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 유형의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프로이트가 끼어든 덕택에 그의 이론 내부에는 몇 가지 모순이 일어난다. 남성의 욕망에 일치하기 위해 여성은 남성의 어머니와 동일시되어야만 한다. - P91

프로이트는 페니스가 번식 기관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도 확신한다. 그러나 여성의 생식 기관들이 동일한 자기 중심적 혜택을 끌어내지 못하지만 그만큼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번식에 있어서 훨씬 필수적이기도 하다. - P92

무의식의 체계와 두 성 차이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절은 그에 의해 실현되지 않았다. 더 이상 여성을 억압하지 않는 어떤 문화에서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에게 어떠한 일이 생기는가를 아는 것은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여성의 ‘특수한’ 성욕에 대한 인정은 남성에 의한 가치 독점을, 결국 아버지에 의한 이익 독점을 재검토한다. - P94

프로이트가 성욕을 자기 담화의 주제로,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담화가 담화 자체의 성적 변화에, 특히 자기 담화의 성적 변화에 속해 있다는 해석을 끌어내지 않았다. 이것은 여성의 성욕에 대한 전적으로 ‘남성적인‘ 그의 시각과 다른 곳에서 여성 분석자들의 이론 산물들을 향한 매우 부분적인 그의 관심이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담화 생산의 편견을 성적 차이와 연관지어 분석하지 않았다. 다른 식으로 말해서, 프로이트의 실천과 이론이 재현 무대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이 무대의 성 결정에 관한 문제까지 가지는 않는다. 이러한 연결의 결여로, 프로이트의 업적은 일면 선험적 형이상학에 머무르는 셈이 된다. - P95

오늘날 여성들에게 가장 금기시되는 것은 그들의 쾌락을 말하려는 시도이다. - P99

우리는 여성 착취에 대한 분석과 소유 방식에 대한 분석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사실 남자는 공식적인 교환에 실제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로부터 결코 단순한 번식 기능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여자는 사유 재산의 장소인 ‘집’ 안에 은거한다는 사실로부터 어머니 이외에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산 회로에 들어설 뿐 아니라 피임과 낙태의 보편화로 인해 여성에게 여성이라는 역할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피임이나 낙태를 사람들이 여전히 아주 자주 출생률을 조절하고 더 나아가 ‘억제’하는 수단이라고, ‘원하는 때에’ 어머니가 되는 수단이라고만 이야기한다면, 이러한 것들이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관계의 양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끌어낸다는 것은 회피할 수는 없다. - P106

‘여성’은 오로지 남성에 의해, 남성들을 위해 결정된다. 상호성은 ‘사실’이 아니다.소비와 교환의 대상으로 억지로 실어증 환자가 된 여자들이 ‘말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면, 이 사회와 그것을 조정하는 상징적 기능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 P108

분명 남성적인, 더 정확히 말해서 남근 중심적 ‘모델’에 따르지는 않는다. 이것은 다른 성, 다른 사람, 즉 여전히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이 존재한다는 견지에서 오늘날 법을 제정하고, 성의 차이를 포하한 모든 것에 대한 규칙을 제정하는 담화에 대해 틀림없이 의문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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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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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과 철학자와 친하지 않다.

몇몇 철학자들의 이름과 그가 어느 철학파 분류에 속하는지 정도만 겉핧기로 아는 정도이다.

우선 철학이 내 삶에 크게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고 철학과 철학자들을 매칭시키는게 마치 암기 공식처럼 느껴져서 싫었던 것 같다.


살아갈수록 좋은 일보다는 곤란을 겪는 경우가 늘어간다.

인생이 왜 이리 안 풀리지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시기와 상황이 조금씩 다를 뿐 저마다의 곤란을 겪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드니 현실감이 는 것일수도 있는데 좋은 말로 말하면 현실성이고 회의적 인간이 된 것일테다.

어렸을 적 있었던 긍정마인드가 이제는 내게서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철학이 왜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없을까.

왜 어렵게만 느껴질까 생각해봤는데 철학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도록 만들기 때문이었다.

