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를 안았는데

 아기가 엄마 옷을 잡는다는 게 살을 찝었다.

작고 통통한 손인데도 따끔했다.

아파서 인상을 쓰며 '엄마 아프잖아. 잉잉'이랬더니

아기가 입을 삐쭉거리며 울려고 하는거다.

삐죽거리는게 귀여워 요 며칠 괜히 한번씩 우는척을 했다.

울것처럼 입을 삐죽거릴 때도 있고

딴짓을 할 때도 있고 그냥 환하게 웃기도 한다. 

아기를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고

우는척 하느라 목이 아프니 그만둬야하는데

맘처럼 안 된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일정하지 않으니 감질나서 더 하고 싶다.

 

인생을 따라다니는 격언이 있다.

모두가 갈 수 있는 헬스클럽이라면 그다지 가고 싶지 않다는 (애니홀에 나왔던 대사인가)

모두가 울릴 수 있다면 나는 우는척을 하지 않는다. 엥?

 

* 아기가 잠든 후 이것저것 하다

핸드폰으로 낮동안 아기를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엄마가 내는 돼지 소리와 킁소리에 깔깔 웃는 모습

내려놓은 모빌을 집어서 입에 넣으려는 필사적인 모습

펼쳐지는 책을 이리저리 갖고 놀다 결국 입에 넣는 모습

잠든 아기를 깨워서 한참동안 놀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잠깐

낮에 집안일하고 드라마 본다고 아기랑 잘 놀아주지 않으면서 

이게 무슨?

 

* 스스럼없이 지내던 언니랑 소원해졌었다.

내딴에는 언니가 너무 스스럼없이 구는데 상처받고

언니딴에는 내가 언니가 고민하는 지점을 

무려 세번에 걸쳐 툭툭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 것에 맘 상했다. (난 기억도 못하는데)

지난번 쭈꾸미볶음 회동에서 소주 다섯병을 마시며

그동안 쌓인걸 풀었다.

나는 나만 맘 상한줄 알았지, 언니가 그런 맘인지 눈치조차 못챘다.

어제 한 김치찜이 맛있어서 좀 가져가랬더니

오는 길에 현미로 만든 백설기를 갖다준다.

김치찜이 입맛에 맞았냐고 물었더니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 말 속에는 김치찜 잘 먹어서

소주 먹으며 화해해서

전처럼 스스럼없이 잘 지내줘서

고마운거란걸 어렴풋이 느낀다.

안 보면 그만. 가족도 그런데 오다가다 알게 된 친구는 더하지.

안 보면 그만이라고 선을 그었거나

알아서 멀어진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부를 전하고 싶은 밤이다.

 

* 아 이 드라마 얘기를 하고 싶었다.

또 오해영!

서현진에 대해서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는데

이 드라마 보면서 완전 반했다.

에릭은 뭔가 갇힌 연기를 해서 별로.

특히 누구에게도 말 못한 자신만의 비밀을 탱고로 승화시킨 씬에선 정말

오랜만에 깔깔대며 웃었다.

어느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여주 성격도 좋고

억지스럽지 않은 진행과 현실적인 서현진 연기도 너무 맘에 든다.

모처럼 홀린 듯 드라마를 보고 있다.

외모주의와 다른 오해영을 '여우같은 여자' 범주로 취급하는 것

몇몇 조연급의 과도한 설정은 별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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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되기 전에 자기 자신을 OO맘이란 호칭으로 부르는 게 정말 싫었다. 아기를 낳으면서 자신은 없어지고 누구 엄마로만 호명된다니. 프로필 사진이나 자신을 나타내는 것들은 다 아기 사진이나 아기와 관련된 것으로 바뀐다. 그런 게 가당키나 한 건 둘째치고 그게 정말 본인이 원하는 삶인지 궁금했다. 내가 아이를 가진걸 알면서 주위 사람들은 압박까지는 아니어도 으례 아기 엄마가 될 여자가 받아들어야 하는 말들을 해댔다. 아기 낳는데 이렇게 저렇게 해도 돼? 아기가 좀 작아서 배가 안 나왔네보네, 혹은 아기가 커서 개월수에 비해 배가 나왔나보네 (어느 장단에 내가 춤을 춰야 돼?) 스스럼없이 태명을 따서 누구 엄마라고 할 때는 불쾌할 정도였다. 왜 나를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엄마로 규정하는데! 나는 아치인데!

