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부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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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034월에 나쓰메 소세키(당시 36)는 제1고등학교 강사와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교수를 겸하게 된다. 그리고 5개월 후인 9월에 제1고등학교의 제자인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 폭포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다시 신경쇠약증세가 악화된다. 또한 아내와의 불화로 임신중인 부인과 별거에 들어가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는 어릴 적부터 곁에 있던 사람들의 죽음을 무수히 목도해왔지만, 교편을 잡은 첫 해에 자신의 제자의 자살 사건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1908(당시 41) 1~4월까지 아사히 신문에 갱부를 연재한다.

 

 

 

 

 

2.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멘탈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제자의 죽음 이후의 소세키의 가슴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상처의 응어리가 깊게 남아 있었다. 작가 장정일은 이 작품을 이렇게 표현했다.

 

게곤 폭포에서 자살한 소세키의 제일고등학교 제자 후지무라 마사오의 번민에 대한 석명”(321p)

 

닛코의 산속에 있는 게콘 폭포는 높이가 100미터를 훌쩍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웅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소세키가 가르친 제1고등학교는 도쿄제국대학 진학을 위한 예비문(교양학부)이었다. 후지무라 마사오는 이 폭포에서 투신자살 직전에 바위 위의 나무에다 <암두지감>이란 글을 남겼다.

 

막막한 하늘과 땅

아스라한 과거와 현재.

보잘 것 없는 내가 이 신비를 풀어보고자 했지만

호레이쇼(햄릿의 친구)의 철학으로는 아무것도 풀 수가 없다.

세상의 진실은 오직 한 마디,

불가해라!

풀리지 않는 번민 끝에 죽음을 결정했으니

절벽 위에 서서도 가슴 속엔 아무런 불안이 없다.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은

커다란 비관과 커다란 낙관이 서로 같다는 것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영화 글루미선데이gloomy Sunday(노래도 있다)의 이야기처럼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불러왔다. 후지무라 마사오의 유서의 후폭풍도 거셌다. 숱한 이들이 이 폭포에서 자살을 했고, 후에 이 게콘 폭포는 자살의 명소가 되었다. 소세키는 제자의 죽음 이후 5년의 깊은 사색과 성찰이 이 작품에 녹아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중의 주인공은 소설 같지 않다’, ‘소설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할 뿐이다. 소설처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설처럼 재미있지는 않다. 그 대신 소설보다 신비하다. 모든 운명이 각색한 자연스러운 사실은 인간의 구상으로 만들어낸 소설보다 더 불규칙적이다. 그러므로 신비하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147p)

 

 

이 작품은 unique한 교양소설이다.

 

 

 

 

3.

일단 이 정도의 결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그때의 심리 상태를 해부해본 것일 뿐이다. 당시에는 그저 어두운 곳으로 가면 된다. 어떻게든 어두운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오로지 어두운 곳을 목표로 걸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빙충이 같은 짓이었지만, 어떤 경우가 되면 우리는 죽음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최소한의 위로가 된다는 것을 납득하게 된다. 다만 목표로 하는 죽음은 반드시 멀리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 가까우면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의 운명이다.’(22p)

 

주인공은 정확하게 밝히진 않지만 19세의 젊은이가 느끼는 격한 감정으로 인해 가출을 하게 된다. 그리고서 자살을 결정하다가 생을 포기한 자의 마지막 선택으로 광부가 되기로 한다. 그것은 대단한 과정이 아니었고 우연한 결과였다. 인생은 누가 누가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B(birth 출생)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의 문제라고.

 

주인공은 BD 사이에서 D로 가기 전에 또 다른 C를 취한다.

 

애석하게 당시의 내게는 자신을 연구하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저 분해서, 괴로워서, 슬퍼서, 화가 나서, 그리고 딱해서, 미안해서, 세상이 싫어져서, 인간임을 다 버리지 못해서, 안절부절 못해서’(44-45p) 그는 가출을 했고, 또 다른 C를 선택한다. 돈벌이를 위해 그는 갱부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D를 선택하기 전에 우연찮게 조조란 인물이 그에게 던진 한 마디,

임자, 일할 생각 없나?”(85p)

 

그 말에 꽂혀 선택한 것이 바로 갱부였다. 과연 그 허약해 빠진 19세의 가출청년이 과연 갱부가 될 수 있을까?