철학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애시당초 방향이 틀린 것이었다.

철학은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만들어낼 뿐 결과를 만들어낼 순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부분은 상실, 늙어감,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내겐 사회에서 만난 스승님이 계신다.

20대까지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나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30대가 넘어서야 어느 정도의 안정이 찾아왔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솟아올랐다.

그 당시 만나게 된 분이다.

나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 생각을 오류라고 내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오만한 학습자였다.

그런 내게 스승님은 너는 다양한 생각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었다.

스승님은 내게 상실이란 단어를 가르쳐주신 분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까지 큰 상실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스승님은 여러 번 상실을 겪으셨다.

작게는 노트북 데이터를 몽땅 날려먹은 일부터 크게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런 일을 어떻게 견디고 넘기실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좀 흘러 만나뵙게 되었을 때 스승님은 시간이 가서 조금은 강도는 약해진다하더라도 상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문득 문득 배어나온다고. 

헤밍웨이도 단편소설 모음집 전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걸 보자마자 스승님의 노트북 사건이 생각났다.

글쟁이는 아닌데도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상상조차 하기가 싫다.


이 책의 한 챕터를 보부아르(그것도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반가웠다.

몇 년전만 해도 어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얼마전부터는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가는 주름이 원망스럽고 짙어진 다크서클과 마스크 밖으로도 선명히 보이는 깊어진 주름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이렇게 나도 나이가 드는구나. 

길거리에서 어떤 여자가 보부아르에게 던진 한 마디는 나도 좌절감이 들게 했다.

"저희 엄마 같으세요."

나이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는 말은 더 암울하게 만든다.

나의 고집과 아집이 갈수록 더해진다니...

그렇게 늙긴 싫은데. 난 정말 그러기 싫어.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건강함은 나와 주변 이들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는 추잡하게 늙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크다.

여러 가지 조언이 있지만 노년을 위해 습관을 들인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라 생각했다.

60대가 되어도 늘 하던 것들을 계속 했다는 보부아르.

글을 쓰고 읽고 음악을 듣는 습관. 거기에 걷기까지 더한다면 지금의 나와 정확히 들어 맞는다.

얀제까지나 그렇게 살고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상실과 이어지는 측면이 많다.

최악의 상실이 죽음이 아닐까?

어쨌든 인간이라면 어떤 나이가 되었든 죽음이란 것이 낯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막연해서 무섭고 두려운 것. 불안한 것.

죽음을 생각하거나 상상한다고 해서 선뜻 떠올려지지는 않는다.

죽음이 내게 어렴풋이 와 닿은 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할아버지는 나를 크게 아끼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할아버지를 내심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사업이 어려워지신 뒤로 할아버지께선 상실감이 크셨는지 고향에 가셔서 얼마 안되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곁에서 돌아가신 것도 아니었는데 충격이 컸다.

부모님은 더 상실감이 크셨겠지~ 

상실과 죽음은 이처럼 이어져 있다.

헌데 몽테규와 죽음이 무슨 관련이 있지 싶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중요시여겼다는 점이 저자를 이끈 것이 아닌가 싶다. 이건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놀라게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는 것.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에게서 피어나는 의심들을 거둘 수가 없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할테니까.

막연한 죽음을 상상하기 어렵다면 몽테뉴처럼 삶을 잘 살아내려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것 뿐이다.


이 책은 철학자가 관련지은 장소를 여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읽기 쉽고 철학이 일상까지 들어온 느낌이라 좋았다.

시몬 베유와 세이 쇼나곤이라는 이름 모를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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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16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스승님을 만나셨군요. 저도 예전보다 잦아진 부고소식에 나이듦과 죽음을 생각하곤 합니다. 노년을 위해 습관을 들인다가 와닿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거리의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1-11-16 18:17   좋아요 2 | URL
노년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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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가 횡행하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고 참견하는 일을 보는 것이 드물어졌다.

우리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만나면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여긴다.

30년 전만 해도 이웃이란 단어가 멀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이제는 낯설게 여겨지는 건 비단 나 뿐이 아니겠지.

