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시가 지난 후 사무실에 앉아 남은 일들을 쓱쓱 하는 것.
정시 퇴근을 넘어 칼퇴근을 사명처럼 여기며 직장 생활을 했는데 왠일인지 이 일은 나의 재량권이 더 많다보니까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자꾸 생긴다.
철학적인 자기계발서 인생학교에 보면 자신을 잘 파악해야 일을 하면서 즐겁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작은 선택이라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 같다. 시키는 일보다는 내가 알아서 하려는, 인간 자체가 창의적이지 않지만 창의적이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게 일에 많이 반영되는게 아닌가 싶다.
물론 우편물 발송부터 모든 일이 내 뜻과 척척 맞지는 않다. 하지만 역시 같은 시리즈인 인생학교-세상편에 보면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어 했고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니까 그쯤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거다. 일종의 자기최면. 지금은 최면이 일찍 깨지 않기를 바랄 뿐.
*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란 삶을 묵묵히 살아나가는 사람들

책에서만 봤다.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산다는 건 내 기준으로는 상식적이지 않고, 내가 생각지 못한 감성을 갖는다거나 일을 하는 것, 하찮은 틀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것은 어떤 스타일이기도 하고 묵묵히 10년동안 한 길을 걸으며 자기 신념을 설득할 수 있는 내력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투자하는 것 말고 우리 제대로 농사 지으니까 정부 보조금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란, 이를테면 농촌에 횡횡하는 보조금에 대해 맨땅에 펀드 이장은 이런 말을 한다.
몇차례의 논의는 항상 "그냥 이대로 가자"로 정의되었다. 그 망할 놈의 '정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더 솔직하게는 '쪽팔리잖아.'가 개인적인 이유였다.
책에서만 접했던 멋진 분들을 직접 대하고 자꾸 묻고 감탄한다. 처음에는 나대로 생각하다 어느 순간 그 말의 뜻을 명백하게 깨닫고 아차 싶은 순간이 많아지는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도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어느 날 k에게 물었다.
- 아무리 봐도 저는 너무 눈치가 없는 것 같아요. 문서도 잘 못만들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 한 루프만 돌면 익숙해질거야.
- 한번 돌고 두번 돌고 계속 그래도 안 되면요.
- 그럼 (널 뽑은) 내 눈이 잘못 됐나보지.
- 그래도 계속 못하면 어떡하죠.
- 금치산자인갑다, 해야지 어쩌겠어.
재미있는 사람들은 아치에게 꿈과 유머를 준다. 얼씨구
* 까미, 누룽지와 걷는 마을 길
어깨끈만 들어올리면 나가는 줄 알고 신나서 어쩔줄 모르는 우리집 강아지 까미와 누룽지
이 녀석들은 다른 사람들이 키우다 보낸 강아지들이다. 까미는 전에 살던 집에서부터 같이 했고 누룽지는 이곳에 온지 한달 조금 넘었다. 누룽지의 원래 이름은 미키다. 지난번 고원길을 걸을 때 미키라는 이름이 녀석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8살 먹은 아이가 누룽지란 이름을 붙여줬다.
까미랑 생활할 때는 모든 강아지가 이렇게 독립적이고 사람을 살짝 귀찮아하는데다 꽤나 제멋대로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누룽지는 너무 순하고 착해빠졌다. 어제는 눈꼽이 자꾸 끼고 물 먹을 때 입 주위가 다 젖어서 털을 깎아줬더니 무릎 사이에서 축 늘어져 있는걸 몇번 올려서 다시 깎고 깎고 했다. 깎기는 싫은데 이렇다할 거부도 안 하고 최고의 거부 의사가 축 늘어져있기라니, 흡
새침한 까미가 자기 배를 드러내며 인간이 쓰다듬길 기다리는 반면 누룽지는 먼저 다가와 핥아주고 같이 놀자고 한다. 까미는 이에 질세라 부지런히 가족들 아는체를 해주는 중이다.
* 기대하게 만드는 글쟁이들의 신간 소식
가만 보면 내 페이퍼는 뭔가에 꽂혀 페이퍼를 쓰고 싶은데 왠지 글의 분량을 채우고 싶은 욕심에 이것저것 끼워넣다 이번처럼 잡다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번에 꽂힌 건 바로 엄기호.
엄기호는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통해 청춘세대담론은 넘쳐나지만 정말 청춘에 대해 직접 얘기하지 않은 답답함을 조금 해갈시켜줬다. 이번에는 교육의 예민한 속내를 툭 털어놓는다. 교육 이야기와 과외, 학교폭력은 넘쳐나지만 정작 교사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 그 역할을 엄기호가 맡았다.
사람의 재능과 스타일이 제각각이듯 글 역시 마찬가지인데 엄기호의 글은 항상 기대 수준을 만족시켜준다. 그런 저자가 몇 있다. 강준만, 정희진, 정혜신, 김두식. 그리고 또 누가 있지.
내가 믿고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들쑤시고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글. 고민한다는 자각으로 만족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걸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
7시 막차는 떠났다.
정해진 시간에 떠나는 시골버스보다 더 슬픈 건 사무실에서 뭐 없을까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다 페이퍼를 쓰는 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