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아마존에서 12년 동안 근무한 저자가 아마존에서 피부로 느낀 경험들과 생각들을 책으로 펴냈다. ‘성별, 인종, 나이, 장애유무, 결혼 유무 등으로 절대 차별하지 않는’(136p) 아마존에는 매일 약 5,000장의 이력서를 받는 것으로 추정(215p)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12년 동안 살아남은 것이 절대적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2

아마존의 문은 능력있는 자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245p)는 말에는 바보 같은 질문을 수없이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질문하기가 힘든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던가!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이 요즈음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서구식 교육제도를 따라 갈려면 아직도 많이 소원한 것은 현실이다.

 

 

 

3

우리나라의 업무평가는 시간의 양으로 측정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마치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시간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시간의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한다. 어찌하든지 궁댕이를 의자에 붙이고 오래 앉아 있는 근무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적합한 역량과 능력으로 평가받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능력이 있는 자는 언제든지 등용되지만, 능력이 떨어지는 자는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곳이다.

 

 

 

 

4

내가 가장 놀랬던 부분은 바로 아마존이란 회사를 규정짓는 대목이다.

아마존은 과연 어떤 회사인가? 나는 아마존을 그냥 세계적인 인터넷 북스토어, 온라인 서점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아마존과 베조스회장은 아마존을 규정짓기를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세계의 판도와 트렌드를 읽고 단순히 물건을 파는 차원이 아닌 알고리즘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연구하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바로 아마존이란 사실!

 

우리가 되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입니다. 아마존이 무엇이 될 지를 설명하는 단어는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제프 베조스 회장(324p)

 

 

 

 

5

아마존의 경영철학은 거꾸로 소비자로부터 시작하라’(106p)는 말을 한다.
언젠가 스마트폰 차량거치대를 산 적이 있다. 이미 다른 상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지만, 부실하기 그지 없었다. 아마도 부실한 지갑 탓을 하며, 내가 싼 것을 선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공동구매로 구매한 이 몇 만원 짜리 거치대를 사용하기도 전에 방향을 틀다가 부러져버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구매후기에 너무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냐고 리뷰를 달았다. 그리고 통화를 했지만 교환해 주고자 하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젠장! 나는 그 다음날 다시 사이트를 방문했다. 그런데, 내 리뷰는 이미 지워져 있었다. 제품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리뷰를 올렸을 뿐인데. 나의 악평리뷰(?)가 자기들에겐 손해가 되겠지...! 이런 식으로 고객을 응대하다니! 나는 그 사이트 뿐만 아니라 그 앱 자체를 지워버렸다. 진짜 너무 한 것 아닌가! 만약 아마존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존이라면 분명히 교환해줬을 것이다(배송료가 더 나오겠지만...). 아마존은 리뷰달기를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리뷰달기는 고객의 솔직한 반응을 올리는 곳이기에 악평이 달리기 쉽다. 하지만, 아마존은 리뷰달기의 단점을 그대로 노출했다고 한다.

 

 

 

 

6

한 명의 고객에게 베푼 호의가 백명의 고객을 데리고 온다(124p)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약소기업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그 CEO의 마인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구입했던 그 곳은 나는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만 있으면 그 양반들 부자될 것이다. 나는 끝까지 물고 늘어져 받을 것 받아내고 그런 스타일이 아닌지라.

 

 

 

 

7

물론 이 책은 아마존은 무조건 옳다고 하지 않는다. 아마존도 빠듯한 일반 직장생활의 스타일과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하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뭐 그런 점이 남다르다는 것? 저자 자신처럼 12년씩 오랫동안 근무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고 한다. 능력이 너무 없어서 못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능력이 없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버티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사내의 이직제도를 잘 활용했다. 아바존은 부메랑(회사를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제도를 장려한다고 한다. 과연 우리나라 같으면 그럴 수 있을까? 괘씸죄를 걸어 넘어지지 않을까? 내 생각이다.

 

 

 

 

8

이 책의 저자는 지금 아마존에서 나와 개인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아마존에서 받은 아마존DNA’는 자신의 인생에 큰 획을 그었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아마존에서 받은 선물은 자유다!”(322p)

 

저자는 고정적인 수입과 안정된 직장인 아마존에서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설계를 그렸다. 그래서 모든 모험은 안전한 땅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한다.

 

 

 

9

오랜 시간 동안의 아마존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자는 질문한다.

 

당신은 진정 행복하신가요?”

 

우린 직장생활을 하면서 날마다 질문한다.

 

나는 지금 과연 행복한가?”

 

저자가 앞에서 이야기한 아마존이 자신에게 준 선물은 자유라고 했는데, 아마존의 12년이 있었기에 지금 자신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고통스럽고 무미건조하고 힘겨운 축적된 시간의 양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나는 약 20년 정도 조직생활을 한 것 같은데, 그 시간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물론 사람 일은 자신의 계획과 의지대로 다 되란 법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시간의 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마음, 지금의 내 자신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무엇이든 공짜로, 그저 주어지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10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서 책도 느낌이 다른가 보다.

나는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역설인데, 제목은몰입인데, 진짜 몰입 안 되게 쓴 책이라는 생각이다. 아뿔사! 둘째는 감사인데, 서울대 교수님이 쓴 책이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있구나! 다행히 그래도 세상은 공평하구나! 다행이다! 라고 하면서 어설픈(?) 위로와 안도감을 순간 느꼈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스갯소리이다.(서울대 출신분들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길 바라) 어, 근데 이책이 '2008년도 올해의 책'이었다니! 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이 다른 모양이라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는 몰입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인용한다. 가슴에 남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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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 손흥민이 UFEA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 즈베즈다와의 원정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4-0의 토트넘의 완승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골을 넣은 후 특이한 세레머니를 했다. 그 세레머니는 지난번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백태클로 인해 오른쪽 발목이 골절되어 부상을 입은 안드레 고메스에게 보낸 제스쳐였다. 축구선수에게 부상은 악재임에 틀림없다. 예전에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이청용은 부상이후 수술을 잘 마쳤지만, 예전의 기량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부상은 운동선수에겐 절망적인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손흥민이 자신의 경기중의 태클로 인해 부상을 입은 고메스에 대한 사과와 미안함이 상대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축구선수는 세레머니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전달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손흥민이 골 세레머니를 그렇게 했다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 고메스에 대한 엄청난 미안함이 가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간만에 영화를 보았다. 설경구와 조진웅이 주연한 <퍼펙트맨>이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예전에 보았던 더스틴 호프만과 톰 크루즈 주연의<레인맨>과 잭 니콜슨이 주연한 <버킷리스트>를 짬뽕해놓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쾌하고도 감동적으로 감상했다. 접근이 비록 이미테이션의 느낌이 있더라도 결과는 좋았다는 말이다.

