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잠들던 아기가 잠투정을 하는 사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폭풍 페이퍼 쓰기를 하고 있다.

 

 아기랑 함께 외출을 하면 사람들은 아기를 반긴다. 아기가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고 예쁨을 받으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하지만 간혹 어떻게 얘기해야할지 곤란할 때가 있다.

 

 한참 잘 놀던 아기가 밥 먹을 시간이어서 밥을 먹고 있었다. 저만치에서 자기 일을 하던 분이 일이 얼추 끝났는지 아기를 보려고 다가왔다. 다가와서 밥 먹는 게 보이면 좀 있다 오던가 그냥 보고 가면 되는데 손주 사진 있는데 보여주겠다면서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핸드폰을 한번도 빨아보지 못한 아기는 우유를 먹다가 맘이 조급해져 자꾸 해찰을 한다. 그래서 '아기가 해찰하니까 밥 다 먹고 보여주면 안 될까요.' 라고 하면 서운해 한다. 어쩌라고.

 

 베이비 마사지 할 때는 한술 더 떴다. 요즘 한창 기어다니느라 마사지 하는 도중 선생님 근처에서 배회하던 아기를 선생님이 잡고서 마사지를 했다. 미리 마사지를 한다고 얘기했고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배 마사지 한다며 기저귀를 풀고 몸통을 한다며 옷을 다 벗겨서 마사지를 하는 대목에서는 당황했다. 인형 아기로 시범을 보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아기가 괜찮은 것 같아 두고 봤는데 나중에는 서렵게 울었다. 사람이 많이 있는건 아니었고 둥글게 둘러앉은 정도였지만 느닷없이 탈의하고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고 마사지를 받는게 너무 이상했다.

 

 아기에게 인격이 있고 아기를 인격적이고 상식적으로 대해야 한다는건 '상식'이지만 대부분 자기 귀여움이나 흥미에 따라 아기를 대한다. 아기를 낳고 얼마 안 돼 어떻게 아기를 돌봐야할지 몰라 '베이비 위스퍼'를 봤었다. 규칙에 따라 식사-놀이-수면 패턴으로 아기를 돌보진 못했지만 한가지 기억에 남는건 있다. 그건 바로 아기를 인격적이고 상식적으로 대하란 것. 그래서 아기를 안고 기저귀를 갈 때 항상 미리 말한다. 어른들은 아기가 무슨 말을 알아듣겠냐고 하는데 미리 연습하는거라고 보면 된다. 너는 내가 낳았으니까, 혹은 너는 내 자식이니까 이래야된다가 아니라 미리 묻고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말이다.

 

 물론 나도 급할 때는 설명하고 눈을 보면서 하나하나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엄밀함을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좀 조심스러울 수는 없을까. 마사지를 받은 저녁, 아기는 한밤중에 흐느끼며 울었다. 엄마가 괜한걸 배운다고 아기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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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를 데리고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유모차를 끌고 가기에는 먼 길이라 신랑이 잠깐 짬을 내서 태워다줬다.

수업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어 나중에 전화로 뭐라 해야겠다 했는데

실무적인 준비가 전혀 안 된 실무자가 수업 말미에 나타났다.

수업 활성화 차원의 질문을 하더니 나보고 어떻게 왔는지 묻는다.

신랑이 차로 태워다줬다고 했더니

- 남편분이 참 훌륭하시네요. 시집 잘 가셨어요.

라고 한다. 에?

이 사람이, 그건 훌륭한 게 아니라 다정한 것, 자상한거야.

아기 데리고 외출하는 아내 차 태워주는 것 정도로 훌륭하다니. 말이야 막걸리야.

분위기상 위 내용은 말하지 못했는데 옆에 있던 할머니가

- 요샌 그렇게 안 하면 장가 못가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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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갈리아를 접하면서 그동안 나만 고민한다고 생각하고, 책에서만 봤던 일들을 같이 나눌 수 있고 공감하고 전복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물론 재미만 있는건 아니다. 아프고 속상하다. 하지만 꾹 눌러 참고 있던걸 상상하고 비트니 신난다. 그리고 점점 더 참을 수 없어진다. 강남역 여성혐오 범죄, 소라넷 사태 공론화, 여러 가수들의 여혐 가사 논란 등의 이슈에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고나니 미디어나 하다못해 라디오의 사소한 멘트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여자의 성기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에는 '실좆이나 6.9'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철없는 남자 프레임은 '공감할 필요가 없고 철이 안 들어도 된다'는 권력의 위계 문제로, 처녀막 어쩌고는 '처녀막이 있기는해? 처녀막이 뭐냐면이란 우먼플리인'으로. 섹스의 지난한 이야기들은 조근조근 '거참 이상하다. 내 욕망은 그렇지 않은데'로. 배운걸 써먹지 못하면 아치가 아니니까 언제 실력발휘를 하나 기다리고 있었다. 

