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찌들과 알콩달콩 썼던 것을 들여다보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과 지낸걸 어떻게 썼나 궁금해 육아일기로 검색을 해봤다.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걸 보다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가 눈에 띄었다.

정감 있는 그림과 정갈한 글씨로 쓴 육아일기만큼 맘에 들었던 것은 할머니가 결혼하기 전 남편과 주고 받은 편지였다. 길게 주고 받은 편지는 아니었지만 나를 소개하는 표를 만들고 자신의 특징을 적어 예비 신랑감에 주는 대목은 대범하면서 멋있었다. 그때가 60여년 전이었던걸 생각하면 대범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남편 역시 할머니가 보셨던 것처럼 느끼한 구석 없이 냉정한 듯 하지만 결혼을 비극적으로 만들만한 그 당시 흔한 남자는 아니었던지 곧이어 자기 소개표를 보냈다. 남편감에 대해 할머니의 아버지가 '궁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흔하게 살아온 사람보다는 낫단다'며 사람됨에 대해 더 믿음을 갖은 면도 맘에 들었다. 6.25 당시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살았지만 가난한 남편과 결혼해 식구들 밥 먹일 때가 지금도 그립다는 할머니의 얘기를 읽다보면 맘이 참 착해진다.

 

 글쓰기와 더불어 출판 기획 책을 찾아보다 무슨천재 누구의 이야기를 읽다가 나는 절대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 아닌 다짐을 했는데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는 기억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다짐과 확신, 열정의 문장은 결기만으로 대단해서 세세한 결이 조잡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만-그게 꼭 성공한 인생이거나 멋있는게 아니더라도- 그저 들여다보는걸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 자신을 대변하는 이야기가 있거나 아차 싶은 것, 그 자체로 아름다운게 들어있어야 한다.

 

 육아 일기에 이어 양육서도 살펴봤다. 다중지능, 애착 등 육아지침과 방법론이 아니라 양육자의 맘과 연결된 책이 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그런 책이 있었다. 가끔 부모 자격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다녔는데 엄마 학교를 열면서 양육 Q&A 를 통해 엄마들과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펴낸 '엄마 자격증이 필요해요'라는 책이 그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모성보다는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생태적 감수성으로 아이를 키우기.

아이가 협조하게 하는 방법으로 내기와 놀이.

고집은 키워주되 짜증은 달래고 떼는 잡아야 한다. 

(아이가 대답을 안 한다고 답답해서 아이를 때렸다는 엄마에게) 대답 안 하면 왜 그런지 아이를 들여다봐야지. 그걸 살피는게 엄마 역할이다. 그러고 나서 엄마가 무얼 물으면 일단 대답부터 하라고 고운 말로 당부하는건 어떨까. 매는 아이를 비굴하게 만들어요.

어른은 독을 깨도 괜찮고 아이는 접시를 깨도 야단맞는다.

왜 이렇게 다그치고 화가 날까요, 그건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할까' 하는 불안감 때문.

욕심내지 않고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에게 '너는 할 일 다 했어.', '충분해'라고 말했다. 

 

 '마음 다스리기 혹은 마음 공부' 같은 책을 읽을 당시에는 맘에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맘이 지옥처럼 변해버린다. 의기양양하게 자기기만 타령했던 나처럼. 이 책 역시 읽을 때는 남다른 여유와 다정함, 온화함에 감화되지만 과연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도 그렇지만 사람이 바뀌기는 너무 어렵다. 우선은 아이한테 화를 내지 않고 참다가 4일밖에 못참았다고 탓하지 말고 4일이나 참고 대단하다고 칭찬하라는 말부터 시작해야할 듯하다. 칭찬, 긍정의 힘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아침에 늦잠을 잔 조카가 인상을 잔뜩 쓰며 식탁에 앉았다. 뭔 말을 할까 하다가 꾸욱 참고, 또 참았다. 기분이 풀렸는지 재잘재잘대는 조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아들, 아침에 왜 그렇게 짜증났어?

- 잠이 덜 깨서.

 

 너무 단순하다. 잠이 덜 깨서, 아침에 좀 추워서, 입은 옷이 맘에 안 들어서.

그런데 내 반응은 '왜 잠을 빨리 못 깨', '추우면 옷을 입어야지', '그럼 저녁에 미리 옷을 준비해놔'였다.