 

 

 

 

 

4.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집이 없습니다. 갱부가 되지 못하면 구걸이라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158p)

 

온실 속의 화초처럼 19년 동안 자라온 주인공이 죽음을 결심했다가 또 다른 선택지인 갱도로 들어섰을 때, 거기엔 막다른 장소였고 특별한 시간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정말 돌아갈 집이 없는 노숙자가 아닌 다음에야, 다들 come backhome이 있다. 주인공은 상실의 시대의 젊은이들처럼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갱부를 선택하지만, 그 선택으로 그는 돌아갈 곳을 찾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 끓는 청춘의 시절에는 다들 자신의 개인적인 마음의 상처와 데미지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나머지(실제로 대단히 크고 심각한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D(death)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소세키는 제자의 죽음을 사유하면서 D가 아닌 C(choice)를 선택할 것으로 말해주는 듯 하다. 1만명이 넘는 탄광촌에 수많은 노동자들, 하루에도 몇 번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그 곳, 먹는 쌀, 안남미-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이후에 걸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 쌀의 속칭, ‘벽토라고 불렸는데, 이 수입쌀은 일본인의 미각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불편하고 더럽고 추잡한 잠자리, 끊임없이 몸을 휘감는 빈대와 벌레, 그리고 섟일래야 섟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관계들...

 

평소의 흰밥도 신물이 날 정도로 먹고 싶지만, 그보다는 빈대가 없는 이부자리에 들어가고 싶다. 30분이라도 좋으니 푹 자보고 싶다. 그런 뒤라면 할복이라도 하겠다.’(304p)

 

 

 

 

 

5.

어때, 여기서 지옥의 입구야. 들어갈 수 있겠어?”(211p)

 

갱부 하쓰 씨가 갱도에 들어가기 전에 주인공에게 한 말이다. 삶이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지옥 같다고 할지라도, 갱도에서 일하는 갱부들의 일상을 경험하면서 주인공은 변해가고 성장해간다. 물론 작품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는다.

 

구약성경 욥기를 읽다가 문득 갱도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그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욥기 284)

 

갱부는 사람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 발길이 닿지 않는 곳, 깊이 뚫린 갱도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다. 그 지옥 같은 장소와 시간의 하루...그곳에서 존버하는 인생이 바로 갱부였다.

 

 

 

 

6.

D(death)가 아닌 C(choice)를 선택하는 자, 그 자가 또 다른 의미의 갱부가 아닐까? 문득 인간실격을 썼던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가 생각이 난다. 끊임없이 D를 선택하려다가 실패하고, 실패하고, 결국 39세에 다섯 번째 D시도를 강물에서 투신 자살로 마무리했던 다자이 오사무! 하지만, 우리는 삶이 지옥 같은, 하데스 같은 고통과 고난이 있다손 치더라도 D가 아닌 C를 선택하는 자가 되었음 좋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겠지만, ‘살아남은 자의 희열또한 있기에. 호흡이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7. Epilogue...

나는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문득 소세키의 건강을 생각했다. 몸도 안 좋은 양반이 갱도 속에서 들어갔나, 어떻게 들어갔을까? 어떻게 이렇게 디테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마치 내가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체험현장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리얼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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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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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의 동기, impulse의 핵심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타인의 시선, 편견, 판단, 비난, 욕설, 평가, 저주 등. 이 모든 타인의 것에 대한 자기 자신의 벌거벗은, 나체화된 수치심의 실체를 직면하고자 그녀는 글을 쓴 것이다 그 느낌은 어떤 것일까?

박완서의 <박완서의 말>을 보면 박완서는 40세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녀는 소설은 자기만의 자전적 스토리에다 상상력을 부과한 그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는 듯 했다 일단 나를 그렇게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자기 이야기, 스토리는 nonfiction인데, 상상력이 결합되면 faction이 될 것이고, 더하면 fiction이 될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벌거벗은 글쓰기”는 nonfiction인 셈이다 “부끄러움”을 글쓰기로 승화시킨 그녀의 매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녀가 커보인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역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 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가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138p)

“내게 글쓰기는 헌신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없다면, 실존은 공허하다 만일 책을 쓰지 않았다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21p)


비천하고 가난하며 우울하고 엉망진창인 가정환경과 가정사, “내가 열 두살 때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었어” 라는 고백으로 시작하며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운 과거를 까발리는 것은 그녀의 상처에 상처를 덧대는 작업이지만, 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정면승부이기에 그녀의 그런 일생의 용기가 진짜 크게 느껴진다 작가는 다들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용기있는 자만이 글을 쓸 수 있다??!!
내게도 벌거벗는 용기가 있기를. I hop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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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08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
쓴다고 하던데 말이죠.

