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지옥 동서 미스터리 북스 74
스탠리 엘린 지음, 김영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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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지옥>은 개인적으로 20세기 최고의 걸작 미스터리 단편집들을 꼽는다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 <특별요리>의 작가 스탠리 엘린이 1958년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음산한 제8지옥의 인간군상! 폭력적 도박, 썩어빠진 경관, 성에 얽힌 스캔들. 음산하고 혼탁한 제8지옥의 군상. 향기로운 필체로 그려낸 스탠리 엘린 최고 걸작!" 이라는 다소 선정적이고 과장된 띠지의 광고 문구가 눈에 띈다.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다소 이색적인 책의 목차가 또 한 번 눈에 띈다.
제1부 콘미 (p11), 제2부 콘미와 커크 (p29), 제3부 커크 (p301), 해설 (p376).
페이지 수를 보건데 1, 2, 3부로 이루어진 3부작 이라기 보다는 1부는 프롤로그의 성격, 3부는 마무리와 에필로그의 성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저 기괴한 소제목은 무슨 의미일까? 등장 인물을 살펴보면, 콘미는 사립 탐정사의 전임 사장이고 커크는 사립 탐정사의 현재 사장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콘미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회상 장면 이외에는 등장하지도 않는다. 달랑 세 개의 목차에 붙은 이 독특한 소제목들은 이야기의 결말부에 가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커크는 뉴욕의 한 잘나가는 사립 탐정사의 현직 사장이다. 그가 "경영"하는 탐정사는 네로 울프의 가내 수공업에 가까운 단란한 탐정사무실이나 말로나 아처의 "도꼬다이"식 나홀로 탐정사무실이 아닌 큰 조직과 지사까지 갖춘 기업형 사무실이다. 해미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콘티넨탈 탐정사와 비견할 수 있을까. 커크는 이러한 대형 탐정사의 사장답게 탐정이라기 보다는 경영인에 가까운 인물이며 여느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에서 묘사하는 탐정과는 사뭇 다른점이 많다. 그는 항상 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적당한 불의와도 언제든지 타협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추리력이나 직관력 보다는 경영 철학과 용인술 등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사건의 해결 보다는 사건 의뢰인인 피고의 애인에게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이를 위해 오히려 피고가 유죄 판결을 받기를 바라기도 한다.

뉴욕 경찰의 오직 사건에 휘말린 말단 경관 랜딩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커크는 처음부터 회의적인 자세로 사건을 바라보지만 수사를 할 수록 사건의 이면에 감추어진 사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제8지옥'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 중 제8장을 가리킨다. <신곡>을 읽지 않아 잘 모르지만, 이 곳은 단테가 그려낸 지옥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음산하며, 세속적인 악이 모두 모인곳이라고 한다. 엘린은 타락한 대도시의 인간군상을 '제8지옥'으로 묘사하고 있다.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그늘지고 혼탁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이 소설은 로렌스 블록의 작품들인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이나 <백정들의 미사>와 비견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맬리 커크는 블록의 매튜 스커더 만큼 심각하지도, 암울한 현실에 번민하며 고뇌하지도 않는다. 커크는 낙관적인 인물이다. 물론 이는 2~3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을 갖는 두 주인공의 시대적 배경과 그 시간만큼 더 타락하고 흉폭해진 도시의 현실 탓이기도 하다.

<제8지옥>은 미스터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단지 사립 탐정사의 사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일반 소설에 가까워 보인다. 소설의 중심은 사건이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트릭도 기교도 없다. 엘린의 작품에는 '꾸밈'이 없다. 그 자신의 고백처럼 그는 흔히 말하는 '사회적 통념'에서 출발한다"는 엘러리 퀸의 엘린에 대한 평가는 아주 적절해 보인다.

단편 소설만큼 스탠리 엘린의 고도로 정제된 문장들과 허를 찌르는 반전 등이 빛을 발하지는 않지만, 모던하면서도 간결한 문체, 수미 쌍관적인 구조를 취하는 소설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의 장면 등은 장편 소설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엘린의 또 다른 매력을 잘 보여준다.

p.s. 언제고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리라는 마음을 먹고는 있었는데, 로렌스 블록의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을 읽고 있으려니 문득 생각이 나서 읽은지 근 1년이 되어가는 책의 리뷰를 쓴다. 그런 이유로 내용이 좀 어색하고 싱싱하지 못한 듯 하다. 역시 책을 읽은 직 후 쓰는 생생한 리뷰가 쓰는 사람들에게나 읽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글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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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1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리뷰를 이리 잘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oldhand 2005-05-10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 말씀하시니 부끄럽사와요. 만두님. 과찬이십니다.

