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은 참 긴 하루였다. 오전부터 포클레인을 불러 바닥 콘크리트(예전 집 기초)를 걷어냈다. 그랬더니 그 전 집의 전집 기초가 다시 등장했다. 예상보다 폐기물을 더 많이 버렸다. 


저녁 무렵에야 공사장에 필요한 임시 전기를 설치하러 전기업체에서 왔다. 그런데 한전에서는 아직 계량기를 설치해주지 않아 곤란해졌다. 당장 내일부터 전기를 써야 하는데 한전에 연락을 하니 다음 주에나 설치가 가능하단다. 짜증이 밀려왔다. 사연인 즉은 이렇다. 원래 철거 하기 전 집에서 쓰던 계량기가 있는데 그것을 임시전기 설치 시 사용하면 안 되냐고 문의를 했다. 돌아온 답은 안 된다, 일단 철거를 하면 계량기를 수거하고 임시전기 설치할 때 새로 계량기를 달아준다고 했다. 왜 그렇게 두 번 일하냐고 물으니 관련 법규도 없고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란다. 이런 탁상행정이라니... 결국 며칠 간은 도전을 하기로 했다. 




벌써 날이 저물어 어둑한 가운데 위태위태하게 전봇대에 올라 도전을 했다. 이것까지 이 사람들의 일이 아닌데 내가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 



사실 28일 기초 공사를 해야 하는데 점심을 먹다가 김채일 대표에게 내일 비가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김 대표는 거의 맨붕 상태. 포클래인과 레미콘 등 모든 일정을 조절해야 했다. 결국 11월 29일 다시 공사 시작. 


좁은 땅에서 포클레인이 곡예를 하듯이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기초를 팠다. 동결심(겨울철 땅이 얼고 녹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일정부분 이상 땅을 파야 하는 것)을 충분히 확보하니 걷어냈던 기초와는 확연히 다른 튼튼한 기초가 생겼다. 거의 30센티 이상 두께의 콘크리트 기초. 김 대표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때까지 그떡 없는 집이 될거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설비팀에서 작업이 한 창이다. 주방과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을 정화조로 보내기 위한 관을 설치하는 작업. 



작업이 끝난 뒤 뭔가 적혀 있기에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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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설계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벌써 한 달 전이다. 주방 배치가 가장 문제여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애초에 11자형에서 ㄱ자형, 다시 11자형을 거쳐 마침내 ㄷ자형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상수도는 바꿀 수 있지만 하수도는 기초에서부터 결정되어 나중에 바꾸게 되면 출혈이 크다. 그래서 기초공사 때부터 주방 싱크대는 확정되어야 했다. 


견적서도 받았다. 예상보다 초과 금액이 크다. 그렇지만 막무가내로 낮추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설계를 맡았던 김정호 소장님과 시공사 김채일 대표의 호흡이 잘 맞아보여서 안심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이자 스트레스가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었다. 직간접적으로 집을 짓는데 관여해봤던 지인들은 다들 애정어린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과할 때도 많다. 평당 건축비가 얼마니, 계약할 때 주의할 것이 무엇이니 등등 매우 구체적인 정보이지만 집도 집터도 사람도 다 제각각인 만큼 우리 상황과 무관하거나 거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지하게 듣지만 너무 귀 기울이지 않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평생을 건설 일을 하시고 본인의 집도 두 번이나 지어보신 장인어른이 "예쁘게 잘 지어봐라"라고 무심히 던지는 말씀이 참으로 고맙다. 


고마운 사람이 많다. 계속 자기 일처럼 봐주는 베짱이. 그리고 소나무. 현장에 있는 기존 주택을 철거해야 하는데 철거업체 선정에 애로가 많았다. 김 소장님도 김 대표님도 경험이 없어 여기저기 물어본 끝에 고물상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 계통에 있는 소나무가 소개를 해주었다. 전화 상으로 예측한 견적에 두배가 훌쩍 넘는 철거비가 나왔지만 그래도 소나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50만원 정도는 더 지출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래저래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11월 14일 마침내 기존 건물이 철거되었다. 오전 9시쯤 시작된 공사가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끝났다. 집이 허물어지고 보니 집터가 좀 넓어보였다. 예상치 못했던, 거실 창문을 가릴 것으로 예상되던 전봇대의 위치도 한전과 협의 끝에 옆으로 옮기게 되어 좋다. 철거 공사 전날 부랴부랴 이웃집에 감 한 상자씩을 돌리고 양해를 구했다. 철거 과정에서도 동장님, 동네 교회 목사님을 비롯해 이웃들 대여섯 명을 만났다. 하루 종일 현장을 지킨 나름의 보람이랄까. 적어도 10년을 살 동네이니만큼 이웃과의 관계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마음가짐이 전세 살던 때와는 많이 다르다. 한편으로는 얇팍한 내 심사가 드러나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하고. 덧붙이자면 뒷 집과 불란의 소지가 되지 않을까 싶었던 전봇대 문제도 나름 깔끔하게 처리된 것 같아 다행이다. 현재 전봇대를 살리려면 뒷 집 땅에 전봇대를 하나 더 설치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전봇대를 옮기게 되었으니 불란의 소지 자체가 없어진 셈이다. 