암튼 특이한 작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0-09 08:05   좋아요 0 | URL
세상엔 다르디 다른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 작가군도 다양하다 다양한거 아니겠습니까? 모든이로부터 자유한다는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글쓰기는 또 다르겠다 싶기도 하고 그렇네요~

cyrus 2019-10-09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상대방의 부끄러운 점을 약점으로 삼아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남들 앞에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 2019-10-09 08:14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자기의 약점이나 부끄러움을 공유하는것은 공감이기도 하고 관계가 더 깊어질수 있는 단계인데 그걸 역이용하는 심리가 인간에겐 있네요 도끼가 그런 이야길하는데 인용은 안할랍니다 ㅎㅎ
 
태양은 다시 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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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이 아닌 청년 헤밍웨이가 쓴 작품

1 헤밍웨이가 27살에 쓴 『태양은 다시 뜬다』는 출판하자말자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27살? 도대체 그 나이에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음악가였다.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준 낚시군 산티아고의 모습에서 헤밍웨이가 첼로를 켜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릴적 그는 첼로를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어릴적부터 낚시를 좋아했고, 이 작품에서도 낚시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젊을 때부터 '영문학'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당대의 문인들, 에즈라 파운드, 피츠 제랄드, 거트루드 스타인 등과 교류하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고 결국 이 작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폴 오스터였던가? 수많은 이들에겐 스승이 있었고, 도제식 교육과 배움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윌리엄 포크너처럼, 헤밍웨이도 대학의 시스템교육을 거절하기도 했다. 천재적 문학적 영민함은 시스템의 온실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야생에서 자라나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여전히 학벌과 학력을 잣대로 삼는 듯하다. 과연 그 시스템에서, 그 학력의 프로필에서 천재가 탄생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전쟁에 참여한다. 몇 개월후 그는 다리를 다친다. 그 병상체험과 전쟁체험이 그를 더 원숙하게 만든 게 아닐까? '충격을 먹으면 성숙한다'는 일개의 우스갯소리처럼 그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삶을 배워갔던것이다. 기자출신의 작가여서 그런지 문체가 간결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2 문체 이야기가 나오니 헤밍웨이의 '빙산이론'(iceberg theory) 즉, '생략이론'(omssion theory)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질과 중심과 핵을 숨기고 '빙산의 일각'만을보여주는 이런 문체와 글은 에즈라 파운드의 영향이거나 에즈라 파운드가 심취했던 일본 하이쿠의 영향이란 이야기도 있다. <빙산이론>에는 당연히 수많은 메타포metaphor와 상징, 은유가 등장할 수 밖에 없다. 등장인물 제이크의 성불구자 모습을 빗댄 술자리에서의 친구들과의 농담과 대화 가운데 단순함을 넘어선 수많은 상징과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3 헤밍웨이하면 <Lost Generation>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전쟁이후의 거대한 상실감은 주인공,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방황과 방탕과 표류를 보여준다. 20대의 대한민국 청춘들의 방황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끊임없이 표류하고 표류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여주인공 브렛을 들 수 있다. 한 남자와 헤어지고 이 남자, 저 남자로 옮겨다니면서 대단한 남성편력을 보여주는 청춘녀, 브렛...어디에서고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브렛, 심지어 19살(브렛은 32살)의 젊고 매력적인 투우사 로메오에게 한 눈에 반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사랑에 올인하고, 감정에 올인하는 거기에서도 그녀의 만족은 찾아볼 수 없다. 브렛을 둘러싼 애정구도는 삼각, 사각, 이중, 삼중 그물망처럼 퍼져 있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심리적 안식처이자 피난처는 제이크이지만, 제이크는 성불구자이다.  

"난 마이크에게 돌아갈거야!"(332p)

그 마이크는 로메오 앞에서 술취해 생쑈(?)를 벌인 친구였건만, 과연 브렛은 마이크에게 온전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을까? 여전히 불안하다. 그래서 lost generation인 것이다. 




4 이 청춘남녀들이 여행길에 오른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안장된 전설때문에 유명해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길이고, 산티아고는 중세 때부터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기독교의 3대 순례지가 되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변형이고, 콤포스텔라는 '별의 들판'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제이크는 Jacob의 애칭이며, Jacob은 야곱, 야곱의 야고보와 어원이 같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제이크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큰 부상을 입어 성불구가 된다. 병원에서 간호하던 여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맺어질 수 없는 관계로 전락한다. lost generation은 1차 세계대전 후의 상황의 세대를 지칭하기도 지만, 더 확대시키면 전 인류를 상징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세대', '방황하고 표류하는 세대', 절대성과 유의미와 최고선, 가치를 상실한, 삶과 죽음 사이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인류 세대를 지칭하기에 이 작품이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지금도 그 적용점이 존재하고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계속 받는 게 아닐까 싶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모든 주체는 인간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까뮈(Albert Camus) 역시 현대사회에서 ()을 믿는 것은 현세의 아름다움에 대한 모욕이며 죄악이라고 주장하였다. 헤밍웨이는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신(God)의 부재(不在)나 죽음을 다루고 있고, 포오크너 역시 신은 아직 존재하되 너무 늙어 인간에게 더 이상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사실상 신(God)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본인의『소리와 분노』paper에서) 




