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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애에서 나의 말에 온 존재를 모아 귀 기울여주었던 사람을 내가 가진 적이 있었을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면서 눈물이 났던건 아마 그때문이었을지도. 영화는 배우들의 이미지로 채색되어 있었다. 으~ 저건 아니야 대체 날 언제 울린건데란 푸념이 쏟아지고 영화보는내내 왜 저렇게 풀어나가는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한번쯤 끔찍하게 실컷 울고 싶을 때 선택한 영화치곤 내용이 상투적이고 밍숭밍숭해서 정말 울고싶을 정도로 절망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몸이 떨리고 얼굴에 덜덜 경련이 일 정도로 난 울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기만의 얘기들을 갖고 있는 주인공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소통하는 순간. 그런 순간을 난 가진적이 있었던가? 온 존재를 모아 귀 기울여주었던 사람을 내가 되어준적은 있던가.

 학교 다닐땐 아이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고, 남자친구를 사귀었을땐 땡깡놓듯 악다구니만 피워댔고 위로해주는 친구에겐 정색하며 그 정도로 심각한건 아니라고 일갈했다.

 난 지금, 나 상처받은 사람이에요. 애정결핍 중증이라고 이실직고 고백하는게 아니다. 간절하게 타인과 소통하길 바라는 것만큼 내 온 존재를 바쳐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지를 묻는 것이다. 나와 당신에게.

 잭 니콜슨이 나와서 눈길이 갔던 ‘성질 죽이기’란 영화. 애덤 샌들러가 약간 거짓말을 섞어 잭 니콜슨에게 엄마가 심각한 병으로 수술한다는 말을 전한다. 잭 니콜슨은 얼굴까지 빨개지며 오열한다. “아, 우리 엄마는 내 전부였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요리며......” 신기했다. 나이든 남자가 우는게. 저렇게 즉각적으로 슬픔에 반응하는게.

 나였다면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거나 사람은 누구나 죽고 엄마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거니까 별거 아닐거란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큰딸로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가 우선일테고 그러한 고민을 나타내는 다시없을 심각한 표정을 드러내는건 추가옵션이었을거다. 엄마가 심각하게 아프다. 어쩔 수 없는 죽음 때문에 다신 엄마를 볼 수가 없다. 엄마, 엄마, 이건 아주 나중에 주억거릴 혼잣말이 될테고. 물론 극적인 반응보다 건조한 표정이 슬픔을 더 오래 반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한 감정적인 반응을 건너뛰곤 했던 난 누구 말대로 위악을 떨고 있었던건 아닐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나서 들여다본 책엔 이런 말도 나온다.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 받는거 그거 창피한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 위악을 떠는 사람은 그래. 자긴 사실 착하고 약한데 이럴 수 밖에 없는거라고. 언젠간 알아줄거란 기대까지해.

 소통을 막고 있는건 나였다. 왜 내게 맘을 안 털어놓는데 그런식으로 하면 나 종교에 귀의한단식의 위악만 떨어댔다. 누구하나 말리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하란 식의 반응에 다시 상처받았다며 땅굴파고. 귀엽지도 않게 유치한데다 갸륵할 지경까지 처절했다.

 알았으니까 바뀌는건 시간문제야라고 콧방퀴 뀌지만 아플만큼 깨닫진 못했다.

 아직 갈길이 너무 멀다고 똥싼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진 않겠다. 내 똥은 깨끗하다거나 이편이 편해서라고 날 속이는거 말고, 어그적거리며 일어서서 그들 존재에 귀 기울여 내밀한 말들을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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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카들이 방으로 몰려와선 한차례 웃고 장난치다 나간다. 거실에 있는 막내는 아이들 보고 걸어다니라며 윽박지르며 쫓기놀이를 한다. 쫓아내면서 걸어다니라고 말하는건 능청스런 막내다운 수법이다. 다시금 썰물처럼 밀려든 요녀석들의 소요. 화장실을 간다, 밥을 먹어야겠다며 정신없이 굴어댄다.
 

-이모, 근데 밥은 시계가 저기 가리키면 먹는거지?
-응, 옥찌. 조금만 있어봐. 벌써 배고파?