    

특별히, 내가 이 코믹하면서도 감동적인 이 <퍼펙트맨>에서 보았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용서이야기이다.

 

 

    

 

 

3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은 영화에 대한 대목을 넘어가시면 좋겠다. 스포주의!

첫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교통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아내와 딸이 죽었다. 남편은 불구자가 되었다. 휠체어신세를 지면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정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그 운전자, 석현을 만나고 싶어했다. 장수(설경구)는 석현(윤상화)이 사과하기를 바랬다.

 

 

두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딸이 재벌 2세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법정에서 피의자는 무죄선고를 받는다. 딸은 1년 후 자살을 한다. 석현의 딸이었다. 석현은 당시 피의자를 변호했던 변호사였던 장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한 가족을 몰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지금 석현과 장수는 서로에게 용서의 악수를 내밀고 있다.

 

 

딸에게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른 강간범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변호사의 차를 분노로 두 눈이 뒤집혀 들이받았던 석현, 석현으로 인해 자신의 아내와 딸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휠체어에서 전신마비의 불구자로 평생 살아야 하는 시한부 환자, 장수! 상처를 주었고, 상처를 받았고, 또 상처를 주었고, 또 상처를 받았다. ‘---’, ‘상처-상처-damage-damage’

이런 구도로 흘러간다.

 

 

세 번째 용서의 이야기이다.

영기(조진웅)20여년을 깡패 짓을 했다. 하지만,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장수(설경구)를 만나면서 그 비릿한 세계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공금횡령한 빚 7억을 갚지 못해 몸으로 때운다. 깡패집단의 보스, 범도(허준호)는 영기와 대국(진선규)이 조직세계에서 배신한 것에 대한 댓가로 영기의 다리를 절게 만들고 갚지 못한 빚 7억은 퇴직금으로 퉁치자고 한다. 영기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다리를 절룩거린다. 나는 그 영기를 보면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이란 인물과 오버랩되었다. 야곱Jacob도 환도뼈가 위골되어 다리를 절었다고 한다.

 

내가 본 영화에서 추려낸 3가지의 용서이야기이다. 그런데, 세 번째는 그렇다치더라도, 첫 번째, 두 번째 용서의 장면, 서로에게 피해자이면서도 동시에 피의자인 장수와 석현의 만남은 이 영화가 코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코 끝이 찡해오는 감동이 있었다. 이 장면이 왜 탄생하게 되었는가? 바로 장수(설경구)가 시한부 환자이기 때문에 죽기 전에 꼭 그 친구(석현)를 만나고 싶어했다는 대목이다. 우리가 죽음 앞에 섰을 때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되지 않겠는가! 장수는 영기의 도움을 통해 석현을 만나면서 통곡과 화해의 장소가 마련된다는 점이 너무 탁월하다. 이 장면은 또 한번 더 보고 싶다.

 

 

 

 

4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 민음사판에서 번역자는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죄와 벌』의 스포도 주의! 책임지지 않음).

 

라스콜니코프의 몽상과 환멸-<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

 

   라스콜니코프의 도끼 살인의 동기는 여러 가지로 추려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인 악, 암적인 존재였던 전당포의 노파(고리대금업자)를 정의라는 이상적인 몽상에 의해 살해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 있다가 애꿎게 죽은 리자베타는? 노파는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했다고 하지만, 리자베타는 왜? 목격자였기 때문에 죽인 것 뿐이었다. 안 그래도 극빈자의 형편 가운데 우울증을 앓던 라스콜니코프는 점점 더 신경질적인 우울증으로 점철된다. 살인에 대한 논문까지 썼던 엘리트, 라스콜니코프의 이상적인 행동인 살인은 분명히 죄이다. 그렇다면, 그 죄에 대한 심판의 값인 벌은? 라스콜니코프의 살인 후에 훔친 돈이나 보석들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평소에 극빈자의 신세이면서도 선행을 베푼 점, 정신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던 광기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다소 경미한 8년형의 2급 유형수라는 형벌에 처해지는 라스콜니코프! 하지만,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살인에 대한 정직한 반성이나 회개의 몸짓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법정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변명하지 않고 거짓 증언하지 않았을 뿐이다. 라스콜니코프의 이념, 이상, 이론은 살인이란 행위로 인해 현실에 부딪히고 벌이란 제2급 유형수란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거기에 싹튼 것이 소냐를 통한 희망과 재생과 회복의 삶이 도래한 셈이다.

 

 

 

 

5

   어떻게 보면, 라스콜니코프에게 <죄와 벌>이란 공식이 적용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라스콜니코프의 여동생 두네치카를 집요하게 사랑하고 집착했던 스토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아닐까 싶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신의 모든 채무에서 벗어나게 해준 여인과 결혼을 계약적으로 하지만, 자신의 아내인 마르파 페트로브나에게 환멸을 느낀다. 결국 그녀를 세상이 모르게 살해하고 자신의 궁극적인 희망과도 같은 두네치카를 오빠의 살인사건의 약점을 책잡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잔머리를 굴린다. 인간이 얼마나 치밀하고 조잡한 존재인지를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의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스비드리가일로프도 그렇지만, 루쥔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계획대로 따라와 줄 것을 요구하지만, 두네치카는 권총을 겨누며 꽁꽁 잠겨있는 방문을 나가게 해달라고, 열어달라고 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 그러다가 두네치카의 권총을 발사된다. 다행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두네치카의 총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두네치카가 던져버린 그 총을 가지고 혼자 자살하고 만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죄와 벌인 셈이다.

