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책은 <용서에 대하여>와 <삶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그리고 <노르웨이 나무>

적어놓으니 참 계통없이 읽었네.

<왕좌의 게임>만 보지 않았다면 좀 더 읽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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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의 탄생
용서에 대하여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시크릿파일 국정원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폭력과 존엄 사이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용서 없이 미래 없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재난을 묻다
세월
전쟁정치
폭력사회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식민지 트라우마
경기동부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반지성주의를 말하다
글쓰기의 최전선
너의 사랑 나의 투쟁
오키나와 노트
맨발의 겐1~10
아픈 몸을 살다
라나지트 구하
두 섬

아픔이 길이 되려면
아무튼, 휘트니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노르웨이 나무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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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엄마야 -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7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 오월의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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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유혹] 서로의 질문이 무성히 피어나길

<그래, 엄마야>(오월의 봄,2015)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고

10년 쯤 전의 일이다. 친하게 지내는 부부였는데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부부는 인공수정을 했고 쌍둥이를 임신했다. 임산부가 나이가 있어서인지 병원은 태아의 염색체 이상 유무를 알아보는 양수 검사를 권했고 검사 결과 쌍둥이 중 한 명에게 문제가 있다고 했다. 출산을 하면 아이가 장애를 가질 확률은 40%, 인위적으로 유산을 할 경우에는 나머지 아이가 자연 유산할 확률은 50% 쯤.
부부는 인위적인 유산을 선택했고 결국 나머지 아이마저도 잃었다. 그러는 동안 부부는 내게 의견을 묻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의견을 물었다고 한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우리였다면 하고 잠시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는 무기력하게 주변을 겉돌 뿐이었다. 

적대적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와 부모 

“‘그럼 그렇지. 다른 애들보다 반응이 약간 느리긴 해도, 너 잘 크고 있는 거지’” -37쪽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아기가 생겼다. 아기도 그랬겠지만 부모도 부모가 되는 순간 세상에 툭 내던져지는 느낌이다. 낳고 보니 육아와 돌봄에 대해 나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정보도 제한적이었고 육아 지식이라는 것들도 갑론을박 중구난방이었다. 내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셨고 와이프 부모님은 시골에 사셨기에 도움의 손길을 구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셋이서 치러내야 했다. 야심차게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이라는 천 기저귀를 구비해놓았지만 단 일주일 만에 포기하고 일회용 기저귀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와이프가 둘째를 가졌을 무렵에는 신종플루가 창궐했고 아이와 와이프도 걸렸다. 의사는 와이프에게 타미플루를 처방하면서 “아직까지는 임산부에게 부작용이 있다는 보고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의 무지, 우리의 무지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그러면서 깨닫은 것은 이 세상이 아이에게,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골목의 자동차, 거리의 버스, 땅 밑의 지하철, 식당 앞 계단, 중국에서 날아온다는 황사, 심지어 이웃집 노부부의 말 한마디까지 말이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장애가 있다면?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세상은 우호는커녕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낸다. 적대적인 세상에 내던져진 그들의 전쟁, 그 한 가운데 엄마가 있다. 

“아버님이 대놓고 저한테 ‘정신과를 갈 사람은 애가 아니라 너다’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 아버님이 원하는 병원에, 원하시는 날짜에 원하는 시간 잡아주면 제가 검사를 받을게요. 저는 아버님 며느리니까 아버님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대신 제가 아버님한테 돈 대달라고 안 할 테니까 제 아이를 가지고 제가 하는 거는 신경 안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71쪽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다가 멈칫한다. 하지만 그들의 곁에 서본 사람, 그들의 일상을 엿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이 그저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들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헤집고 나오는 일, 동정 혹은 멸시의 시선과 말들 속에서 끊임없이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일의 반복. 비장애인 큰딸과 장애가 있는 쌍둥이를 둔 엄마는 큰딸에게 “누군가 쌍둥이를 안 좋은 눈으로 보고 있어서 힘들면 가족이 아닌 척해도” 된다, “그래도 엄마는 뭐라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이 일상이 ‘전쟁’이 아니라면 달리 뭐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쟁의 책이 아닌 질문의 책