 

 어느 여행기에선 한술 더 뜬다. 오랜만에(혹은 결혼하고 처음) 가족들과 떨어져 여행을 한 주부들이 가족 걱정에 여행을 즐기지 못한 것. 이를 본 비혼 여성은 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하는지 궁금해했다. 왜 결혼을 하고 나면 여자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는걸까. 혹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는 걸까.

 

 나를 온전히 지우고 누구의 엄마로만 존재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 정말 끔찍하게 느껴졌다. 물론 난 당연히 누구 엄마고 여러 역할과 정체 중 지금으로선 누구 엄마인게 정말 좋다. 하지만 그 틀에 끼워 넣어 ‘왜 엄마 역할을 안 하냐, 엄마가 그러면 안 되지’란 훈수 두는 소리를 들을 때면 반발심이 생겨 아무말이나 지껄이게 된다. 결국 OO맘을 경계한 것은 내가 OO맘의 정체로만 만족하고 그렇게 살까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는 자연스레 누구 엄마가 됐다. 엄마라는 정체성이 낯설어 가끔 아기보고 ‘이모가 해줄까’라고 할 정도로 아직도 엄마 역할이 어설프다. 여전히 OO맘이란 호칭은 안 쓰지만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충분히 느끼고 엄마인 나로 사는데 만족한다. 그때 그 여행기에서, 그 엄마들은 가족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맘 그대로를 표현했을 뿐이다. 각자의 가치관대로 사는 건 문제될 것 없지만 엄마란 이유로 어떻게 살아야하고 이렇게 해야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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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이면 그날의 마지막 우유를 먹고 스르르 잠드는 아기가 오늘은 여러 차례 깨고 악을 쓰면서 울었다. 나랑 신랑이 번갈아가며 토닥토닥하고 업고 안고 하는데 금세 잠들었다 다시 깼다. 낮에 외출해서 여러 사람을 보고 사람들이 한번씩 안은 것이 아기한테는 스트레스였나보다. 전에 친척들이 우르르 왔을 때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눈을 비비는 아기를 토닥이며 다시 우유를 줬더니 꿀꺽꿀꺽 잘 먹는다. 이제 곧 자겠구나 싶어서 맘 놓고 아기 옆에 누웠다. 우유를 다 먹은 아기가 자려고 옆으로 몸을 돌리더니 한쪽 손을 내 얼굴에 툭 올려놓는다. 작고 보드러운 손이 얼굴 위로 툭 떨어졌다. 눈을 감고 잠든 줄 알았던 아기가 살짝 눈을 뜨더니 나를 확인한다. 그러길 몇 차례. 아기는 곤히 잠들었다.

 

 아기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직관적이고 본능적으로 엄마 냄새를 알아내고 엄마를 찾았다. 지금은 내가 엄마라서 안심하고 편안하게 잠드는 것만 같다. 그 느낌이 무척 선명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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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척 오빠랑 (새)언니, 동생과 고기를 구워먹었다. 참숯은 아니지만 불을 기가 막히게 조절해서 고기 맛이 좋았다. 아니지, 고기는 거의 탔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동생 집에서 정신없이 먹는 조카들을 옆에 두고 있다보니 맛나게 느껴진거지. 한잔 두잔 술잔을 기울이고 저물어가는 풍경을 지켜보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가부장의 때를 못벗은 오빠는 언니가 아침밥을 안 챙겨준다는 한탄을 했다. 나이가 몇갠데 아직도 밥을 못챙겨먹냐고 뭐라고 했더니 또 뭐라뭐라하고. 이야기는 산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칠줄 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누군가의 말을 끊고 얘기를 하는걸 인식했다. 그러길 한 번, 두 번, 세 번. 인지한 것만 세 번이었지 아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약간 취했고 흥겨웠다. 언니, 오빠에게 난 항상 똑소리나고 야무진 동생이고 동생에겐 믿음직한 언니였으니까 좀 자신했을까. 내가 대화 도중에 끼어들어도 좀 봐주겠지란. 아무도 내가 말하는 도중 끼어드는걸 제지하지 않았고 불쾌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눈치챘다. 꼴같지 않은 짓을 한다는 생각에 아득해졌다. 내가 뭐라고 사람들 말을 가로채고 말을 끊는단 말인가. 며칠 뒤 동생을 만나서 내가 그랬노라고 고했다. 한소리 들을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동생 왈, 언니가 아기랑 있다 보니 얘기가 하고 싶었나보네.