11월 19일, 오늘 건축 인허가가 나왔고 구청에서 인허가 서류를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산재 신청을 했다. 내일은 측량을 한다. 모든 것이 다 난생 처음 하는 경험들이다. 


거실 쪽 데크는 계속 고민스럽다. 장도리와 강물의 도움을 받아 할 것인지, 업체에 맡길 것인지. 일단 거실 쪽 데크는 업계에 맡기고 나중에 마당에 평상이나 데크를 배워서 해보는 것이 어떨지... 결국 문제는 예산, 비용이다. 이건 막판에 결정해도 될 것 같다. 


 














고병권의 책을 읽고 있다. 요즘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작가다. 이 두 권을 관통하는 것은 '(장애)운동'과 '앎과 삶'이다. 운동과 철학이 만날 때 지식과 실천이 어떻게 확장되고 생명력을 얻게 되는지 놀랍도록 구체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게 집을 짓는 일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나에게 집짓기는 과연 어떤 만남, 지식과 실천의 확장을 가져다줄 것인가. 


그 사이 11월 11일 참으로 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갔다.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러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반대 주민분들이 올라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다. 육아휴직을 하고 집을 짓는다고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내심 불편하고 때론 한심하고 그렇다. 그런 면피라도 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밀양 주민분들이 올라오시니 꼭 가야만 할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미류와 덕진을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이고 싶었지만 차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이것 또한 죄스러움인가.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만하고 계속 내년 3월 주택 완공시기 이후로 미루기만 하고 있다. 물론 3월 이후에도 집에도 손이 갈 것이고 아이들에게도 손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지 않다. 하여튼 최대한 시간을 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김정호 소장님이 집 이름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마땅이 잘 떠오리지 않는다. 집 모양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그러면 사람들에게 의견을 적극적으로 물어야겠다. 어떤 그럴듯한 이름을 지을까 고민하다보니 결국 이름이란 불리워지는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이름 짓기는 나와 나의 가족의 몫이겠지만. 


내일 측량에서부터는 현장에 사진기를 가지고 나가 꼼꼼히 기록을 해야 겠다. 수첩도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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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집은 더 좁아졌다. 1층 13평, 2층 11평. 그렇지만 다락방과 작업실이 생겼다. 


평면도에서 그간 우리가 막무가내로 던졌던 제안을 반영하고자 하는 고민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이제부터는 꼭 필요한 가구, 버릴 수 없는 가구 치수 재기, 버릴 가구와 가져갈 가구 선별하기, 각 공간에 대한 생각...


평수가 좁아진 만큼 좀더 좋은 자재로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된다. 어쨌든 포기는 빠를 수록 좋다. 
















수용소는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한 공간일 것 같다. 아마도, 학교도 그럴 것이다. 감옥과 닮은 학교, 군대 막사와 닮은 학교. 사람을, 삶을 고민하지 않은 공간의 전형일 수도 있다. 


4.16 이후 읽는 책은 대부분 아우슈비츠, 재난 등의 키워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통을 고통으로 견뎌내기. 


베짱이와 술을 마셨다. 중요한 것은 집이 아니라 사람이다. 삶이다. 


평면도는 거의 확정에 가깝지만 삶은 평면이 아니다. 


이번 주 일요일 다시 건축사와 만난다. 최소 5미터 줄자를 빨리 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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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베짱이가 시공업체 대표와 건축가를 소개시켜줬다. 두 분 다 마음에 든다. 빠듯한 예산과 좁은 땅도 문제지만 공사기간도 촉박하다. 11월이 되어서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고 3월 안에 끝나야 우리가 들어갈 수 있다. 


