.^^

거리의화가 2021-12-27 08:37   좋아요 2 | URL
역사 분야를 좋아하는데 벽돌책, 그것도 양장본으로 신간이 나오고 사모으다보니 점점 많아지네요.
그래서 이사한지 1년밖에 안 지났는데 책장에 책 꽂을 공간이 없어 또 쌓여가고 있습니다.
저 책들 읽으려면 최소 한 달에 한두권은 읽어야 다 읽을 수 있겠네요.
헌데 저 책들만 읽을 것 같지는 않고...ㅋㅋ 욕심이 커져만 갑니다.
응원 감사드리고 스텔라님도 좋은 새해 맞이하시길!

얄라알라 2021-12-27 1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년 12월의 끝자락이면, 알라디너 플친분들의 결산(?) 페이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저라면, ˝대한계년사˝전집(?)만 읽어도 1분기는 갈텐데, 정말 대단하세요. 거리의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1-12-27 12:48   좋아요 3 | URL
다른 알라디너분들의 책은 어떤지 보는 맛이 좋아요.
어쩌다보니 두꺼운 책들만 있는 것 같은데
도전 의식이 있어야 더 열심히 읽게 되는 타입이라ㅎㅎ
북사랑님도 내년 독서 화이팅입니다!

mini74 2021-12-27 14: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트위스트 ! 전 이 책 어린이용으로 읽은 거 같아요. 디킨즈 책 한 번 읽어보고싶어요. 거리의 화가님 역사책 우와! 내년에도 즐거운 독서생활 하시길 바라봅니다 *^^*

거리의화가 2021-12-27 16:48   좋아요 2 | URL
오 어린이용도 있군요.
디킨즈 좋은 작품 많다던데 저도 소설은 많이 읽는 분야가 아니라서 저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나쁘지 않았는데 다른 작품들은 언제 읽어볼 기회가 있을지.
읽어야 할 책들이 있어서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지 못하는 건 아쉽죠.
미니님도 즐독하세요!ㅎㅎ

scott 2022-01-07 17: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ㅅ^

새파랑 2022-01-07 1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화가님의 올해의 책들 찾아봐야 겠어요 ^^

mini74 2022-01-07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화가님의 책소개 참 좋았어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2-01-07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아니 이런 일이ㅠㅠ 감사드립니다.

책읽는나무 2022-01-07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이런 좋은 일이 생기셨네요?
축하 드립니다.
덕분에 좋은 책들 많이 알게 되었어요.^^
 
대한계년사 4
소명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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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후반부에 이어 4권은 관민회와 황국협회(보부상) 간의 알력 싸움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황제는 모임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관민회와 만민회를 배척하고 탄압하였으며 황국협회가 하는 일을 뒤로 은밀히 지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너무나 안타깝다. 백성들이 이토록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리는 것은 까닭이 있기 때문인데 그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무리로만 생각하는 것으로 여기니 어찌 답답하지 않은가. 서양 문물을 그토록 많이 받아들였으면서 왜 민의에 수용에 대해서는 이토록 꽉막힌 대처를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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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계년사 3
소명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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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의 탄생과 최후까지가 소상히 담긴 부분이다. 황국협회와 상인들이 고종과 어떻게 결탁하여 독립협회를 쳤는지 그 배경을 소상하게 알 수 있다. 조선의 마지막 개혁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독립협회가 민중들을 결집시키고 그 힘을 끌어모아 임금에게 상소함으로써 헌의6조를 이끌어낸 것은 오늘날의 국회가 입법을 만들어낸 것과 같은 효과라 할 수 있다. 100년도 훨씬 전에 조상들이 일구어낸 끊임없는 정책 입안과 건의에 감탄이 일었다. 비록 끝은 무너졌지만 오늘날의 국회가 이를 본받아야 하는 모습이 있다면 자신들의 정쟁으로 국민은 뒷전인 것이 아닐 것이다.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달려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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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동성애는 종종 아름다움, 사랑, 폭력, 죽음 등에 대해 문화적으로 귀중한 관심을 구현하는 것으로 비친다.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의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남성 동성애자는 생물학적 재생산이라는 명분보다는 훨씬 더 영적이고 성적인 명분을 위한 순교자로 간주된다. 남성에 대한 남성의 사랑은 여성과 아이들이 얽혀 있는 딱하고 구차스러운 가정의 대소사보다 훨씬 실재적이고 고양된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식 ‘유심론’과 그것이 암시하는 모든 것(‘사랑’ 없는 섹스와 섹스 없는 사랑에서부터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은 서구 문화의 기본적인 가치이다.
레즈비언은 그처럼 영광스럽게 확장시킬 만한 역사와 선조들이 없다. 레즈비언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성애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남자와 생활했으며, 생산수단을 통제하지 못했다. 레즈비언은 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대다수는 전통적으로 남성 동성애자보다 훨씬 가정적이고 관습적이며 성적으로 일부일처제에 순종한다. 여성들은 이런 특성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그로 인해 가치를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젠더는 인종, 계급, 혹은 성적 지향보다도 근본적인 가늠 기준으로 작용한다. - P362