야클 2005-05-1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네요. 바쁘셨나봐요. ^^ 잘 읽고 갑니다.

panda78 2005-05-1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가 저래서.. 전쟁 소설인가.. 하고 안 읽었는데.
음. 끌리네요.

비츠로 2005-05-10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지 1년이 된 책 리뷰를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_^

파란여우 2005-05-1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암울한 현실에 번뇌하지 않는다는 것에 저와 다르군요.
그리고 옛손님도 거짓말을 하십니다 그려.
건강하지 않은 리뷰라니요. 이보다 더 건강하면 제 리뷰는 간판 내립니다.

oldhand 2005-05-1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 님/ 요샌 전혀 안 바쁘답니다. ^^ 야클님은 요새 술 많이 드시는것 같던데.. 건강하세요. 화추클 번개라도 한 번 오시면 저랑 일잔을.. ^_^
panda78 님/ 책 표지 땜에 저도 무슨 전쟁 스릴러 물인줄 알았습니다. 스탠리 엘린이라는 작가만 보고 그냥 읽은 것이지요. DMB의 표지는 정말 생뚱맞아요.
비츠로 님/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제가 책의 중심 줄기를 엉뚱하게 기억하고 쓴게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파란여우 님/ 아니 알라딘 리뷰의 3대 천왕님인 여우님께서 그런 소리를 하시다니요. 언제나 암울한 현실에 번뇌하시는 여우님이 주인공보다 더 멋지십니다. ^^ 저는 제 지갑의 암울한 현실에만 번뇌한다지요. -_-;

oldhand 2005-05-1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Kelly님의 리뷰를 감명깊게 읽었는데 줄거리가 기억이 나지 않으시단 말씀이십니까? 으하핫. 그래도 별은 깎지 마세요. 막 읽었을 때는 저도 별 다섯개를 주었을 듯 합니다.
 
드래건 살인사건 - 파일로 반스 미스터리 3
S.S. 반 다인 지음, 이정임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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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반 다인은 추리소설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다인은 적어도 우리 나라에선 별로 인기가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오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것은 반 다인의 시종일관 변함 없는 극명한 작품 스타일 탓일 가능성이 크다.

반 다인은 포와 도일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이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 동일하다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탐정과 그 일당들(지방 검사, 형사 부장 등)의 성격은 놀랄만큼 정형적이고 평면적이다. 그리고 모든 신경을 사건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 그리고 해결에 쏟아 붓는다. 정통파 중의 정통파라고 할만 하다. 심지어는 매 사건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불가해하고 사악한...' 어쩌고 하는 작품 속 화자인 반 다인의 클리셰 마저도 도일에 대한 오마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웃기려고 매 번 그러는것 같지도 않으니, 어찌보면 반 다인은 되게 귀여운 면이 있는것 같기도 하다.

본 작품인 <드래건 살인사건>은 <벤슨 살인사건> 이래 반 다인의 7번째 작품이자 전기 6작품과 후기 6작품으로 나뉘는 반 다인의 작품 목록 중 후기 첫 작품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지금은 구하기가 힘들어져 버린 <케닐>을 제외하고 <가든>을 먼저 읽은 나의 7번째 반 다인과의 만남이다.