그렇지만 이 책이 전쟁의 기록, 매일매일 벌어지는 처절한 사투를 담았다고 짐작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수 있는, 어디서나 흔히 만나게 되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엄마는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다’는 생각에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자신이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고민한다. 어떤 엄마는 가족 내에서 아빠와 비장애 자녀의 위치가 어디쯤일지 살피는 중이다. 어떤 엄마는 조금씩 장애 아이와 거리두기를 시도하기도 하고 어떤 엄마는 아이로부터 그런 도전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들을 ‘이 시대 모든 엄마의 이야기’로 요약해서는 안 된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에서 같이 살아야 된다는 지극히 소박하고 상식적인 요구를 하며 ‘엄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시청에서 36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엄마들의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면서 자녀의 보호자이자 관찰자이며 적군이자 아군이며 마침내 동료와 동반자가 되는 열여섯 명 엄마들의 마음자리가 어떻게 바뀌는지, 그들의 삶이 어떻게 진동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진동은 책을 읽는 나의 마음도 진동시킨다. 

“네. 대답을 해요. 그런데 몸으로 하니까, 기다려 주세요. ... 발달장애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장애인이 이해 대상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면 해요.” -287쪽

큰애가 발달장애 아이와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면서 두어 해 동안 가까운 이웃으로 살게 된 경험은 내게도, 아이에게도 장애에 대한,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큰애는 차이와 다름에 대해, 사람 저마다가 가진 속도에 대해 미약하지만 머리와 몸으로 이해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 가족과의 만남은 너무나 소중하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고맙다. 아이의 변화와 나와 그들의 변화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고 분에 넘치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장애는 어쩌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 우리에게 건넨 숙제이면서 선물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굳이 아이가 내게 묻지 않더라도, 내가 아이에게 묻지 않더라도 무수한 질문과 맞닥트린다. 아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질문 덩어리다. 이 책도 그렇다. 아빠들은 다 어디 가고 왜 고군분투의 현장을 엄마만 지켜야 하는 것일까? 아이를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의 성장과 아이의 성장은 어떤 관계일까? 사회가 강요하고는 하는 아이 발달의 ‘정상성’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현실에서 장애를 이해하면서도 이해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이 손을 놓고서 멀리 떠난다 해도 우리 아이가 엄마의 손길을 이 사회 속에서 여전히 받아가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생에서의 내 삶이 그걸 위해 쓰여도 좋습니다. 우리 아이와 어미인 저는 이번 생을 그렇게 같이 살다 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어미가 그렇듯, 이 아이로 인해서 나는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26쪽

책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질문을 찾아나가는 여러 경로를 보여줄 뿐이다. 답을 찾은 이도 있고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도 있으며 이제 막 발을 땐 이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질문이 그들만의 질문이 아니듯 구하고자 하는 답도 그들만의 답은 아니라는 점, 그들이 찾은 답으로 인해 마침내 서로의 질문이 더욱 무성하게 피어날 테니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좋다. 괜찮다.



- 인권오름 2016.6.18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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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 올 거에요' 4·16작가기록단 "의무 잊지 않기 위해···고통도 사회가 기억 해야"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6.04.10 17:13:00 수정 : 2016.04.11 18:20:40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은 참사 직후부터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육성을 글로 기록해왔다. 5일 작가기록단 중 유해정·고은채·박희정·명숙·미류·이호연·정주연·강곤 작가(왼쪽부터)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작가기록단이 부각되는 것을 꺼려한 이들은 사진촬영도 부담스러워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은 참사 직후부터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육성을 글로 기록해왔다. 5일 작가기록단 중 유해정·고은채·박희정·명숙·미류·이호연·정주연·강곤 작가(왼쪽부터)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작가기록단이 부각되는 것을 꺼려한 이들은 사진촬영도 부담스러워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416작가기록단’이 전하는 생존학생·희생자 형제자매 26명 이야기