 

 한다. 독설이라면 나 못지 않은 동생이 선뜻 저렇게 말해주니까 고맙고 푸근하고 그렇다고 막 고맙다고 하긴 쑥쓰러웠다.

 

 언젠가 동생 지갑에서 소원을 적어놓은 종이를 본적이 있다. 가족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하고 뭐 사고 싶고 뭐 하고 싶다고 써놓은 말미에 언니에게 30평대 집을 사주고 옷이랑 화장품, 책을 사주고 싶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맨날 얼굴 방치하지 말라고 구박하고 정리정돈 좀 하라고 한소리 하는 동생.

 

 동생은 요즘 수시로 찾아와 놀다간다. 아기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우는 게 이뻐 죽겠다며 발을 물어대는 통에 접근금지라고 협박했지만 짠하고 고마운 맘이 들 때가 많다. 언니 심심할까봐 와서 고스톱 치고(거의 동생이 따서 거지될 지경) 아기랑 한참을 놀다간다. 혼자 먹는 밥은 아무리 맛난 반찬이 있어도 맛없는데 동생 덕에 대충 볶은 밥도 맛나게 먹는다.

 

 아기 보는 게 한결 수월하고 행복한 건 옆에서 지치지 않게 도와주는 동생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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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2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8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폭력에 맞서다 - 사례·담론·전망
이미경 외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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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간단하게 작성한 내용인데 더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 다시 올린다.>

 

성폭력 가해자의 의도가 실패했을 때의 상황을 떠올려봅시다.

 

 버스에서 누가 내 엉덩이에 자기 페니스를 문지르고 있습니다. 그 남자는 '나보다 어린 여자니까 내가 엉덩이 좀 만져도 가만히 있겠지'라는 메시지를 몸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이제까지 자기가 버스에서 만지고 추행했던 여자들이 별 반응 없이 부끄러워하면서 가만히 있거나 황급히 버스에서 먼저 내리는 것을 봤기 때문에, 자기 경험칙에 근거해 액션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자기가 엉덩이를 은근히 비비고 있는 이 여자는 다른 여자들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욕을 할 수도 있고, 신발로 상대의 발등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뒤꿈치로 상대의 정강이를 때릴 수도 있고, 페니스를 꽉 잡아버리거나 사람들에게 "여기 이 사람이 자기 꼬추를 내 엉덩이에 비비고 있어요."라고 알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 여성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 남자의 메시지에 '사람 잘못 골랐거든?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몸이 아니야'라고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이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실행에 옮겨질까요? '감히 나를 건드려?'라는 생각은 있으나, 남자 페니스를 움켜쥐고 고통을 느끼게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때려본 적도, 욕해본 적도 없다면 그 상황에서 상대에게 욕을 하거나 발등을 찍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해본 적이 있고, 페니스에 대한 공포감보다는 나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은 이런 행동을 반사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격은 보통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몸의 모양새, 행동과 반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에게는 여자다운 규범이 요구되고 가해자에게는 남자다운 규범이 요구되는 톱니바퀴가 어긋나면 톱니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성추행을 하려고 했던 상대의 의지는 실패하게 됩니다. 가해 의도를 갖고 나를 공격하는 상대에게, 그 상대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과 말을 함으로써 여성들은 성폭력상담소에 찾아오지 않고도 이런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지하철 성추행 같은 사건들을 상담할 때 어떻게 현실화될 수 있을까요? 어떤 메시지를 어떤 내용으로 여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든 상담원들이 생각하는 과제입니다. 모든 여성에게 "그때 왜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상대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릴 위험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음에 똑같이 누군가가 나를 성추행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상담하러 찾아온 여성에게 (중략)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정보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 훈련을 함께할 수 있는게 더 중요합니다. 체육관에서 몸을 사용해서 훈련할 수도 있고, 머릿속으로 모의 상황을 만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공격당했을 때 몸이 어떻게 반응하나? 이제까지 어떤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왔나? 그때 상대의 반응은 어땠나?' 같은 질문을 해보면서, 지금까지 내 몸이 상대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반응만 보였다면, 이제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어머, 왜 이러세요"라고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라, 대차게 소리를 질러보는 연습, 욕을 해보는 연습을 같이 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해자가 의도한 의사소통이 실패하는 일이 많이 생겨날수록, 여성들에게 자행되는 성폭력 피해는 줄어들고 많은 여성들이 자기만의 자랑스러운 무용담을 갖게 될 겁니다. "그때 나 만만하게 본 자식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했더니 뼈도 못 추렸지"라거나 "전에는 몰랐는데 나 전생에 싸움닭이었나봐. 너무 잘 싸워"라는 식의, 자기 몸과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로 인한 자신감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70~71p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 사례와 담론, 전망에 대한 책을 냈다. 이 책은 피해자-가해자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다루지 않는다. 피해 후 대응이 아닌 피해를 당하지 않는 법, 여성의 몸과 구조화된 성별 질서에 대해 얘기한다.  성폭력은 어떤 '미친 사람'이 성욕 때문에 저지른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성별 역할이 정해진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피해자를 위로하고 조심하라는 수동적이고 틀에 박힌 이야기 대신 어쩌면 이 책의 질문은 도발적일 수도 있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당신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뭐냐고, 왜 성폭력이 죽고 싶고 함부로 살고 싶을 정도로 절망적인지 생각해볼 것을 요구하니 말이다. 다시 그런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할건지, 사회적으로 세련됐다는 몸으로 사는건 진짜 내가 원해서있는지를 묻는 책. 섹슈얼리티 강의2만큼 실질적이고 전복적이며 '재미있다

