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직접 말하는 돈과 인생이야기
박현주 지음 / 김영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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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벌어서 바르게 쓸 때
돈은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여의도 미래에셋 사옥 옆면에 써 있는 글이랍니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첫 저서, 자서전적 성격을 지닌 이 책의 이름은, 그래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입니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편이나, 가끔 리뷰 쓰기가 주저되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러했습니다. 돈이 꽃이라... 제가 생각하는 꽃은 연못에 핀 아름다운 연꽃 이미지인데, 돈은 온갖 추잡함의 상징으로 느껴집니다. 저만 그러한가요?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있으면 '정말' 좋지만, 그러나 그 돈을 절대로 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꽃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느껴집니다. 그것이 이 책 제목을 본 첫 느낌이었습니다.

'기업가'와 '자본가'는 그 속성상 동일한 사람을 지칭하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자본이나 돈이나 그 단어 자체는 가치중립적입니다. 그러나 마치 화폐가 생산물의 가치를 부여하고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현상, 즉 화폐가 상품들의 신으로 나타나는 '물신주의'는 자본 또는 돈에 대한 숭배를 낳습니다. 자본가라는 말에 물신주의 냄새가 풍기는 것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끊임없는 이윤 추구는 자본의 근본 속성이자 본질적 욕망입니다. 자본가는 자본의 이러한 운동논리를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가란 자본의 의식적 담지자 또는 대행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훌륭한 자본가는 이런 자본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조금 벌었다고 흥청망청 써버리면 훌륭한 자본가가 아닙니다. 절약과 금욕을 통한 자본 축적, 끊임없는 재투자, 이것이 자본가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도덕률입니다. 이는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윤리이기도 합니다(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훌륭한 자본가를 우리는 다른 말로 기업가라고 부릅니다.

이 책을 통해 본 박현주 회장은 훌륭한 자본가, 즉 모범적인 기업가입니다. 동양증권과 동원증권을 거쳐 1997년 미래에셋을 창업했고, 창업 10년 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를 거느리게 되었으니, 달리 또 어떤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박현주 회장을 모범적인 기업가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일 수도 있습니다만 성공한 자본가는 참 많지만 모범적인 기업가는 그리 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범적인, 훌륭한 기업가는 '사회적 책임'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회사란 간단하다. 직원들이 부자가 되는 회사이다. 더불어 꿈이 있는 젊은이들이 취직하고 싶어하는 회사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부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의 성장과 직원의 성장이 같은 궤를 그리도록 하면 된다. (p.51)

사회적 책임 이전에 같은 배를 탄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구절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각종 규제가 철폐되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과거보다 시장 확대의 혜택을 더 많이 받고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냉혹한 시장으로 변한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사정이 더 심하다. 따라서 승자는 승자가 된 순간부터 또 다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p.41)

비슷한 말이 이 책에서 몇 번 되풀이됩니다.

냉전이 붕괴되고 신자유주의 물결이 전세계를 뒤덮은 후, 글로벌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사회(The winner takes it All)'가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국가, 지역, 기업, 개인 등을 가릴 것이 없이 모두가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고 승자 독식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문제는 승자 독식현상이 사회가 경쟁을 유도하면서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이다. 정부가 예전처럼 강한 규제로 통제했다면 차지하지 못했을 몫을 승자가 경쟁을 통해 독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승자에게는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나눌 줄 아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p.64)


물론 이러한 말들이 그저 수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줄은 압니다. 그 색안경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먼 기업의 행태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겠습니다.

2002년 3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그 꿈의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감동적이었습니다.

98년 4월, 창업한 지 10개월 후 1억 원을 출자해 미래에셋육영재단을 만들고, 2000년 75억원을 들여 박현주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자기자본 300억의 1/4에 해당되는 돈을 사회에 내놓은 것입니다. 그 재단을 만들고, 솔직히 꼬박 이틀 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고 합니다. '꼭 지금 해야 하나. 회사가 더 성장하고 나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에. 여기서 이 책의 솔직함이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또 말합니다. "기업의 기부는 궁극적으로 기업에게 돌아오는 이기적 행위이다. 이것이 내 믿음이다." 여기서 또 한번 솔직함이 드러납니다.