 

 

  

  

 

6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오늘 알라딘 메일 뉴스레터에서 본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생각난다. 재미있게 읽은 대변동에서는 개인과 국가의 굵직한 두 가지의 뼈대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알고 보니, 개인적인 차원은 저자의 아내가 임상치료사인 관계로,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여러 나라에서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용서는 개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 세계대전의 주범이었던 독일을 폴란드가 회개하지 않는 나치라고 혐호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백분율로 가장 많은 인구를 잃은 나라였다. 또한 나치의 대형 강제수용소들이 있었던 곳이기도 했다. 1970127일 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19434월과 5월 나치의 점령에 항의한 유대인 폭동이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를 일부러 찾아갔다. 그러고는 폴란드 군중 앞에 자진해서 무릎을 꿇었고, 나치에게 수백만 명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며 히틀러 독재와 제2차 세계대전의 용서를 구했다. 독일인을 끝없이 불신했던 폴란드인조차 브란트의 행동을 계획하지 않은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으로 인정했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요즘의 외교에서 비추어보면 바르샤바 게토에서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행동은 가해국의 지도자가 큰 고통을 당한 피해국의 국민에게 보낸 진심 어린 사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국민에게, 일본 총리가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스탈린이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에게, 드골이 알제리인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한 적이 있었던가?’(대변동, 293-294p)

    

 -사진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빌리 브란트의 이러한 외교적인 행보로 인해 서독은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침내 미국과 서유럽권은 서독을 민주국가로서 신뢰할 만한 동맹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소련과 동유럽권은 서독을 주요한 무역 상대국으로 평가하며 더는 군사적으로 영토를 위협할 국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대변동, 295p)

 

독일의 이러한 정직하고도 소탈한 면은 드문 예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 잘못과 실수가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 진정성 있는 접근과 태도는 외교관계에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든다.

 

 

 

 

7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독일과는 대조적으로, 아직도 자신들의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 대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도 통합 이념의 필요성은 1890년 황제의 교육교서에 대해 널리 유포된 1891년의 해석에서 명확히 표현되었다. “일본은(...) 작은 나라이다. 다른 나라를 무도하게 삼키려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전 세계를 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진실한 일본 국민이라면 사회적 의무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사회적 의무감은 자신의 목숨을 먼지처럼 가볍게 생각하며 힘차게 전진하고, 국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정신을 뜻한다(...)우리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요새를 짓고 전함을 건조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국민을 하나로 통합한다면 백만의 가공된 적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대변동,157p)

 

메이지 정부는 이런 노력은 역사적으로 사무라이 정신’, ‘활복’, ‘가미가제 특공대’, ‘바카 조종사’(일반 전투기나 글라이더에 폭탄을 싣고 적함에 충돌해 자살한 부대), ‘가이텐 선원’(일본 선박이 발사한 어뢰를 타고 조종하며 적함을 향해 돌진한 부대) 등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대단한 우월한 자존심은 결국 침략전쟁으로 드러났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중국과 한국과의 관계에서 드러난 지독하고 심각한 감정에 대해 일본인의 사과하지 않는 꼰대의 기질을 싱가포르 초대 초리로 일했던 예리한 관찰자 리콴유(1923-2015)의 평가를 통해 말한다.

 

독일인과 달리 일본인은 정화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자신들의 체제에 독소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들은 젊은이에게 자신들이 범한 잘못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시모토 류타로(일본 총리)1997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2주년 기념식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고, 같은 해 9월 베이징을 방문해서는 충심의 회한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중국이나 한국이 일본 지도자에게 원하는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일본인이 왜 과거를 인정하고 사과한 후 미래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사과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이 과거에 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유감이나 회한을 표명하는 것은 현재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 뿐이다. 그들은 난징에서 대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했다. 또 한국과 필리핀, 네덜란드 등 여러나라의 여성을 납치하거나 강제로 끌고 가 전선에서 일본 병사들을 위한 위안부로 삼았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게다가 만주에서는 한국과 중국, 몽골과 러시아 등 여러 국적의 포로를 대상으로 잔혹한 생물 실험을 시행했다는 사실도 부인했다. 경우맏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일본인의 손으로 쓴 기록에서 발견된 후에야 마지못해 인정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장래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태도는 미래의 행동을 짐작하게 해주는 지표이다. 일본이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거의 없지 않겠는가.”(대변동,388-389p)

 

    

 

8

   서구의 침략에 상처입은 일본의 자존심은 다음 세대의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의 면모를 드러냈다. 일본인의 교육은 자신들의 세계대전이나 수많은 전쟁에서의 보여준 일본인의 치부를 숨긴다. 일본인의 교육은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들의 교육이 얼마나 부분적이고, 편파적인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강의했던 캘리포니아대학의 일본 유학생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들의 푸념에 따르면 일본 학교의 역사 시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수천년의 일본 역사에서 그 전쟁의 기간은 기껏해야 수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략자로서 일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거의 혹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수백만의 다른 민족과 역시 수백만에 달하는 일본 군인과 민간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도 외면한 채 두발의 원자폭탄으로 약 12만 명의 일본인이 죽었다며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데 급급하며, 오히려 미국이 일본을 자극해 전쟁에 끌어들였다고 비난한다.’(대변동, 389p)

 

일본 유학생들은 캠퍼스의 학생모임에서 중국인 학생이나 한국인 학생을 만나 일본이 전쟁 기간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처음으로 듣고, 그 때문에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일본에 대해서 아직도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면 충격을 먹는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9

   누구에게나, 어느 국가에게나 문제나 실수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은 이전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란 저서에서 보여주듯이, 말 그대로 국화와 칼이란 이중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겉으로는 굉장히 친절하고 부드러운 국화의 이미지이지만, 속으로는 을 갈고 있는 일본인만이 가진 독특한 민족성을 루스 베네딕트가 지적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20대에 했더랬다. 물론,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관계란 것은 인간과 인간의 개인 대 개인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도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의 라스콜니코프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 고백한다.

 

"바로 제가 그때 관리 미망인인 노파와 그 여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살해하고 금품을 훔쳤습니다."

 

우리가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명언 중에 그런 명언이 있지 않았나!