베짱이는 집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고 공부도 하라고 하는데 별로 그럴 마음이 없다. 그런데 평소 전원주택, 땅콩집 등에 관심이 많던 삐삐가 책을 한 바구니나 들고 왔다. 추석 연휴를 마치고 책자을 들춰보니 웬걸 확 빠져든다. 평소라면 들춰보지도 않았을 책인데 막상 내 코앞에 닥친 일이 나오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모두를 위한 집이란 누구에게도 적합하지 않은 집이다."

"이토록 꼼꼼학 내 가족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설계 상담을 진행하며 아내와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되돌아본다."


 













건축주와 건축가, 그리고 시공자가 모여서 이야기한 것을 묶은 것이다. 물론 우리의 예산보다 턱없이 초과된 좋은 집 사례도 있지만 얼추 비슷하게 갈 수 있는 집도 있다. 


무엇보다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내일 건축사와 첫 상담이 있는 날. 당신에게 집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을 정리해보자. 


사람들이 많이 와서 편하게 놀다 갔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당분간은 하나의 공간에서 생활하더라도 좀 커서는 두 개의 독립된 공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락방이 과연 필요할까? 이사가서 며칠 즐기다 창고가 되지는 않을까?

강아지를 위한 마당 공간도 필요하다. 

물론 집에서 작업을 하게 될 나의 공간도 필요하다. 그것이 별도의 공간이 될지 거실이 될지 모르겠다.

책이 많고 앞으로 더 많아질 예정이다. 책장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TV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최대한 단순하게 직사각형으로.

화장실은 1, 2층에 하나씩.


일단 내일은 첫 만남의 자리이니 내일 이후 좀 더 구체적인 고민이 될 것이다. 가족들과도 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깡총이는 일단 인테리어어 관심이 많다. 깡총이의 요청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눈높이가 높아지는 단점이 있지만 많은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참고는 하되 포기는 과감해져야 하겠다. 















삐삐가 빌려준 이 책도 마찮가지. 제목은 1억이지만 실제로는 2억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상상력이 풍부해진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역시 삐삐가 빌려준 이 책도. 이 책은 매우 구체적으로 작은 집에 효과적인 방 배치에서부터 가구배치, 수납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가 내 몫인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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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팔렸다.

2년 계약 전세로 살던 집이다. 계약 만료는 내년 3월. 다시 살 집을 구해야 한다. 

집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안 건 오래 전이었지만 요즘 경기에, 이 가격에 이 집이 팔릴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막상 팔린다는 소식을 집주인에게 전해들으니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 결혼 10년만에 7번째 이사다. 이사비용만 그간 돈 천만 원이 깨졌구나. 

이 집은 처음으로 살게 된 단독주택이었다. 마당에 강아지도 키웠고 여름이 물놀이장과 파라솔도 설치해서 거하게 놀았다. 처음 이사와서는 숯불에 고기도 여러 번 구워 먹었다. 땅과 붙어 산다는 것이 참 많은 생활의 변화를 가져다 줄 줄은 몰랐다. 다시 아파트나 빌라로 들어갈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를 생각하면 이 동네를 벗어날 수도 없다. 

집을 구해야 한다. 


마침 생각치도 못했던 돈이 생겼다. 그래, 땅을 사서 집을 짓자. 이 동네에서 땅을 사서 집을 짓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있는 만큼, 욕심 부리지 말고, 컨테이너라도 놓고 살면 어떠랴 하는 심정으로 여기 저기 수소문을 했다. 얼추 괜찮은 땅이 나왔다. 대지 65평. 건폐율 60%. 용적율 120%. 그런데 도시계획상 30평 정도가 도로로 수용될 수 있다. 그래서 시세보다 싸게 나왔고 형편에 맞는 땅이다. 8월 19일 부동산 소개로 처음 땅을 봤고 8월 22일 공동주택에 관심이 있었던 강물에게 보여줬더니 강물도 괜찮다고 한다. 23일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서둘러 건축 관련 일을 하는 베짱이에게도 보여줬더니 베짱이도 오케이. 8월 23일 계약을 했다. 초 스피드.















집을 짓기로 결정을 하니 난데없이 이 책이 떠올랐다. 낙원구 행복동에서 뿌리 뽑혀진 난장이 아버지와 그 가족들. 내 기억 속에 첫 집은 공교롭게도 낙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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