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왜 욕망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남의 이야기나 감정 토로는 하나의 전범으로 그에게 작용하여, 그는 거기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게 된다. 저항할 때 전범은 희화되어 패러디의 대상이 되며, 순응할 때 전범은 우상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된다. 나는 누구처럼 되겠다가 아니면, 내가 왜 그렇게 돼가 된다. 그 마음가짐은 그의 이름붙이기 힘든 욕망을 달래고, 거기에 일시적인 이름을 붙이게 한다. 왜 일시적인가 하면, 전범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 <행복한 책읽기> 중에서


#4. 

책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작금의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논란에서 소홀한 것, 아니 어쩌면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불편함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질문이 빠져있기 때문은 아닐까? 


책은 기획되고 유통되고 판매되는 소비상품이란 전제가 불편하다. 이 전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 불편하다. 책이란 지식이고 앎이며 권력이다라는 말로 책을 과대포장할 생각도 없지만 책은 그저 욕망의 대상, 소비되는 상품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에도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끝장토론도 좋고(토론을 끝장을 볼 때까지 하는 것은 어디나 무엇에서나 필요한 일이다), 찬반 서명운동도 좋고 하지만 무엇보다 도서정가제가 옳냐, 그르냐를 넘어 출판생태계에 대한 논의,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교육적 성찰, 더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 책이란 무엇이었으며 이 시대에 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3. 

중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책이란 곧 문학을 뜻했다. 만화는 불량서적이니 책에 낄 수가 없다. 교과서는 더 쓰레기 같았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 황순원의 <일월>, 카뮈의 <이방인>, 항동규와 황지우, 김지하와 김남주, 박노해, 이성복, 최승호, 최승자 같은 시인들... 20대가 가까워지면서 책들은 <전태일 평전>이나 <아리랑>과 같은 것으로 확장되었다. 요즘은 아무래도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문학작품보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게 된다. 


10대 후반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되면서,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이가 바로 김현이었다. 어쩌면 기형도의 시보다 <입속의 검은 잎> 뒤 편에 실린 김현의 글을 더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김현은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기 위해, 그 앎에 대한 욕망이 글(책)을 읽게 한다고 말했다. 책은 욕망의 결과물이거나 대상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앎을 위한 것이란 말이다. 




#2. 

어제 알라딘에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찬반을 묻는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나는 바로 밑의 페이퍼에서 썼듯 조금 아리송한 입장이다. 입장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이 맞겠다. 


실제로 좋은 책이지만 책값이 비쌀 때 주저하게 되고(또는 여기 알라딘을 이용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치맥 한 잔을 마시며 책값이 너무 싸다고, 번역비나 저자 인세를 봤을 때나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돌아가는  금액을 봤을 때나 이른바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하여튼 알라딘의 메일을 받고 몹시 불편했다. 왜 찬반인가? 찬성과 반대 말고 어정쩡한 이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이 문제가 꼭 찬반으로만 물어야 할 일인가? 꼭 알라딘만은 아니지만, 알라딘의 (도서정가제 반대 운동만이 아닌) 그간의 행태가 괴씸하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급할 때는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고 비쌀 때도 알라딘에서 책을 찾게 되는 알라디너의 1인으로서 알라딘의 입장이 참으로 불쾌하다. 


물론 창비를 비롯한 몇 몇 출판사가 알라딘과의 거래를 중단한다는 기사도 개운치 않았다. 당장 인터넷 서점과의 거래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수많은 출판사들이 한둘이겠는가. 그렇지만 창비나 김영사 쯤이나 되는 출판사들이니 알라딘과 거래를 중단할 용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런 대형 출판사 또한 그간 출판생태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출판생태계를 파괴하거나 교란하는데 앞장섰다는 지적을 들어왔다. 




#1.

며칠 전에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라는 강좌를 들었다. 나의 조악한 수준으로 이해한 바를 정리하자면 데리다는 모더니즘(근대) 철학의 한계를 선과 악, 주체와 타자, 올바름과 그릇됨이라는 이분법에 있다고 보며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둘을 나누는 차이, 경계를 해체시키는 작업을 자신의 작업, 철학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차이, 데리다의 말에 따르면 '차연', 지연되는 차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글쓰기를 제안했다. 음성 중심주의, 로고스(이성) 중심주의가 생산한 문자 텍스트가 아닌 침묵의 말을 드러내는 글쓰기.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예수 등 많은 선인들인 책을 쓰지 않았고 그들이 남긴 말(음성)을 받아 적은 것이 경전이 되었다는 것, 또한 그것으로 인해 성현의 말씀이 단 하나의 진리로 해석되는 가운데 주류와 비주류, 정통과 이단이 생겨났으며 필연적으로 음성을 문자로 바꾸는 작업에서 권력이 생겨나고 개입된다는 생각-곧 글, 문자, 책은 권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과 데리다의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또 한 편으로는 데리다의 해체, 그의 철학적 작업이 가지는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것, 이분법의 전제가 되는 차이를 고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전복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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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1-24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는
큰 사람들은 서로서로 싸우다가
고래등이 터지겠구나 싶어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했지만,
고래 싸움에는 고래등이 터지고
새우는 가만히 구경만 하겠지요...