다시, ‘아픈 4월’이다. 2014년 4월16일,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사망 295명, 실종 9명)의 생명이 캄캄한 바다 속에 잠겼다. 선장도, 출동한 해경도, 지휘부도 이들을 구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2년이 돼가지만 진상규명은 제자리걸음이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유가족의 애끓는 목소리는 정치적 시비 속에 잔인하게 묻히거나 폄훼됐다. 슬픔은 분노로 변했다. 이 과정을 낱낱이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산·국회·청운동·광화문·팽목항 등지에서 세월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글로 기록해온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도 그 중의 하나다. 작가기록단은 지난해 1월 단원고 희생학생의 부모 13명의 인터뷰집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출간했다. 이어 최근엔 생존학생 11명과 희생학생의 형제·자매 15명을 인터뷰한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펴냈다. 이들을 지난 5일 만났다.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은 어떻게 구성됐나.

(유해정) “참사 직후 시민들을 중심으로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가 구성됐다. 영상, 사진, 글로써 기록하는 분들이 모였다. 이 중 글을 쓰는 작가기록단은 르포작가 김순천 씨를 주축으로 약자의 목소리에 관심있던 이들이 알음알음 참여했다. 2014년 6월 첫 회의를 했다. 세월호 참사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기록해야 할 지, 누구의 목소리를 담을 지 등을 논의했다. 유가족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게 지금은 가장 중요하다고 합의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 상실의 고통과 분노를 넘어 절망과 무기력 등 매우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또한 서명운동과 집회, 농성, 단식 등 강경하게 정부와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언론으로 입은 상처 탓에, 낯선 타인에게 자신들의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곁을 지키며 같이 싸웠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들이 마음을 열었다. 첫 결과물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이었다.”

(명숙) “당시 유가족들에 대한 모독과 모욕이 많았다. 공영방송인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와 비교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가족의 목소리는 소음이거나 무음으로 치부됐다. 인권이란 의무와 권리가 동반된다. 말할 권리도 있고 들을 의무도 있다. 그게 사회 또는 공통체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그런데 당시 한국사회에선 그것이 삭제되고 있었다. 유가족의 목소리를 온전히 전달할 필요성을 느꼈다. 처음엔 고통 속에 신음하는 유가족들을 지켜보며 과연 제대로 기록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러다 그 분들이 서로를 버팀목 삼아 스스로를 씩씩하게 다잡는 모습을 보면서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같은 고통과 고비를 겪은 유가족들은 서로에게 온기가 되고 있었다.”

-유가족 인터뷰를 하면서 세운 원칙 같은 게 있나.

(유해정) “앞장서서 활동하고 계시거나 언론에 노출된 분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대열의 맨 뒤에 서 계시거나 아예 활동을 못하고 계신 분들도 찾아내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지병이 있거나 남은 자식의 상처를 돌봐야 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또 단원고가 1반에서 10반까지 희생자가 있었기 때문에 각 반에서 골고루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열세분의 이야기지만 유가족 전체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사건이나 조건이 좀 더 다양한 분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했다.”

-기록작업을 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뭐였나.

(정주연) “경계심이 강한 유가족의 마음을 얻기까지 과정은 진행상 힘듦일 뿐이었다. 정작 힘든 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힘들어서 못읽고, 못보겠다는 사람들을 볼 때다. 피해자가 어떤 고통 속에 있는 지 전혀 귀 기울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어떤 배경에서 기획했나.

(이호연) “10대에 참사를 겪은 생존학생과 희생학생의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생존학생들의 경우 배에서 탈출하는 과정에 대해 언론에 많이 시달린 탓에 다시 이야기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해 4·16인권실태조사단의 세월호 참사 피해자 인터뷰 작업에 우리 중 일부가 참여했다. 한편으로 우리들의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생존학생 몇명이 찾아와 청취한 후 다른 친구들을 소개했다. 희생학생 형제·자매들의 모임에도 제안을 하고 세월호가족협의회에도 요청을 했다.”