 

 

"Honesty is the best policy!"

 

 

 

10

   손흥민 이야기를 했고, 영화 <퍼펙트맨>이야길 했고, 도끼의 <죄와 벌>이야기, 그리고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까지 이야기를 했다. 너무 길어졌다. 솔직히 오늘 글을 쓰려고 데스크탑에 앉았는데, 한글이 에러가 나서 다시 깔고 하는데 나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다. 우리 집은 독특한 구조라 서재에 보일러를 안 트는데, 추위도 나의 인내심을 계속 갉아먹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게 돼서 만족한다. 또 다시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오타와 미문장과 불완전이 드러날지 모를 일이지만, 더 쓰다가는 내 멘탈이 붕괴될지도 모를 일이나 이만 쓰기로 한다. 이런 내 자신과 내 글에 대해서도 용서가 필요해!’아닌가?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읽은 책 제목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Something needs to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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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07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흥민은 어쩌면 축구도 잘하고 인간성도 좋은지. 기특하고 자랑스럽더군요.
저는 오래 전 <죄와벌>을 열린책판으로 읽었는데
얼마전 박균호님 소개도 있고 해서 동서문화사판으로 읽어보고 싶더군요.

카알벨루치 2019-11-07 18:33   좋아요 1 | URL
손흥민더러 인성좋다고 축구관계자들까지 이야기하더군요 기분좋아지는 축구선수 국민동생 흥민이입니다 ㅎㅎ<죄와 벌> 은 인제 읽네요 알라딘 와서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낼 접근불가한 책도 읽고 이렇게 또 알라딘빠가 되어가나봅미다

카알벨루치 2019-11-07 18:35   좋아요 0 | URL
근데 댓글이 줄여보이네요 나만 그런가? 잘린 듯한 느낌...터치해도 안 보이는...금방 알라딘 칭찬했는데 이거 머임???ㅜㅜ

2019-11-07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11-08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개해주신 작품 중 두 작품이나 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연결시킬 수가 있는거죠.
퍼펙트맨은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사과했는지, 용서 받았는지.

2019-11-0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대와의 불화

1

나쓰메 소세키는 신지식인이다. 당대에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재원이다. 영국 유학경험이 그를 지식인의 반열에 가지게 올려놓았다고 하기보다는 무엇보다 유학 생활 가운데서 느낀 무한한 고독감, 고립감이 그를 더 치열한 지성인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선진국인 영국, 하지만 정작 영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느꼈던 심각한 괴리감은 그를 정신병까지 몰고가서 유학을 보낸 고국에서 걱정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

소세키의 태풍에서 주인공 도야는 다카야나기 군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당신만 외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 역시 외톨이입니다. 외톨이는 숭고한 사람입니다.”

....

숭고? 왜 그렇지요?”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저히 외톨이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높은 곳에 살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사람들이 그곳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외톨이가 된 거지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만한 곳이라면 그들도 올라설 수 있는 곳입니다. 게이샤나 인력거군이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업신여길 때 화가 치민다거나 번민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과 동등하다면 창작을 해봤자 역시 동등한 창작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과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이 나옵니다. 훌륭한 인격을 발휘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그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이지요.....”

...(중략)...

“...훌륭한 작품을 써서 후세에 전하고 싶은 것이 당신의 희망인 듯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떠신지 가르쳐주십시오.”

난 이름처럼 미덥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만족을 얻으려고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 결과가 악명이 되든, 오명이 되든, 아니면 광기가 되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일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일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바로 내가 걸어야 할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자신의 길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길의 동물이기 때문에 길을 좇는 것이 가장 존엄하다 생각합니다. 길을 좇는 사람은 신 역시 피해야 합니다. 이와사키의 담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하하하.”(139-140p)

 

 

 

 

3

이 작품에서 등장한 도야 시라이는 당대의 지식인이지만 외톨이 신세이다. 소세키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로 비쳐진다. 소세키의 목소리를 도야의 연설을 통해 드러내준다. 소세키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지성을 소유한 인물인지는 도야의 목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소세키의 태풍은 그의 타 작품들에 비해 덜 익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흥미로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야 시라이, 다카야나기 군, 나카노 군. 이 세 명의 캐릭터가 주된 스토리를 이어간다. 흥미를 위해서라면 독서가 힘들겠지만, 소세키의 지성의 면목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4

소세키는 일본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급변하는 시대의 분위기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

 

오늘의 우리는 과거를 갖지 않은 개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기준으로 따를 만한 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메이지 40년은 전례가 없는 40년입니다...전례가 없는 사회에 태어난 사람만큼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요. 나는 여러분이 이런 전례 없는 사회에 태어난 것을 깊이 축하하는 사람입니다....전례 없는 사회에 태어났다는 것은 스스로 전례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예요. 속박이 없는 자유를 향유하는 사람은 이미 자유를 위해 속박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자유를 어떻게 능숙하게 사용할까 하는 문제는 여러분의 권리이자 동시에 큰 책임입니다. 여러분! 위대한 이상을 갖지 못한 사람의 자유는 타락입니다.”(179-180p)

 

 

 

 

5

영국식을 고취하며 위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엾은 일입니다....모든 이상은 자신의 혼입니다. 내부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돼요. 노예의 두뇌에 웅대한 이상이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서양의 이상에 압도되어 눈이 먼 일본인은 어떤 의미에서 모두 노예입니다. 노예로 만족할 뿐 아니라 앞다투어 노예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상이 발효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상은 여러분의 내면에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학문이나 식견이 여러분의 피가 되고, 육체가 되고, 마침내 여러분의 혼이 되었을 때 여러분의 이상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벼락치기로는 어떤 일도 되지 않습니다.”(183p)

 

 

 

 

6

노예 이야길 하니 요근래 읽었던 조정래의 천년의 질문의 내용이 생각난다. 인간은 첫 번째 종교의 노예, 두 번째 권력의 노예, 세 번째 황금의 노예로 전락하였고, 이제 우리 시대에는 네 번째로 스마트폰의 노예로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1, 33p의 내용을 편집함).

