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중에 직원 협동조합이란게 있다. 협동조합 형식을 취하지만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형태이다. 협동조합의 자발성을 추구하지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 고용 안전성을 확보하는 취지라는데 이게 참 묘하다. 근로의 주체이면서 고용의 객체인 형태로 일을 하는 아이러니. 자발적인 협동조합에서 노동법의 노동3권을 주장하는게 어렵기 때문에 이 둘을 합친거라고 하는데 자발성도, 노동권도 보장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근로기준법은 최소한의 권익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 노동의 사각 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법이지만 자영업자나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특히 이곳 농촌에서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어떤 분은 농촌에선 퇴근이 없다고 했는데 실제 그랬다. 이 뜨거운 날에도 밖에 나가서 밭일을 하는 분들 앞에서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주5일 근무 등을 얘기하는건 좀 겸연쩍다. 같은 일을 하는 모임에서 사람들이 여름 휴가 얘기를 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농사 짓는 분들을 더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얘기하는게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란 의문을 품었다. 우선 일하는 사람들이 일할 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는데 동의하면서도 좀 더 헌신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는걸 바란다.

 

  큰 소명의식이 아니라 책에서 본 것처럼, 신나고 다르게 살고 싶은 바람에서 시작한 일치고 지금 일이 무척 재미있다.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잘하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이곳에서 내는 잡지 취재기자로 인터뷰이 댁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다음날 그분은 고추를 따러간다고 했다. 새벽부터 고추를 따야하나, 잠깐 둘러본 고추밭의 풀은 그렇다치고 살짝 발만 들였는데도 성난 모기들이 우왁스럽게 물어뜯으니 엄두가 안 났다. 그날 내로 마무리지어야할 일도 있었다. 도와드려야하나, 내 일을 해도 되나. 어정쩡하게 있는데 그분이 말씀하셨다. 자신이 편하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그분이 땀내 풀풀 날리며 일하고 있을 때 시원한 오미자차를 먹으며 원고를 썼다.

 

 점심을 차리며 호박으로 나물을 했다.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밥을 달게 먹었다.

 

 그날 그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는바가 많았지만 그 중 가장 기억나는건 바로 '사명감으로 일하지 말라는 것. 내가 하면 된다는 것이 어느 순간 내가 다 한다로 바뀌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추구하거나 우리가 바라는 꿈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같이 앞으로 나가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고 안달내면 일이 될까. 느리지만 지치지 않게 가는 길. 조바심 내고 다른 사람을 채근해선 안 될 일이다. 변화는 그렇게 조금씩 일어난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맘이 무진장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해 보여  대체 당신은 바라는 것도 없냐고 (분노와 열등감에 휩싸여서)물었더니 역시나 평온한 얼굴로 이런다.

- 풀이 안 났으면 좋겠어.

 아니, 풀은 불가항력이잖아요.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많은 불가항력들을 바랐는지 가슴이 찌릿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치니 2013-10-0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맞아요, 그 사명감으로 일하는 이들 때문에 주변에서 얼마나 피로감을 자주 느끼는지, 당사자들은 모른다는 게 함정.

Arch 2013-10-07 14: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유형이랑 좀 비슷해서 엄청 찌릿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