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에서
장영희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번>을 읽다가
귀에 부딪힐 것 같은 말을 만났다.

장영희 선생님이 <노인과 바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고 밝힌,
장렬하기까지 한 노인의 말.

" It is silly not to hope.It is a sin."

가혹하리 만큼 직선적이고,
읽는 이를 부끄럽게 만드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이 희망을 끈을 놓지 않도록
희망이라는 밥상을 차려 주지는 못하지만
그 사람이 절망이라는 늪 속에 한 쪽 발을 담그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둥켜 안고 있다가 같이 늪에 빠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겨워하고 있을 때,
같이 울어주는 것 보다 더 어렵고, 또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흔들리지 않음으로서 동요하지 않는 주변을 만들어 주는거다.

" It is silly not to hope.It is a sin."

이런 말이 도움이 될까?

두려움은 전염되고, 확대된다.
소문처럼, 눈덩이처럼 커진다.

흔들리지 않는 주변으로 존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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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2-0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와 희망감 심어 주는 것도 전염되고 확대되어서 흔들리던 사람도,위로하던 사람도 나중에는 할 수 있다는 최면이 걸려 기대이상의 효과를 보기도 하죠. 무슨 자기계발서에서 본 글이 아니라 제가 겪어본 일이라 잘 알죠. ^^* 해마다 준비하던 시험 떨어지던 저와 부모님의 경우가 그랬어요. 나중에는 셤 떨어진 다음날 아침에 온 가족이 씩씩하게 웃으며(?) 아침밥 먹은 적도 있으니까요.

당시에는 별로 와닿지 않는 다독거림 일지라도, 대책없이 같이 울어주는것 같아도 그래줄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요.

kleinsusun 2004-12-04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정말 행복한 사람이네요.

너무 좋은 말이예요. 할 수 있다는 최면에 다들 걸렸으면 좋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겨울 2004-12-0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들리지 않는 주변으로 존재하기. 가슴을 후려치는 말입니다. 애써 대범한척 대수롭지 않은척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웃는 요즘입니다.

글샘 2004-12-21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들리지 않는 주변, 그 경지를 '노인'이라 부르는 거 아닐까요? 고목의 껍질 같은 손과 검은 피부에 깊은 주름들... 그 안에서 우러나는 건조한 사랑.

흔들려도, 흐릿해도, 그래서 명징하지 못해도, 주변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잘 읽고 갑니다. ^^ 메리 크리스마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퇴근했다.

가끔 바쁘지 않을 때는,
시청역에서 사당역까지
2호선을 타고 삥 둘러 온다.책도 읽을 겸.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성대리님은 언제 그렇게 책을 읽으세요? 책 읽을 시간이 있어요?"

대부분 대답 대신 그냥 머쓱하게 웃고 넘어간다.
대답을 하자면....

1.출퇴근길에 읽는다.
차를 팔고 나서 부터, 책을 훨씬 많이 읽게된다.
책을 더 많이 사게 되고, CD를 거의 안 사게 된다.
혼자 음악 들을 시간은 이제 거의 없다.
2. 누구를 기다릴 때 읽는다.
항상 책을 가지고 다녀야 가능하다.

뭐...이 정도 밖에 없다.
그런데....사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누구를 기다리는 시간,
하루의 짜투리 시간을 세어 보면 어마어마하다.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면, 이 시간 동안 행복한 독서를 할 수 있다.

오늘 지하철에서 혼자 커다란 목소리로 떠드는 아저씨를 봤다.
내가 시청역에서 탔을 때 부터 이미 그 아저씨의 목소리가 라디오 방송 처럼 울러 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는지 알았다.
그렇게 횡설수설 떠드는 아저씨들 치고,
욕설도 적었고 말하는 내용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 작가들이 말이야, 그러면 안된다구. 어쩌구 저쩌구....
....... 개새끼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작가들"이란 말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혼자 떠드는 아저씨들 쳐다 보다가 눈 마주 치면
정말 골치 아프다.
그래서 아무도 그렇게 혼자 떠드는 사람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흘깃 쳐다보니 그 아저씨는 제조업체들의 공장에서 주로 입는 작업복 잠바에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다. 외모도 깔끔한게 퇴근하는 사람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아저씨의 억양 없고, 강약 없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작가들"이 수 없이 반복되는 그 수신인 없는 연설은
2호선이 빙빙 돌듯이 빙빙 돌고 있었다.
내가 사당역에 내릴 때도 그 아저씨는 계속 떠들고 있었다.