 

    

 

 

7

작가 소세키는 도야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백지가 인격이 되어, 그 바깥으로 넘쳐 흐르고 뛰어오르는 문장이 있다면 바로 도야의 문장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변함없이 귀족, 거상, 박사, 학사의 세상이다. 부속품이 본체를 밟아 뭉개는 그런 세상이다. 도야의 문장은 세상에 발표되는 족족 몰살당한다. 아내는 돈이 되지 않는 문장을 도락문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도락문장을 쓰는 사람은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65p)

 

소세키는 신자유주의의 태풍 앞에 흔들리는 시대에 대해 염려한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작품이 바로 태풍이다.

 

흰 나비, 흰 꽃에

조그만 나비, 조그만 꽃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기나긴 근심은, 긴 머리카락에

어두운 근심은, 검은 머리카락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부질없이, 부는 태풍

부질없이, 사는가 속세에

흰 나비도, 검은 머리카락도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109p)

 

 

 

 

8

소세키가 느꼈던 시대와의 불화, 그리고 시대로부터 느꼈던 불안은 그의 작품 행인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시대에 대한 불안이 소세키 자신에게 얼마나 지독했는지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의 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다. 형인 이치로가 동생 지로에게 질투를 느낀다. 왜냐구? 지로의 형수이자, 자신의 아내인 오나오가 동생가 썸을 타서 불륜의 관계가 있다는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네가 나오의 정조를 시험해 봐다오.”(행인, 129p)

 

팩트 없는factless 추측과 상상으로 조합된 자신만의 서사에 형 이치로의 정신은 끊임없이 추락하고 아내와 동생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형 이치로가 느끼는 개인의 불안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인류적으로 확장되어진다.

 

자네가 말하는 불안은 인간 전체의 불안이지. 유독 자네 혼자만 괴로워하는게 아니라고 깨달으면 그만 아닌가? 결국 그렇게 유전해나가는게 우리들 운명이니까.”

 

인간의 불안은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네. 앞서가기만 하고 멈출 줄 모르는 과학이 일찍이 우리에게 멈추도록 허락한 적이 없네. 도보에서, 인력거로, 인력거에서 마차로, 마차에서 기차로, 기차에서 자동차, 그 다음엔 비행선, 그 다음엔 비행기, 아무리 가봐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아. 어디까지 끌려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참으로 두렵다네.”(행인,327p)

(윌리엄 포크너의 에 대한 페이퍼에서 소세키의 불안을 말했었다. 재인용한다.)

 

소세키는 100여년 전에 이미 인간 본유의 불안을 감지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전집에 씌여 있는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소세키는 위대하구나! 

    

 

 

9

시대와의 불화라고 하니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 양반은 유대인이었다. 그는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압박해오자 1934년 런던으로 피신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후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했다.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이다. 하지만 히틀러의 인해 생긴 전쟁의 군화발로 짓밟힌 자신의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자멸을 바라보며 츠바이크는 우울증을 겪는다. 지독한 시대와의 불화를 느꼈던 지식인이 바로 스테판 츠바이크였다. 츠바이크는 1942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동반자살했다.

 

츠바이크는 죽기 일 년도 안 되는 시점인 1941년에 체스 이야기를 출간한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라틴어에 능통했던 츠바이크의 영민함은 이 작품에서 더 빛을 발한다. ‘히틀러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시기에 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설정하고 있다. 이로써 틀이야기의 심리전이 단순히 체스 대결자들 사이의 심리전으로만 읽히지 않고 시대적, 역사적 심리전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154p)고 해설자는 말하고 있다. 이 짧은 단편소설을 통해 자신의 심경과 시대의 우울을 그려내는 스테판 츠바이크!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히틀러가 괴멸하는 것을 눈으로 목도할 수 있었을 텐데...츠바이크의 천재성, 그의 존재를 그렇게 사라지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시대와의 불화였다는 것!

 

 

    

 

 

 독서가의 책임 

 

10

누구보다 많이 알고 배우고 익히고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세계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살고 있는 시대까지 사유가 확장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지식인이고, 지성인이다. 그게 바로 소세키같은, 츠바이크 같은 지성인이 지향해야 할 바른 자세이자 태도가 아닐까? 시대에 대해 고민하고 비판하면서 대안을 찾고 나아가는 지성인의 책임이 느껴진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은 지식을 체득했다면, 더 많은 사색과 사고가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셈인데, 어쩌면 그것은 신약성경의 사도 바울이 말한 빚진 자라는 개념으로 적용될 수도 있겠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로마서 114)

 

우리가 누린 지성의 향연은 그냥 우리의 말 잔치로 끝나버리는 하나의 도구, 악세사리가 아닌 우리가 디디고 있는 세상이란 공동체의 그라운드에서 빚진 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것은 이런 지적 부담감이다. 내가 과연 받은 만큼 다른 이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시대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있는가?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독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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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31 1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 작가 전반을 아우르는
영롱한 글쓰기에 그만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대와 불화한 츠바이크까지 지평을
넓혀 주셨네요. 엄지 척 !

카알벨루치 2019-10-31 15:57   좋아요 0 | URL
ㅋㅋ넘 지나친 칭찬 아닙니까!!! ㅎㅎ감사하네요 따뜻한 격려 덕분에 또 열씨미 읽고 쓸 에너지가 팍팍 생깁니다 레삭매냐님도 건필하소서!^^

coolcat329 2019-10-31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잘 읽었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보지...이 부분은 너무나도 공감이...