니무처럼 님 말씀처럼
알라딘서재 지키는 분들도
'찬반'이라는 재미없는 이야기 말고,
'책이란 무엇일까' 하는 이야기를
깊고 아름답게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나무처럼 2013-01-24 15:11   좋아요 0 | URL
감사^^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에 다툼은 불가피한 것이고 일개 새우로서야 그 다툼이(타자를 배척하거나 적을 제거하는 싸움이 아니라면)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생산적으로, 서로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뭐 그래봐야 새우가 만들어내는 파장 정도겠지만^^

비로그인 2013-01-2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외주편집자로서 지금의 사태가 참 답답하고 서글픕니다ㅠㅠ
알라딘에 책 공급을 중단한다는 기사에도 대형 출판사들 이름 위주로 실리는 게 웃겨요. 블로그나 트위터에 절절한 이유를 올린 중소 출판사들도 많은데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비론이나 밥그릇 싸움으로 보겠지요.
서글프게도 이 문제에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 중엔 출판노동자들도 많아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힘들고, 이 문제는 피부에 딱 와닿지가 않으니까요. 전 도서정가제에 찬성이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이득은 출판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외주출판인들은 10년째 그대로인 단가에 지쳐 있는데, 요새는 아예 일 자체가 별로 없어요. 독서지도사나 방과후교사에 대해 문의들 하고 있는 게 현실이죠ㅠㅠ

나무처럼 2013-01-24 16:5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힌편 출판노동자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사서나 방과후 교사를 비롯한 교사들, 독서지도사 등등 여려 층위의 독자들의 의견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출판생태계를 잘 만들어갈 것인가와 관련해서 도서정가제는 그야말로 한 부분일 수밖에 없고 출판노조가 커 가는 것, 공공 도서관 정책, 마을 도서관 운동 등등 여러 분야의 활동이 맞물여야 할테니까요.

oren 2013-01-24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 일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좌담을 나눈 글이 혹시 나무처럼님께 얼마간 참고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싶어 덧붙여 봅니다. http://blog.naver.com/khhan21/110157593471

나무처럼 2013-01-24 15: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책 만들 시간에 자꾸 이 쪽으로 신경이 가면 안 되는데....

비로그인 2013-01-2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제가 단 댓글이 비밀 댓글로 돼 있었나봐요. 그 밑에 달아주신 댓글이 비밀 댓글이라 내용을 볼 수가 없네요^^;;;
요새 생각해본 것인데, 영세 소형 출판사들을 위한 대안유통이 생긴다면 어떨까? 과연 실현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일종의 공정무역처럼요. 양질의 책을 내는 소형 출판사에서 적정가에 납품받아 10퍼센트 정도의 할인가로 판매한다면, 그 취지에 동감해 좀 비싸더라도 그 유통업체에서 책을 사는 독자들이 있을까요? 물론 엄선해 책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과 대형 출판사 책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요.

나무처럼 2013-01-24 16:58   좋아요 0 | URL
최근 논의에 불이 붙은(^^) 협동조합 형태로 출판과 유통, 소비가 조합의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캐나다인가... 한국도 '교육공동체 벗'의 경우 격월간지와 단행본을 그와 비슷하게 만들어나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게 출판 시장 전체의 성격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는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실험이고 주목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독자, 소비자이기만 했을 때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싸게 살 수 있으니 좋지만 그래도 좋은 사회과학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할 때 마음이 아팠고 점점 동네 작은 서점이 사라져 가는 것을 봤을 때 안타까움을 느끼는 정도...


한동안은 풀무질, 레드북스 등을 애용하자고 마음 굳게 먹은 적도 있었으나 생활공간이 바뀌고 하면서 그 또한도 흐지부지....


이제 책을 읽는 독자일 뿐 아니라 책을 만드는 생산자의 입장도 겸하게 되니 생각이 달라진다. 


내 생각은 좀 미뤄두고 여러분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타.



온라인 서점 추가 할인 폐지

2013-01-15 11:13 | 데일리노컷뉴스 이진욱 기자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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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의 '10% 추가 할인'을 폐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1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은 도서정가제 강화 차원에서 마일리지와 쿠폰 등을 이용한 추가 할인을 제한하도록 했다.

현행 정가제는 출간 18개월 미만인 신간에만 할인율을 10%까지 제한하고, 18개월이 지나면 할인율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개정안은 기간에 상관 없이 할인율을 10%로 제한하도록 했으며 도서관에 판매하는 책도 정가제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

'10+10' 할인도 없애도록 하면서 온라인 서점이 반발하고 나섰다.

온라인 서점은 신간 10% 할인에 추가로 마일리지와 쿠폰 등으로 10% 적립 혜택을 주면서 구매 회원에게 사실상 19%의 할인 혜택을 제공해왔기 때문. 개정안은 직접적인 가격 할인 이외에 마일리지, 할인쿠폰 제공 등 모든 경제상의 이익을 포함해 총할인율이 10% 이내가 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한 온라인 서점 관계자는 "개정안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마일리지까지 제한하는 것은 소비자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처사"라며 "마일리지 10% 할인은 독자를 위한 서비스인 만큼 현행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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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3-01-1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값이 싸면 좋지만 애초에 책 정가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도 들어요.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을 많이 해주니 책 정가 자체가 거품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거고 그게 아닌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정가대로 사면 비싸게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책 정가가 적정하게 정해진게 아니라 할인율을 염두해두고 책정한다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어요. 저는 책을 한 두권 살 때는 서점을 이용해요. 신간이면 무료배송이 되겠지만 그 비용 역시 제가 지불하지 않지만 비용으로 잡힐테고 누군가는 그 비용만큼 손해를 보거나 시장이 왜곡될.. 아,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않는구나 ^^ 좀 오바했어요.

나무처럼 2013-01-16 10:49   좋아요 0 | URL
책의 정가가 너무 높게 책정되고 있다, 할인을 염두에 두고 정가를 정하는 것 같다는 부분에 동의해요.

그런데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디자이너에게 가는 비용, 외서의 경우 번역료, 르포와 같은 취재가 필요한 경우 그에 대한 선인세 등을 보면 사실 너무 적고, 10년 전에 비해 거의 인상되지 않는 측면도 있어서... 도대체 책이란 것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가 얼마인지 가늠이 안 되기도 합니다.

배송 부분에 있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부분도 고민해봐야겠어요.

