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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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주는 것은 악한 의도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상처를 받으면,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 편했다.
선악의 틀로 짜여진 나의 세계관 속에서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젠 안다. 의도치 않게도 상처 줄 수 있다는 것. 나의 위치가, 태도가, 때로는 먹어버린 나이가, 생각과 신념이,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누군가를 해치기도 한다는 것을.

“(p.181 모래로 지은 집)
절대로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그것이 나의 독선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게 했다. 어느 시점 부터는 도무지 사람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 멀리서 맴돌기만 했다. 나의 인력으로 행여 누군가를 끌어들이게 될까봐 두려워 뒤로 걸었다.
알고 있는데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완전함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함 때문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몸은 그렇게 반응했다.”

읽으면서 아파서 많이 울었다. 내가 준 상처들을 떠올리면서 미안해하는, 그러나 미안한 마음이 스스로에게 주는 면죄부여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너무 안이한 반성은 아닐까하고.

“(p.235 손길)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그러게. 왜 어두운 위치에서서야, 겨우 볼 수 있는 건지. 어느 한 쪽이 완벽하게 밝다는 것은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어둠이 더 짙어져 있다는 것임을. 누군가의 어둠을 질료삼아서 빛나는 것이라면, 모두가 덜 밝은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지금의 내가 너무 밝은 곳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p. 285 아치디에서)
뒤에서 보니 하민이 자꾸 자기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그녀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왜 우느냐고 묻지도 못하고 다만 조금씩 속도를 늦춰서 걸었다. 그녀가 울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 “


결국 우리의 상처가 의도가 아니라면, 때문에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상처주거나 상처받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 것일까.

단편집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슬픔에 너무 쉽게 이입하지 않을 것, 그의 눈물을 쉽게 이해해버리지 않을 것, 다만 조금씩 느리게 걸을 것. 해설에서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이를 “(p.319) 단시간에 빠르게 솟구쳐 상대에게 범람하고 금세 소진되는 열정과 달리, 상대를 손쉽게 이해해버리지 않으려는 배려가 스며있는 거리감”라고 말했다.
아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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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때만 해도 동세대의 소설가들 중에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게무해한사람’으로 최은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관계에 대해서, 또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그녀는 어디까지 헤집어서 생각했던 걸까.

더는 누구도 나 자신도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왜와 어떻게를 따져물으며 뒤집고 또 뒤집어 끝없이 적어내리던 29,30살 일기장 속에 두루뭉수루하게 적힌 나의 이야기가- 작가의 세심한 문장과 소설로 적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아주 깊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로 받았다고 느꼈다. 두번 읽고 세번 읽어도 좋았다.

결코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없겠지만,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만큼 스스로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휘두르지 않도록. 나는 몇번이고 이 소설을 더 읽을 것이다.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덜 유해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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