-생존학생들이 언론 인터뷰는 거부하고 있다.

(강곤) “저와 인터뷰하기로 한 생존학생 한명은 두번 만나고 나서 한달간 연락이 두절됐다. 인터뷰를 안하겠다고 했다. 왜 마음을 접었는지 묻지 않았다. 언론은 생존학생들이 왜 이제서야 입을 열었는지, 또 왜 대다수 생존학생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참사를 겪고 나온 생존학생들의 발언을 언론은 의도적으로 편집하고 왜곡했다. 정치인은 고통과 모욕을 줬다. 일베뿐 아니라 사회분위기는 ‘지겹다’ ‘그만하라’는 것이었다. 상황이 그런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생존자들의 침묵할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경험이나 고통을 공적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을 반추하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박희정) “신뢰를 회복하려면 신뢰를 잃게 한 쪽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언론에서 잘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나왔지만 이후 상처입은 이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지 고민하지 않았다.”

-기성세대,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 대한 불신이기도 한가.

(명숙) “당연하다. 그러면서도 세월호 관련 도보행진이나 촛불문화제 등에서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고 다른 가능성을 봤다는 이야기도 한다. 특히 피해 학생들과 또래인 10대와 20대가 세월호 참사 애도와 진상규명 활동의 주체로 나선 것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안산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세월호 관련 서명에 적극 나서고 노란리본도 정말 많이 하고 다닌다.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주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분들이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읽어내는 눈과 귀가 우리사회엔 부족한 것 같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 17일 오후 진도 체육관을 찾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원인을 규명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진은 해경과 해군이  당시 진도 해상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 17일 오후 진도 체육관을 찾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원인을 규명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진은 해경과 해군이 당시 진도 해상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얼마나 보상 받았냐” “지겹다”
언론은 의도적인 편집과 왜곡
정치인은 모욕과 조롱 날리고
사회는 ‘이제 그만하라’ 하는데
생존자들이 어떻게 입을 열겠나


-이번 책에 등장한 생존학생 11명은 모두 대학생이 됐다. 책 출간에 앞서 웹툰으로 제작해 공개한 첫회엔 생존학생이 타인의 시선을 힘겨워하는 일상이 담겨 있다.

(명숙) “언론이 특례입학을 왜곡하고 과장되게 강조한 것과 관련 있다. 단원고 출신은 특혜받은 집단이라는 이미지가 우리사회에 형성된 것에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 동정어린 시선이다. 이런 편견들이 새로운 친구관계를 맺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유해정) “이는 세월호 참사의 모든 피해자가 겪는 고통이다. 우리 사회는 유가족에겐 ‘배·보상을 얼마나 받았냐’고 하고, 생존학생들에겐 ‘특례입학생, 친구 놔두고 나온 아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구조활동에 나선 분들에겐 ‘네가 좀 더 구조했더라면’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이들에겐 자신을 밝히는 것 자체가 이 모든 모욕과 폭력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생존자나 유가족이나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자신을 온전한 한 개인으로 봐줄 것인지 고민하고 갈등한다.”

-형제·자매 이야기는 부모들에 비해 많이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기록작업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은채) “언니를 잃은 한 학생은 인터뷰 첫날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울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다음날도 약속을 잡고 나왔다. 왜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구술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중에 그 학생이 보여준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꿈에 언니가 나왔다며 꿈 내용을 글로 적어 가져왔다. 다른 친구들도 많이 그러는데, 꿈에 나온 형제·자매를 기억하려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것이다. 말로는 다 전달하지 못하는 동생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명숙) “희생된 형제·자매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현재 마음을 기록한 결과물이 훗날 자기를 반추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참여한 경우가 많다. 10대인 자신들이 겪은 게 무엇인지 세상에 말하고 싶어 참여한 이들도 있다.”