라주미힌 2013-01-1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출판사나 소형 서점을 위해서 저런 법을 만들었을까요?
재밌네요... 대형 유통업체나 제약 같은 분야의 미미한 '조치'에 비하면
출판 쪽에는 강공 드라이브를 거는거 같은데요.
(신자유주의자들이 넘처는 이 나라의 자유시장에 제재가 웬말 ㅎㅎㅎ)
어떤 놈들이 입김 좀 불었나 보다 그런 정도...

정가가 오르던 내리던 사서 읽는 사람의 변동은 미미할테고 (출판시장이 애초에 크지는 않으니)
할인율을 고정시킨다해도 온라인의 장단점, 오프라인의 장단점도 크게 바뀔 정도로 할인이나 마일리의 위력이 쎌까 싶네요. (반값이 대세인 요즘에... )
그렇다고 올라갔던 책 값이 내려갈거 같지는 않고...
소비자의 입장만 놓고 보면 별로 좋은 법은 아니겠죠.
오히려 출판계의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온라인 서점의 반발에는 관심없구요.

어차피 반값으로 쏟아져나오는 책이 넘치는데, 정가가 무슨 소용..
중고시장으로 흘러나올 떄까지 책 사는 것을 미루는 사람이 늘지 않을까요.
요즘 시장을 흐리는건 중고시장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가격경쟁과 경제논리에 내몰리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
저런 법을 만들었다는데
그건 '권장소비자가격'이 결정하는게 아니라,
생산, 유통, 소비 전분야에 있어서 공정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택배비부터 인상하라.. 알라딘은 조금만 먹고. (이게 과연 할인율때매 오르지 않은 걸까요... 가격경쟁때문에? )

누가 싸다고 싼 책을 골라 읽나.. -_-;;;
출판계가 어려운걸 엄한 것을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처럼 2013-01-16 10:52   좋아요 0 | URL
반값 할인은 정말 작은 출판사로서는 떨치기 힘든 유혹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출판일을 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창고에 쌓여 있는 책을 보면... 그래도 제가 있는 곳은 어렵게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지요.

배송, 택배에 중고시장 문제까지... 복잡하고 여러가지 고민할 게 참 많군요.

이진 2013-01-17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치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불현듯 생각나서 말 남겨요. 저는 시골 사는데요, 서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의 세상 살아가는 유일한 낙은 책 고르고 책 사는 것입니다. 10%추가 할인이 없어진다면 그 비싼 책을 거의 정가 그대로 주고 사야합니다. 학생에게 그건 정말 가혹해요. 요즘 책값이 만원 이하면 모를까 전부 만 오천원 남짓 되는데 어디서 그런 돈을 구한단 말입니까.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분명 저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도 꽤 있을 겁니다. 애초에 이런 정책을 펼치려는 것이 동네 서점 살리고 출판사 살리려는 의도 아닙니까? 다른 방법도 충분히 많을텐데 무슨 이런 ... 이 세상 살아가는 유일한 낙까지 뺏어가려고 하는군요 ㅠㅠ

나무처럼 2013-01-17 16:06   좋아요 0 | URL
고민스럽네요. 예전에 집앞 작은 서점에서 책을 들춰보던 게 유일한 낙이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그 유일한 낙을 빼앗은 건 또 누구인가 하는 생각도...

나무처럼 2013-01-1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조지오웰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과연 한국의 책값은 비싼가? 테이크 아웃 커피 두세 잔 값, 영화 두편 값, 둘이 밥 먹어도 책 한 권 값이고 간단히 치맥 한 잔 해도 책 한권 값인데.... 과연 너무 비싼가요?
 

나는 찍고 또 노래하리

MB 5년을 카메라에 담은 칼라TV 프로듀서 처절한 기타맨



춥다. 겨울 아침 문을 나서면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말인데 요즘 이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혹한의 날씨에 어쩌자고 철탑 위로 올라간 노동자들 때문이다. 아니다.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두 사람, 김주익과 정은임 때문이다.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고.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 2003년 10월 17일 방송에서



인터넷 방송 PD, 다큐멘터리 감독, 그리고 뮤지션


2012년 12월 9일 오후 2시, 영하 8도까지 내려간 강추위 속에서 서울 시청광장으로 독립뮤지션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철탑에 방한용품 보내기 노란봉투 공연’이란 제목의 6시간짜리 거리 공연을 위해서다. 경기도 동두천과 평택에서, 충남 아산에서, 울산에서 철탑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자며 만들어진 자리다.


먼저 도착한 이들은 처음 공연을 제안했던 가수 백자와 그의 펜클럽, 그리고 발전기를 돌리고 음향을 손보느라 여념이 없는 ‘처절한 기타맨’(김일안, 44세)이다. 인터넷 방송 칼라TV 프로듀서,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명동성당과 청계천 전태일 다리 그리고 각종 투쟁현장에서 노래하는 뮤지션, 처절한 기타맨과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삶이보이는창 르포문학교실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깡마른 체격에 꽁지머리를 한 그는 글쟁이보다는 전위예술가가 더 어울려보였다. 술자리에서 “소싯적에 일본에 밀항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던 것 같다. 알고 지낸지 6년이 넘어가는데 그에 대해 별로 알고 있는 게 없다. 그를 만난 첫 번째 이유다.


인터뷰를 위해 장장 여섯 시간을 추위에 떨다가 공연을 마치고 칼라TV 사무실이 있는 합정동 한 막걸리 집에 마주 앉았다. 그런데 웬걸? 지극히 평범한 ‘학출’이란다.


“학번 물어보는 거, 대학 때 화염병 운운하며 무용담하는 거 정말 싫어한다고 꼭 써줘요. 얼마 전에도 무슨 술자리에서 어느 대학 CA출신 모임이 있다며 무용담을 하는데 옆에 사노맹 출신 한 명이 그러더라고. 난 초등학교밖에 안 나왔는데 쓰발~. 일본 밀항은 누가 그래요? 내 입으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이래서 문제야. 돈 벌러 브로커 통해서 갔죠. 불법체류. 1년도 못 채우고 누가 찔러서 추방됐고.”