  조그만 올챙이 같던 녀석이 벌써 다섯 살이다. 이건 어디서 배웠을까. 내 손가락을 끌어다가 고사리 같은 새끼 손가락에 끼운다. 졸지에 밥순이 신세다.
 틀어놓은 음악소리만큼이나 감미롭게 번지는 웃음, 행복하다.
 그래서 더욱 맘이 불편해진다.

 뉴스는 목도리녀처럼 예쁜 사연만을 전해주진 않는다. 그래서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사건에 무감각하게 반응하는게 싫고, 감각의 역치를 사정없이 높여버리는 일들이 두려운 까닭이다.
 그래서 시사프로도 아닌 미담 위주의 저녁 프로에서 아이의 죽은 얘기가 나올때 모른척 했어야 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아이, 4개월도 안 된 아인 24시간 위탁기관에 맡겨졌단다. 한달에 한번 아빠만 들여다볼 뿐인 아인 보호시설에 있기엔 너무 어렸다. 아이 엄마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란 존재가 갑작스러웠고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기엔 받은 사랑이 너무 없었을 뿐이었다. 부모에게만 사랑받는건 아니겠지만, 고아인 여자에겐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아이를 놀이방에서 데려와 기르던 엄만 밤늦도록 칭얼대는 아일 견디지 못했다.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외면하거나 도망친다. 견딜 수 없었던 그 순간에 엄마는 차라리 도망을 쳤어야 했다. 모성애란게 생기기 전까진. 아니 그런 거창한게 아니더라도 내 몸에서 나온 살가운 존재에 대한 일말의 애착이라도 갖기 전엔.

 하지만 엄만 아이 울음소리에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졌고, 그만 아이를 때리고 말았다. 이제 그만. 엄만 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일 얼래서 맘에 품어야했다. 그래, 하지만 그 날 엄만 신경이 날가로웠던걸까. 다른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벽에 아이 머릴 쿵.
 아인 혼수상태로 전기 장판에 아침까지 방치되었다.

 아침 댓바람에 병원 응급실에 아일 데리고 온 엄만 아침에 아이가 죽어있었단 얘길 한다. 의사가 화상과 피멍든 자국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여자의 말은 유아돌연사란 흔한 일로 묻혀졌을지도 모른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두개골에 금이 간걸 의심해서 경찰을 부른다. 경찰 앞에서 여잔 사실을 다 말한다. 아마  아침이 되기까지 두려움과 고통으로 떨었을 아이 얘긴 아마 한마디도 하지 않았겠지.

 나혜석은 모된 감상기에서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했다. 조카를 보기 전에 난 그 말이 섬뜩해 나혜석이 남다른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하나보군 정도로 치부했다. 동생이 아이를 키우는걸 옆에서 보고, 간혹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혜석이 별난 여자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양육하는건 생겨날지 여부를 알 수도 없는 모성애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걸 알게 되었으니까.  

 엄마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엄마의 도움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일 키우는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건 연애처럼 서로 으쌰으쌰해서 맞춰가는 것도 아니고 애완견을 기르듯 물건을 사들이듯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맹목적인 외로움을 벗어나려고 사력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양육은 어찌보면 숭고하지만 대체적으로 반복적인 노동과 지난한 피로감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보상없는 일에서 느끼는 허탈감은 아이의 깨알같이 쏟아지는 웃음과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 보드라운 손, 나를 닮은 존재의 생명이란 인식으로 갈음된다.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고, 육체적으로 솔깃하지 않지만 단지 아이란 이유로 이러한 일들은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옆에서 가끔 기저귀나 갈아주고 예뻐해주기만 하면 되는 주변 사람은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난 그 여자를 ‘처죽일 년’이라고 섣불리 말하진 못하겠다. 아직까진 여자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방송의 선정적인 보도에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제일 먼저 떠오른건 의식을 잃은 채 아팠을 아이였다. 그리고 너무 미안하게도 조카들은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해버린 미안함이었다. 죄 많은 인간 어른이라 아이에게 미안했다.

 예쁘게 커서 재롱도 피우고, 놀이방에서 배운 노래도 부르고, 새끼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하는 야무진 면도 보이고, 더 쑥쑥 자라선 사랑도 하고 실연도 당하고 살다가 좌절도 느끼고, 행복도 느끼면서 그렇게 그렇게 살아있음 좋았을텐데......