진짜 자격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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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1-0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쪽이네 이야기는 그냥 읽어도 참 재미있어요. 반쪽이가 쓴 여행기도 다 찾아 읽었지요.
엄마학교 책은 읽고서 급기야 서울까지 가서 엄마학교를 다니는 열성까지 보였답니다 ㅋㅋ
저도 지금 Arch님처럼 결혼하기 전부터 육아서에 관심이 많아 찾아읽곤 했어요. 의외로 육아서에서 육아에 대한 스킬만 배우는게 아니라는 걸 알고 좀 놀랐었지요.

Arch 2013-11-06 15:23   좋아요 0 | URL
아이를 낳지 않아도 육아서에 관심 있는 처자들이 꽤 있는걸로 압니다. 제 경우만 놓고보면 공감하는 능력이 좀 떨어져서 책을 통해서라도 좀 더 이해하고 생각하려고 자꾸 읽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다고 확 공감하는건 아니지만. 뉘우치고 4일 지나고 또 그러고... 이런 사이클.
 

 커피는 백번도 탈 수 있다. 이제껏 안 탄 것도 아니고 궁시렁대거나 혹은 흔쾌히 커피를 탔다. 반응은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긋지긋할 정도였던 건 커피를 또 타서가 아니라 그가 자기 맘대로 내 할일을 정해버리는 폭력적인 방식 때문이었다. 마침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늦게 퇴근하는 것도, 불편한 것들도 다 감수했다. 아니, 눈 감아버렸다. 좋은 점만 보려고 했고 그러다보니 정말 좋은 점만 보였다. 하지만 그와는 그렇지 못했다. 속내가 확연한데 같이 맞장구 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치졸하고 교활하게 압력을 가하는 식으로 본심을 드러냈다.

 

 작년 EIDF의 '그녀 앞의 세상'을 봤다. 인도 여성에게 경제력과 평등을 안겨주는 몇 안 되는 분야인 미인 산업과 두르가 와히니라는 힌두 극우단체를 대비해서 보여줬다. 다큐에서 한 여성은 '여자는 태어난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선택과 요구에 굴복하며 자기 자신을 잃는다. 언제든 억압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인 미인대회에 출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beautiful hot legs를 뽑겠다며 미인대회 출전 여성들에게 두건을 씌우고 걷게 하는 대목에선 망설인다. '꿈을 이루는 대가로 무엇을 희생해야 할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의 존엄과 도덕성, 가치관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럴 가치가 있을까'

 

 비단 생물학적인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고민은 아닐 것이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예의라는 이름으로 빈번하게 좋은게 좋은걸로 넘기는 분위기와 학습된 싹싹함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여성에게는 그 강도와 집요함이 남다르다. 내 외모를 평가하고, 살이 쪘는지 확인해주고, 원래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지 그렇다면 왜 안하는지, 왜 좀 더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그'만 그러는 게 아니다. 소위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몇몇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분통이 터져서 그분들과 같이 있는 여성들에게 물으면 한결 같은 대답이 나온다. '말만 저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누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나. 왜 아무렇지도 않게, 일말의 조심성도 없이 저딴 얘기들을 하는건데.

 

 답답함과 무력감이 배어나왔다. 당장 월요일날 출근할걸 생각하니 숨이 콱 막힌다. 나의 문제는 '커피 타기 싫은 별난 여자'의 문제로 좁혀져 나는 도리어 내가 느끼고 경험한 얘기를 '변명'해야만 한다. 자기기만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주문이었다.

 

 결국 선택해야 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편협하고 옹졸한 나를 대변하는건지 정당한지는 내 행동이 결정할 것이다. 아직은 이 일을 좀 더 하고 싶다. 나만 몰랐지 이곳 분위기가 원래 이랬다니 내가 이곳에 맞춰야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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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3-10-24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는 커피가 아니지요.
사소하고 귀찮은 일을 누군가에게 시키는 건 정말 나쁜 행동같아요.
저는 팀장이 몇번이나 팀에서 종이컵 대신 개인컵을 사용하자고 했는데 반대했어요.
뻔하거든요.
컵 딱는게 뭐 힘들다고 하면서 막내 여직원들한테 컵 딱는거 시킬게...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힘든게 지구보다 중요한 인간중심주의잔가봐요 --;;
얼마전엔 가습기를 팀별로 설치 하려고 했어요..
전 또 반대했어요.. 그거 관리하는는거 뭐 힘들다고 하면서 또 여직원들 시킬거거든요 =.=
(이 사람 부인이 대학때 여학생회장 했다는 걸 가끔 생각하면 한숨나와요)

그래도 내가 거기서 배울게 있고 얻을게 있으면 가능한 피하면서 얻어나오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때문에 손해볼 필요는 없으니까요..
 