반 다인 본인이 주장한 추리 소설 작가는 6편 정도의 장편이 창작의 한계라는 말을 뒷받침 하듯 평단과 독자의 평가도 후기 6작품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후기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가든 살인사건> 마저도 전반기 6작품의 평균 수준 정도에 지나지 않는 점을 볼 때 일반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반 다인의 창작 한계는 6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드래건 살인사건>은 마치 딕슨 카의 소설을 보는 듯 기괴하고 음습한 분위기와 오컬트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소설의 작가는 다름아닌 반 다인. 소설의 분위기는 "메이드 인 딕슨 카"와는 전혀 다르다. 시종일관 냉철하고 흔들리지 않는 반스가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이상 <화형 법정>같은 딕슨 카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는 결코 나올래야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드라이한 분위기가 반 다인의 특징이자 매력 아닐까.
<가든 살인사건>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살인의 동기가 너무나 빈약한 것이 불만이고, 등장 인물들의 비중이 너무 편중되어 있어서 소설의 균형이 미묘하게 깨진것 같아 조금 아쉽다. 반스의 끝없는 장광설이 사건과는 조금 겉도는 느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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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지만, 마크햄(인지 매컴인지)의 지칠줄 모르는 반스에 대한 불평과 항의는 이 정도에 이르면 독자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요소로 쓰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찌 그렇게 매번 똑같은 대사를 읊을 수 있을까! 마크햄의 불평을 보면서 나는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_-;

두번째 사족. 그래도 반 다인이 있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엘러리 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그러기에 반 다인은 이래 저래 개인적으로 내게 소중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S.S. 반 다인과 J.J. 맥은 사실 조금 심한 모방 아닌가? 반 다인이 없었다면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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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11-18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다인의 작품은 하나 밖에 못 읽어봤습니다. 테리어종 강아지가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작품이었는데... 어릴 때 읽은 거라 생각이 안 나네요. 옛손님도 엘러리 퀸을 좋아하신다니 저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군요. ^^

oldhand 2004-11-1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도 퀸 팬이셨군요? 이야아.. 반갑습니다.
테리어 종 강아지가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작품이 바로 제가 아직 읽지 못한 <케닐 살인사건>이랍니다. 어디선가 다시 나와줄 때도 됐는데 말이죠. 흑흑.

비츠로 2005-02-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아동용 팬더추리문고로 읽었는데 이번에 완역본이 나와서 저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네요... 올드핸드님의 리뷰를 쭉 읽고 있는데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oldhand 2005-02-21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비츠로님 ^^ 반다인의 소설은 선뜻 손이 가지는 않지만, 잡으면 그런대로 잘 읽히는 것 같아요. 비츠로님도 되게 바쁘신 것 같은데, 참 책을 앞에 두고 읽을 시간이 없다는것 만큼 안타까운 일도 별로 없는듯 합니다. 그리고 제 리뷰는 절대로.. 대단치 않습니다. 과찬이셔요. ^^

poirot 2005-11-04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컴의 클리셰는 웃기려고 쓴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_-

oldhand 2005-05-09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와로님 그렇죠? 역시... 웃기려고 쓴게 분명하다니까요. 그리고 그런 그의 의도는 훌륭하게도 적중하고 있지요. -_-;;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7 - 완결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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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매이션 한 편 보지 못한 사람은 드물것이다.
<미래소년 코난>을 끝으로 TV를 탈출한 하야오 감독의 작품 행적은 일본의 문화 콘텐츠들이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본국인 일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음성적인 경로를 통해 수많은 매니아들을 양산해왔다.

이렇듯 애니매이션에서는 세계적으로도 크게 인정을 받을만큼 일가를 이룬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그린 유일한 출판만화가 본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TV 만화를 그만둔 후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1984년 처음으로 발표한 극장판 애니매이션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던걸로 미루어 "나우시카"는 작가에게 아주 각별한 의미를 갖는 존재이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리고 애니와 만화, 두 작품은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작품이다.

애니매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목록에서 초기작에 해당하며, 그의 초기 작품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인물의 설정과 모든 시놉시스들이 동일한 만화 <나우시카>는 10년이 넘는 연재기간이 말해 주듯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행로가 오롯이 담겨 있는 연대기적 작품인 것이다.

애니매이션은 모두 7권으로 구성된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초반 20%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애니매이션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인쇄매체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오랜 기간 연재를 하면서(중단과 연재를 무수히 반복했다고 한다) 변해가는 작가의 자연관과 미래관 등이 선명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만화 <나우시카>는 극장판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보여주었던 순수한 낙관주의보다 <원령공주>의 체념적이고 다소 비관적인 운명론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만화영화에서 신인류의 희망이자 구원자로서의 영웅이었던 나우시카는 비극적 신화의 구원받지 못할 불우한 영웅으로 그려진다.