카알벨루치 2019-10-31 17:31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츠바이크의 운명은 너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또 독자들에게 어필하는지도 모르지만 한 개인의 인생사로 보면 너무 비극적입니다...댓글 감사합니다 ^^

stella.K 2019-10-31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어제의 카알님은 어디 가시고 이런 우아한 한편의 문학 논문을 다 쓰셨습니까?
깍쟁이십니다.흥!ㅎㅎㅎㅎ
근데 카알님 혹시 유튜브 운영 안 하시나요? 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ㅎ

카알벨루치 2019-10-31 20:2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꼭 만나야할 분은 또 만나는겁니까 이러면서 ㅋㅋ 글을 뭘 쓸까 고민을 하다가 무언가 차오르면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글을 쓰면 글읽는게 주춤해지네요 두가지 동시에는 잘 못하는 인간인가 봅니다 유튜브요? ㅎㅎㅎㅎ제가 진짜 하고싶으면 하겠지요 근데 아직은....글쓰는 시간도 없는데 그거 만들고 편집하고 영상만드는거 진짜 ‘노가다’인데 과연 그게 나을지...제가 유튜브하면 기타치면서 노래나 늘 할 듯 합니다 그리고 곧 유뷰브채널 사라지는 소리가 들리겠죠 사사삭 ㅋㅋㅋ

근데 요즈음은 자전적 스토리 안 쓰시는가요? ㅎㅎ웬 뒷북입니다 ㅋ

2019-10-31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31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1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11-01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카알님도 카알님 실력도 어디 안 가시네.....👍

카알벨루치 2019-11-01 15:30   좋아요 0 | URL
실력은 무씬~잘 지내죠? 오늘도 화이팅^^

cyrus 2019-11-01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만약 츠바이크가 자살하지 않고 히틀러의 패망을 지켜봤다고 해도 전후에 일어나게 될 새로운 ‘시대와의 불화’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처럼 말이죠.

카알벨루치 2019-11-01 18:25   좋아요 0 | URL
아 그 생각도 할 수 있겠군요 역쉬 시루스박사님~츠바이크는 츠바이크니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의 가사중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란 가사가 있다. 
김진영은 자신의 작은 골방에서 이 글을 썼다고 했다. '이별'에 대한 지독한(?) 성찰의 성격을 볼 때 그는 이 글을 아마 젊은 20대에 적었을까?아니면 30대에? '사랑과 이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은 불혹을 넘고 나이가 더 들어서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그의 글의 느낌은 그의 글 쓴 시기와 배경을 추측해보게 된다. 

  '난 너를 영원히 사랑해.'
  '난 널 죽도록 사랑해.'

  이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시절의 나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그렇게 고백했고 맹세했더랬다. 그런 다짐과 맹세를 철없는 나이엔 하지만, 철이 들면 현실을 더 직시하게 된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 사랑하고 이별하고...모든 것이 끝이 있다는 것을.
  사랑...이별....회자정리...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그런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꼭 만나야할 사람에게 신은 우연이란 다리를 놔준다'고.
  하지만, 대부분 그 사람도 결국 이별을 하게된다.






 김수미의 먹방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에 5년 전에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세 남자아이의 아빠가 손님으로 등장했다. 막내가 1살일 때, 아내인 엄마가 죽었다는데. 아이는 엄마에 대한 추억도, 기억도 없는 채. '새 엄마'가 있었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사연을 듣다가 눈물이 터졌다. 막내에겐 '엄마'란 단어가 '만질 수도, 느낄 수도, 맡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런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이 아닐까? 먹방 프로그램 보다가 눈물을 흘리다니...








  '이별'이라고 하는데, 난 '죽음이라는 이별'을 생각해본다. 김진영은 고인이 되었다. 사후에 책들이, 그의 글들이 수면 위에 떠오른 듯 싶다. 요즘 글쓰기가 안 된다. 그냥 게을러진 같기도 하고. impulse가 생기지 않는 듯 하기도 하고. 영감의 부재...







  부재...이별....상황과 관계의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



"부재의 힘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그것 때문에, 오로지 그것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리라"
-T.S.엘리엇 <황무지>



  상처는 남지만 그 상처는 또 다른 재생의 힘을 부가하는 듯. 그래서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이 아닐까? 부재가 있기에, 존재가 있고, 탄생이 있고, 잉태가 있고, 출발이 있는 것이 아닐까? 부재의 힘이라...



'처음에는 이별이 너무 힘들었어....잠에서 깨어나면 이별이 내 곁에 함께 누워있곤 했어. 나는 이별을 아파하는데, 이별은 그런 나를 아파하는 것 같았어. 나를 위안해 주는 것 같았어. 마치 자기만은 나를 잊지 않겠다는 것처럼. 결코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러다보니 이별과 함께 사는 일이 편해졌어. 그 사이에 이별과 정이 든걸까? 이제는 이별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이별이 끝나면 몹시 아플 것 같아."(K의 말)


"사랑과는 이별을 해도 이별과는 이별을 할 수 없는 걸까?"


칼 하인츠 보러: "이별은 존재의 원풍경이다. 우리는 이별과 더불어 태어나서 이별과 더불어 살아간다."(86-87p)






  내가 좋아하는 황동규 시인의 시이다.
  

<더 쨍한 사랑 노래>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에 휘발하고

 저녁 하늘

 바다 가까이 바다 냄새 맡을 때쯤

 바다 홀연히 사라진 강물처럼

 황당하게 나는 흐른다.

 하구였나 싶은 곳에 뻘이 드러나고

 바람도 없는데 도요새 몇 마리

 비칠대며 걸어다닌다.

 저어새 하나 엷은 석양 물에 두 발목 담그고

 무연히 서 있다.

 흘러온 반대편이 그래도 가야 할 곳,

 수평선 있는 쪽이 바다였던가?

 혹 수평선도 지평선도 여느 금도 없는 곳?





시에서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것은 없는데, 보여주는 풍경으로 모든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그대 기척 어느덧 지표에 휘발하고...' 그대와의 이별을 '그대 기척 어느덧...휘발하고...'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자연의 무한한 풍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대명사 '하늘', '바다', 그리고 '하구', '뻘'...그리고 거기에 날아드는 피조물 '도요새'....
이별의 분위기를 은근히 압도하는 시가 더없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어쩌다 발견한 천양희 시인의 시이다.
  

 <별이 사라진다>

 나는 1초에 16번 숨쉬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내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 뛰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죽을 때 빠져나가는 내 무게는 21그램인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나는 1분에 0.5리터 공기를 마시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내 심성은 7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나는 하루에 12번 웃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별은 세상에 마음이 없어 사라지고

 세상에 마음이 있어 사람들은 무섭게 모여든다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시인 안도현은 사리사욕이 없기에,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별과 속세에 아직도 미련이 많은 인간들은 '무섭게 모여'드는 인간의 욕망을 대조하여 보여줬다고 말한다.(『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 안도현 엮음. 150-151p) 자신의 존재의 사라짐과 부재에 대해 자연스러운 별을 보면서 존경이 일어난다. 이별에 대해, 부재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는 인생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존재의 부재 앞에, 독배를 마시기 전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이 얼마나 될까? 