5 제이크는 어쩌면 훼밍웨이의 종교에 대한 맘을 담은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고 품고 용납하지만, 성불구자인 제이크....헤밍웨이는 청교도신도인 어머니의 신앙교육을 업악적으로 견디며 커왔기에, 종교는 그에게 커다란 짐이었다(이전에 헤밍웨이에 대한 나의 글을 참조하시길!). 어머니가 온전하고 경건한 신자였다면,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포용적이었더라면 그의 남편인 아버지가 권총자살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헤밍웨이의 집안에서 아버지, 헤밍웨이, 자신, 큰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손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5명이 자살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의 가족, 집안사가 말 그대로 'lost generation'이 되버린 셈이다.




6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과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산티아고 순례길'...헤밍웨이는 끊임없이 길을 찾아 헤매는 구도자, 순례자의 모습이 역력하다. 노벨문학상 조차 수상한 그가, 그토록 낚시와 사냥과 투우를 즐기면서 열정적인 삶을 살며, 수많은 여인과 결혼하고 이혼을 거듭한 천재작가는 아픈 몸과 우울증으로 자신의 애장하던 엽총으로 자신을 쏴 버린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건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다시 뜨고 다시 지며, 뜬 곳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바람은 남으로 갔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빙빙 돌고 돌아 그 가던 길로 돌아온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으며 강물이 비롯된 곳으로 돌아간다"(구약성경 전도서 1:4-7)




7 문득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의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stray sheep..."

Lost Generation은 'Stray sheep'인 셈이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The Sun also Rises>인데, 제목이 너무나 희망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아마 헤밍웨이가 27살의 피끓는 청춘에 탈고해낸 수작이라서 더 그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태양은 다시 뜬다'...그것은 사실이고 진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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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0-02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J. D. 샐린저가 헤밍웨이의 영향을 받은 거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샐린저의 문장도 ‘빙산의 일각’ 같은 느낌이 들어요. 특히 샐린저의 단편에 있는 문장들이 그래요. ^^

카알벨루치 2019-10-02 17:56   좋아요 0 | URL
그게 일반독자의 눈에 안 보이는데. 전문가가 “빙산이론”이라 하니 그런갑다 싶고...참 문학의 샘물은 파도 파도 끝이 없나 봅니다~

소피아 2019-10-02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칭구^^

카알벨루치 2019-10-02 23:14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소피아님 즐독, 열독, 광독(?)하소서! 휴일 잘 보내세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가네코 후미코 지음, 장현주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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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열을 아는가?

   영화 <박열>이 세상에 나오면서, 숨겨진 독립운동가였던 그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조금 드러난 셈이다. 이 책은 박열의 부인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을 보고서, 박열과의 스토리가 궁금해서 영화를 찾아 보았다. 이 책은 박열과 만나기 전까지의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영화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굉장히 밝게 나온다. 긍정적이며 당차고 용감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만을 본다면, 가네코 후미코의 아픔과 상처를 갸늠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읽어본다면, 그녀가 왜 그렇게 밝아졌는지, 용감해졌는지, 씩씩해졌는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있다. 그가 만난 연인, 박열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시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를 읽고서 엄청난 충격과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인력거를 끄는 박열에게 소위 말하자면, 대시(?)를 하게 된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1903년에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 1905년에 나쓰메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했다. 박열은 일본인들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나쓰메 소세키의 이 작품의 제목을 패러디해서 지은 듯 하다. 가네코 후미코가 왜 이 시에 꽂혔을까?

 

나는 그 시를 읽었다. 이 얼마나 힘있는 시인가. 한 줄 한 줄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시를 다 읽고 나자 황홀한 지경이었다. 가슴에서 피가 요동쳤다. 어떤 강한 감동이 나의 생명을 고양시키는 듯 했다.’(302p)

 

그의 수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조선에 있을 때 나는 개와 나를 항상 연결해서 생각했다. 개와 내가 똑같이 학대당하고 똑같이 구박당하는 가장 가련한 형제처럼 여겨졌다.’(171p)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시에 꽂힐 수 밖에 없는 후미코였다.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인에게 그런 대우를 받지 않았던가! 후미코는 일본인이었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그런 대우를 받았기에 박열의 시에, 박열에게 자신의 인생을 올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적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모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네코 후미코는 이른바 무적자인 셈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학교도 부탁에 부탁으로 겨우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지지리도 가난한 현실은 그녀의 문자, 학교, 배움에 대한 열정을 언제나 방해했다.