저는 박현주 회장을 잘 모릅니다. 겨우 책 한 권 읽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진심이라면, 전 기꺼이 그의 실험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더불어, 혹시라도 정치를 할까봐, 정치를 하지 않기 위해 텔레비전에 절대로 출연하지 않는다는 그의 소신도 끝까지 지켜지길 바랍니다. 단 한 푼의 비자금도 없고, 바르게 벌어서 바르게 쓰겠다는 의지도 꺾이지 않길 바랍니다. 승자 독식의 룰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승자의 아량을 널리 베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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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해서 이런 것이 아니라 이래서 성공했다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9-17 16:42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 박현주 지음/김영사 전반적인 리뷰 2007년 9월 16일 읽은 책이다. 모든 성공 스토리에는 나름 배울 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스토리 중에는 좋은 점만을 부각시킨 경우도 더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박현주 회장이 직접 쓴 자서전이다. 예전에 읽었던 에서도 밝혔듯이 자신이 자기에 대해서 책으로 쓴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 대한 Pride 없이는 힘든 것이다. 특히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중국의 황태자 교육
왕징룬 지음, 이영옥 옮김 / 김영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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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부는 유희(遊戱)입니다. 정말 즐거운 놀이입니다. 억압과 강요에 의한 강제적 주입이 아니면 말입니다. 공부에 대한 인간의 유희본성을 회복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저는 학습법 또는 공부법의 제1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은 '동기부여'입니다.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를 깨치는 것이야말로 공부를 잘하기 위한, 즐기기 위한 시작입니다. 그 동기는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목표지향적인 동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재미입니다. 아이들을 잘 관찰해보면, 알아나가는 과정 그리고 아는 것을 응용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 딸은 주말마다 한자 공부를 하자고 졸라댑니다. 가끔 익힌 한자를 식당 안내문이나 광고 전단지 등에서 확인하고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그래서 더욱 한자 공부를 시켜달라고 조릅니다. 지금이야 수학이든 한자든 여유있고 즐거운 놀이의 하나로써 배우니 그저 즐거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알아가는 재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면, 그래도 재미있어 할까요?

요즘 교육환경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비록 돈이 들긴 하지만 배우려는 마음만 있다면 무한정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황태자도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서민들은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열악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으니 공부를 하려면 먼저 책을 손수 베껴야 했습니다. 이 책을 대나무로 엮고 등나무로 묶은 책 상자 안에 담아서 지고 날라야 했습니다. 공부하겠다는 의지 뿐만 아니라 힘도 필요했습니다.

겨우 글자를 베껴도, 그 글자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글자가 쉬워도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가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스승이 필요했습니다. 나라에서 세운 학교나 사숙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배움의 기회를 얻기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꼭 배워야겠다는 소년들은 수백수천리길을 스승을 찾아 걸어야했고, 덥든 춥든 책상자를 지고 날라야 했습니다.

반면 황궁의 황태자에게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전국 최대의 도서관이 황실 안에 있었고 가장 뛰어난 스승이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육의 결과는 생각보다 별무신통합니다. 『중국의 황태자 교육』을 보면 황태자 수업을 제대로 이수한, 똑똑하고 재능있는 본보기가 몇 안 됩니다. 심지어는 참다 못한 황제가 아들을 발로 차 죽여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청나라 8대 황제인 도광제의 황장자(아직 태자가 되지 않은 때라서 맏아들이라는 의미로 황장자라 함) 혁위는 지독하게 공부하기를 싫어했습니다. 혁위가 열일곱살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사부가 "대아가님, 지금 열심히 공부를 하셔야 나중에 훌륭한 황제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엄하게 이르자, 혁위는 화를 내며 "내가 황제가 되면 너부터 죽일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나중에 도광제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애초부터 그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던 도광제는 곧바로 명을 내려 그를 불러들였습니다.

혁위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를 알현하러 왔는데, 화가 난 도광제는 달려가서 발길로 걷어차버렸고, 며칠 후 아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도광제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의지력이 강해 자신을 엄격하게 절제하고 향락을 멀리했고, 즉위 후에도 줄곧 공부하는 습관를 유지하고 소박한 옷을 입고 먹는 것도 검소하여 광대뼈가 튀어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와는 너무나 다른 아들, 아버지는 그것을 참지 못했나 봅니다.