 어린 죽음은 그들이 밟지않은 길을 자꾸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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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4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4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직업 학교에서 점심을 먹다가 내가 싸온 제육볶음을 옆에 앉은 손언니에게 권했다.

-언니 이것 좀 드세요. 제가 한거라니까요.
-어, 그래, 용하네. 그런데 내가 고기를 안 먹어.
-네? 진짜요? 언제부터?
-태어날때부터.

그때부터 언니들의 탐문이 시작됐다.
평소 한놈만 걸려라. 언니-아니, 그럼 그 살은 어떻게 된거여.(삿대질을 험하게 하신다)
손언니-(한참을 생각하더니) 응, 내가 부침개를 좋아해. 튀김이랑.
나(채식주의 일주일 경험이 있는 주제에)- 언니, 그럼 아예 고기를 못먹는 거에요?
안달난 언니 2- 만두도 못먹어? 돈까스도?
손언니- 만두는 먹지. 그리고 돈까스는.

모두들- 돈까스는?

손언니 - 응. 고기 얇은 것만.

그러니까 손언니는 채식주의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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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6-24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식주의 일주일 경험이 여러번 있었던 작심일주일 웬디양
손언니 채식주의 최고 ㅋㅋㅋ

나 채식 때 제일 힘들었던게 만두였다나 뭐라나 ㅋㅋ (만두는 예외 막 이런 원칙도 세웠었는데 ㅋㅋㅋ)

Arch 2008-06-24 09:2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손언니는 채식주의자였다나 뭐라나.ㅋㅋ 만두는 예외, 얇은 돈까스 예외, 또 뭐 예외. 회는 먹고, 고기 튀긴건 아마 드실테고 막 이런 원칙도 세우고^^ 저도 채식 일주일하다 관뒀어요. 흡.

2008-06-24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4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재를 돌아다니다 보면 김치 담그는 광경이 생각난다. 소금에 간간하게 절인 배추를 받침에 바쳐 물이 다 떨어지길 기다린다. 쪼르르 떨어지는 물소리마저 경쾌하다. 갖은 양념을 준비해 배추를 버무리는 것도 처음 김치를 담그듯 조심스럽다. 배춧잎 하나하나마다 정성껏 양념으로 무치고, 버무리고,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아내는 과정. 김치 만들기 23p를 직접 시연하듯 정교하고 체계적이며 일관되다. 전기작가들이 곧잘하는 실수 중에 하나는 일관된 큰 틀을 좇다보니  한 개인의 삶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는거라고 한다. 그치만 대체 그 틀이란게 있는건지 의심스러운 나로선 '정체불명' 서재의 정체성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서재 김치를 담그는 나는 서툴고, 우왕좌왕하고. 알스님 말처럼 과연 '네 정체는 뭐냐'싶은 순간이 많다. 나대기 좋아하고, 딴지걸기 좋아하면서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애들 노는 것만 구경하고.  머릿속에 돌아다닌걸 전혀 연관없이 툭 꺼내놓곤 엉뚱하단 소리를 듣기 일쑤이며 주위에서 결혼해라 어쩌라 할때는 귀찮소로 일관하다 달 밝은 밤, 정말 그 장면을 떠올려보곤 쑥쓰러워서 결혼식을 대체 어떻게 하냐고 얼굴을 붉히는 나는 뭔가.

 사실 카테고리만해도 그렇다. 메피님처럼 아주 근사한 제목을 달지도 못하고, 순오기님이나 웬디양님, 마노아님처럼 다방면의 카테고리를 장착하지도 못하고. 여러모로 부실과 잡다함을 무기로 페이퍼만 달아대고. 이건 서재라기보다는 블로그라고 해도 될만치 책 얘기는 없고. 그렇다고 페이퍼로 승부를 보는 산사춘님만한 내공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재의 카테고리 정리만으로도 하루를 꼬박 허비했다.