 산을 타지 않는다. 농로와 옛길을 걸을 뿐이다. 헌데 모두들 화려한 등산복 차림이다. 모두들 입을 맞추어 등산복을 입고 나오기로 했나보다. 스웨터에 청바지 차림인 내가 겸연쩍어졌다. 내 옷차림이 거슬렸다면 시간을 내서 등산복을 사러 매장을 기웃거려야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등산화를 신는다고 더 잘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등산복의 높은 가격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혹은 높은 가격에 비례하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됐다. 옷가격은 이만큼이나 하는데 내가 생각한 범위를 벗어난 가격에 신경쓰느라 사놓고 후회하면 어쩌나.

 

 이렇게 살기로 했으면 좀 더 쿨하거나 대범하게 '화려한 등산복'을 무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되나. 살 수 없는 걸 두고 사지 않기로 했다며 자기기만을 저지르며 애써 모른척 할 뿐.

 

 

 

등산복아, 기다려!

 

 요즘 왠지 미운 사람이 생겨 틈만 나면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 얘기를 한다. 자칭 날 아끼는 분께서 자꾸 내 말을 막지 않았다면 말 속에서 말이 됐을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람 앞에서 미운 맘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거나 나도 모르게 격한 반응이 나오면 곤란하겠단 판단이 들었다. 곤란한 건 여태 살아오면서 저지른 과오로 충분했다. 해서 '나는 너에게 아무 감정 없다. 너는 내게 의미가 없다. 너는 나를 기분 나쁠만한 존재도 되지 못한다'란 자기기만을 하고 있다.

 

 자기기만의 순기능일까. 일정 정도 효과가 있다. 그 사람이 싫은 얘기를 하고 나를 짖누르려고 자기가 갖고 있는 교활한 에너지를 포장해서 뻔뻔하게 굴어도 그런갑다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 힘은 내가 만들어낸 건 아니다. 

 

 그 사람과 한판 붙었다기보다는 어이없게 당하고 나면 자기 일도 바쁜데 한잔 하면서 풀자고 하는 직장 언니와 가끔 흐린 날도 있지만 다음 날은 맑을거라고 해주는 동료와 이동하면서 나보다 더 열을 내며 그 사람을 씹어주는, 평소 때는 이런 모습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어른'이 있으니까. 이런 자기기만쯤은.

 

 그러고보니 등산복도 크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뭐든 좀 심각해지는 경향이라 그런 거라고, 옷의 기능이 아니라 '남들처럼'이 목적이라면 좀 더 저렴한걸 사도 된다고, 차려입은 듯한 등산복엔 취미없다는 식의 자기기만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될까. 기웃거리기만 한 게 아니라 굳이 들어가 살짝 다리를 넣어본 등산 바지는 입을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가볍고 편했다. 등산화는 튼실해서 자갈밭에서도 끄떡없이 발목을 보호해줄 것만 같았다.

 

 자기기만으로도 어찌해볼 수 없어 길을 걷지 말아야하나까지 고민중이란건 아니고 그냥 이런 소재로도 글까지 쓰는 나도 참, 싶다.

자기만족이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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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0-11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말이면 가까운 산에 가거든요. 사실 말이 좋아 산이지 등산이라기 보다는 산책 코스에 가까워요. 전혀 힘들지도 않고 왕복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으니 말이죠. 그래도 그거 걸었다고 다녀오면 다리가 뻐근한 게 기분이 좋아요.

아치님의 이 글을 읽고나니 그 때 산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등산복을 입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네요. 뭐 어쨌든 저는 꿋꿋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갑니다. ㅎㅎ

숲노래 2013-10-1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옷을 입든 어느 신을 신든
모두 즐겁게 숲과 들과 하늘과 바람과 나무를
곱게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무해한모리군 2013-10-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상사고 그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어요. 아마 티나겠죠? 이것도 좀 힘들어요.

저는 10년에 걸쳐서 조금씩 등산장비를 구비해서 제법있어요. 그런걸 만드는 회사에 다녔는데, 정말 원가를 알면 살 수가 없긴해요.. 그래도 좋아하는 거니까 무지 비싼 컵도 가지고 있어요. 내 하루치의 노동이구나 생각하며 흐뭇하게 봐요. 그런데 요즘은 산에 가질 못해서 장비들이 울어요 ㅠ.ㅠ 아치 부러워요~

좀 다른 얘긴데 매일매일 신앞에 단독자처럼 살 수는 없는거니까 나는 모순덩어리 적당덩어리구나 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도 필요한거 같아요.