집이 좀 살았던 덕택에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고 그래서 클래식을 즐겨 들었던 사춘기 소년. 파스퇴르와 파브르를 좋아해 생물학자를 꿈꿨고 고3 때 ‘들국화’의 <행진>을 듣고 밴드를 하고 싶었던 청년. 1987년 항쟁의 해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사회과학 서적보다는 이외수의 소설에 탐닉했던 그는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고 제대를 하고 친구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 가면 빠징코장에 취직을 시켜준다고 해서 보름짜리 비자로 갔는데 가보니 자리가 없다고 그래요. 사기당한 거지. 운이 좋아서 친구 아버지가 있던 공장에 취직을 할 수 있었죠. 아마 그 시절에 자본주의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학습을 하게 된 것 같아. 돌아올 때 한 100만 엔 정도 모았나. 엄마한테 줄 전기밥통하고 전자기타 하나 사가지고 왔죠.


복학하고 야학도 하고 알바로 노가다도 하고 그러다 졸업할 때가 됐는데 머리 깎는 것도 싫고 양복도 입기도 싫어서 이벤트 업체에 들어갔어요. 군대에 있는 드럼 치는 친구가 제대하면 밴드를 하기로 해서, 기다리면서 틈틈이 다큐멘터리 음악작업에 참여하다가 ‘지하창작단 파적’이라는 다큐멘터리 팀 활동도 했고.”


친구가 제대하자마자 다니던 이벤트 회사도 그만두고 결성한 밴드는 여러 이유로 “망했다.” 때마침 IMF가 한국 경제도 거덜이 났으니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


“그래도 알바하며 근근이 버텼죠. 달리 알바라고 드라마 촬영 현장에 깔려 있는 레일 위로 크레인 밀고 달리는 일. 일당 5만 원 정도였는데 한 달에 네다섯 번 나가서 그걸로 먹고 살고. 그 무렵 게임에 빠졌어요. 아는 선배가 피시방을 차려서 놀러갔다가 리니지란 게임을 하게 됐는데 딱 30분 만에 충격을 받아서, 앞으로는 영화가 아니라 게임의 시대다. 그때 나온 아이디가 ‘처절한 기타맨’이에요. 허영만 만화 『고독한 기타맨』있잖아. 근데 그건 누가 벌써 했더라고요. 그래서 뭐로 할까 하다가 처절한 기타맨. 그때 머리가 좀 돌아갔더라면 선배한테 피시방 팔아서 NC소프트 주식을 사라고 했을 텐데.(웃음) 피시방 알바 하면서 음악작업도 하고. 그러다가 막내 동생이 게임에 미쳐서 그것으로 게임 중독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하나 만들었죠.”


자, 여기까지가 기타맨의 탄생, 혹은 칼라TV의 전사(前史)쯤 되시겠다. 자리를 옮겨 이번에는 동태찌개에 소주다. 텔레비전에서는 대선 보도가 한창이다.



칼라TV가 기록한 MB 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과 <백년전쟁 번외편-프레이저 보고서, 누가 한국경제를 성장시켰는가>란 영상물이 화제다. 유튜브 조회 수가 100만 건에 육박한다고 한다. 고 김근태 씨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남영동 1985>와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5.18 학살자 처벌을 다룬 영화 <26년>도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과거를 ‘성공’적으로 청산한 나라로 꼽힌다. 학살자였던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사형을 구형했던 나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라는 국가기구를 만들었던 나라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난 5년간 우리의 과거청산이 얼마나 허술했으며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했는지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기록노동자들의 노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트위터에 릴레이 성명을 한다고 하기에 멋진 문구를 찾다가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에 나온 “인간의 권력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란 구절을 발견하고 용산참사를 다룬 연분홍치마의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이 떠올랐다. 지랄 맞았던 MB정부 5년을 카메라에 담았던 칼라TV의 ‘처절한 기타맨’에게 전화를 걸었던 두 번째 이유다.


“삶이보이는 창 르포문학교실에서 지금은 칼라TV를 그만둔 조피디(조대희)를 만나 민주노동당 영상팀을 도와주게 됐죠. 그때가 민주노동당이 분당될 때였으니까 진보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 찍게 된 거죠. 당이 만들어지고 총선에 돌입하면서 칼라TV에 본격적으로 결합을 하게 됐고, 총선 직후 2008년 촛불이 터졌고. 촛불 때는 서울 시청 광장에 텐트를 치고 한 달 반을 거기서 먹고 자고 했지. 촛불이 기본적으로 한미FTA 문제였으니까 진보신당 게시판에 정태인 선생이 와주면 좋겠다고 글을 올렸어요. 그랬는데 다음날 바로 오더라고.”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100일간의 시위, 명박산성과 국민토성, 물대포와 ‘온수! 온수!’라는 구호, 폭력·비폭력 논쟁과 깃발논쟁, 다음 아고라와 유모차부대, 광화문에서의 72시간 연속 집회……. 한국 사회운동과 민주주의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될 현장을 인터넷 생중계라는 첨단의 방식으로 전했던 칼라TV는 언론을 넘어 촛불시위의 일부분이었다.


“그때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칼라TV 후원 배너를 달아달라고 그랬는데 당에서 일주일 넘게 안 달아주더라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일주일 사이에만 진보신당으로 후원금이 1억 원 정도 들어왔대요.