 이슈 브리핑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올리다가 금세 아프님의 막강한 의욕과 내용에다가 넘치는 열정에 턱도 없이 못미치고, 느긋하지만 날카로운 드팀전님만도 못하고. 발빠른 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귀차니스트답게 여러모로 삐긋댄다. 그러다 계속 ~ 만도 못하다보니 비교에 비교에 비교를 낳다보니 정작 내가 정말 서재에서 뭘 하고 싶어했는지도 까먹고 말았다.

 나는 서재에서 뭘 하고 싶었을까. 뭘하고 싶은걸까?

 알라디너랑 같이 알콩달콩 댓글 놀이도 하고 싶고, 서재의 달인이란 칭호도 듣고 싶고, 책선물도, 정모 모임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건 같은 책을 읽고, 얘기하고 공감하는. 온전히 알라딘에서만 더욱 빛을 발하는 책과 관련된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바램이었다. 그런데 자존감 없는 인간답게 이리저리 휘둘리다 정작 내가 바랐던건 빛을 바래고, 이건 즐찾수와 방문객수에만 열을 올리는 지경이니,  제대로 반성해야겠다.

 사실 내 위치는 굳이 내가 발악을 한다고 찾아지는건 아닐거다. 도리어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묘사한 것과 비슷한 수순이 되지 않을까 유추해본다.

 사랑이, 이렇게 노을처럼 젖어드는걸 수도 있는거구나.

 알라딘이, 이렇게 조용히 내게 다가오는구나.

 욕심 좀 버리고, 어깨에 힘 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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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3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다 아니고, ~와는 다르게! ^^

Arch 2008-06-23 23:5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순오기님!! 목포는 잘 다녀오셨어요? 다름다움이 아름답다잖아요. 제가 아름답단건 아니고.^^

웽스북스 2008-06-2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내가 다방면의 카테고리라니 말도 안돼요 ㅋㅋㅋ

Arch 2008-06-24 09:42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아님 말구. 그래도 전 좋던데요.
 

 면접을 봤다. 그룹 면접이었는데 한사람 건너 자리에 앉은 남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면접관 : ooo씨, 적은 나이는 아닌데 경력이 전무하네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어요?
 남자 : 이 업무와 관련있지 않아서 기재를 안 했는데 용산에서 매장영업관리총괄 책임자를 했었고 잠깐 레스토랑 주임을 했습니다.

 난 피식 웃고 말았다. 저거 어디서 들어본말인데. 매장관리총괄은 뭐. 사장 아래로 직원 하나일때 그들이 쓸 수 있는 말 아닌가.

 과도하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주입시켜 다단계가 아니면 뭔가 음모가 있을거란 확증을 심어준 회사에 다닐 때가 있었다. 처음엔 다른데와 달리 매일 점심시간마다 밥도 사줬다. 그래주니까 잘해주는거라 생각한거겠지. 밥 사주면 만사형통이야 아주. 쩝.


 그 날도 여느 때처럼 회관 비슷한데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밖은 왁자한 무리들 소리로 들끓고 정신없이 바쁜 아주머닌 오로지 서빙 본연의 임무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즉 음식 전달과 치우기. 빠르게 자리 확보를 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몸놀리는건 기본이고. 거기엔 손님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선의가 어느 한구석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더라도 차마 그 북새통에선 드러낼 수 없었으니까.

 아주머니가 바쁘게 서빙을 하느라 그릇을 탁자에 탁탁 놓은 순간, 입방정 떨기 좋아하던 지점장이 한마디 한다.
 

 -저 아주머닌 평생 식당 종업원만 할거야. 서비스 매니저로서 자질 부족이야.


 난 안 보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서비스 마인드는 개뿔.

 서비스 업종에 다년간 종사해온 나로선 다수의 서비스 업종 종사 경력은 쓸만한게 아니란 남자와 서비스 마인드를 엉뚱한데서 찾는 지점장이 좀 고까웠다.