Arch 2013-10-11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 씨가 됐다.
그 미운 사람이 이젠 커피 심부름을 꼭 하라고, 누가 오든 커피를 타라고 한다.
이건 자기기만으로 어찌 해볼 수 없는 수준. 액션이 있어야하고 맘에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내키지 않는데도 웃어야 한다.
여긴 그런 곳이 아닌줄 알았는데 아, 지긋지긋해서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한다.
 

* 6시가 지난 후 사무실에 앉아 남은 일들을 쓱쓱 하는 것.

 

정시 퇴근을 넘어 칼퇴근을 사명처럼 여기며 직장 생활을 했는데 왠일인지 이 일은 나의 재량권이 더 많다보니까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자꾸 생긴다.

 철학적인 자기계발서 인생학교에 보면 자신을 잘 파악해야  일을 하면서 즐겁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작은 선택이라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 같다. 시키는 일보다는 내가 알아서 하려는, 인간 자체가 창의적이지 않지만 창의적이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게 일에 많이 반영되는게 아닌가 싶다.

 물론 우편물 발송부터 모든 일이 내 뜻과 척척 맞지는 않다. 하지만 역시 같은 시리즈인 인생학교-세상편에 보면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어 했고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니까 그쯤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거다. 일종의 자기최면. 지금은 최면이 일찍 깨지 않기를 바랄 뿐.

 

*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란 삶을 묵묵히 살아나가는 사람들

 

 책에서만 봤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산다는 건 내 기준으로는 상식적이지 않고, 내가 생각지 못한 감성을 갖는다거나 일을 하는 것, 하찮은 틀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것은 어떤 스타일이기도 하고 묵묵히 10년동안 한 길을 걸으며 자기 신념을 설득할 수 있는 내력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투자하는 것 말고 우리 제대로 농사 지으니까 정부 보조금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란, 이를테면 농촌에 횡횡하는 보조금에 대해 맨땅에 펀드 이장은 이런 말을 한다.

 몇차례의 논의는 항상 "그냥 이대로 가자"로 정의되었다. 그 망할 놈의 '정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는 '쪽팔리잖아.'가 개인적인 이유였다.

 책에서만 접했던 멋진 분들을 직접 대하고 자꾸 묻고 감탄한다. 처음에는 나대로 생각하다 어느 순간 그 말의 뜻을 명백하게 깨닫고 아차 싶은 순간이 많아지는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도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어느 날 k에게 물었다.

- 아무리 봐도 저는 너무 눈치가 없는 것 같아요. 문서도 잘 못만들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 한 루프만 돌면 익숙해질거야.

- 한번 돌고 두번 돌고 계속 그래도 안 되면요.

- 그럼 (널 뽑은) 내 눈이 잘못 됐나보지.

- 그래도 계속 못하면 어떡하죠.

- 금치산자인갑다, 해야지 어쩌겠어.

 

 재미있는 사람들은 아치에게 꿈과 유머를 준다. 얼씨구

 

* 까미, 누룽지와 걷는 마을 길

 어깨끈만 들어올리면 나가는 줄 알고 신나서 어쩔줄 모르는 우리집 강아지 까미와 누룽지

이 녀석들은 다른 사람들이 키우다 보낸 강아지들이다. 까미는 전에 살던 집에서부터 같이 했고 누룽지는 이곳에 온지 한달 조금 넘었다. 누룽지의 원래 이름은 미키다. 지난번 고원길을 걸을 때 미키라는 이름이 녀석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8살 먹은 아이가 누룽지란 이름을 붙여줬다.

 까미랑 생활할 때는 모든 강아지가 이렇게 독립적이고 사람을 살짝 귀찮아하는데다 꽤나 제멋대로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누룽지는 너무 순하고 착해빠졌다. 어제는 눈꼽이 자꾸 끼고 물 먹을 때 입 주위가 다 젖어서 털을 깎아줬더니 무릎 사이에서 축 늘어져 있는걸 몇번 올려서 다시 깎고 깎고 했다. 깎기는 싫은데 이렇다할 거부도 안 하고 최고의 거부 의사가 축 늘어져있기라니, 흡

 새침한 까미가 자기 배를 드러내며 인간이 쓰다듬길 기다리는 반면 누룽지는 먼저 다가와 핥아주고 같이 놀자고 한다. 까미는 이에 질세라 부지런히 가족들 아는체를 해주는 중이다.