6월 6일 72시간 생중계를 하면서 막연히 촛불이 이대로 가다 꺼지겠구나 싶기는 했지. 막막해보였으니까. 마지막 날 장면이 인상적이야. 무대에서는 사회자가 ‘촛불이 승리했다’고 외치고, 뒤편에서는 술판이 벌어지고, 한쪽은 시민들이 전경버스 밀고 있고, 한쪽에서는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고. 그래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그것마저 없었으며 MB정부의 남은 5년 동안 더 후퇴했겠지. 나는 촛불이 구운동권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지금 좌파의 상황이 그때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하고.

촛불이 한창일 때 촛불 말고 다른 데를 찍어보자고 해서 작전을 짰어요. 칼라TV를 보는 사람들이 운동권, 노동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많아서 매우 조심스러웠거든. 처음에 인천에 화물연대 파업하는 데 갔고 그 다음에 기륭을 갔지. 당연히 말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 데를 왜 가냐? 그래도 나중에는 촛불과 비정규직, 노동운동이 함께 이야기가 되기도 했지.”


촛불시위가 끝나고 칼라TV는 진보신당과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당에서 독립해 좌파 언론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지엠대우 비정규직지회 천막농성, 강남성모병원 촛불시위, 기륭전자 농성장의 용역 침탈 현장 등을 누비던 칼라TV는 2009년 1월 19일 용산으로 간다.


“월요일이었는데 월요일 저녁마다 나는 명동성당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그날 공연을 마쳤는데 용산 철거투쟁 현장에서 화염병이 나왔다고 하더라고. 나는 몸이 안 좋아서 집으로 갈까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교대해줘야 하니까 사무실에서 잠을 잤죠.

내가 예지몽을 좀 꾸는데 그날도 꿨어요. 바닷가인데 유원지에 천막을 치고 서커스를 하는 거야. 들어갔더니 너무 시끄러워서 못 있겠더라고. 그래서 바닷가를 걷고 있는데 하체는 거미, 상체는 사람인 예닐곱 되는 생명체들이 나한테 오더니 같이 가자고 하는 거야. 그런데 얼굴이 숯검댕이같이 까만 거야. 난 가기 싫다고 실랑이를 하다 눈을 뜨는 순간 애들이 사람이 죽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새벽에 교대하러 가서 시신들 나가는 걸 찍었죠. 연행당하는 사람들 찍고.

남일당 망루에서 불이 나던 순간을 찍었던 박성훈은 아직도 망루에 불길이 확 올라와서 그 열기에 카메라를 들고 물러섰던 그때를 꿈에서 꾼다고 하더라고. 나도 그날 시신이 나가던 모습, 그날 꿈은 평생 못 잊을 거 같아요.

희망버스 촬영하러 내려갔다가 연행된 적이 있는데 그날 아침에도 사나운 꿈을 꿨어요. 쌍용자동차에서는 구사대에 맞은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도 오래 남지. 두들겨 맞은 것 말고 쌍차 마지막 진압 때였는데 정말 이상한 공간이었어요. 헬기가 뜨고 아수라장인데 이상하게 고요하고 적막이 흐르는 것 같은.”


어쩌면 칼라TV는 카메라 너머 23명의 죽음이 어렴풋이 보였던 것은 아닐까. 현장을 기록하는 일은 목격을 하고 증언을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건을 재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상처자국을, 사건의 이면을 끊임없이 들춰봐야 하는 일.


“많은 사람들이 칼라TV의 역할이 중요하고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현장에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죠. 현장에서는 프레임으로 보게 되잖아요. 전국의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을 쭉 돌아다니며 찍는데 그것을 찍어놓은 영상이, 현장이 다 똑같은 거야. 시작할 때 묵념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고, 투쟁사 하고, 민중가수 나와 노래하고, 연대사, 몸짓패 공연……. 카메라가 아니라 프레임 밖에서 보면 분명히 차이, 다름이 존재하는데 그건 적어도 한두 달 현장에서 눌러 앉아서 기록해야 영상에 담을 수 있는데 칼라TV는 스쳐가면서 찍을 수밖에 없거든요. 현장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더 깊이 들어가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재정이나 여러 조건이 쉽지 않죠.”


2009년 3년 넘게 기륭전자 투쟁을 영상으로 기록해오던 김천석 씨가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는 ‘숲속홍길동’이라는 예명으로 유명했던 영상 활동가 이상현 씨도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이 두 죽음을 계기로 2012년 3월 ‘현장을 지키는 힘을’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천석이 죽었을 때 정말 힘들었죠. 정말 똘똘한 친구였는데……. 죽기 얼마 전에 자기가 찍은 영상을 피디수첩에 제공해서 그 돈으로 노트북을 샀어요. 나한테 자기도 이제 칼라TV처럼 인터넷 생방송을 할 거라면서, 칼라TV는 너무 편파적이라고 농담하고 그랬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2012년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자리를 잡고 칼라TV도 안정되면 개인적인 다큐멘터리 작업과 음반 작업을 하려 했다고 한다. 물론 오늘도 그는 공중파 TV에서는 볼 수 없는 대통령 후보 김소연, 김순자의 일정을 좇으며 틈틈이 거리 공연을 하고 있다.


“나이 60을 먹고 머리가 하얗게 됐을 때도 한 달에 한 번 전태일 다리에서 노래해야죠. 최근에 토지, 임꺽정을 읽었는데 결국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피 값으로 이만큼 나아진 거잖아요. ‘괜찮아, 어차피 잘 안 될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로 노래하기도 하지만 결국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 사람들의 힘으로 세상은 나아지고 있고 칼라TV도 나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술집을 나오니 역시 날은 찼고 술 마시는 내내 그는 외로워보였다. 그래. 추우면 춥다, 외로우면 외롭다 말하자. 그래야 추운 사람끼리 외로운 사람끼리 손도 잡고 어깨도 걸 것 아닌가.  