사당역에 내리면서 생각했다.
저 아저씨의 목적지는 어딜까? 내려야 할 곳이 있긴 있을까?

어쩌면 그 아저씨는 선릉역, 삼성역, 구의역, 동대문운동장역,다시 시청역까지 빙빙 돌며 계속 떠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들기에 2호선은 참 경제적인 공간이다.
계속 빙빙 돌면서 새로운 청취자들이 등장하고,
지하철이 빙빙 도는 속도에 맞추어
자신의 강의 테이프도 계속 "Auto Reverse"를 시키면 되니까...
오늘은 몇 바퀴 돌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고,
갈아탈 필요도 없고....

지금은 어딘가 내렸을까?
설마 아직도 그렇게 혼자 떠들고 있는건 아닐까?

도대체 그 아저씨의 목적지는 어딜까?
내려야 할 곳이 있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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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1-30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책 읽는 시간이 비슷하시군요. 책 읽는 시간을 쪼개는 방식이요......(음, 아저씨 얘기 말구 엄한 소리를 했군요)

kleinsusun 2004-11-30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도 출퇴근하는데 시간 많이 걸리세요?

회사는 광화문이라 그러셨던 것 같은데.... 교보문고 자주 가시겠네요.

오늘 출근길은 계속 졸았어요.ㅋㅋ
 

금요일 저녁, 강남에 있는 한 삼겹살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9시 뉴스를 하고 있었다.

고기 굽는 소리 지글지글,
이미 취한 옆테이블 사람들이 내는 괴성,
손님 나간 테이블을 치우는 소리....

9시 뉴스.
비디오는 보이지만, 오디오는 하나도 들을 수가 없었다.

TV가 내 앞쪽에 있어서 그냥 설렁설렁 눈길이 갈 때 마다 보고 있는데, 서점이 나왔다.
대학 교수들 인터뷰 할 때 그 뒤에 배경 화면으로 보이는 책장만 봐도 가슴이 뛰는 수선. TV를 뚫어져라 쳐다 봤다.

갑자기 아는 사람이 나왔다.
자막이 튀어 올랐다.
" 출판 평론가 김영수"

몇년 전 보다 많이 늙었다.
세월을 피해가는 사람은 없나 보다.

이 사람 어떻게 아냐구?
그 사람한테 "출판강좌"를 들었다.

한겨레 아카데미에서 "출판강좌"를 들었고,
(일주일에 한번씩 3개월 짜리 강의였는데, 반도 출석하지 못했다),
01년에 미지로 아카데미에서 "출판실무(?)"(강좌 제목이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음)을 들었다.

미지로 아카데미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6개월 짜리 강좌였다.
수업료가 자그만치 "60만원".
난 거액의 수업료 때문에 다닐까 말까 무지하게 망설였으나,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무대뽀 정신을 발휘하여 카드를 긁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6개월 할부를 했던 것 같다.

첫 수업 시간....
난 적쟎게 당황했다.

왜냐?
대학생 한 명과 아줌마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직 출판사 직원이었다.
"단월드" 계열의 출판사 "한문화" 직원들은 4~5명이 단체 수강을 하고 있었고, "식물추장" 이사님도 계셨고, 출판사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 출판사를 경영하거나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출판사 직원들은 회사에서 교육비를 내주고 있었다.
물론 할인된 가격으로....
정가 "60만원"을 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이마에 붙이고 앉아 있는 사람은 대학생 한 명과 아줌마 한 명,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 뿐인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는 매번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특이한 사람들도 많았고,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 때 수업을 같이 들은 많은 사람들 중,그 아줌마가 생각난다. 지금쯤 그 아줌마는 뭘하고 있을까?

그 아줌마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면 알아보지 못할 꺼다.

그 아줌마는 전업주부였다. 10년차 정도?
전업주부의 생활에 권태를 느낀다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아줌마는 책을 참 좋아해서,
낮에는 항상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그 아줌마가 젤로 좋아하는 저자는 "법정스님".
법정스님의 글들을 읽으며 마음을 달랜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도 법정스님의 책들 처럼 마음에 위안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출판강좌"에서 배우는 주된 내용은
어떻게 시장을 읽고, 잠재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기획하고, 어떻게 마케팅을 하고, 결국 어떻게 돈을 버냐....하는 거다.

뭐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아침형 인간>이 뜨면, 재빨리 <저녁형 인간>을 만들어야 하고,
항상 출판계의 트렌드를 읽으면서, 어떤 책이 뜰 것인지를 예측해야 하고, 발 빠르게 먼저 터뜨려야 하고.....