 

노트 한권과 연필 한 자루를 사 줄 때까지 2,3일이나 학교를 쉬어야만 했다.’(38p)

 

무적자라는 것을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땅을 떠나 친할머니와 함께 바다를 건넌 후에 알게 되었다.

 

넌 말이야, 설마 잊지는 않았겠지. 넌 무적자였어. 무적자는 말이야. 잘 들어. 무적자란 태어났어도 태어나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학교에 갈 수도 없지. 가도 다른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만 당해. 그런 널 내가 불쌍히 여겨 입적해준 거야.”(91p)

 

가네코의 친할머니의 입에 나온 말이었다. 상속녀로 데리고 간다고 했지만, 결국은 식모살이만 7년 동안 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려 보낸다.

 

하지만 내가 무적자였던 게 내 죄인가. 나는 내가 무적자였던 것도 몰랐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만 알고 있었고 그 책임도 두 사람이 져야 한다. 그런데, 학교는 내게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나를 멸시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는 거라곤 내가 태어났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아무리 친할머니가 태어났어도 태어나지 않은 거라고 말해도 나는 태어나서 살아 있다.’(92p)

 

절친 타미가 죽어가면서 가네코에게 남긴 유품까지도 친할머니란 작자는 이와시타 집안의 후계자로 정해진 사다코에게 줘버린다. 12-13살 어린이는 한창 놀 나이지만 친할머니는 가네코의 모든 자유와 시간을 억압하고 박탈해버린다. 어떻게 학교는 보내줬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왜 그렇게 억지로 데려가는 거죠? 당신은 아이가 중요한가요, 옷이 중요한가요? 아이는 옷 때문에 있는 게 아니에요. 아이를 위해 옷이 있는거죠. 그렇게 더럽혀서는 안 되는 옷이라면 함부로 입어도 되는 옷을 입히면 되잖아요. 어른은 자신의 체면이나 수고만을 위해 아이를 희생시키고 있어요. 어른은, 특히 어머니는 아이를 위험에서 지키고 아이의 천성을 살려주는 게 일입니다. 아이의 자유를 빼앗고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에요. 아이를 자유롭게 놀게 해 주세요. 자유롭게 자연에서 노는 일은 자연이 아이에게 준 유일한 특권이에요. 그렇게 했을 때 아이들은 무럭무럭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는 거예요.”(119p)

 

 

한 끼도 먹지 못한 가네코, 그 소녀의 딱한 사정을 익히 아는 이웃집의 조선인 아줌마가 보리밥이라도 주려고 했지만, 가네코는 거절하고야 만다. 할머니와 집안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말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조선인의 집에서 밥이나 얻어 먹고 다니는 거지는 우리 집에 둘 수 없어.”(131p)

 

낮에 놀만큼 놀고 이제 날이 저물어 갈 곳이 없으니까 돌아와서 용서를 빌고 우는 소리를 늘어놓는 게 네 특기냐. 뭐야, 밥 한 그릇이라도 너한테 주는 집이 있었니? 우리도 마찬가지야. 너한테 줄 밥은 없어.....”(132p)

 

그 어린 소녀가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그녀는 결심한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친할머니와 고모는 나에 대해 뭐라고 할까. 어머니와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까. 어떤 거짓말을 해도 나는 이미 그렇지 않아요라고 해명할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죽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복수해야 한다. 그렇다. 죽어서는 안 된다.’(137p)

 

 

 

조선에서의 7년의 식모살이

조금이라도 빨리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기차에서 나는 어서 나를 조선에서 다른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디든 일각이라도 빨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실은 데려다달라고 할 곳은 없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나는 고슈의 시골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곳이 나의 진정한 휴식처는 아니었다. 마을을 보고 큰 외삼촌을 보자, 한층 우울해졌다.’(161p)

 

나는 조선생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불평을 하기가 싫었고 해봤자 믿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64p)

 

나는 이 책을 읽을 즈음에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을 탐독하고 있었다. 소세키의 일생 또한 파란만장했다. 그런데, 가네코 후미코의 불행한 가정사는 더 했다. 소세키는 그래도 후미코 보다는 더 잘 먹지 않았을까 싶었다.

 

 

 

콩가루 집안에서 콩가루가 되어가는 후미코

가난에 찌든 환경도 문제였지만(요즈음은 화장실에 휴지를 쓰지만, 당시에는 종이가 귀해 대나무 쪼갠 것이나 나뭇가지를 젓가락 정도의 길이를 잘라 사용후 시냇물에 씻어 재사용했다고 한다), 가네코 후미코의 부모도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여성편력이 뛰어났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남성편력이 탁월했다.