여성 동성애는 남성 동성애만큼 법적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그 대신 대다수 여성은 그 존재 자체가 법적으로 완전히 배제되는 ‘처벌을 받았다’. 그 수에 있어서는 아마도 레즈비언보다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은 성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 모두에서 훨씬 크게 억압된다. 따라서 그들은 동성애 남성이나 이성애 남성들보다 경제적으로 무력할 뿐 아니라 성적으로도 훨씬 더 소심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남성이 동성애자로서 살아남는 것보다 여성이 레즈비언으로 살아남기가 훨씬 더 힘들다. - P363

어떤 면에서는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훨씬 쉽다. 이른바 여성의 ‘남성화’가 남성의 ‘여성화’보다 쉽게 받아들여진다. 여성적인 모든 것은 경멸당한다. 여자가 바지를 입고 집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이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훨씬 쉽다. 그렇지만 나는 궁금하다. 누가 자진해서 자기 발을 묶겠다고 하겠는가? - P365

여성은 ‘두뇌’ 아니면 ‘성기’, ‘가슴’ 아니면 ‘성기’, ‘어머니’ 아니면 ‘성기’라는 양자택일을 할 때라야만 남성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여성은 정서적이고 지적인 동시에 성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드물다. 여성이 이 세 가지 능력 모두를 발전시키기는 대단히 힘들다는 점은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다. 여성은 정서적이고 지적이며 성적인 능력을 누구와 공유할 수 있는가? 자기 비하, 성적 소심함, 이성애를 모델로 한 역할놀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레즈비언, 특히 페미니스트 레즈비언들은 지금 시점에서 인간으로서의 여성에게 산파 어머니 언니 딸 애인이 될 수 있다. - P368

그들의 성적 경험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현실로 남아 있다. 그들의 경험은 어머니, 고용주, 학급 친구, 어린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없으며 심지어 심리치료사와도 공유할 수 없다. 그들이 느끼는 현실감각, 그들이 인지하는 쾌락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기껏해야 차선이며 위험한 것으로 취급된다(나는 심리치료사가 환자의 이성애 경험에 관해 적극적으로 물어본다든가, 조심스럽게든 공공연하게든 레즈비언의 경험을 ‘규정’하는 것에 관해 들어본 적이 전혀 없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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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료 기간 중에 심리치료사와 성적 접촉을 가진 여성들과 대화를 나눴다. 또한 심리치료사의 성적인 유혹을 거절했던 여성들 다섯 명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를 했던 열한 명의 여성 중에서 열 명이 치료하는 동안 심리치료사와 ‘성관계’를 경험했는데, 그중 다섯 명은 진료실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지속했다. 일곱 명은 성관계 이후에도 같은 심리치료사로부터 계속 치료를 받았고, 평균 4개월간 치료비를 지불했다. 이런 성적 접촉은 하룻밤에 그치기도 했지만 18개월 동안 지속되기도 했다.
당시 여성들의 나이는 22세에서부터 45세에 이르렀고, 평균 31세였다. 네 명은 기혼이었거나 별거 상태였으며, 세 명은 독신이었다. 기혼 여성 네 명의 남편들은 성적인 접촉이 있던 바로 그때 동일한 심리치료사에게 아내와 함께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열 명의 치료사는 환자보다 열다섯 살 이상 나이가 많았으며 평균 47세였다. 심리치료사 중 일곱 명은 기혼이었고 두 명은 별거 상태였거나 이혼했으며, 한 명은 독신이었다. 일곱 명은 정신과의사였고 세 명은 심리학자였다. - P295

