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처럼 경쾌한 문장들.

 몇개의 글을 읽고 단박에 떠오른 정의였다. '포스터를 훔쳐라'가 디자인을 매개로 힘있고 재치있는 문장이었다면 '마카로니 구멍의 비밀'은 '디자인의 디자인' 의 함축본 같은 느낌. 겹치는 내용도 많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은 굉장한 세련미를 풍기는 게 아니라 기본에 충실하고 그 자체로 충만한 피사체에 대한 이런저런 단상이 적혀 있다. 한번에 후루룩 읽기보다는 며칠에 걸쳐 야금야금 읽어야 제맛이 난다.


 그 중에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공감한 구절


 그런데 그것을(방뇨를) 대자연에서 즐기면 어떨까. 기분이 정말 상쾌하다. 그것을 취미라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대자연을 향해 방뇨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기억을 되씹어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가 사하라 사막이다. 광고 사진 촬영 때문에 제작진 몇 명과 함께 튀니지아의 사하라로 갔다. 저 멀리 지평선을 넘어 끝없이 이어져 있는 드넓은 모래 언덕, 당연히 화장실은 없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10미터 정도의 모래 언덕을 두 개 정도 넘자, 사막에는 나 혼자 우뚝 서 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모래와 하늘뿐.

 사하라의 사막은 모래라기보다 파우더라고 부르는 쪽이 더 어울릴 정도로 모래알이 곱다. 두 손으로 퍼서 허공에 던지면 그 자리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면에 희미한 그림자를 만든 후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그런 사하라의 대지를 향해 방뇨를 하는데 그것이 모래에 닿는 광경이 특별하다. 건조한 모래가 완벽하게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표면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다. 지면에 접하는 순간 모래에 완전히 빨려 들어간다. 그것은 정말 묘한 감촉으로, 마치 지구와 나의 내장이 하나의 끝으로 연결되어 자연이 나의 몸속에 있는 것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다. 나의 귀중한 수분에 사막 안의 생물들이 반응하고, 그것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땅속을 이동해온다. 그 이미지는 곧 강한 공포로 바뀐다.

 망상에 전율을 느끼며 서둘러 볼일을 끝낸 나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모래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에서 돌아보니 바람의 무늬가 새겨진 사하라의 웅대한 경관 속에 발자국이 점점이 이어져 있다. 그것은 두려움도 안겨주지만 자연과 생생하게 교류했다는 실감을 새겨주었다.

 아마 화장실이라는 것도 '처리'가 아니라 '행위'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장치로 변할 것이다. 언젠가 틀림없이 그런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에서의 체험을 되씹어보면서 또 하나의 망상을 떠올려본다.


 배변활동을 처리가 아닌 행위자체의 풍요로 느낀 건 여러차례의 노상방뇨 경험을 통해서였다. 화장실이 더럽거나 남녀공용이라 변기 주변에 오줌이 튀어있을 때는 차라리 밖에서 일을 보는 게 나았다. 옆지기가 있으면 망을 봐달라고 했고 혼자면 골목 사이로 들어가 일을 봤다. 졸졸졸 오줌이 시멘트 바닥을 타고 흐른다. 변기 위에 떨어지는 단조로운 소리가 아니라 그날 몸 상태와 양에 따라 소리가 달라졌다.


 자연에서 방뇨를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야외활동을 자주 하면서였다. 마땅한 화장실이 없기도 했지만 우스개소리로 하는 '산과 들이 다 화장실이지' 싶기도 했다. 풀 숲에서, 나무 그늘에서, 풀에 엉덩이를 찔려가며 오줌을 쌌다. 혹시라도 일행에게 보일까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겨 일을 치르면 때때로 묘하게 짜릿했다. 오랫동안 참고 있던 소변을 밖으로 내보냈을 때 느끼는 쾌감과 비슷하다. 밤의 방뇨도 인상적일 듯하다. 하얀 보름달 같은 엉덩이가 땅바닥에 아른거리다 사라지는 모습이라.


 생태 귀농, 생태 화장실 얘기를 많이 들었고 오줌과 똥을 활용하는 법에 대해 책으로도 읽고 실제 생태 화장실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아주 적극적인 형태의 생태 화장실을 얼마 전에 봤다. 작은 형태의 생태 화장실은 모르겠는데 실상사 화장실은 규모가 남달랐다. 칸막이로 나눠진 화장실에서 노상방뇨보다 더 극적인 경험을 했다. 일을 보는 자리는 나눠져 있지만 아래는 완전히 뻥 뚫렸다. 오줌은 조준을 잘해서 따로 받는 통이 있고 똥은 허허벌판에 '똥'하고 싼다. 가끔 누군가 똥을 왕겨로 덮어서 발효시킨다. 