그만큼 사회가 삭막해진것일지도 모르겠다.


편의점이란 공간은 수많은 개인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일하는 사람은 기계적으로 물건을 팔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담배를 사는 것처럼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는다면 말 꺼낼 일도 없다.

저자가 하필이면 편의점이란 공간을 선택한 것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보이고 느끼지 않는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곳엔 따뜻한 어묵 국물 같은 소시민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쓸쓸함을 느꼈을 때 읽으면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틀리다고 생각하고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경계를 긋는 세상에서

손을 내민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니 말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쉽게 넘기지 않고 달려든 누군가에 의해 상대는 따스함을 느끼고 그만큼 세상은 밝아질 기회가 생긴다.

삶을 포기해버렸던 사람이 상대에게 내민 손길이 자신을 구원하는 기회를 만들어준 주인공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엔 이런 사람들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이 희망적이라 생각한다.


편의점주.

노숙자.

사업에 목숨건 사람.

고시생.

대기업 신입사원에서 집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게 된 사람.

외로움을 술로 푸는 사람.

돈과 지위로 해결하려는 사람들.

작가.

저마다의 사연으로 모두 삶의 힘겨움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와 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 공감이 많이 갔는데 한편으론 씁쓸하고 한편으론 훈훈하기도 했다.


누구도 자신을 구원해주지는 못하지만(결국 자신이 자신을 일으켜야 한다.)

타인을 돕는 것이 자신을 구원할 기회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면서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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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성의 성욕 발달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썼던 간에, 그것이 그에게는 매우 난해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는 여성 성욕 발달에 관한 어떠한 질문도 다 파헤쳤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 사회적 규정들은 종종 여성의 공격적인 본능을 억압하고, 욕망의 대상들을 선택하는 일을 방해하는 등 여성을 수동적인 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실제로 리비도는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성의 경우 ‘수동적 목적들’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리비도가 전적으로 남성적이라는 믿음으로 돌아올 것이다. - P63

이것은 리비도가 틀림없이 여성의 성 체계에서 더 많이 억압받으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신중하라는 충고, 이전 발표들의 수정 작업이 프로이트가 여성의 성적 진화를 규정하기도 하는 사회-경제적 문화적 규졍의 분석을 간과하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또 ‘여성으로의 변화’에 관해 그의 학설과 그의 몇몇 제자들의 학설을 더욱더 요구하는 전적으로 남성적인 시각에 반기를 들면서 일어나는 분석자들의 연구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마지막 저작들에서 그는 여성의 성욕에 대해 남성적 변수를 덜 포함시키고 ‘페니스를 갖고 싶은 욕구’가 덜 지배적이라는 가설들을 완성시키려는 여러 시도에 대해 비호의적이었다. 아마도 그는 거기에서 자기 제자들에게 비난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쾌감과 더불어 자신이 규정했던 여성의 거세 콤플렉스가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을 보았을 것이다. - P65

어린 여자아이가 질을 ‘거부한다는 것’은 자기 성기에 관한 인식이 그 시기에 성립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것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로 입증될 것이다. (…) 카디너, 마가렛 미드, 루스 베니딕트와 같은 미국 사회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적 견해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그 대신 신경증의 병인에 대해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정상적’ 성욕의 완성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견해들을 비판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분석이 정신분석학적 견해들을 대치하거나 그것들과 결합한다. - P66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녀에게 성기가 나타나기 이전 충동의 체계에서, 특히 구강 충동 체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따뜻한 품’에서 떨어짐으로써 어머니에 대한 어린 소녀의 적개심이 생길 뿐 아니라 어머니와의 갈등 관계는 어머니가 오이디푸스적 욕망의 구강적 만족을 금지시킨다는 사실에 의해, 즉 아버지의 페니스를 흡수하는 것에 반대하는 어머니로 인해 더 악화된다. 여자아이의 오이디푸스적 성향은 자기에게 없는 성기를 아버지에게서 받기를 여자아이가 몹시 갈구하는 ‘거세 콤플렉스’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의 성적 욕망이 나타나는 초기 때부터 관계 있을 것이다. - P69

