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꼬라지를 보면 열을 안다 :
獸: 닭치고 물에 뛰어들 걔
한겨레 신문 기사를 읽다가 빵 터졌다. 아니 이게 뭐야, 이런 ~ 식빵 ! 대한약사회 부회장 시절 세월호 유족을 비방하는 원색적인 글을 에스엔에스에서 퍼 날랐던 김순례 새누리당 의원(초선)은 “헌정 역사를 지켜온 족적에 궤변스런 행동과 말로 흠집을 내는 정세균 그들을 척결하고, 빈정거리는 야당, 우상호와 그 독재자를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야당의 야만성, 짐승성, 독재성을 알려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어만 바꾸면 북한의 대남방송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 - 性 > 이라는 접미사가 만능이기는 하지만 " 짐승성 " 이라는 짐승 같은, 생경한 표현력 앞에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상대 진영을 죽여야 할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로 간주하는 순례 씨의 무시무시한 사고 방식에 할 말이 없다. 하는 꼬라지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순례 씨가 내뱉은 뾰족한 말풍선을 보고 있자니 조선시대 양반의 정치술'이라고 해서 지금과 다를 게 무엇일까 _ 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禮를 지낼 때 어떤 의복을 입을 것인가를 놓고 서로 죽일 듯 싸우다가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까지 있었으니 양반의 정치술이나 현대 정치인의 정치술은 거기서 거기'다.
이정현은 단식이랍시고 문 걸어잠근 채 일주일을 버티며 나 죽네, 나 죽네, 나 이제 죽소 _ 라고 자기 연민에 미쳐서 뭉크처럼 외쳤지만 그 절박한 절규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나 죽어요 " 라는 엄살에, 나는 자꾸 조사 하나를 그가 내뱉은 문장 속에 첨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 나가 죽어요 ! " 단식으로 사경을 헤맸다는 그가 살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찐 것처럼 보이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무감각한 내 성정 때문일까 ? 단식 탓일까, 과식 탓일까. 아니면 배 고파서 소금 한줌 먹은 탓일까. 학습 효과란 무서운 것이다.
세월호 아빠 김영오 씨가 굶어 죽을 각오로 버틴 46일을 지켜본 국민이 보기에 이정현의 5일 단식이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측은지심보다는 그가 100일 단식을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축은지심( 畜 : 가축 축) 이 먼저 드니, 우리 순례 씨가 보기엔 이 또한 " 곰곰발, 저 새끼의 짐승성 " 이리라.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해양구조견을 뽑을 때에는 지능이 아주 높은 개는 일부러 뽑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말 똑똑한 개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다가는 자칫하면 자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주인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지는 않는다고.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닭치고 물에 뛰어들 걔'가 바로 이정현이다. 걔의 해바라기 같은 충성심, 하늘 같은 님이 보시기에 보기에 좋았어라. 주군을 향한 이토록 순결한 충성 서약을 볼 때마다 유교 문화의 병폐를 다시 보게 된다. 충과 효를 중시하는 가족주의는 위험하다. 박근혜 입장에서 보면 박정희에 대한 효이고 이정현 입장에서 보면 박근혜를 향한 충인데, 바로 그 효와 충이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들고 있다. 오호통재'다. 말끝마다 시바와 조낸으로 끝내는 나의 상스러운 말투를 지적하는 이도 있지만 좆같은 세계 앞에서 아름다운 말만 쏟아내는 것이야말로 위선이 아닐까 싶다.
"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 " 이라고 아도르노는 말했다. 그렇다면 세월호 이후의 낭만적 미문을 쓰는 것 또한 야만이 아닐까 ? " 시바 " 와 " 조낸 " 은 이제 시대 정신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