 

 얼큰한 술자리를 빙자해 몇몇 남자들이 야한 얘기를 했다. 그것도 다른 모임의 자기들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여자들(A)품평. 지들도 늙었으면서 A랑 놀면 우리가 자원봉사 한다는 둥 어쩌고 저쩌고. 가만히 듣다 언제 껴들어야되나 낌새를 살피는데 한남 자가 말을 했다.

 

- A는 디펜트 그런거 입지 않나? 막 새고?

지들끼리 까르르. 그래 이때다. 뭘 말해야지. 어떻게 한방을 먹이지.

 

- 아저씨 제가 한마디만 해도 돼요?

- (흥미를 보이며) 해봐요.

- 그러는 아저씨는 서요?

웃던 아저씨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뭐라고 할지 궁리를 한다.

- 서긴 서는데 금방 죽지 (지들끼리만 웃겨 죽는다.) 넣으면 나올 때 쫙 조여야 하는데 그냥 쓱 빠지지.

- 왜 그러는줄 알아요?

(흥미진진한 얼굴, 나를 보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못생겼다.)

- 자지가 작아서 그래요. 자지가 크면 빠질 일이 있나. 그런걸 실자지라고 해요.

진짜 아무 말도 안 하고 느닷없이 건배를 하네, 안주가 더 있어야 하네 어쩌네 한다.

 

 또 다른 한방

 

 평소에 철없고 솔직한걸 빙자해 아슬아슬한 성희롱을 하는 남자가 있다. 한번은 같이 있던 여자분이 자리를 뜨자

- 근데 쟤는 가슴 사이즈가 어떻게 되냐?

한다. 또 시작이구나 싶어 니 가슴이나 잘 챙기랬더니 대뜸

- 아치야, 너는 몇컵이냐?

한다. 집중하자. 생각을 해야해, 생각해, 똑바로 제대로 한방을 날려야 해.

- 부랄컵이다. 어쩔래.

그러는 넌 자지 크기가 얼마만 하냐.

사이즈 얘기는 안 하고 포경수술이 어쩌고 포경수술해서 성욕이 줄어들었네 어쩌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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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7-13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메갈리아 보면서 속이 다 시원했어요. 그거 보고 그렇게 거칠면 안된다 훈계하는 남자들 보고 한심하기도 했고요. 아니, 왜 진작에 여자들 품평할 때 가만있었대요? 아치 써먹어서 좋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rch 2016-07-13 23: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아!
전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말들 배우는게 좋았어요. 예쁘다, 미인이다란 말도(얼마나 들었겠냐마는) 은근 불쾌했는데 그 이유가 분명하잖아요. 지 얼굴이나 신경쓰지 지가 뭔데. 딱 이게 나오니까 뭔가 참 자유로워졌어요.
 

 오후 3시 전에 태동검사를 통해 진통 강도는 이 정도면 괜찮은데 간격이 너무 멀고 자궁문 열리는 속도가 느리다며 촉진제를 맞자고 했다. '오전에 의사가 오늘 안에 낳자고 했는데 9시간 진통 했으니까 자궁수축제를 맞는다고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란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자궁수축제인 옥시토신을 맞자마자 진통은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밀려왔다. 한숨 돌리면 다시 진통이 시작되고 또 시작됐다. 임신 초기에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고민했던 내용들이 참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능하면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진통이 언제 끝날지 모를 지금 상태라면 제왕절개나 무통분만 등 인위적인 시술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촉진제 맞으면 오늘 안에 낳나요?' '그럴 수도 있지만 진통하다 말기도 한다'고 간호사가 말했을 때는 진통하다 말고 펑펑 울고 싶었다.

 

 진통이 올 때 간호사가 코로 숨을 깊게 들이쉬고 입으로 내뱉는 호흡을 해야 아기도 밑으로 잘 내려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몸을 비틀며 진통을 견디는데 급급했다. 빨리 이 과정이 끝나서 아이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촉진제를 맞기 전 자궁문이 5cm가 열렸는데 촉진제를 맞고 나서 진통이 계속되니 골반이 아릿하고 간이 침대에 발을 쾅쾅 구를 정도로 주책 맞게 아팠다. 10cm가 열려야 분만할 수 있다고 했는데 설마 지금 버틴 시간만큼 또 견뎌야하나. 생각할 틈도 없이 진통이 계속됐다. 촉진제를 맞은지 30분쯤 지나서 간호사 한명이 내진을 했다. 그러더니 간호사들이 우르르 분만 대기실로 몰려들어와 순식간에 공간을 메웠다.