그에 따르면 몸 ‘안에’ 페니스를 간직하고, 그것을 아이로 변화시키기 위해 페니스를 흡수하고 삽입하고 싶은 여자아이의 욕망이 중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성교의 순간에 페니스를 즐기고 싶은 욕망이 중요해질 수 있다. 결국에는 남성의 성기를 음핵의 위치에, 음핵 대신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중요해질 수 있다.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전의 조직화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후의 단계에서 여자아이에게 나타나는 ‘페니스를 갖고 싶은 욕구’가 페니스를 누리려는 매우 특수한 여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부차적이고, 종종 방어적이라는 결론이 유도된다. - P73

끊임없이 발생하는 욕망의 요구와 만족 사이의 충돌은 남근의 작용을 마치 결핍의 기표인 양 유지한다. 이 결핍의 기표는 매우 성적인 애정과 만족을 추구하는 이중 층위에서 리비도의 교환 체계를 보장하고 규정한다. - P78

왜 여자는 남성이 지니는 혈통에 대한 욕망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야만-‘증오’ 해야만-하고, 집을 버리고, 가정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을 버려야만 하는가? 왜 여자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들이 꼭 ‘남성적’ 욕망이라는 용어로, 동성애라는 용어로 사유되는가? - P82

이는 유일한 리비도의 우월성을 확신시키기 위함으로, 여자아이 자신은 자기의 초기 충동과 초기 집착이 강제로 억압당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녀의 리비도인가? 출산에서 남성과 여성의 각각의 역할들을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리비도는 여전히 남성-여성의 차이—거기서 심리적 색채를 끌어내게 된다—를 표시한다. 어떠한 관계 때문에 계속 이 수동성이 가학적 항문의 충동들, 남자에게는 허용되고 여자에게는 금지된 이 충동들에게 유지되는가? 그때부터 남성은 아이와 여성, 그리고 성기에 대한 유일한 소유자로 확인된다. 수태가 일어나게 되는 강간, 게다가 몇몇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 여성적 쾌락의 충족으로 제시된 강간은 이러한 성관계의 유형이 된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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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성욕은 늘 남성적 기준들을 출발전으로 삼아 고려되어 왔다. 그리하여 ‘남성’ 음핵의 능동성/‘여성’ 질의 수동성의 대립, 프로이트-그리고 많은 이들-가 성적인 측면에서 ‘정상 여성으로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여러 단계들이나 대안들로 이야기하는 이 수동성의 대립은, 남성적 욕구의 실현에 의해 좀 지나치게 요구되는 것 같다. … 여성의 성감대는 중요한 남근과 비교될 수 없는 성기-음핵이거나 성교시 니스 주변을 감싸고 문지르는 구멍-덮개가 될 뿐이다. 즉 이것은 성기가 아니거나, 혹은 자기 성애를 위해 성기 자신의 주변을 감싸는 남자의 성기일 뿐이다. - P31

여자의 욕망은 남자와 동일한 언어로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 시대 이후 서구를 지배하는 논리에 의해서 다시 감춰졌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 속에서 시선의 우월성, 형태 구별과 형태 개별화의 우월성은 특히 여성적 에로티시즘에 생소하다. 여성은 시선보다는 접촉을 더 즐기고, 그녀를 매우 시각적인 체계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여전히 그녀를 수동성으로 지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그녀는 바라보기에 좋은 대상이 된다. 만일 그녀의 육체가 ‘주체’의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노출과 정숙한 위축이라는 이중의 움직임으로 인해 그토록 성적으로 자극적이고 유혹적이라면, 여성의 성기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는 두려움을 나타낸다. - P34

모성은 위축된 여성 성욕의 결핍을 메우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아이가 드러내는 그들 사이의 중재가 없다면 서로를 더 애무하지 않게 되는가? 특히 남자아이일 경우에 그렇다. 또 여자는 남성 신체의 한 부분, 즉 자기 아이-페니스-음핵에 장난치면서 자꾸 접촉한다. - P36

