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백번도 탈 수 있다. 이제껏 안 탄 것도 아니고 궁시렁대거나 혹은 흔쾌히 커피를 탔다. 반응은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긋지긋할 정도였던 건 커피를 또 타서가 아니라 그가 자기 맘대로 내 할일을 정해버리는 폭력적인 방식 때문이었다. 마침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늦게 퇴근하는 것도, 불편한 것들도 다 감수했다. 아니, 눈 감아버렸다. 좋은 점만 보려고 했고 그러다보니 정말 좋은 점만 보였다. 하지만 그와는 그렇지 못했다. 속내가 확연한데 같이 맞장구 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치졸하고 교활하게 압력을 가하는 식으로 본심을 드러냈다.
작년 EIDF의 '그녀 앞의 세상'을 봤다. 인도 여성에게 경제력과 평등을 안겨주는 몇 안 되는 분야인 미인 산업과 두르가 와히니라는 힌두 극우단체를 대비해서 보여줬다. 다큐에서 한 여성은 '여자는 태어난 순간부터 다른 사람의 선택과 요구에 굴복하며 자기 자신을 잃는다. 언제든 억압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인 미인대회에 출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beautiful hot legs를 뽑겠다며 미인대회 출전 여성들에게 두건을 씌우고 걷게 하는 대목에선 망설인다. '꿈을 이루는 대가로 무엇을 희생해야 할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나의 존엄과 도덕성, 가치관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럴 가치가 있을까'
비단 생물학적인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고민은 아닐 것이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예의라는 이름으로 빈번하게 좋은게 좋은걸로 넘기는 분위기와 학습된 싹싹함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여성에게는 그 강도와 집요함이 남다르다. 내 외모를 평가하고, 살이 쪘는지 확인해주고, 원래 화장을 안 하고 다니는지 그렇다면 왜 안하는지, 왜 좀 더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그'만 그러는 게 아니다. 소위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몇몇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분통이 터져서 그분들과 같이 있는 여성들에게 물으면 한결 같은 대답이 나온다. '말만 저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누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나. 왜 아무렇지도 않게, 일말의 조심성도 없이 저딴 얘기들을 하는건데.
답답함과 무력감이 배어나왔다. 당장 월요일날 출근할걸 생각하니 숨이 콱 막힌다. 나의 문제는 '커피 타기 싫은 별난 여자'의 문제로 좁혀져 나는 도리어 내가 느끼고 경험한 얘기를 '변명'해야만 한다. 자기기만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주문이었다.
결국 선택해야 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편협하고 옹졸한 나를 대변하는건지 정당한지는 내 행동이 결정할 것이다. 아직은 이 일을 좀 더 하고 싶다. 나만 몰랐지 이곳 분위기가 원래 이랬다니 내가 이곳에 맞춰야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직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