 

 예전에 알던 사람은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택시를 타는 나보고 겁대가리 없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 사귀던 여자가 밤에 택시를 탔다가 성폭행을 당해서 그냥 막 살았다며. 여자가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말하며 꼭 성폭행 당한다고 막 사는거 아니라며 그 사람의 입을 막았지만 내심 불안했다. 혹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싶어 걱정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발화는 순전히 감히 여자가 늦은 시간까지 술먹고 택시 타는게 용납되지 않아서일 확률이 더 높다. 나 괜히 쫄았다.

 

 심하게 구타를 당한 사람에게 왜 그런 상황에 그런 대처밖에 못했냐고, 그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이유가 뭐냐고 묻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질문은 없을 것이다. 개인에 따라 '페니스'의 의미는 다를 것이며 성폭력의 정도가 아니라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에 따라 의미와 고통은 천차만별일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고통에 몰두하는 순간, 고통을 빌미로 성폭력을 할 수 있는 각본이 짜여진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건 개인적인 경험도 한몫한다. 지하철에서 손이 아닌 페니스를 엉덩이에 비비는 새끼, 지나가다 덜렁거리는 손을 툭 치고 앞으로 가면서 뒤를 돌아 슬쩍 날 확인하던 새끼. 헤어지자니까 자기가 분이 풀릴 때까지 맞고서 헤어지자던 놈. 그때 정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페니스를 확 낚아채서 부랄을 찔러서 내가 수치스러운만큼 숨이 턱 막히게 하지 못했다. 내릴 곳도 아닌 곳에 밀려나듯 내려서 눈이 찢어진 성추행범을 째려볼 수 밖에 없었다. 지나가던 새끼를 쫓아가 멱살을 잡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째려볼 수 밖에. 혹시나 가던 길을 되돌아 나한테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살짝 불안해하면서. 나를 때리겠다며 끌고간 새끼한테는 그 흔한 욕 한번 못하고 엉엉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런 상황보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나약한 내가 정말 싫었다.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된다면 나는 다른 몸이 돼서 그 녀석들을 혼내줄 수 있을까. 부랄을 치고 정강이를 걷어치고 고함을 지르고 욕을 하고 지랄발광을 떨면서 그 새끼들을 혼내줄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한테만 화내지 말고 낯설고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화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저항하고 분노하지 못하는 몸, 실체가 없는 무기력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게 있을까. 이 책에 나온 것처럼 뱃속 깉은 곳에서 우렁찬 소리를 뽑아내거나 방귀를 뀌면 가능할까. 성폭력의 70% 이상이 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난걸 보면 어느 정도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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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5-12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 참 좋네요. 저도 숱한 성추행 앞에서 크게 목소리 내지 못하고 그저 경찰에 신고하는 게 다였는데요. 이젠 버럭 소리질러서 당황스럽게 해야 겠다고 생각해요. 인용문처럼, 그렇게 버럭해서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다음부터 똑같은 짓을 할 확률이 낮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어요, 아치.

Arch 2016-05-12 16:57   좋아요 0 | URL
저는 한번 소리 질러봤으니 언제든 또 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 물론 시골에서는 노골적인 성추행은 없지만 관습적인 희롱이 있고 그런건 소리보다 더 짖궂은 농담으로 받아쳐야 해서 살짝 과부하이긴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