 

*  기대하게 만드는 글쟁이들의 신간 소식

 가만 보면 내 페이퍼는 뭔가에 꽂혀 페이퍼를 쓰고 싶은데 왠지 글의 분량을 채우고 싶은 욕심에 이것저것 끼워넣다 이번처럼 잡다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번에 꽂힌 건 바로 엄기호. 

엄기호는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통해 청춘세대담론은 넘쳐나지만 정말 청춘에 대해 직접 얘기하지 않은 답답함을 조금 해갈시켜줬다. 이번에는 교육의 예민한 속내를 툭 털어놓는다. 교육 이야기와 과외, 학교폭력은 넘쳐나지만 정작 교사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 그 역할을 엄기호가 맡았다.

 사람의 재능과 스타일이 제각각이듯 글 역시 마찬가지인데 엄기호의 글은 항상 기대 수준을 만족시켜준다. 그런 저자가 몇 있다. 강준만, 정희진, 정혜신, 김두식. 그리고 또 누가 있지.

 내가 믿고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들쑤시고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글. 고민한다는 자각으로 만족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걸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

 

7시 막차는 떠났다.

정해진 시간에 떠나는 시골버스보다 더 슬픈 건 사무실에서 뭐 없을까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다 페이퍼를 쓰는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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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 중에 직원 협동조합이란게 있다. 협동조합 형식을 취하지만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형태이다. 협동조합의 자발성을 추구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 고용 안전성을 확보하는 취지라는데 이게 참 묘하다. 근로의 주체이면서 고용의 객체인 형태로 일을 하는 아이러니. 자발적인 협동조합에서 노동법의 노동3권을 주장하는게 어렵기 때문에 이 둘을 합친거라고 하는데 자발성도, 노동권도 보장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근로기준법은 최소한의 권익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 노동의 사각 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법이지만 자영업자나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특히 이곳 농촌에서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어떤 분은 농촌에선 퇴근이 없다고 했는데 실제 그랬다. 이 뜨거운 날에도 밖에 나가서 밭일을 하는 분들 앞에서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주5일 근무 등을 얘기하는건 좀 겸연쩍다. 같은 일을 하는 모임에서 사람들이 여름 휴가 얘기를 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농사 짓는 분들을 더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얘기하는게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란 의문을 품었다. 우선 일하는 사람들이 일할 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는데 동의하면서도 좀 더 헌신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는걸 바란다.

 

  큰 소명의식이 아니라 책에서 본 것처럼, 신나고 다르게 살고 싶은 바람에서 시작한 일치고 지금 일이 무척 재미있다.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잘하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이곳에서 내는 잡지 취재기자로 인터뷰이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다음날 그분은 고추를 따러간다고 했다. 새벽부터 고추를 따야하나, 잠깐 둘러본 고추밭의 풀은 그렇다치고 살짝 발만 들였는데도 성난 모기들이 우왁스럽게 물어뜯으니 엄두가 안 났다. 그날 내로 마무리지어야할 일도 있었다. 도와드려야하나, 내 일을 해도 되나. 어정쩡하게 있는데 그분이 말씀하셨다. 자신이 편하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그분이 땀내 풀풀 날리며 일하고 있을 때 시원한 오미자차를 먹으며 원고를 썼다.

 

 점심을 차리며 호박으로 나물을 했다.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밥을 달게 먹었다.

 

 그날 그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는바가 많았지만 그 중 가장 기억나는건 바로 '사명감으로 일하지 말라는 것. 내가 하면 된다는 것이 어느 순간 내가 다 한다로 바뀌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추구하거나 우리가 바라는 꿈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앞으로 나가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고 안달내면 일이 될까. 느리지만 지치지 않게 가는 길. 조바심 내고 다른 사람을 채근해선 안 될 일이다. 변화는 그렇게 조금씩 일어난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맘이 무진장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해 보여  대체 당신은 바라는 것도 없냐고 (분노와 열등감에 휩싸여서)물었더니 역시나 평온한 얼굴로 이런다.

- 풀이 안 났으면 좋겠어.

 아니, 풀은 불가항력이잖아요.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많은 불가항력들을 바랐는지 가슴이 찌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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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3-10-0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맞아요, 그 사명감으로 일하는 이들 때문에 주변에서 얼마나 피로감을 자주 느끼는지, 당사자들은 모른다는 게 함정.

Arch 2013-10-07 14: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유형이랑 좀 비슷해서 엄청 찌릿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