7

  "사건들이 두서없이 일어나는 삶 속에서는 행복도 엇갈리면서 찾아온다. 즉 내가 그것이 꼭 있었으면 하는 그때에는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150p)



  내가 있어야 할 존재의 자리나 내가 꼭 유지하고 싶은 상황과 환경속에서의 그 무언가가 부재한다는 것,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에 부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인생 자체를 통제할 수 없음 보여준다. 내 인생이라고 해도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내 통제력 너머의 일이란 생각, 그것이 내가 크리스천이기도 한 이유이다.








  시인 김언희의 시다

 <한점 해봐, 언니>

 한점 해봐, 언니, 고등어회는 여기가 아니고는 못 먹어, 산 놈도 썩거든,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야, 언니, 살이 깊어 그래, 사람도 그렇더라, 언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더라, 나도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쳐, 언니,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쳐, 마스크 속 내 입 냄새에 아주 미쳐,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어,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더라, 온 김에 에 맛이나 한번 봐, 봐, 지금 딱 한철이야, 언니, 지금 아니 평생 먹기 힘들어, 왜 그러고 섰어, 언니, 여태 설탕만 먹고 살았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시이다. 이렇게라도 기억속에 저장해두고 싶은 시이다. 그러고 보니 '고등어 회'는 한번도 못 먹어 본 것 같다. 괜히 고등어회가 먹고 싶다...








Epilogue...

<이별의 푸가>라고 했는데, '푸가'란 단어의 정의를 찾아봤는데,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한국 말인데 해독이 안 된다. 아마도 음악의 문법이 들어가 있어 더 어렵게 느껴진 듯하다.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한다는데, 내 뇌의 셧트가 '푸가'란 단어 앞에 차단막을 쳐서 더 이상 알고싶지 않은 게으름을 피우는 듯 싶다. 이러면서도 나는 더 알고자 하지 않는다. 난 언제나 문법을 힘들어했다. 국어든, 수학이든, 영어이든, 음악이든...'법'이란 로직한 언어 앞에 내가 무력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 아무튼, 불능의 언어해독이다...


난 푸가란 단어와 이별하고 싶다...ㅋ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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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0-30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요즘 뜸하신 것 같더라구요.
그런 때가 있는 거죠. 저도 그런데요 뭐.ㅎ
얼마 전 김탁환 소설가가 TV에 나와 김진영의 책을 극찬하던데
저도 함 읽어보고 싶더군요.
그런데 정말 저도 푸가에 대해선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네요.
오늘은 이별하지만 내일은 만나지요.
만나는 순간 이별인가요?ㅋ .

카알벨루치 2019-10-30 15:33   좋아요 1 | URL
가득차면 흘러넘치겠지요 전 그걸 믿습니다 쓰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그것 ㅎㅎㅎㅎ 가을날 감기조심하소서!

이 책은 이별에 대한 해부학 같은 느낌입니다 뜨거운 사랑 이후 이별이 찾아온 이의 마음의 환부를 잘 드러내주네요!

카알벨루치 2019-10-30 17:26   좋아요 0 | URL
근데 꼭 그런것은 아니더군요 작가들은 정기적으로 의무적으로 쓰기를 강조하더군요 스텔라님처럼 말입니다 ㅋ

stella.K 2019-10-30 18:02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건 맞아요. 하지만 전 빼주세요.
전 열심히 쓰지도 않는답니다.ㅠㅠ


oren 2019-10-30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가 형식의 음악 얘기를 들으니 문득 칼 세이건이 ‘보이저 우주비행계획‘ 때 실어 보낸 금제 음악 생각이 나네요.

그때 만들어진 골든디스크에 실린 27곡의 음악 중에는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 가운데 한 곡도 빠지지 않았는데, 그의 선택기준은 ‘적어도 몇 곡은 우주의 고독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추상적인 구조를 지닌 곡들도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 * *

˝지구 생물에게는 단 한 가지의 생물학만으로 충분하다. 생물학을 음악에 비유해 볼 때, 지구 생물학은 단성부, 그리고 단일 주제 형식의 음악만을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천 광년 떨어진 저 먼 곳의 생명은 우리에게 어떤 형식의 음악을 들려줄 준비를 해 놓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풀피리 하나로 연주되는 지구 생명의 이 외로운 음악 하나가 우리가 우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일까?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리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다성부 대위법 양식의 작품을 기대한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 칼 세이건

☞ https://blog.aladin.co.kr/oren/6529278

카알벨루치 2019-10-30 17:25   좋아요 1 | URL
일단 다양한 성부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렇게 따지니 김진영의 <이별의 푸가>가 다 다채롭게 느껴집니다 이별에 대해서 깊고 넓게 조망! 20대였더라면 더 구구절절 다가왔을 그의 책의 내용이 지금은 조금 비껴간 느낌이 들더군요 제 감성이 드라이해졌는지도 모를 일이죠

오렌님의 정성스런 댓글에 감사인사 넙쭉 드립니다 ㅎ
 

1
김광균의 <은수저>란 시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37p)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는 현실은 ‘한 쌍의 은수저’로 그리고 그것은 ‘은수저 끝에 눈물’로 도드라진다 애기가 없은 슬픔이 느껴진다 문득 이기주의 <글의 품격>에서 본 이야기가 생각난다 헤밍웨이에게 누군가가 6단어로 구성된 소설을 쓴다면 당신의 필력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김광균 보다 더 압축시킨 아이를 잃은 상실의 슬픔이 느껴진다 ‘한번도 신지 않은 아이의 신발’을 덩그러니 내놓은 그 풍경, 그 샷이 주는 슬픔의 미는 어떠한가!