 화장실 안에서는 내가 배출한 물질을 어딘가에 담는다. 하지만 노상이나 생태 화장실에는 담는 통이 없다. 흐르거나 떨어진 형태로 남아있다. 똥과 오줌을 얼른 씻어야하고 치워야하는 문화에서는 이 행위 자체의 의미를 헤아릴 수 없다. 그저 눈 앞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는 처리만 남을 뿐이다. 처리하지 않고 변기에 남은 똥과 오줌은 역겹다. 


 산뜻하게 시작했는데 어디에서 끝내야할지를 모르겠다.


 참고로 마카로니에 난 구멍은 마카로니를 잘 익히고, 소스를 묻힐 수 있는 표면적을 만들고, 만들기 쉬운 형태가 필요해서 생긴거라고 한다. 물론 음식이기 때문에 맛있게 보여야 한다는 점이나 질리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것도 중요하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마카로니 하나에도 디자인의 총합 같은 게 들어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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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요새 일 끝나는대로 자꾸 손에 쥐게 되는 '워킹 푸어, 빈곤의 경계에서 말하다'. '정글'이 사실적인 픽션이라면 워킹푸어는 소설같은 논픽션이다. '한국의 워킹푸어'가 일종의 관점을 갖고 뻔하고 예상 가능한 이야기를 한다면 미국판 '워킹푸어'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제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워킹 푸어에 대한 이야기지만 복지 여왕에 대비되는 개념이라던가 인터뷰한 인물들의 사연과 제도에 대한 이야기,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그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이 책을 통해 남는 건 사례 나열이 아닌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10년이 넘게 부침을 겪고 있는 제도를 수정하고 보완하려 하고 있다. 토론도 하고 인터뷰도 하면서 왜 이 제도가 처음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유명무실해졌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시행지침도 읽어보고 구조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만 있다고 생각했던 시행지침에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이 거의 대부분 들어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애초에 맨땅에서 시작한게 아니었던 것. 대단히 세심하고 섬세한 지침이 있었지만 현실에서 적용이 안 되고 경계가 흐려지고 당사자마다 자기 식대로 생각했던 것이다.


 워킹 푸어에서는 단일한 복지체계를 개별적인 사람들에게 모두 적용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나온다. 예컨대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는 분유의 경우 저체중 아이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없어 지원하는 분유가 아닌 단백질을 잘게 분해한 분유를 먹어야만 한다. 이런 예외는 시스템의 수정을 요구한다. 아이의 건강을 상담한 의사는 정부에 요구사항을 전달하지만 큰 틀의 수정은 더딜 수 밖에 없다. 천식이 있는 아이가 세들어 사는 집주인에게는 의사의 부탁보다 변호사의 면담이 더 효과적이다. 시스템을 잘 운용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개별 사안에 따라 달라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신나게 일을 해온지 2년이 좀 넘었다. 일을 배울 때 신났고 지금도 기획을 할 때면 글을 쓰는 것만큼 짜릿하다. 하지만 때때로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여 어떤 내용들을 감당하고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히는 순간이 생긴다. 노력의 질을 어느 수준까지 밀어부쳐야 할지, 그게 내 역량에 맞는건지, 누가 알려주는대로만 일했으면 좋겠다란 바람까지. 이 일을 통해 내 장단을 잘 알게 됐고 내 한계도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1년 정도 쉴 예정이다. 11월에 있을 행사가 걱정되고 그런건 후임자가 알아서 잘 할거라는 주위 말에 소심하게 상처 받고,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일거라는 옆지기의 위로에 다시 팔랑귀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정리가 깔끔하게 안 된 것 같은데 손을 놓는 것 같아 걱정되고 다음에 돌아왔을 때 내 자리가 다른 누군가가 잘해서, 혹은 잘 못해서 예전같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다. 10년 정도는 해야 전문가가 된다는 그분 말씀도 생각나고 요즘 같은 시대에는 유목민처럼 떠돌아 다니며 메이지 않는거라는 말에도 흔들흔들. 워킹푸어 얘기하다, 기승전근황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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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집 앞 슈퍼에 가서 참크래커를 샀다 아니 골랐다. 

주인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가격을 찾는다. 없다. 