사실, 여성의 쾌락은 음핵의 능동성과 질의 수동성 같은 것 가운데 어느쪽도 선택할 수 없다. 질을 애무함으로써 생기는 쾌락은 음핵을 애무함으로써 생기는 쾌락으로 도치될 수 없다. 여러 가지들 가운데 가슴을 애무하는 것, 외음부를 만지는 것, 음순 사이를 벌리는 것, 질 뒤쪽의 막으로 압력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 자궁 경부를 스치는 것 등등이 있다. 이는 여성의 가장 특별한 몇 가 - P37

지 쾌락만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 여성에게는 도처에 조금씩 성감대가 있다. 그녀는 도처에서 약간의 쾌락을 누린다. 신체 전체가 히스테릭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더라도, 여성 쾌락의 분포는 매우 다양하고, 저마다의 차이 속에서 그 수도 많으며, 복잡하고 예민하여, 사람들이 동일한 것에 좀 지나치게 집중하는 상상계에서는 생각도 못할 정도이다.

그녀들을 여러분 자신들에 대해서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녀들에게는 당신들이 지니고 있는, 당신들이 그녀들에게도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내재성이 없다. 이것은 그녀들이 자기들끼리, 조용한, 다수의, 확산된 촉각인 친한 사람들 속에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녀들이 갈구하는 것은 정확하게 아무것도 아니고 동시에 전부이기도 하다. 이것은 종종 일종의 채울 수 없는 허기, 당신들을 완전히 녹초로 만들어 버릴 탐욕 같은 것으로 해석되고, 의심의 대상이 된다. - P39

여성은 항상 다수로 있게 될 것이지만 분산의 상태로 있다. 타자가 이미 그녀 안에 있고, 이 타자가 자기 색정이란 측면에서 그녀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이 타자를 가로챈다는, 그가 이 타자를 자기 수중에 넣는다는 뜻은 아니다.너무나 가까워서 동질성의 구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그것은 소유의 형태를 띤다. 여성은 너무나 가까워서 그것을 가질 수도, 자신이 소유될 수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쾌락을 누린다. 그녀는 끊임없이 타자와 자기 자신을 교환한다. 서로를 동일시하지 않은채로 말이다. 이것이 현재의 체계에 의문이 든다. 여성의 쾌락은 치유될 수 없이 이 체계의 계산 속에서 궁지에 몰린다. 즉 이 쾌락은 타자 안으로/타자를 통한 이동을 끊없이 확대하고 있었다. - P41

그녀들이 자기들을 경쟁 상품으로 여기는 남자들의 강압적인 선택을 피해 다른 여자들에 대한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 어쩔 수 없이 깨닫게 해주는 사회적 위상을 그녀들 스스로 형성한다는 것, 그녀들이 매춘부라는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생계를 꾸려 간다는 것 등은 분명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 노동자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단계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히 단순히 사물들의 질서를 전복하는 것을 겨냥한다면 역사는 결국 - P43

동일한 상태로 되돌아올 것이다. 남근 우월주의로 말이다. 그들의 성기도, 그들의 상상계도, 그들의 언어 활동도 여성들의 발생을 (재)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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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작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어려울 줄 알았지만 어렵네요 ㅜㅜ

거리의화가 2021-11-08 08:56   좋아요 0 | URL
하하 저도요ㅠㅠ 특히 거울 챕터는 정말 모르겠더라구요ㅜㅜ 다시 읽어봤는데도 똑같아요. 저자가 정신분석학 쪽 전공분야라 그런걸까요 철학적이고 난해하네요ㅜ 북플 회원님들께 도움 얻어서 겨우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들어요. 근데 아직 올리시는 분들이 안 보여서. 하나씩 올라오겠죠?

다락방 2021-11-08 10:03   좋아요 0 | URL
저도 거울 읽으면서 물음표 천개 되어서.. 이게 뭐여 강간당했다는 건가 싶고요 ㅠㅠ 네 아마도 천천히 올라올 듯 합니다. 제2의 성보다 분량 적어 다들 좀 늦게 시작하시나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