- 삶의보이는창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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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맨 2013-01-24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약간 틀린 부분 올려봅니다. 지하창작집단 '파적'은 극영화 만드는 집단이였구요.
칼라TV 시작전에 민주 노동당 소속의 영상팀이 아니고
조피디랑 자발적으로 분당때 마지막 당대회등을 찍었고,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 힘을 이고요. 명동성당 앞 '들머리'에서 거리공연(월)
전태일 거리는 한달에 한번이라(도)...걱정하지마! 어차피 잘안될거야,고...
김순자 선본은 결국 못찍었고 김소연 선본만 주로 찍음
요샌 외로움 < 괴로움 이 더 큰 듯

나무처럼 2013-01-1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S까지 해주시는 친절한 기타맨, 감솨^^

kmk 2013-02-06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기조직동두천경찰 폭파 daum qkmk
 

일천구백팔십팔년, 그야말로 쌍팔년도 이야기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반실에서 담배 피우는 선배들을 동경한 탓에 덜컥 들어갔던 문예반. 책꽂이에 꽂혀있는 교지를 빼들었는데 맨 뒤에 실린 편집후기 중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


다음 해 내가 교지를 만들고 보니 그 심정이 이해되었다. 


그때만 해도 충무로 골목 여관방을 잡고 교정을 봤다. 두꺼운 종이에 기름 종이 같은 게 덧씌워져 있어 거기에 교정 부호를 그려넣는 작업. 갱지를 반으로 접어 손수 가제본을 하고. 


처음부터 끝가지 수작업이 병행된 교지는 그야말로 자식 같은 느낌인데 어느 누구도 그렇게 소중히 다룰 것 같지 않은 느낌... 


그 뒤로 15년 쯤 뒤에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잡지가 나오면 불쑥 보이지 않던 오탈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가시처럼 박힌다. 


잡지를 만들며 표지갈이를 한 번, 낱장 갈이를 한 번... 그 뒤로 나는 나를, 내 눈을, 내 두뇌를 믿지 못한다. 교정교열 실력이 하도 형편이 없어 심각하게 나란 인간에 대해 고민한다. 


왜 순간에 충실하지 못한가? 왜 이리 대충대충인가? 


출판사로 직장을 옮긴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정말 공들인 책을 얼마 전에 출간했는데 오늘 버스에서 문득 심각한 오자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독자에게, 저자에게, 책에게, 인쇄 노동자에게, 심지어 이 책을 찍어내느라 굉음을 질렀을 인쇄기에게도 미안하다. 


내가 쓰는 글이 그렇듯 내 삶이란 결국 오류를 범하는 것, 오점을 생산해내는 것인가... 누구는 엄살이라고 오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되풀이된다는 것... 삶이란 한없이 가볍기도 하지만 때론 한없이 무겁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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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는 손들의 마지막 신호.


연기처럼 사라지는 약속.


킹사이즈의 혼란.


구호에 대한 암호.


등화관제 아래 지각없는 불빛.


습관적인 무적(霧笛).


아마 우리 숨결의 외출.


- 정현종 시 <담배를 보는 일곱 가지 눈>

 

 

 

#1.

일단 담배는 안 좋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니트로사민, 질소화합물, 시안화수소, 암모니아, 니코틴, 타르, 석탄산, 포로늄 크레졸, 싸이나, 벤조피렌, 아크롤레인……. 보통 담배 한 갑에 2천5백 원, 세금을 빼면 천 원이나 될까 싶은데 (그것도 한 갑이 아니라 한 개피에) 무려 4천여 가지 화학물질이 들어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중 나프탈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늄 등은 대표적인 발암 물질로 폐암, 구강암, 후두암, 식도암, 신장암, 방광암, 췌장암, 자궁경부암을 유발하고 뇌세포 파괴나 정신질환 유발, 성기능장애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일반상식에 속한다.

 

게다가 “내 가족, 이웃까지도 병들게” 한다. 이른바 간접흡연.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간접흡연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코티닌이라고 하는 환경독성물질의 농도가 높을수록 어린아이들에게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충동성 등 ADHD증후군(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증상들이 심해지고 철자법과 수학계산 등 학습능력이 저하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우울감, 집중력 저하, 무기력증 등 다양한 심리적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며 ADHD증후군 발병률이 1.5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니 끽연자야말로 걸어 다니는 흉기라 아니할 수 없고 자녀가 있음에도 담배를 피우는 필자 같은 경우는 가히 제정신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산불을 비롯한 각종 화재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하고 교통사고의 원인으로 들먹여지기도 하니 어찌하여, 여태껏 흡연이 범죄의 목록에 오르지 않았는지 되려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의학적 연구(로 포장된 공공연한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흡연이 안 좋다는 것은 끽연자라면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온몸으로 느낀다. 전날 술자리에서 좀 많이 피웠다 싶으면 오전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골이 띵하고 숙취가 오래 간다. 주로 담배를 짚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만이 아니라 머리에서 발끝가지 담배냄새에 찌들어 애들이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옆에 오기 꺼린다. 호주머니를 털면 담배가루가 날리고 담뱃재는 끽연자의 주변을 맴도니 늘 지저분하다. 담배는 있는데 라이터가 없는 참으로 불미스러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담배 빵’을 당해 구멍 난 옷 한두 벌쯤은 차라리 애교라 할 수 있다. 지인의 아끼는 옷에 구멍을 냈을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자신이 피운 담배연기가 어쩌다 눈에 들어갔을 때는 그렇게 슬플 수가 없고 내가 떨어낸 불똥에 데었을 떼는 어디다 하소연 할 곳조차 없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마땅히 피울 데가 없어 우산을 받쳐 들고 한 모금을 빨면 좋다가도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끽연자로 살아간다는 건 구질구질하게 너저분한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2.