-세월호 참사 전과 후, 그들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유해정) “‘세상에 대한 불신’이다. 이전엔 완벽하지는 않아도 사회적 정의가 있고, 정부가 어려운 이들을 보듬어 안을 것이며, 언론은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게 다 깨졌다. 국가는 정의롭지 않았고, 공권력은 폭력적이었으며, 언론은 왜곡보도로 일관했다. 사람들은 자식을 잃고 형제나 친구를 잃은 피해자들을 모욕했다. 그나마 성인들은 자신의 사회적 자원을 활용해 이런 불신들을 극복해나갈 수 있지만 10대들은 그럴만한 자원도 부족하다. 세월호 참사 후 꿈을 바꾼 친구들이 많다. 내가 만난 희생자의 언니는 죽은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게 삶의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명숙) “다들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말했다. 예전엔 계획도 세우고 ‘내일은 뭘 하지?’ 했다면 세월호 이후부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사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이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말한다”

-생존학생은 트라우마가 심할 것 같다.

(미류) “한 학생은 자주 악몽을 꾸고 감기에 걸리고 이유없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마다 다르게 겪고 있어 일반화시키긴 어렵다. 몸에 새겨져버린 사건이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의 강도가 트라우마의 강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 이후 시간이 중요하다. 그것을 함께 기억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 소통 가능한 무엇이 될 때, 트라우마는 달라질 수 있다. 주위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하고 들어주며,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함께 노력하는가가 중요하다. 때문에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인가를 묻기 보다는 노란 리본 하나를 더 달고, 생존자나 유가족을 만날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터뷰에 응한 10대들이 가장 말하고 싶어한 건 무엇이었나.

(유해정) “‘함께 기억해달라’다. 세월호 피해자 모두의 바램이다.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는 건 단지 세월호 참사가 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여전히 다수가 고통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달라는 게 아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함께 밝혀 달라는 것이다. 또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공포와 불안에 떨지 않고, 자기의 안전과 존엄을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세월호를 계기로 함께 만들자는 것이다. 또한 10대들은 우리를 단지 ‘어린 피해자가 아니라 동료시민으로 봐달라’고 요청했다.”

2년 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열기는 이렇게 뜨거웠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진상을 밝히고 인간 존엄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 ‘의무’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사진은 2014년 4월27일 경기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기념관 인근 고잔초등학교 운동장까지 길게 줄을 서 추모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br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2년 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열기는 이렇게 뜨거웠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진상을 밝히고 인간 존엄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 ‘의무’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사진은 2014년 4월27일 경기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기념관 인근 고잔초등학교 운동장까지 길게 줄을 서 추모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정의·국가에 대한 믿음 산산히 깨져
생존자·희생자 형제자매 삶 큰 변화

“우리 고통 기억해달라는 게 아니라
진실이 무엇인지 함께 밝혀달라는 것”



-2년이 흘렀지만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하다. 시민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있다.

(미류) “답답하다. 그래서 우리가 만난 형제·자매들은 결국 자신들이 끝까지 진상규명을 위한 길을 가야겠다고 스스로 재확인하는 것 같다. 누구도 끝이 언제라거나 혹은 끝이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폭발적인 운동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방해 속에 왜소화되고 무능해졌다. 사실 특별법 혹은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규명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당장 5~6월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끝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법 개정을 통해 바꿀 수 있다. 또 특별조사위원회가 아니더라도 상설특검법이 있으니 필요한 건 언제든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혼자 슬프면 절망이 된다.”

(고은채)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자각이 ‘불안’과 ‘공포’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절망만 주는 건 아니다. 불안하고 무서우면 멀리하고 떠나면 되는데 참사 이후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은 함께 곁에 있는 것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나아가 어떻게 해야할 지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해서 사람들이 해결의 소망을 버린 것도, 남의 일로 여기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는데 정부가 적극 나서주지 않으니 답답한 것이다.”