역시 헤밍웨이의 “빙산이론(생략이론)”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글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 자체, 나의 삶이 다른 이에게 보여지는 것은 삶의 전부가 아니라 파편일 수 있다 소위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너’일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타인을 100% 판독하고 이해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우린 우리의 눈으로 ‘타인의 삶의 빙산의 일각’을 보면서 판단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고 노릇이다



2
이윤기가 말한다
‘나는 이미 많은 정보를 내 기억의 창고에다 우겨넣었다 더 우겨넣는 수고가 망설여진다 그래서 가만히 기다리면서 구정물이 맑아질 때를 기다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자주 나 자신에게 묻는다 더 알아야 하는가? 우겨넣은 짓 이제 그만하고 가만히 되새김질해 볼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닌가?’(68p)

이미 고인이 된 작가가 스스로 질문하는 내용이다 “더 알아야 하는가?” 구약성경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 왕은 이런 말을 했다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전도서 12:12)

배움에는 끝이 없고 이 세상엔 수많은 공부의 요소들이 있다 수많은 책들이 존재한다 자연의 풍광도 공부의 요소가 될 수 있겠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팔색조보다 더한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가! 100년이란 시간 안에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일까? limit가 없는 것이리라 이윤기는 ‘우겨넣는 수고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나는 아직 조금 시간이 있으니 더 우겨넣는 수고가 있어야겠다 근데 오늘 이 페이퍼는 정말 읽기를 쉬기 위한 pause time이다 계속 우겨넣음 머리에 쥐가 날 듯 해서다



3
그리스로마 신화학자로 알려진 그가, 딸(번역가이다)의 말을 빌면 이윤기는 늘 ‘소설가’로 불려지고 싶어했다고 한다 도서관에 꽂힌 1000쪽이 넘는 이윤기의 우람한 양장본 소설책이 떠오른다 목차를 보고 책쪽수를 보고 얼른 덮었다는 기억이 있다 우린 이윤기를 소설가보다는 그리스로마학자로 잘 알고 있다 거기서 대박을 터트렸으니.
근데 이윤기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문가가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한다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나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나는 어찌 되었을꼬! 나의 신화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좌절해있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쓴다 흑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흑해를 건너야 한다’(81p)

인생의 기회는 한 순간에 포착되는 듯 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흑해를 피하였던가? 지금은 그 흑해를 건너고 있는가? 그렇다고 자위해 본다


4
‘어머니는 한 번도 날 무시하지 않았다(151p)’

‘지진아였던 내가 지금은 작가가 되었다 때로는 전세계를 누비기도 한다 내 분야에서는 실수도 별로 없다 어머니가 나를 무시하고 능멸했다면 나는 진작에 자멸했을 것이다 내 아들 딸도 부모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능멸당한 적이 거의 없다 지금 잘 자라 있다 사람은 남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능멸당한 경험이 없다면 남을 무시하거나 능멸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154p)

나는?
그냥 이 대목이 울컥했다 이윤기가 학창시절에 학교 1년 쉰다고 했을 때도, 1년 쉬다 다시 학교간다고 했을 때도 이윤기의 어머니는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줬다고 한다 근데 그건 정말 쉬운게 아닌 듯 하다 능멸당한다는 것은 존재가 쪼그라드는 경험이다 그 경험이 진짜 비극적인 체험이다
나는?
그리고 나는 자녀들에게 무시하지 않는 아버지인가? 자신이 없다 나도 그렇게 잘나지 않았고 잘 나게 커 온 것도 아닌데 이것도 트라우마이자 컴플렉스인 것 같다 괜히 애들에게 미안하다


5
“작가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10년 뒤에 온다”

이 말은 프랑스 속담이다 작가가 죽은 뒤 10년이 지났는데도 책이 서점에, 서가에 꽂혀 있고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면 그 작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 이란 의미이다 우리의 존재가 싸늘한 시체로 변한 후에도 영향력을 미치려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


6
Stat rosa pristine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 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 없는 이름뿐.(176p)


역시 흑해를 건너는 수많은 여행에서 온 이윤기의 ‘빙산의 일각’이 보여주는 풍광이 글로 스치고 가는 느낌이 멋쩍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일지라도 나의 삶은 그래도....감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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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0-18 0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윤기 혹은 그의 작품이 카알벨루치님으로 하여금 이 페이퍼를 쓰시게 하였을까 잠시 궁금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10-18 08:45   좋아요 0 | URL
그리스로마신화를 2권읽다가 중도하차한 기억이 있네요 도서관에서 이윤기의 에세이라? 그래서 집어들었는데 의외로 생각할 꺼리가 많더군요 필사노트를 뒤지다가 기억을 더듬어 그냥 마음 가는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원래 제가 무계획적인 것을 좋아라 해서요 댓글 감사합니다 님도 즐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oren 2019-10-2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님이 했다는 저 말, ˝더 우겨넣는 수고가 망설여진다˝는 얘기를 접하니 문득 몽테뉴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윤기 님이나 움베르토 에코나 몽테뉴나 그 엄청난 ‘읽기와 쓰기‘를 했던 사람들이 하는 말은 평범한 일반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동떨어진 얘기 같은 느낌도 많이 들긴 합니다.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 * *

멈출 줄 모른다

사람은 어떤 일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정도에서 멈출 줄 모른다. 탐락이건 재산이건 권력이건, 그는 자기가 품어 안을 수 있는 이상의 것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의 탐욕은 절제가 불가능하다. 알고자 하는 욕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기가 해야 할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스스로를 위해 끌어 내며, 지식의 유용성을 그 재료가 있는 한 확대시킨다. ˝우리는 다른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연구에도 무절제 때문에 고생한다.˝(세네카)

아그리콜라의 모친이 그 아들의 맹렬한 학문 연구 의욕을 억제하였다고 타키투스가 칭찬한 것은 옳은 일이다. 확고한 눈으로 보면, 학문은 다른 재물과 같이 인간이 타고난 고유의 약점과 허영이 많이 섞여 있는 값비싼 것이다.

카알벨루치 2019-10-23 13:29   좋아요 1 | URL
오렌님은 댓글로 너무 현란하게 달아주셔서 대댓글을 잘 달아야겠다는 부담감이 팍팍 느껴집니다 ㅎ앎에 대한 욕구, 지식욕도 탐욕적인 성향이 존재하는군요 참 허영이라는, 허세란 것은 경계가 없는 듯 하네요 가을날 즐거운 하루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