30년 전만 해도 담배는 우리 삶 도처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아버지는 안방에서, 할머니는 장독대 근처에서 무시로 담배를 태우셨다. 아버지가 피우던 450원짜리 거북선 담배 심부름은 곧 용돈 50원이 생기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도 남아있는 무궁화호 열차와 낡은 시외버스 등받이에 (심지어 저가항공 비행기 좌석에도!) 달린 재떨이는 담배가 우리와 참 오랫동안 동행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올 봄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1970년대 TBC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청실홍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3대 트로이카로 불리던 배우 정윤희의 미모도 그렇지만 거의 매 회마다 등장하는 흡연 장면. 그 시절에도 카리스마 넘쳤던 배우 강부자는 담배와 혼연일체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담배는 시인의 고독, 지식인의 고뇌, 시련의 아픔, 일탈과 타락, 노동이 끝난 뒤의 여유로움, 토론의 진지함, 갈등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표현할 수 있는 만능 소품이었다. 요즘 드라마가 시청자를 피곤하게 만들 지경까지 속사포로 대사를 쏟아내는 것은 어쩌면 TV에서 담배가 사라진 탓은 아닐까?

 

물론 그때도 부자들은 비싼 담배를, 가난한 이들은 싸구려 담배를 피웠지만 그럼에도 다들 담배를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아니, 윗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피를 건네는 것만큼 진한 우정과 환대의 표시는 없었다. 특히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권할 때 담배는 마치 ‘어른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과도 같았다. 그러므로 담배 앞에서 우리는 평등했다? 아니, 결코 그렇게 말 할 수는 없다. 이 우정과 환대의 울타리 안에 결코 들어올 수 없었던 사람들, 여성과 청소년의 흡연은 곧 탈선으로 지목되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았던가.

 

 

#3.

여자가 지붕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경범죄로 처벌받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필자도 남성인 만큼 흡연에 있어서의 성차별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소극적인 저항으로 아무도 없는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후배들에게 망보게 한 뒤에 담임선생님 책상에 발을 올리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던 필자였음에도 말이다.

 

그러다 전직 기자이자 지금은 제주 올레길로 더욱 유명한 서명숙 씨의 『여성흡연 잔혹사』를 읽게 되면서 그야말로 잔혹했던 흡연에 대한 성차별을 알게 되었다. 데모를 하다가 잡혀간 경찰서에서 남자 대학생에게는 담배를 권하던 형사가 여자 대학생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가 나오자 뺨을 때렸다는 일화에서부터 운전을 하다가 음주단속을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담배를 끄고 창문을 내리며 “저 안 피웠는데요.”라고 했다는 일화까지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여기에 다 옮길 수 없다. 다만 책에서의 인상적인 물음. 왜 흡연 문제에서의 극심한 성차별이 유독 할머니에게만은 관대한가? 폐경기를 지난 할머니는 사회적으로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고 남성중심 사회에서 바라는 바, 건강한 여성의 몸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란 진단이다. (참 재수 없다.) 더 한 것은 할머니만이 아니라 술집 작부나 마담 등 주부/어머니이어야 할 여성이 아니라면 남성들은 한 없이 담배에 관대했다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이 한 때 여성해방의 중요한 액션이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요즘 들어 부쩍 내몰리고 위협받는, 그래서 흡연권 운운하기까지 하는 (특히 남성) 끽연자들은 먼저 처절한 탄압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장렬이 전사하기도 했던) 이 땅 여성흡연자들에게 깊은 사과와 무한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 먼저다.

 

 

#4.

담배를 피운다는 게 썩 좋은 일이 아닌 이유는 차고 넘친다. 승리, 무궁화, 재건, 새나라, 희망, 신탄진, 새마을, 88, 엑스포, 하나로……. 왠지 담배를 피우기 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라도 하고 불을 붙여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담배 가격에서 60%를 넘는 각종 세금은 국가재정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1990년대 농촌활동을 가서 양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2012년 오늘 광화문 한 복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불경한 짓이었다. 애국, 애족, 애향심이 과하다 싶은 이 나라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왠지 국민의 (신성하지는 않을지라도) 의무를 수행하는 일 같기도 하여 거시기하다. 그것도 1952년에 벌써 담배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신뢰할만한 보고가 이뤄진 것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스무 살 청년들을 군대로 끌고 가 무료로 담배를 나눠주며 중독 시킨 뒤 수십 년 동안 팔아먹었던 이 정부가 요즘 하는 꼬락서니를 볼 때면 더 그렇다. 그래도 북한이 아시아에서 흡연율 1위를 달리고 한국이 OECD 국가 중 남성흡연율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이 또한 민족동질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인가?

 

어릴 적에는 동요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군가였던 노래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라는 구절만 봐도 알 수 있듯 담배와 군대, 전쟁도 꽤나 사이좋은 관계다. 북미 원주민들이 콜럼버스에게 선물하여 유럽으로 전해진 뒤 어김없이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흡연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고도의 스트레스가 동반되는 전투에서 군대는 병사들을 다독이기에 담배만큼 좋은 것을 찾지 못했다. 긴장을 완화시켜 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며 무료함을 달래주기까지 하는 담배. 게다가 담배의 역사는 식민주의와도 밀접하다. 대영제국의 건설의 주요 자금줄은 담배교역이었고 식민지에서 담배를 재배하는 일은 제국에 반하는 범죄였다. 이래저래 담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사람들은 또한 담배 때문에, 담배를 피며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담배는 해로워야 마땅하다.

 

 

#5.