그런데....
그 아줌마는 그런 수업내용을 아주 싫어했다.
처세술 책들을 기절할 만큼 싫어했다.

수강생들을 몇팀으로 나눠서 발표도 하고,
팀별 토의도 하고 했는데 그 아줌마는 항상 법정스님류의 에세이들만 고집했다.

그 아줌마는 아주 고집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름대로 "시장조사" 이런 것도 해오고
내년이 월드컵이니까 축구 관련 이런 책이 나와야 한다,
요즘 이민을 많이 가니까 이민 관련 어떤 책이 나와야 한다 등등
시황을 중심으로 이런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발표를 했는데,
그 아줌마는 그런 걸 아주 한심하게 생각했다.

책은 무조건 법정스님의 책 처럼 읽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그런 깊이가 있는 책이어야 한다.
그게 그 아줌마의 지론이었다.

한번은 선생님이 그 아줌마에게 말했다.
"출판기획자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게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거예요."
그 때 그 아줌마가 어떤 반응을 보였더라?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금요일 저녁 강남의 한 삼겹살 집에서 본 9시 뉴스에서
우연히 출판 평론가 김영수를 보고,
(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아줌마를 기억했다.

지금쯤 그 아줌마는 뭘하고 있을까?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 있을까?
혹 출판사를 하나 만들었을까?
<좋은 생각>이나 <샘터>에 가끔 원고를 보내고 있을까?
애들 교육에 바빠져서 정신이 없을까?

궁금하다.
지금쯤 그 아줌마는 뭘하고 있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행복하시기를.....

일요일에 출근해서 잡문만 쓰고 있는 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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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회사에 계신가봐요? 에고고고....그래도 스트레스는 님의 힘이니깐!! 어떤 것을 열렬히 좋아하면 어떻게든 그 안에 있고 싶은 건 기본적인 욕망이겠지요... 아마도 그 아주머니 여전히 책이 있는 곳에 계실 것 같네요. 님은 잡문 이라 하시지만, 휙휙~ 잘 읽혀요~! 참, 님의 도서관 다녀왔는데... 대단한 홈피를 갖고 계시더군요. 도서관을 위하여 와인 한 잔 건넵니다~~ ^^

로드무비 2004-11-28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휙휙 잘 읽혀요.

그 아줌마가 뭐 하고 계실지 저도 궁금합니다.^^

kleinsusun 2004-11-2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저 와인 무진장 좋아하는데.... 달콤한 레드와인이 땡기네요, 지금.

감사합니당. 언젠가 플레져님, 로드무비님 만나서 와인 한잔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당.

marine 2004-12-1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세술 책은 정말 싫은데...서점에 왜 그렇게 처세술 책이 많이 깔리나 했더니, 다 그게 출판 전략이었나 봅니다
 

<너무 추워서 결혼할 뻔했다>
이런 책이 있다.

제목이 맘에 들어서 살까 했는데,
서점에 가서 보니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어떤 책이냐구?

알파벳 A부터 Y까지 첫 글자에서 연상되는 단어를 가려 뽑아 소제목으로 삼고, 그에 적합한 인용글들을 배치했다. 부재(Absence), 충고(Advice), 아름다움(Beauty), 연인들(Lovers), 실연 이후의 사랑(On the Rebound)...우디 알렌, 존 레논, 체스터튼 등 유명인사들이 털어놓는 사랑에 관한 짧은 담론 모음.
- 인터넷 서점 <알라딘> 책 소개.

난 이런 책이 싫다.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들을 주어와서 뛰엄 뛰엄 만든 책.
왠지 멍청해 보인다.

그런데...
제목 하나는 정말 마음에 든다.

왜 이 책 얘기를 하냐구?

감기로 하루 종일 고생하다 일찍 퇴근,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다.
아빠가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시다가
영화 <약속>에 고정,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약속>을 봤다.

벌써 몇년 된 영화다.
98년인가? 그 때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난 의도적으로 울라고 만든 아주아주 인위적인 설정의 영화,
<약속>,<편지>,<집으로>,<가족> 이런 류의 영화 디따 싫어한다.
보면 막 화난다.

<약속>.
아주 자극적인 대사들로,
"이래도 안 울어?" 하는 감독의 장치들로 가득하다.

특히 박신양이 자수하러 가기 전,
교회에서 결혼하는 장면.
전도연이 "여보!" 할 때, 압권이었다.
감독의 야심찬 표정이 보인다.
" 아무리 독한 여자라도 이 장면에서는 울 수 밖에 없을껄?"