 

어머니는 여러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고 동거했는데, 내가 조선에 간 후에도 역시 같은 일을 반복한 듯했다...내 어머니는 어디서 굴러먹은 개뼈다귀인지 모르는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서 있는 대로 고생한 끝에 이 남자 저 남자 전전하다가 돌아왔다. 그런 어머니에게 아무런 문제 없는 집에서 혼담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당연히 어머니가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무슨 사정이 있는 사람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분에 넘치게도 어머니는 그런 곳에서는 견딜 수 없다며 뛰쳐나왔다. 결국 어머니는 그렇게 참을성 없는 여자였다.’(166p)

 

그래도 의지했던 남동생이 있었지만, 남동생 나카무라()와도 헤어지게 된다. 여동생 하루코와도 헤어진다. 더 웃긴 사실은 아버지의 연인이, 바로 이모였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건만, 이모와 놀아나는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는 딸의 행복(?)을 위해 유곽을 팔려는 계획까지 세웠다가 제대로 되지 않기도 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말한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나요? 당신들의 사랑은 본능적인 모성애가 있는 동안만 지속될 뿐, 나중에는 완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척하지 않나요?라고. 그리고 우리 엄마처럼 진실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버리고 가면서, 갔다가 싫으면 다시 돌아와서 아이가 돌봐주기를 바라는 뻔뻔스러움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있지 않나요?”(71p)

 

후미코의 아버지는 후미코를 막내 외삼촌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아무리 숟가락 하나의 부담을 던다고 하더라도 이런 막장 드라마는 아니지 않는가!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아버지는 나를 노예로 막내 외삼촌에게 판 것이다. 참으로 나에 대한 모욕이다. 아니, 아버지뿐만이 아니다. 불문에 들어간 막내 외삼촌 역시 이 얼마나 더러운 짐승인가...막내 외삼촌은 처녀의 육체를 탐하는 동물적인 욕망 때문에, 그렇다. 그저 그 동물적인 욕망 때문에 나를 사려고 한 것이다...치요 씨와 사귀며 정을 통하면서, 또 한편으로 나를 노리개로 삼으려 한 것이다...’(180-181p)

 

 

 

콩가루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17살의 봄, 가네코 후미코는 내일 도쿄로 가겠습니다란 말을 남기고 가족을 떠난다. 수중에 기차삯을 포함해 겨우 10엔이 있었다. 아버지란 작자는 우산 하나도 준비해주지 않았다.

 

안녕, 아버지여, 이모여, 남동생이여, 외할머니여, 지금까지 나와의 관계를 맺은 모든 것이여, 안녕, 안녕, 이제야말로 우리가 헤어질 때가 온 것이다.’(218p)

 

 

 

도쿄에서의 변화

도쿄에서 신문팔이, 가루비누, 행상, 식모살이, 식당 종업원 등을 하면서 어렵게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그녀는 조선인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처음에 온통 희망으로 불탔던 나는 고학을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서는 고학 같은 것을 해도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훌륭한 인간일수록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만 한다.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노예로 살아왔다. 너무도 많은 남자들의 노리개로 살아왔다. 나는 나 자신의 일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 나 자신의 일을 말이다. 그런데 나 자신의 일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그것을 알아내어 실천하고 싶다.’(304-305p)

 

 

 

박열을 만나다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 열을 만난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인생의 진정한 반려자, 동지를 만나고 동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옥중에서 혼인신고를 한다. 일본 법정에서 조선인 의복을 입고 재판을 받는다. 일본인인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조국을 배반하고 조선인의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 그녀의 삶과 인생스토리를 알지 못한다면 함부로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박열>에서 취조하는 장면이다. 일본 천황 폭탄 테러의 계획에 대해 심문하는 장면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시종일관 박열과 모든 것을 함께 하려는 발언을 한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자 하는 그녀의 열정이 드러난다. 후미코가 검사에게 박열은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질문하자, 검사는 박열의 말을 쪽지에 적은대로  전해준다.

    

후미꼬에 관한 이야기를 내가 질문하면 그녀의 감정이 상할 수도 있으니 그녀의 주체적인 판단에 맡긴다.’(영화 대사 중에서)

나는 이 대목에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후미코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아는 박열이 그녀의 인격과 성격을 배려해서 말한 부분이다. 이 말에 후미코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배여나온다.

 

저 사람은 마치 집 없는 들개 같아요. 그런데 왜 저렇게 도도하죠? 마치 태도가 왕자 같아요.’(308p)

 

그 사람 안에 작용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렇게 힘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그렇다. 내가 찾고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그것은 분명 그 사람 안에 존재한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것이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가지고 있다.’(309p)

 

이런 후미코가 박열을 처음 만난다.