혐연권(간접흡연을 하지 않을 권리)과 흡연권(담배를 피울 권리)에 대한 논쟁이 간혹 언론에 등장한다. 몇 달 전에는 ‘흡연권의 제한과 한계’라는 꽤나 그럴 듯한 제목의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서울시의회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겠다며 조례를 제정해 공원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의 흡연에도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한다. 앞에서 구구절절 언급했다시피 담배가 흉기에 가까운 물건이고 흡연이 범죄에 필적하는 행위이니만큼 혐연권의 주장은 성폭력범에게 전자발찌를 채우자는 주장이나 연쇄살인범을 극형에 처하자는 주장만큼이나 지당하다. 반면 반대 측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개인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한겨레 2011년 12월 23일 ‘길거리 흡연 금지 어떻게 봐야 하나?’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511608.html). 또 흡연권이 권리인지, 흡연을 제한하는 것이 과잉금지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도 벌어졌는데(한겨레21 제902호 ‘흡연권은 권리가 아니다, 과잉금지 위헌이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2503.html) 헌법재판소는 2004년에 흡연권보다 혐연권이 우선하며 흡연권을 기본권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 오백년 꾸준히 피우다보면 관습헌법의 지위를 얻게 될 런지 모르겠다.)

 

무리하게 담배 피울 권리를 인권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글이 막바지에 접어든 이 대목에서도 도대체 담배와 인권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심스럽고 뭘 어디다 어떻게 끌어다 붙여야 하는지 걱정이다. 그렇지만 단 한 명도 담배 따위는 피지 않는 미래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살인미수는 처벌받고 자살방조도 처벌받지만 자살미수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자살이 미수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면 당연히 처벌할 수가 없다.) 자신의 생명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서 파괴할 권리도 그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것일까? 이건 프라이버시를 넘어 소유권의 문제인가? 그런데 마약 복용이나 문신은 처벌 대상이고 존엄사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왠지 이 문제에 법철학자나 문화인류학자를 불러와야 될 것 같다.

 

언젠가 모란시장을 갔다가 약장수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원숭이(침팬지였을 지도 모르겠다)를 본 적이 있는데 왠지 안쓰러웠다. 약장수는 어떤 강압과 사육으로 담배를 가르쳤을까? 놈의 동물권은 침해받은 것일까? 본능적으로 연민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쩐지 마주앉아 담배를 핀다면 더 이상 놈을 동물로 대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흡연이 인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간적인 문제인 것만은 확실하다.

 

 

#6.

문화사회학자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는 개념을 통해 문화 속에 놀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이론을 세웠다. 일과 놀이가 나뉘지 않고 뒤엉켜 굴러가던 시절 흡연은 뭘 만들어냈을까?

 

담배는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상비약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혼의 세계와 접촉하는 주술의 도구로 쓰였다. 마야문명에서 흡연은 부족의 중요한 제례의식 중 하나였다고 한다. 3천년이 넘도록 계속 되어 온, 불을 붙이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이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놀이이자 문화의 결정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얼마 전 처갓집에 힘든 일이 있었다. 늘 그렇듯이 사위들과 술잔을 기울이시던 장인어른은 난데없이 사위들에게 맞담배를 허하셨다. (물론 아직도,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동시에 어려운 시간을 함께 거쳐 온 이들이 주고받는 5분간의 위로라는 생각을 했다. 필자의 아이들이 자라 끽연을 하는 날이 온다면 주저 없이 맞담배를 허할 것이다. 이제 필자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7.

25년째 일말의 가책도 없이 하루에도 10여 차례 피우고 있다. 얼추 계산해보니 10만 개피. 내 인생에서 10만 번 반복해서 해왔던 일이 달리 또 무엇이 있을까?

 

1986년. 아시안게임이라는 뭔가 국가적으로 뿌듯한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한편 전교조가 만들어졌던 해. 온 나라가 ‘평화의 댐’이라는 희대의 국가 사기극에 놀아나던 바로 그 1986년 어느 날 필자는 동시상영 극장에 앉아 있었다. 학생 신분을 굳이 속일 필요도 없는 허술하고 허름한 극장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다들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해야 했지만 (우리는 객기를 부려 애국가 제창을 하기도 했다.) 조금 지나면 바로 담배연기가 자욱해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스러운’ 극장이었다. 거기서 많은 홍콩영화들을 봤지만 단연 인상 깊었던 영화는 ‘영웅본색’이었다. 그때 주윤발을 만나지 않았다면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은 물론 가당치도 않다. 인문계 고등학교 커트라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어 무협지로 어둔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사춘기 소년에게 담배만큼 나름 안전하면서도 매혹적인 것이 또 있었을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작가 지망생이 된 소년에게 담배는 더 이상 깡패나 조폭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새벽마다 거울을 보며 주윤발이 아니라 시인 김수영처럼, 소설가 김승옥처럼 담배 피우는 연습을 했다. 놀이터에서 경비 아저씨에게 걸려 ‘엎드려 벋쳐’를 하고 ‘쪽수’만 믿고 8차선 대로변에서 담배를 피우며 가다 형사에게 붙들려 파출소에서 무릎도 꿇어봤지만 청소년이었기에 청소년이 아니고자 했던 욕망, 거기에는 담배가 필수불가결한 소품이었다.

 

돌아보면 어느 자동차 광고의 카피처럼 “나는 당신과 함께” 했다. 대학입학 시험에서 떨어지고 올라간 지리산 노고단에서의 한 모금, 더 이상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군인이라며 연병장을 뒹굴다 10분간 휴식에 차렷 자세로 피워야 했던 한 모금, 3년의 수배생활 끝에 잡혀서 봉고차에 태워진 뒤 수갑을 차고 피웠던 한 모금, 여명에 맞춰 새카맣게 몰려드는 전경들을 보며 대추리 마을회관 옥상에서의 한 모금, 아버지의 영정사진과 맞담배질을 했던 장례식장에서의 한 모금, 산부인과 앞에서 첫째의 탯줄을 자른 손 떨림이 가시지 않은 채 피웠던 한 모금.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에서처럼 천국의 문 앞에서도 아마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뒤 문을 두드릴 것이다.

 

 


 

 

 

 

 

 

 

 

 

 

 

 

 



 

 

 

-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2년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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