역사상 최고의 사부집단을 거느렸던 이승건은 아버지 당태종에 위해 폐위됩니다. 청나라 강희제는 혹독한 방법으로 교육을 했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아들이 미쳐버려 결국 폐위되기에 이릅니다. 교육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황궁에서 배우는 황자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건이 좋았으나 그들에게는 배움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했다. (p.143)

배우려는 마음보다 가르치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배워서 얻는 즐거움을 알기 전에 더 많은 양을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할 때, 공부에 대한 인간의 유희본성은 묻혀버리게 됩니다. 지상 최대의 서가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옆에 있는들 배우려는 마음을 갖게 하지 못한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중국의 황태자 교육』을 통해, 중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읽을거리를,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중국 교육의 역사를, 자식을 황제 이상으로 끔직하게 아끼는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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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전두환 - 전2권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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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화 〈화려한 휴가〉를 지난 달 개봉하던 날 보았습니다. 마음이 참 많이 아팠습니다. 비록 사랑 이야기를 삽입하여 픽션을 가미했으나, 큰 구도는 사실에 입각하여 만들어졌습니다. 80년 5월 광주의 역사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결말을 알고 보는 마음이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평화로운 장면이 나와도 가슴이 아프고, 짐승같은 학살 장면에서는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폭력 장면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릅니다. 살아 남은 자들의 슬픔이 가슴을 누릅니다. 영화 속의 김상경은 윤상원 역이 아닙니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입니다. 윤상원의 행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도청에서의 마지막 결사항전의 주인공으로 그려지므로 부득이하게 윤상원의 이미지와 겹쳐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최후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광주 시내에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박영순과 이경희의 목소리입니다. 영화에서는 이요원이 이 역할을 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우리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일어나서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윤상원의 건너편에 있던 고등학생이 '퍽'하고 무너졌습니다. 윤상원이 다가갔으나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제자리로 돌아와 거총을 하려던 윤상원의 옆구리로 총탄이 뚫고 들어왔습니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 40분, 그렇게 도청 사수의 상징, 5월 광주의 상징 윤상원이 쓰러지고, 광주도 쓰러졌습니다. 아직도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는 당시 희생자 수는, 적게는 1,000명에서 많게는 2,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5월 28일자 <조선일보>의 사설입니다.

5월 31일 계엄사령부는 광주'사태'로 민간인 144명 포함 17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고, 이를 믿는 광주시민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같은 날 대통령 자문보좌기관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되고 위원장에 전두환이 임명됩니다. 8월 16일 대통령 최규하는 하야 성명을 내고, 8월 27일 '새 시대의 기수 전두환'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에 선출됩니다. 이즈음 문익환은 김대중이 빨갱이임을 고백하라는 고문을 받고, 중앙정보부는 김대중에게 전두환에 협력하라 협박합니다.  이를 거부한 김대중에게 육군보통군법회의는 9월 11일 사형을 구형하고, 9월 13일 사형을 선고합니다.

『만화 전두환 1 - 화려한 휴가』는 12.12 쿠데타로부터 여기까지 그리고 있습니다. 『2권 -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는 제5공화국, 6월 항쟁, 6공화국과 노태우, 전두환 구속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1979년 12.12 쿠데타부터 1996년 전두환 사형 선고, 1997년 전두환 석방 때까지의 근 20년의 역사를 단 두 권에 담고 있습니다.

비록 만화이지만 가볍게 볼 수가 없습니다. 시사 만평가 백무현이 2년 동안 현대사와 치열하게 씨름하며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해 그렸으며 생존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현대사이자 지금 진행중인 '현재사'입니다.

다소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단 두 권에 굴곡 많은 현대사를 모두 다룰 수 없었습니다. 다 아는 내용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만평을 그리듯 현대사의 주요 주제를 몇 컷의 만화로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 현대사를 이처럼 보기 쉽게 알기 쉽게 훑어내리며, 전 재산 29만원짜리 인간 전두환에 대해 낱낱히 고발한 책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벌써 관객수 400만이 훌쩍 넘어버린 영화 〈화려한 휴가〉가 꼭 보아야 할 영화라면, 『만화 전두환』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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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표정있는 역사 7
호사카 유지 지음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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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관한 책을 읽으려면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기 전 이미 유전자적 편향이 작용하여 내용을 왜곡하여 소화하지 않을까 스스로 경계해야 하고, 그 이면에는 일본에 대한 지식 수준이 천박함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치욕의 일제 35년의 역사를 들어내면 남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생각도 어쩌면 강박관념일 수 있습니다. 왜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제대로 된' 지식, '균형잡힌' 시각을 스스로 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우리가 반드시 규명하고 넘어가야할 역사적 과거와, 우리보다 일찍 개화한 선진국으로서 배워야 할 현재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양면이 곧 주류와 비주류 의식이자, 구세대와 신세대의 의식을 나누는 기준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런 생각은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선비의 대일본 인식과도 비슷합니다. 조선 선비의 대일본 인식은 상대주의적 이적관(夷狄=예의를 모르는 오랑캐)에서 임란을 겪은 후에는 일본인을 잔인한 이류(異流=짐승)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어 성리학에 입각한 이적관이 체계화되었습니다. 18세기 조선의 주류파는 성리학적 이적관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의 정치와 군사에 관심을 가졌으며, 실학자를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 사회를 재평가하며 일본이적관을 부정하는 견해까지 나와서 대일본 인식이 다양해졌습니다.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의 저자 호사카 유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선비의 대일본 인식 변화를 볼 때 1945년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 학자의 대일본 인식 변화와 비슷한 측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한국 비주류파는 일본을 한국보다 모든 분야에서 한 수 위인 존재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일본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부족하다. 현재도 한국 주류파는 일본의 정치와 군사에 관심이 많고 비주류파는 일본의 문화와 사회에 관심이 많을 걸 보면 조선시대처럼 각자 다른 일본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미국 등 일본 이외의 나라를 이해할 때는 정치, 군사, 사회, 문화 등으로 구성된 국가의 전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만은 유독 정상적인 이해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본에 의한 임진왜란과 일제 36년이라는 침략 사실 때문에 대립되는 일본관이 한국 안에서 형성됐다고 보아야 한다. (p.184~185)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선비'와 일본을 상징하는 듯한 '사무라이', 제목은 그럴 듯한데 도대체 무엇을 비교하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붓을 든 선비와 칼을 든 사무라이를 어떻게 동일한 비교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을지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처음에는 선비가 무엇인지, 사무라이가 무엇인지, 고서에서 표현된 다양한 예를 통해 그 '정의'를 내립니다. 그런 다음 곧 이 책의 주제를 암시하는 말이 등장합니다.