 

나는 당신 안에서 내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어요.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해요.”

 

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죠.”(315p)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더요.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같이 살아요. 그때는 내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게요. 결코 당신을 병 따위로 힘들게 하지 않을 거예요. 죽는다면 같이 죽어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요.”(320p)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는 여기까지이다. ‘박과 나의 동거 생활에 대한 기록 외에 다른 것은 쓸 자유가 없었다고 후미코는 말한다.

 

 

 

23살의 꽃이 지다

1926727, 가네코 후미코는 우쓰노미아 형무소에서 스물셋의 한 여름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931년 후미코가 스스로 목매달아 죽은 지 5, 그녀가 죽은 7월에 형무소에서 4년 동안 썼던 수기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는 바로 가네코 후미코의 형무소에서 수기로 기록한 자서전이다.

 

1923년 간토대지진으로 일본은 극도의 혼란 속에 빠져든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에 대한 수습과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 희생양을 찾기에 바빴다. 그 희생양이 바로 조센징이었다. 이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숫자는 6천명의 조선인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 와중에 천황 암살 시도 혐의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도 검거된다. 19263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3.1운동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인들은 독립운동가의 사형집행의 후폭풍이 또한 거세어질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천황의 자비, 은혜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함께 죽기를 갈망했던 두 사람의 소원은 이루지 못했다.

 

또한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의 원인을 자살이라고 보편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보면 의문점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그 유명한 박 열과 후미코의 사진

  이 사진은 박 열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줄 유작이 될 뻔한 사진이었다. 내가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도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려 100여년 전이었는데, 이런 포즈로 사진을 찍다니 말이다. 하지만, 가네코 후미코의 인생스토리와 박열의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 느끼는 감정은 남다르다. 그 두 사람의 화양연화’, 인생의 정점이 바로 이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Epilogue...박 열의 뒷 이야기

21세에 투옥된 박 열은 222개월의 최장기 수감기록을 세우면서 44세의 나이에 해방과 함께 석방되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라이프스토리를 들여다 본 형무소 소장은 수많은 조선 동포들 앞에 서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연설을 했다. 이날 그는 자신의 아들을 박열의 양자로 바쳤고, 이름 또한 박정진으로 개명했다. 박열은 후에 월북하여 1974년 평양에서 72세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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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11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열 영화의 영어 제목이 <식민지에서 온 무정부
주의자>네요.

일정 시대에 형무소에서 22년을 살고 나왔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그나저나 메리 추석~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9-11 17:59   좋아요 0 | URL
happy 추석 되시길 삼가 바랍니다 ㅎㅎㅎㅎ

서니데이 2019-09-1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9-09-11 20:51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두 건강하시고 맛난거 많이 드세욧!^^

stella.K 2019-09-11 1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 <박열>은 봤는데 영화가 뭔가 모르게 아쉽더군요.
영화에서 후미코를 알고 그녀에 관한 책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이 책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일제 시대는 그 시대 권력자들에게나 좋았지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나라에 이주해 온 일본인들이
꼭 행복했던 건 아니더군요.
특히 일제 말과 해방 이후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분노에 차서
그들도 못지 않게 힘든 세월을 살았더라구요.
물론 우리 민족이 당한 것에 비하면 덜할지 모르겠지만.

카알벨루치 2019-09-11 20:50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후미코의 옥중수기인데 후미코의 친할머니 쪽이 너무 하더군요 책읽고 영화보니 마음이 더 짠했습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스텔라님^^

단발머리 2019-09-15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열도 박열이지만 정말 후미코의 삶은 너무 파란만장하네요. 그 시대에, 버림받은 여성으로 얼마나 살기 힘들었을까.... ㅠㅠ
카알벨루치 페이퍼로 일본인과 한국인 아웃사이더들의 사랑이 완전히 다른 코드로 읽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이제 교회 가야죠, 명절 지나 주일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9-15 09:48   좋아요 0 | URL
한일관계가 어수선한 상황 가운데 공교롭게도 제가 일본작가의 책들을 읽게 되다니...ㅎㅎ예배 잘 드리고 오셔요~

공쟝쟝 2019-09-27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네코후미코 너무 좋아하는 인물인데 이렇게 벨루치님 포스팅으로 보니 너무 방갑! 저는 평전 읽었는 데 수기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9-27 21:04   좋아요 1 | URL
가네코 후미코 생각하면 맘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도 박열 만나 잠시라도 행복했으니 다행인듯 하지만 인생 너무 짧게 살다가 가서 더 안타깝고 그랬답니다 영화에서 나온 수기가 이 책이랍니다 ㅎㅎ
 
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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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산시로는 소세키의 소설 중에서 특별히 그 후, 과 연결된다. 스토리 전개상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는 산시로를 읽고, 을 읽고, 그 후를 읽었는데, 좀 더 흥미진진하게 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산시로-그 후-,

 

이런 순서로 읽으면 더 좋겠다 싶다.