 

 분만 준비가 갑작스레 시작됐다. 내진으로 자궁문이 충분히 열렸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산도를 유지하기 위해 다리는 최대한 벌리고 진통이 시작되면 손으로 허벅지를 꽉 잡고 힘을 주라고 했다. 아기가 위험할 수 있으니 진통이 있어도 몸을 비틀면 안 되고 호흡을 끝까지 해야한다고 했다. 아기는 엄마보다 세배나 고통스럽게 나올 준비를 한다고도 했다. 고통은 극에 달하는데 여러 요구와 꾸짖음, 협박이 오고갔다. 몸을 최대한 안 움직이며 다릴 잡고 힘을 줬다. 내진을 하던 간호사가 신호를 보내자 등 뒤에서 날 받치고 있던 간호사가 내 몸을 공처럼 구부러트렸다. 이 후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분만실로 이동했다. 이 과정은 흡사 분만 어벤져스 같은 느낌을 줬다.

 

  분만대 계단 위로 올라갔다. 휑하고 썰렁한 분만대 위에 누워 얼마나 더 기다려야 아이가 나올지 생각하다 다시 진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진통이 있을 때마다 분만대 손잡이를 힘껏 당기고 다리 올리는 곳에 발을 올리고 힘껏 밀라고 했다. 호흡을 뱉지 말고 숨을 참으며 힘을 주라고 했다. 하라는대로 했지만 진통을 견디느라 몸을 비틀어 또 혼났다. 대변을 볼 때 힘주는 곳에 힘을 주고 다시 힘껏 밀고 당겼다. 신호에 맞춰 있는 힘껏 힘을 줬다. 간호사가 자신이 하겠다며 다시 분만대로 올라와 내 등 뒤에서 내 몸을 구부러뜨리며 배를 꾹 눌렀다. 몇 차례의 진통과 힘주기가 끝나고 뭔가 준비됐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아마 아기 머리가 보였나보다. 수술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타나고 다시 한 두번 더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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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3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임신 초기의 불편함과 기분 저하는 임신 중기의 '살만한 몸 상태'가 되면서 완화됐다. 임신 중기가 되면서 배가 조금씩 불러오는 것 말고 큰 변화가 없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것 말고는 신경쓸 게 하나도 없는 거뜬한 상태랄까. 정체모를 무기력함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속도 편해지고 태동을 느끼면서 맘도 많이 안정됐다. 임신 말기로 가면서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났다. 골반이 조금씩 벌어져서 걸을 때 뒤뚱거린다거나 생리할 때처럼 가끔 배가 싸하게 아팠다. 아기가 점점 밑으로 내려가서 배 아랫부분이 묵직하고 신트림이 자주 나서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예정일인 화요일이 지나도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지 않아 산부인과에서 유도분만 날을 정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부터 가진통이 시작됐다. 진짜 진통 같아 간격을 재가며 병원 갈 준비를 했는데 갑자기 진통이 뿅하고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 진통으로 아기를 낳는 건 어림도 없다는걸 알았어야 했는데 처음이라 알 수가 있나. 아기를 처음 낳는 초산인 경우 양수가 터지거나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짧아야 병원을 가란 얘기가 있다. 그만큼 자궁문이 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간헐적으로 진통을 하다 보니 진짜 진통을 해서 얼른 아이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커졌다. 금요일 밤에 살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밤새 진통이 계속되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 안 바로는 자연관장이라고 아이를 낳기 전에 몸이 미리 장을 비운다고 했다. 진통주기를 확인해보니 거의 3분대여서 진통이 그치지 않길 바라며 병원으로 갔다.

 

 

  새벽 6시, 병원에 도착했다. 잠이 덜 깬 간호사가 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위생장갑을 끼고 질을 내진하고 2cm 정도 열렸다며 입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갑작스럽고 황망해서 뭐라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분만할 때까지 이어졌다. 링겔을 맞으며 산부인과 출산 굴욕 3종세트라고 하는 제모와 관장을 했다. 나머지 하나는 회음부절개다. 30분마다 태아 심박수 체크를 하고 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며 예고도 없이 내진을 했다.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는 거라는데 질 속을 손으로 휘젓는 것 같은 통증이 둔하게 느껴졌다. 초음파 검사할 때와는 다르게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시간차를 두고 내진을 하니 민망하기도 했다. 혹시 모를 수술에 대비해서 금식을 한 터라 입은 바짝 말라가고 진통은 계속됐다.

 

 

  언제 끝날지 모를 진통은 오후 12시를 기점으로 강도를 더해갔다. 그전의 진통이 그냥 커피라면 12시 이후는 TOP? 뭐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누구는 큰 트럭이 배를 깔고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하고, 다른 누구는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아픔이었다. 저 멀리서 기척을 내며 다가오는데 두통이라면 머리를 누르고 복통이라면 배를 움켜쥘텐데 이 진통은 아련하게 다가왔다 기세등등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달까. 한번도 겪어보지 못해 낯설고 자궁 수축 때문에 오는 통증이란건 알겠는데 좀 막막했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고 신랑은 옆에서 골반과 등허리를 연신 문질러줬다. 그 전 진통이 아팠지만 견딜만 했다면 12시 이후에는 배 아래 근처에서 소용돌이치고 움찔거리며 통증이 시작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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