-  이게 얼마면 사겠는가.

(금도끼, 은도끼?)

- 주인네 맘이옵죠.

- 자네가 가격을 말해보게. 내 거기 맞춰주겠네.

- 음... (천오백원은 좀 비싸고 천원은 너무 저렴하다. 그렇다면) 천이백원이요?

- 그럽세.

- 그런데 왜 얼굴이 빨갛나요

낮에 막걸리 한잔을 먹었는데 여적 안 깨네.


* 잠들어 있던 옆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겠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냥 내게 미역국을 먹이고 싶단다.

그러마 하고 다시 잠에 들었는데 들기름 냄새가 솔솔 풍겼다.


- 나를 위해 새벽부터 미역국을 끓이는 네 정성에 탄복하였다. 내 수저를 들겠다.

- 예. 맛있게 드시옵소서.

- 미역국이 오일리 하구나. 다음에는 미역을 달달 볶아 미역 고유의 감칠맛을 내도록 하여라.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자른 미역에서는 그런 맛이 나지 않사옵니다.

- 네 이놈! 무엄하도다.


자다가 미역 한줌과 고기 한덩어리가 떠올라 급하게 미역국을 끓였다는 옆사람


* 멀리 떠난 분에게 안부를 전하며 요새 읽는 책으로 나의 한가함을 옹호했다.


- 그게 말이죠. 퇴근 시간 넘어서까지 일하는 건 효율이 없구요. 능률도 떨어진대요.

근무시간에만 집중해서 일하고 푹 쉬어야 다음날 업무효율도 높아진대요.


- 저도 야근하고 그러라는게 아니예요. 할 일만 해버리고 그런게 익숙해져버리다보면

월급쟁이 마인드가 된다는 것. 늦게까지 앉아있는 것보다 좀 더 집중해서 일하는 맘가짐을 얘기한거에요.

성과가 보이지 않고 정체되면 그냥 이 월급 받으면서 사는거지, 이러는 게 안타까운거에요.


전화를 끊고 한참 울었다.

몸이 피곤하다고 성과가 안 보인다고 맨날 반복되는 일이라고 이유를 댔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얼마나 고마워하고 기뻐했는지는 까마득하게 잊고 말이다.


*  닭을 돌보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 알을 품는다.

보름 넘게 품어야 알이 나오는데

꿈쩍도 않고 알만 품는다.

다른 아이가 품다 밥 먹으러 나가면

부리로 알을 굴려 자기 몸으로 끌어당긴다.

맛있는 밥알이랑 옥수수차를 줘도 꿈쩍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매일 닭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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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4-0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아주 좋은 글을 쓰러 들렀네요, 아치.
:)

Arch 2015-04-14 08:52   좋아요 0 | URL
^^: 고마워요. 다락방

무해한모리군 2015-04-0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월급쟁이 마인드를 넘어서 일하는 엄마 마인드예요... 아이 > 일 >>> 나

어렸을때 병아리때 부터 길렀던 닭을 뭔가가 잡아먹어서 참 슬펐는데. 닭대가리라는 욕은 맞지 않는거 같아요..

안녕 좋은 봄 보내요 아치아치아치

Arch 2015-04-14 08:53   좋아요 0 | URL
음~ 엄마 마인드도 좋아요. 그냥 내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바뀌는 게 싫었나봐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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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위로 차원이 아니라 정말 화가 나는 것. 어떻게 이 나라는 꽃같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왜 이런 사건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할까. 그리고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까. 참담한 심정으로 읽을 수 밖에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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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 요리사 박찬일의 노포老鋪 기행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중앙M&B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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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태리에서 촐싹맞고 서툴지만 따뜻한 셰프는 어디 갔나요. 그만의 글맛이 전혀 나지 않아서 정말 박찬일인가 다시 확인했다. 오래된 식당, 정말 좋은 컨셉이고 내 취향에도 맞지만 굳이 박찬일이 아니어도 싶다. 들어있을 건 다 들어있지만 점잖은건지 장난기를 뺀건지 글이 밋밋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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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5-03-1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년식당이 제목에 들어가는 무척 지루한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있어서 아예 이책은 생각도 안했는데 박찬일씨가 쓴 것이군요. 글 굉장히 잘쓰던데 왜 그랬을까요?

Arch 2015-03-13 16:53   좋아요 0 | URL
박찬일답지 않은거지 책이 나쁘진 않아요. 잇태리 같은 재미를 기대한 탓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