내 마음에 와닿은건 주인공들의 최루성 대사나 중요 줄거리가 아니었다. 전도연을 좋아하는 선배의사의 대사 한 마디였다.

전도연을 찾아 와서
자기 미국에 PhD하러 간다고 함께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전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그 선배가 다시 한번 전도연을 찾아와 말한다.
(비행기 표를 손에 지어 주며) "기다릴께".

아..... 누군가 나한테도 비행기표를 지어 주며 말했으면 좋겠다."같이 가자!"

그럼 난 막 달려갈 것이다.
빨리 집에 가서 짐 싸려구....ㅋㅋ

난 항상 탈출을 꿈꾸었다.

99년에 유학을 가려고 했다.
TOEFL 2번, GMAT는 5번이나 봤다.
GMAT 점수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아서 때려쳤다.
유학 준비를 한답시고 몇 달 놀다가(박정 어학원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다시 취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GMAT를 번번히 망친게 참 잘된 일이다.
왜냐구?
그 때 내가 하고 싶었던건 공부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원했던건 "탈출"이었다.

한비야 같은 잘난 여자 처럼
그냥 배낭 하나 매고 떠날 용기가 없어서
"안전 장치"로 생각한게 유학이었을 뿐이니까....

그것도 MBA.
그냥 주위에서 다들 난리를 치기에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 다니다가 MBA 가는게 무슨 순서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정신으로 유학을 갔다면
그건 심각한 외화 낭비였고,
울 아빠가 피땀 흘려 벌고 울 엄마가 피땀 흘려 아낀 재산을 축내는 파렴치한 행동이었으며,
청춘의 낭비였을 꺼다.

유학 준비 뿐이랴?
난 항상 "탈출"을 꿈꿨다.

태국에서 일하려고 인터뷰하러 방콕까지 가기도 했고,
BK 21 지원으로 학비가 들지 않는다는 대학원 시험을 보기도 했고,
(취열한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하지만...안 갔다)
북경어언대학 어학과정에 등록을 하기도 했다.
북경어언대학 캠퍼스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깔아 두고,
개강일을 기다리다 결국.....가지 않았다.

한 마디로 별 일을 다했다.
탈출하려고....

유학 준비, 해외 취업, 대학원, 어학 연수....
이 모든 것을 다 합한 것 보다 더 엄청난 발상을 하기도 했다.

그건 바로.....
"결혼".

회사 다니기가 너무 싫고 힘들어서,
차라리 결혼을 해 버릴까....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탈출을 하려고 무덤을 파다니...

그 때의 내 심정은
"너무 힘들어서 결혼할 뻔했다."

이제 알겠지?
<너무 추워서 결혼할 뻔했다>라는 대수롭지 않은 책제목을 왜 그렇게 맘에 들어 했는지....

난 알고 있다.
필요한건 "견고한 자아"라는 걸....
내가 약하면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다 똑 같으리라는 것을...
내 힘으로, 내 두 다리로 우뚝 서야 한다는 걸....

하지만 가끔 힘들 때면,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어떤 멋진 남자가 불쑥 나타나,
비행기 표를 지어주며 "같이 가자!" 말하는 장면을...

Be str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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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2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서재로 넘어오는 그 ?은 순간에 축하 메시지를 뭐라 적을까 고민했더랬습니다. ㅋㅋ 제목 정말 멋지네요~ 너무 힘들어서 결혼해도 좋은데. 결혼은 해봐야 알아요. 진짜...누가 옆에서 아무리 달콤쌉싸름한 말을 해줘도 모르는 게 결혼인 것 같아요. 걍 눈 딱 감고 해버리시는건... 안될라나요? ㅎㅎ

갈대 2004-11-2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남자인 저로서는 힘들 때는 오히려 결혼 생각이 안 날 것 같습니다. 남자는 문제가 생기면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책 내용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만 제목 하나 만큼은 땡기네요^^

kleinsusun 2004-11-23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겁이 많아서 눈 딱 감고는 못하겠어요.ㅋㅋ

우울할 때 쇼핑하면 이상한 옷을 사게 되쟎아요. 원색에 형광색에 그런거....

한 번 입고 후회하는 옷.