 

 

 

2

8월 중순에 우연히 잡아 든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는 정말 경이적이었다. 100년 전의 일본작가가 어떻게 청춘의 아픔과 슬픔을 표현하는데, ‘스트레이 십stray sheep’이란 말로 대사를 쳐내는 게 압권이었다. 산시로는 갑 중에 갑이라고 생각한다. 구마모토 출신인 시골청년 산시로가 도쿄로 넘어와 생활하면서 도회인들을 만난다. 거기서 미네코를 만난다. 두 사람의 마음은 소위 썸을 타는 관계였다. 하지만, 미네코의 마음을 확 잡아채지 못하는 산시로...

 

마권으로 맞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맞히는 것보다 어렵지 않은가요? 당신은 색인이 붙어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맞혀보려고 하지 않은 태평한 분인데 말이에요.”(225p)

 

미네코의 대화를 들어보면, 산시로가 미네코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미네코는 산시로가 요지로에게 빌려 준 20엔 때문에 하숙비를 못 낼 처지가 생겼다. 하지만 요지로를 통해 미네코는 기꺼이 산시로에서 20엔이 아니라 30엔의 돈을 빌려준다. 남녀가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런데, 미네코가 산시로에게 거금의 돈을 빌려준다. 30엔은 좀 과장해서 산시로의 가족이 반년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했다. 산시로와 미네코의 달달한 러브 스토리는 풍마우(風馬牛)로 마무리된다(풍마우: 발정기의 짐승도 찾아갈 수 없는 멀리 떨어진 거리,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비유한 말, 사기제환공기에서 나오는 말).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풍마우란 단어를 사용했다. 어떻게 이런 말로 남녀관계를 묘사할 수 있을까?

 

 

3

산시로의 스토리는 대단한 스토리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소세키의 문장과 재치가 너무나 탁월하다. 산시로가 미네코의 미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미네코의 마음이 이 문장에서 드러나는데, 이 문장이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다윗이 자신의 충직한 부하였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난 후 나중에는 우리야는 죽이는 계획을 실행, 밧세바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를 지적한다.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참회하면서 적은 시편이다).

 

내 죄를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잘못 항상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330p-성서(공동번역))

 

산시로를 떠나는 미네코의 마음이 걸려 있는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미네코의 초상화인 <숲 속의 여인>의 그림제목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서 마지막으로 내뱉는 산시로의 말,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이건 완전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작품의 느낌이 격하되는 것 같다.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느낌! 현암사에서 소세키의 전집으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드는데, 디자인과 책이 주는 깔끔한 느낌이 작품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다 지르고 싶지만 참자!

 

 

 

4

나는 20대의 청춘에 얼마나 많은 방황을 했던가!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나누면서 저돌적으로 살아왔던가! 하지만, 소세키가 보여주는 산시로의 방황은 정제되어 있다. 왜냐하면 작품의 초반부에 낯선 여인과의 잠자리를 같이 하고 난 후(말 그대로 그냥 잠자리였다!) 그 여인은 ‘23년간 지녀왔던 자신의 약점을 정곡으로 찔러 버린다.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24p)

 

산시로의 배짱 없음이 문제였을까? 미네코는 산시로도 아닌, 노노미야도 아닌 제 3의 인물에게로 가버린 것은 두 사람을 위한 배려였을까? 청춘의 계절에 해답을 찾을 수 없는, 해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편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00년 전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번역자는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와 산시로를 비교한다. 100년 전 욕망을 거세하며(?) 배짱이 없이 산 산시로의 상실과 돈 쥬앙과 같은 여성편력을 자랑하던 현대의 욕망가, 와타나베의 상실! 현대는 욕망이 증폭될대로 증폭된 시대이기도 하다.

 

산시로의 무채색의 투명하고 정갈한 느낌의 상실감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20대가 아니어서 그럴까?

 

 

 

5

멀리 구름 걸린 하늘의 두견새

작품 가운데 멀리 구름 걸린 하늘의 두견새란 하이쿠가 등장한다. 띠지에 그 문구가 나와 있어 두견새가 뭘까 싶어 뒤져보니 네이버 박사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견이는 대체로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서 한()이나 슬픔의 정서를 표출하는 시가문학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두견새가 가진 심상, 두견새의 슬픈 울음소리...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그 소리의 느낌은 같은 동양권이니 더 하지 않을까 싶다. 배짱 없다고 지적받은 23세 청춘의 산시로의 깨진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해 감동이 더 하다.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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