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구백팔십팔년, 그야말로 쌍팔년도 이야기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반실에서 담배 피우는 선배들을 동경한 탓에 덜컥 들어갔던 문예반. 책꽂이에 꽂혀있는 교지를 빼들었는데 맨 뒤에 실린 편집후기 중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다."
다음 해 내가 교지를 만들고 보니 그 심정이 이해되었다.
그때만 해도 충무로 골목 여관방을 잡고 교정을 봤다. 두꺼운 종이에 기름 종이 같은 게 덧씌워져 있어 거기에 교정 부호를 그려넣는 작업. 갱지를 반으로 접어 손수 가제본을 하고.
처음부터 끝가지 수작업이 병행된 교지는 그야말로 자식 같은 느낌인데 어느 누구도 그렇게 소중히 다룰 것 같지 않은 느낌...
그 뒤로 15년 쯤 뒤에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잡지가 나오면 불쑥 보이지 않던 오탈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가시처럼 박힌다.
잡지를 만들며 표지갈이를 한 번, 낱장 갈이를 한 번... 그 뒤로 나는 나를, 내 눈을, 내 두뇌를 믿지 못한다. 교정교열 실력이 하도 형편이 없어 심각하게 나란 인간에 대해 고민한다.
왜 순간에 충실하지 못한가? 왜 이리 대충대충인가?
출판사로 직장을 옮긴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정말 공들인 책을 얼마 전에 출간했는데 오늘 버스에서 문득 심각한 오자를 발견했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독자에게, 저자에게, 책에게, 인쇄 노동자에게, 심지어 이 책을 찍어내느라 굉음을 질렀을 인쇄기에게도 미안하다.
내가 쓰는 글이 그렇듯 내 삶이란 결국 오류를 범하는 것, 오점을 생산해내는 것인가... 누구는 엄살이라고 오바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되풀이된다는 것... 삶이란 한없이 가볍기도 하지만 때론 한없이 무겁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