희생자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한 마음이 가책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는 화가 난다. 동정심은 분노로 바뀐다. 그들의 고통과 상처는 어느 정도 스스로 자초한 것임에 분명하다. 누더기를 걸친 거지는 자기 불행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거지 옆을 지날 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지나가야 한다. 지금이 무슨 빅토리아 시대도 아니고, ‘이용당하는’ 여성이라니. 아직까지도 유혹당할 만큼 어리석은 여성들이 있단 말인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다면, 그들은 ‘순진한 캔디’처럼 무슨 짓을 당하든 그래도 마땅하다… 열한 명 중 단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여성들의 돈벌이 능력과 교육 수준은 심리치료사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었다. 성적인 접촉을 할 무렵 두 명은 학생이었고, 두 명은 비서였으며, 다른 두 명은 가정주부, 한 명은 웨이트리스, 한 명은 레크레이션 강사, 한 명은 외판원, 한 명은 개인 비서, 한 명은 사회학자였다. 그렇다. 이들 여성들은 기막히게 ‘순진했다’. 그들의 순진함은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그런 무기력함 때문에 그들은 ‘은인’, ‘구세주’, ‘아버지’와 같은 인물의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 모른다. - P304

그들 모두 남자들에게 당한 부당한 대우를 자기 탓으로 돌렸다. 그들 모두 경제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요구들은 낭만적인 ‘사랑’과 혼동했다. 그리고 분노를 표현하는 데 느렸다(분노는 힘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 실제로 힘이 없는 사람들이 드러내기에는 고통스럽고 위험한 감정이다). - P305

이들은 여성 환자들을 비서, 타이피스트, 베이비시터, 성적 파트너, 심부름꾼, 정원사, 치료 ‘보조원’ 그리고 전천후 기쁨조로 이용했다. - P307

이 책을 처음 출간했을 때 일부 학자와 임상의들이 나를 공격했다. 그들은 이번 장에 소개된 내용의 정확성 혹은 중요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은 말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하지만 결코 빈번한 일은 아닙니다." 그들은 나의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몇몇 썩은 사과들로 대다수 훌륭한 의사들의 명성을 더럽히고 싶었나? 페미니스트들이 그 정도로 남자들을 싫어하나? 한 정신과의사는 소송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 하루 전날 1달러에 합의를 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72년 이후로 정신과 환자 또는 심리 치료를 받는 환자와 심리치료사 사이의 성관계를 밝힌 많은 책과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단지 숫자를 조금 조정했을 뿐, 내가 이번 장에서 말한 것의 많은 부분을 확인시켜줬다. - P320

이 여성들은 ‘병들었는가?’ 의학적으로 ‘병든 것’ 이상으로 ‘병들었는가?’ 그들의 병은 그들이 병들었다고(우리 문화에서 여성의 특권인 병든 역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이 여성들이 전형적인 성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은 것인가? 거꾸로 전형적인 성역할을 너무 지나치게 수용했기 때문인가? 그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은 우연인가? 어떤 경우든 그들은 결국 ‘치료받았어야’ 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대답은 과연 있는가? 모든 여성들에게 맞는 대답이 있는가? 많은 여성들은 입원 기간 동안 혹은 입원 이전에 그들의 성역할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다. - P340

우리 문화에서 여성이 정신적 심리적 성적으로 양성적이거나 ‘남자’같이 행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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