-여기 모인 분들은 이전에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용산참사 등 현장에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왔다.

(강곤) “이랜드 파업 노동자들을 어느 매체에선 아무것도 모르다가 억울하게 해고된 아줌마로, 또 다른 매체에선 노조활동한 투사로 그렸다. 언론에 의해 이들은 선량한 피해자와 아주 강력한 투사, 이 양극단의 이미지로 고착됐다. 이런 선입견에서 탈피해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그 사람이 이 사건을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기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엔 공존할 수 없는 먹이사슬구조임에도 펭귄과 곰, 새가 화목하게 같이 산다. 이들이 합심해 물고기 잡아 먹는다. 그런데 물고기는 대사가 없다. 말할 수 없는 존재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 공동체에서 배제된 존재다. 발언권이 주어지고 누군가 경청한다는 건 곧 시민권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우리의 기록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것은 왜 중요한가

(유해정) “역사는 주류가 쓴다. 비주류,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소설처럼 창작되기 일쑤다. 우리는 기록을 통해 지금 시대를 산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상을 구성했고 국가 폭력이나 사회적 부정의를 어떻게 목도했는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삶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기술한다. 밀양 송전탑 투쟁 과정에서 만난 조계순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소중히 들어준 것만으로도 기뻐하셨다. 책이 나왔을 때 환갑이 넘은 아들이 ‘왜 싸우는지 몰랐는데 엄마가 90평생 살면서 어떤 역사 속에서 일군 땅인지를 알게 됐고, 송전탑이란 게 엄마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폭력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울었다고 했다.”

(박희정) “어떤 고통이 사회적 기억이 된다는 건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이 있음을 의미한다.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게 왜 중요한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적 차원이든 사회적 차원이든 애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건 진상규명과 연결되는데. 사회적 기억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이분들이 무엇을 잃었는지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무엇을 빼앗겼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참사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점검하는 차원에서다. 이는 참사 발생이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고통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실천을 할 의무가 있음을 다시 환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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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응답할 수 있을까

-재난참사에 대한 기록들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나에게는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그런 책이다. 책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유족들 인터뷰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막상 책이 나온 뒤에 나는 도저히 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깊은 슬픔과 커다란 고통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만들 때 내가 기획했던 책, <밀양을 살다>가 참고가 되었다며 저자 간담회 자리에 내가 패널로 소환(?)되는 일이 벌어졌다. 간담회 날짜가 다가오자 책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몇 번씩 책을 덮어가며 며칠에 걸쳐 겨우 책을 읽었다. 지난해 여러 곳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이 책의 내용을 여기에서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대신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재난참사에 관한 기록들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제 곧 또 다시 잔인한 봄이 올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세월호 2주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기에 어느 정도 적당한 시간일까? 아니 적당한 시간이란 게 과연 있기나 할까? 우리는 누구나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의 시간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몇 십 년 같은 하루를 살기도 하고 며칠 혹은 몇 개월이 하루 같기도 하다. 때문에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동일한 일상의 시간 감각을 회복하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커다란 폭력이다. 최소한 우리는 남겨진 이들이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의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이 애도의 시간을 절망, 분노, 우울, 용서와 수용, 재출발 등으로 구분하여 ‘상(喪)의 단계’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이 단계는 일직선으로, 순차적으로 밟게 되는 과정이 아니다. 이미 지나온 단계로 돌아가 같은 과정을 다시 밟아오는 경우도 있고, 단계의 지속 기간이나 강도도 저마다 다르다. 결국 재난참사를 겪은 생존자들과 유족들의 슬픔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전형화하지 말고 각각의 처지와 조건을 헤아리는 것부터 위로와 공감은 시작되어야 한다.  