 인간 성분과 무관하게 오로지 한국어가 통하고 몸을 부지런히 놀릴 수 있다는 이유로 서비스 업종은 직업에 귀천없단 소리 속에서도 굳건히 천대 받아왔다.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독보적인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서비스업의 특성에다 이건 거쳐가는 곳이지 머물 수 없단 강단있는 종사자들의 자의식이 합쳐져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실험을 할 수도 없고, 100% 적확하게 들어맞는 고객 상대법도 없다. 치밀하게 분석을 해서 적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변수는 늘 존재하는거고, 더군다나 사람에 관련된 일이다보니까 그 편차는 확률적으로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깊은 관심은 아니더라도 서비스를 받을 때 경미한 존중과 이해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비스가 만족스럽길 원한다면 그만한 장소에서 요구하고, 마인드 운운할게 아니라 의도적이거나 상당히 불쾌한게 아니면 기분좋게 넘어갈 수 있는 아량도 갖어보기. 그렇다고 이게 극악스러운 집념을 불태우며 술값이 비싸단 이유로 그곳의 종업원들에게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해야 한다는걸로 생각하진 않길. 그렇지 않아도 언니들은 피곤하니까.

 나이든 양반이랑 만나고 있을 때 찜질방에 간적이 있다. 출출해서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아주머니 인상이 험악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손님이 와도 본체만체다. 평소에도 까칠한 성격 유감없이 발휘하던 이 양반, 툴툴대는 아주머니에게 뭐라고 한다.


 -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그렇지 손님이 왔는데......


 혼잣말이기엔 크고 아주머니가 대꾸하자니 애매하게 작은 목소리로.
 어줌마, 그릇을 탕탕 놓는다. 분위기가 안 좋아 난 맥없이 TV만 보고 있었다. 왜 그랬냐고 물었다가 이 냥반 특유의 비아냥 앞에서 만신창이가 될게 뻔했으니.

 식사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가 식혜를 산다. 밥 먹기 전에 웬 식혜냔 눈짓을 했다. 물론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식혜를 아주머니에게 갖다준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성질내느라 목 칼칼할테니 식혜드시란 말과 함께. 손님이 식혜 사주는건 처음이라며 금세 얼굴색이 환해지는 아주머니.


 두말할 것 없이 그 날 먹은 미역국은 최고로 맛있었다.
그를 보면서 평소에도 달리 나일 먹는건 아니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때만큼 고개를 끄덕인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고객감동은 너무 뻔하니까 종업원 감동은 어떨까. 구태여 쩔쩔매거나 억지로 안 내키는 수작을 거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고 흥이 나게.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관계 안에서 작은 이야기들이 샘솟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뭐, 지금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하단 사람들에겐 역시 오지랖 수준이겠지만. 그래도 재미있지 않을까. 구태여 욕쟁이 할머니 찾아가는거 말고, 피곤한 표정의 알바생에게 사탕을 준다거나 농담을 건네는 것. 그 순간만큼은 환한 미소란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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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6-23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발상의 전환 또는 고정관념의 파괴 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서비스의 척도에는 법칙이란 것이 없어 보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기만 하면 될 테니까요. 물론 모두에게 긍정적인 부분에서 이겠지만......

Mephistopheles 2008-06-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서비스 마인드는 어쩌면 매너있고 수준있는 손님들에게서 나오기도 한다죠.^^

Arch 2008-06-2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그 수단이란게 애매해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 지침이 있다면 좀 편하겠죠?^^/메피님. 매너있고 수준있는 손님이실 것 같은데. 나 자꾸 상상만해.ㅋ

BRINY 2008-06-2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아무리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자기가 건넨 인사가 무시당하는데 서비스할 맘 생길까요.

Arch 2008-06-23 22:50   좋아요 0 | URL
BRINY님 반가워요. 그러니까요. 그 사람은 천번의 인사일 수 있지만 우린 딱 한번이잖아요. 딱 한번 웃어주고 인사 받아주는게 그리 힘들까 싶기도 하고 말이죠. BRINY님은 인사 잘 받아주실 것 같은데^^

2008-06-23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3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3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3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8-06-23 16:15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8-06-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샘나신거에요? ^^

웽스북스 2008-06-24 00:41   좋아요 0 | URL
메피님 질투쟁이 ㅋㅋ 저 비밀댓글 나지롱요~ ㅎㅎ

Arch 2008-06-24 09:40   좋아요 0 | URL
GT쟁이?^^

Mephistopheles 2008-06-24 12:39   좋아요 0 | URL
역시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8-06-24 12:51   좋아요 0 | URL
우왕. 재미없어요. 메피님 기를 팍팍 드리고 싶은데, 주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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