그럴까봐 겁이 나요. 결혼은 평화로울 때 할려고....ㅋㅋ

비로그인 2004-11-2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화로울 때 하든 추울 때 하든 후회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은 데... ^^;

초치는 말로 첫인사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kleinsusun 2004-11-23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초 안쳤어요.반갑습니당.

nada 2006-06-0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탈출할 '기회'가 많았는데 왜 안 하셨을까... (전 기회가 없어서라고 박박 우기며 사는 중..ㅋ) 아마 뭔가 2% 이건 아니다 싶으셨겠죠. Be strong! 평생의 과제예요. - -a
 

누가 사다 놨는지,
(아마도 막내동생이 지하철에서 심심해서 산 것 같다)
집에 <좋은생각> 11월호가 있었다.

대충 페이지를 넘겨 보다가,
이명원이 쓴 글을 발견했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를 읽고,
내가 "데이트 하고 싶은 남자"라 칭했던, 바로 그 이명원.

이명원이 쓴 글의 제목은 '드럼'에서의 몽상

내 마음을 살짝꿍 두드린 그의 글을,
내가 110% 공감하는 그의 심정을 이 공간에 옮겨 적는다.

나는 독신자다.그것이 과연 나의 의지 때문인지 혹은 상황에 의해 불가피하게 주어진 것인지,가끔 나조차도 알쏭달쏭하다.30대 중반을 넘어선, 중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푸릇한 청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세월이 간혹 하중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이 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는 홀로 몽상에 잠길 공간 하나 찾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독신자도 밥을 먹고,차를 마시고,술을 마시며,몽상에 잠기건만,이 나라의 카페와 술집들은 획일적으로 두 사람 이상의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떠들썩함으로 가득하다.


내가 오래 전 부터 해온 생각이다.
가끔은....혼자 있고 싶다.
가끔은....혼자 몽상에 빠지고 싶다.
가끔은....혼자서 술을 마시고 싶다.

여자 혼자서 술 마시는 걸 바텐더가 부담스러워 하는 그런 공간 말고,
게임하며 술 마시는 애들 때문에 떠나갈 것 같은 그런 시끄러운 술집 말고,
오랜만에 글빨 받아서 무서운 속도로 써내려 가는데 옆 테이블에서 티격태격하는 커플 때문에 신경 거슬리는 그런 카페 말고,

그냥 좀 조용하고,
음악도 좀 신경 써서 틀고(아예 틀지를 말든가, Bugs Top 1000 전체듣기 틀어 놓는 집이 제일 싫다),
늦지도 않았는데 술 취해 떠드는 사람 없고,
얼치기 손님 들어와 마이크 성능 시험하듯 크게 떠들지 않고,
쫙 빼입고 와서 묻고 답하기 놀이 하는 소개팅하는 사람들 좀 없고,
인테리어에 너무 돈을 쳐발라서 왠지 더 촌스러운 그런 공간이 아닌,

혼자 있어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곳.
그런 cafe 없을까?

내가 백조였을 때,
딱 그런 cafe를 하나 찾았었는데,
그래서 거의 매일 차를 몰고 가서(백운호수 구석에 있는거라 버스나 지하철로 갈 수 없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낙서를 하고, 좀 졸기도 하다가 집에 왔다.

자주 가니까
아저씨가 음악도 내 마음대로 틀고,
커피도 알아서 타 마시고 하라고 했다.

참....행복했다.
통유리 창으로 보이는 나무들도 참 예뻤다.

농협에서 명퇴를 하고 자기가 살던 집을 개조해서 카페를 하던 아저씨.
그 카페에는 정말 사람이 없었다.
별로 돈을 버는데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무슨 Jazz 동호회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은 홍대 앞에 있는 Jazz house에 가서 연주를 한다고 했다.

cafe에 사람이 너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 일이 하고 싶어졌을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일까?

그 아저씨는 다시 취직을 했다며,
cafe 문을 닫는다는 충격 선언을 했다.
그 때는 내가 우아한 백조생활을 끝내고 한참 바쁠 때라,
거의 한달에 두세번 밖에 그 cafe에 못 갔기 때문에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그 cafe는 없어졌다.
새로운 주인은 그 cafe를 철저히 상업적인 공간으로 변형시켰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듯,
cafe는 철저하게 주인이 결정짓는 공간이다.
하루 종일 어떻게 하면 매출을 더 올릴까 생각하는 여자 사장이 cafe를 운영하자, 정말 신기하게도 손님이 많아졌다.
심지어 그 외딴 곳에 단체 손님까지 온다.
하지만....난 이제 그 cafe에 가지 않는다.

홀로 몽상에 잠길 아늑한 공간.
그런 cafe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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