애니매이션에서 아름답고 정갈한 색채로 덧입혀져있던 바람계곡은 거칠고 뭉툭한 연필화에 의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만화 <나우시카>는 결코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의 절망과 좌절, 끝없는 전쟁의 참혹함과 덧없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이에 대비되는 자연의 위대한 능력에 대한 진지한 묵시록이다.

그럼 인간은?
도태와 소멸만이 구원이고, 죽음과 희생만이 미래일 뿐인, 결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p.s. 불의의 사고로 책을 분실하고 나서 절판 상태의 이 책을 두고 시름시름 앓다가 재판이 나온김에 눈 딱감고 다시 샀더니, 이런!! 책값이 권당 1000원이나 올랐다. 바뀐것도 없는데. 소중한 책은 잘 간수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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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4-11-0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믹스판이 애니매이션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예전 어릴적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자연을 보호하자"라는 구호가 이제는 정말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읽고 나면 좀 마음이 우울해지는 만화이긴 합니다. 여우님의 제 글에 대한 평가가 저를 화끈거리게 하네요. 과찬이십니다.

날개 2004-11-0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유명한 이 작품을 아직도 못봤습니다..ㅡ.ㅜ 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넘넘 보고 싶어지는군요..

oldhand 2004-11-0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개인적으로 아주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애니매이션을 보는 듯한 구도의 장면들은 역시 이 작가가 미야자키 하야오 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만화지만 왠지 만화영화같은 장면들..) 날개님도 기회가 되시면 좋은 감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개인차이는 있겠지만요.

야클 2004-11-09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역시 리뷰高手의 역량이 느껴지는 古手님의 글이군요. 전에 국내에 개봉되기 한참전에 비됴가게 아가씨가 복사해준 비디오로 봤었는데 <원령공주>보다 재미있었다는 기억밖에 안나네요.

oldhand 2004-11-0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헛. 高手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진짜 고수분들이 보시면 웃겠습니다. 대개 영상매체보다는 인쇄매체가 주는 감동에 약한 편이라 만화 <나우시카>가 더 재밌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네요. 애니든, 코믹스든 명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얀마녀 2004-11-0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강력한 뽐뿌질... ^^

oldhand 2004-11-09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마녀님. 질러버리세욧. >_<

미완성 2004-11-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진작에 해뒀는데...헤. 전 애니메이션 보고도 좀 놀랐었어요. 하야오의 초기작이라고는 하는데 이후의 작품들과는 너무나 색채가 달라서, '헉'하면서 봤었는데.
아, 아르미안의 네딸들 다 모은 다음 이 책도 생각해봐야겠군요. *.*

oldhand 2004-11-1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좀 다르긴 하네요. 그러고 보면 <토토로>나 <마녀 배달부 키키>류의 이야기도 있고 <원령 공주>, <나우시카>류의 이야기도 있고, 그 중간쯤 되는 <라퓨타>도 있구요. 만화는 애니보다 훨씬 '하드고어'하답니다. ^_^
 
플레치 - P
그레고리 맥도널드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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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치>는 1970년대의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이다.
1929년, 1939년, 1949년, 약속이라도 한 듯이 10년의 차이를 두고 세상에 나타난 하드보일드의 삼위일체 해미트,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에 비하면 지극히 현대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플레치는 자유 분방하고 신문사 내부의 규율을 우습게 여기는 천방지축이지만 또 한 능력있고 현장감 있는 특종을 종종 터뜨리는 민완 기자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직업적인 사립 탐정인 선배들과 차이가 있다. 말로나 아처가 사건을 처리하면서 보여주는 어떤 면에서 보면 이타적이기까지 한 모습들은 플레치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다. 플레치는 루 아처보다 경박하며 아치 굿윈 보다 위악적이다. 사건의 당사자들과 주변인들에 대해 결코 연민의 정을 갖지 않는 이 친구는 오직 자신이 쓸 특종을 위해 몸을 던진다. 이 현대적인 캐릭터가 3-40년대의 탐정들과 갖는 이러한 간극은 소설을 신선하고 발랄하게 만들지만 대신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게 한다. 그리고 작가는 결코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들처럼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 소설을 쓴 것도 아니다.