정신병리학자인 노다 마사아키는 1985년 일본항공(JAL) 추락 사고 당시 유족들의 상담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대형 참사 유족들의 슬픔에 대한 책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은 520명이 사망하여 일본 항공사고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JAL 추락 사고와 수학여행 중 수많은 일본 학생들이 희생당한 상하이 열차 사고 등 대형 참사를 겪은 유족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유족들은 왜 그토록 시신을 찾으려고 애쓰는지, 잘못된 보상 과정이 유족들에게 어떤 아픔을 안겨주는지, ‘유족의 시간’과 ‘관계자의 시간’은 어떻게 다른지, 관 주도의 추모행사가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며 어떤 집단은 어떻게 애도를 돈 벌이에 이용하는지 등에 대해 때로는 조근조근 설명하고 때로는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주변 사람과 이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할 것인지에 대한 귀중한 조언이다.  


생존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것이 인재(人災)가 되었든 자연재해가 되었든 재난참사를 겪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경험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재난을 다시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침묵은 어떤 경우라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혹시 사회가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오해나 편견에서 비롯된 비난의 시선이든 선의에서 비롯된 동정의 시선이든 당사자에게는 무슨 무슨 사건의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또 하나의 고통이자 억압이다. 그러므로 재난을 겪은 이들을 피해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온전히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쓰나미의 아이들>은 그런 점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기 일쑤인 아이들의 목소리를, 재난에서 출발했지만 재난 이후의 삶까지 담아냈다는 점에서 너무나 소중하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북동부에서 진도 9.0의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고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한 일대 지역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2만여 명, 피난민 수는 38만 명을 넘어선 이 재난이 벌어지자 탐사보도 전문 기자 모리 겐은 현장으로 달려가 대피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그날의 일에 대한 작문을 부탁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쓴 글이 <쓰나미; 피해 지역 아이들 80명의 작문집>으로 묶여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이야기 중 10개의 스토리를 뽑아서 추가로 취재와 인터뷰를 한 책이 바로 <쓰나미의 아이들>이다. 


하루 아침에 쓰나미로 집을 잃고 가족과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이혼이나 재혼 등 가족의 구성도 다양하며 당연히 쓰나미 이후 삶을 꾸려가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다. 다만 재난을 겪었다는 것과 함께 재난에도 불구하고 서로 서로 삶을 지탱하며 살아간다는 점만은 동일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재난 이후에도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쓰나미의 아이들>은 들려주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책임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이다. 전후후무한 탈핵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목소리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은 수많은 이들의 참혹한 목소리를 가공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았다.


20세기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사고 당일 2명의 작업자가 그 자리에서 죽고,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대원이 방사능에 피폭되어 3개월 뒤 29명이 사망했으며, 원자로 주변 지역 9만 여 명이 강제 이주되었다. 그 뒤로 6년 동안 발전소 해체 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6,000여 명, 그 지역에서 소개된 민간인 2,500여 명이 사망했고 최소 40만 명, 최대 70만 명 정도가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을 앓고 있다. 러시아의 한 환경단체의 통계로는 이 사건으로 죽은 사망자는 총 150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건의 참상이나 피해의 규모에 있지 않다.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의 한국어판에 별도의 서문을 실었다. 요약해서 옮기면 이렇다.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첫 번째 핵 수업은 체르노빌이었다. …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두 번째 핵 수업을 받고 있다. 하나도 아닌 11기의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났다. 체르노빌처럼 후쿠시마에도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 오늘날 거의 30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시아 31기, 그리고 한국에 21기가 있다. 종말을 앞당기는데 충분한 개수다. …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을 겪어 본 인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 원자력의 시대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 다른 길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체르노빌의 공포 속에 살아간다.”


비단 핵 뿐일까? 우리는 몇 번째 수업을 받고 있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해병대 캠프… 그리고 세월호. 왜 무겁고 슬프고 힘겨운 재난참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임감을 뜻하는 영어단어 ‘responsibility’는 응답(response)과 능력(ability)의 합성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물론 상황은 비관적이다. 알렉시예비치의 한국어판 서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어깨동무>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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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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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단번에 읽어낼 수 없는, 그러나 이 시대 반드시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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