경쾌한 대화체는 소설을 속도감 있게 만들고, 독자들에게는 촌철살인의 묘미를 선사한다. 결말을 향해 치달으며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해 버리는(그러면서 한 몫 두둑히 챙기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70년대 이 후의 현대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의 미덕은 거기까지이다. 펄프 픽션으로는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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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1-0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어보니 구미가 당기는 책이군요. 기억해뒀다가 읽어봐야겠네요.

oldhand 2004-11-0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야클님 오셨군요. ^_^


재미있게 시간 떼우기할만한 책, 술술 잘 넘어가는 책 정도의 기대만 갖고 보시면 만족하실듯.
 
사자왕 형제의 모험 - 개정2판 창비아동문고 4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창비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1983년 9월 어느 날,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부모님이 주신 '생일 축하금'을 들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일단 김형배의 <20세기 기사단> 신간을 한권 고르고 '만화책만 살 순 없으니 교양 서적도 하나 골라야지'라는 마음으로 서가를 훑어 보던 중 특이한 제목의 책과 조우한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사자왕 리처드같은 기사들이 나오는 중세 모험물인가? 아더왕 전설에 푹 빠져서 비록 아동판들이었지만 이 판본 저 판본 구해 보았던 4~5학년 시절 생각도 나고 해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동용 동화치고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늦도록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단숨에 읽어 버리고 말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권말 해설을 통해 이 책의 작가가 바로 그 유명한 '말괄량이 삐삐'(80년대 초반 TV에서 방영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지 않은가!)의 저자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여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아.. 고수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책의 여운으로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나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누나에게까지 이 책을 추천해 주었고 누나 역시 재미있어 하며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20년이 넘었지만 이 책은 여전히 나의 책장에 소중하게 꽂혀 있다.

<긴양말을 신은 삐삐>, <개구쟁이 에밀>, <소년 탐정 칼레>,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등 린드그렌 여사의 책들은 하나같이 현대 아동 문학의 정수라 할수 있는 명작들이지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여사의 작품목록에서도 약간 독특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바로 '환타지 동화'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연쇄적으로 열려 있는 색다른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

형 '요나탄'과 주인공인 '나 - 스코르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이 책의 초반부는 아동 소설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들이 몸담았던 현실은 고루하고 쓸쓸했다. 가난한 집의 아들이었지만 모범생이자 특출한 학생이었던 형 요나탄은 화재사고에서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대신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목숨처럼 믿고 의지하던 형이 죽은 후 항상 몸이 아파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스코르빤은 마침내 찾아온 지난했던 병고의 끝에서 의연하다.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오히려 기뻐하며 받아 들이는 스코르빤이 홀로 세상에 남게 된 어머니를 걱정하는 장면은 지금 다시 읽어도 가슴 뭉클하다.

슬프고 힘들었던 현세를 떠난 형제는 중세 시대와 흡사한 사후 세계 낭기열라에서 다시 만나고, 낭기열라를 배경으로 벌이는 두 형제들의 목숨을 건 모험과 활극이 펼쳐진다.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사후 세계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악이 존재하며 배신과 음모, 우정과 신뢰가 뒤섞여 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과 이에 따르는 희생,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어떠한 사람이 진짜 영웅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등의 묵직한 주제는 이 소설을 성인 독자들이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책으로 만든다.

내 인생의 소중한 책을 꼽는 다면 그 중 한 자리를 나는 주저없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할애 할 것이다.

아 참, 정갈하고도 아름다운 삽화는 이 책의 백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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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축하금을 들고 서점에 간 어린이......
제 딸이 그렇게 자라주면 좋으련만......

oldhand 2004-10-29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자 새끼는 고양이가 되지 않는 법이랍니다. 로드무비님의 도러임에랴..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더더군다나 주하는 너무 너무 예뻐서.. 미모로 다 해결할듯. >_<

인터라겐 2007-04-09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조카 학급문고로 제출하라고 해서요... 주문하다가 반갑게 인사드립고 갑니다.

oldhand 2007-04-1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학급문고란게 아직도 있군요. 어릴적에 학급문고로 내버린 아까운 책들이 왜그리 많은지.. 지금 같으면 당연히 그냥 새책을 한권 사서 낼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