니토베는 『무사도』를 썼다. (...) 니토베가 소개한 무사도의 정신은 원래 조선 선비의 정신이었다. (p.42)

무사도의 정신이 조선 선비의 정신이라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러한 시각의 참신함입니다.

선비가 칼을 차면 사무라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1900년에 니토베 이나조가 쓴 『무사도』에서 소개한 '무사'의 규범에서, '무사'를 '선비'로 바꾸면 놀라울 정도로 그 정의가 통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무사도의 핵심 규범이 바로 조선의 성리학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유학자 강항이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사서오경, 이황의 성리학, 과거제도, 조선의 장례제도 등을 전수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비록 일본이 과거제도나 제례 등을 수용하지 않았고 완전한 유교국가도 되지 않았지만 에도시대에 성리학이 주류 학문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도요토미 일가를 멸망시켜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성리학을 관학으로 삼고 조선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약 270년간 걸쳐 지켜나가게 됩니다.

참, 저자인 호사카 유지는 한국인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대학을 졸업했지만, 한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체류 15년만인 2003년에 한국인으로 귀화하였습니다. 현재 세종대학교 인문대학에서 교양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 표현된 일제 36년은 일제 35년으로 바로잡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제 기간은 만 35년에서 약 일주일이 모자랍니다. 굳이 한국식 나이를 세듯이 36년이라고 늘려 부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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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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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반적으로 신이라 부르는, 초인적이며 세상을 설계한 '인격신'의 존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그러나 '없다'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는 '거의' 무신론자입니다.

저는 불교에 관심이 많아 중학교 때부터 나의 환경과 내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면벽하여 경전을 외곤 했습니다. 불교 학생회에 참석하며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저는 더 이상 그 종교를 믿지 못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복(祈福) 신앙으로 전락한 그런 종교를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주된 기원 내용은 "1등을 하게 해주세요"였습니다. 학생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어느날 문득, 나의 석차가 오르면 필연적으로 다른 학생의 석차는 떨어지고, 나의 행복은 곧 다른 사람의 불행이 되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애초부터 기복은 불교적이지 않습니다. 기복 성격이 강했던 그 불교를 저는 믿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학생회를 지도하고 있던 청년이 나를 설득하였으나 내가 듣지 않자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하는 일마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는 크리스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입학하고 보니 학교가 그러했습니다. 주 1회 종교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들은 말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 시간에 저는 몇가지 질문을 했었고 선생님은 답변을 했지만 이해할 수 없어 또 몇 번 질문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선생님 왈,
"너는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있다."
이해가 안 돼 질문했던 것 뿐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당시에는 다소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그 무엇, 내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혹시 신이 아닐까, 나의 이 행동, 이 생각 하나하나를 모두 지켜보고 있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심지어 TV에서 지겹도록 재방영한 <슈퍼맨>을 보면서도 인간보다 더 우월한 그 무엇(혹시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신은 정말 바쁘겠다는 생각도 했고, 전지(全知)한 신이라면 굳이 지켜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켜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사실 전지와 전능은 양립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전지하다면 앞으로 벌어질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인데, 누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게되면 그것은 기존의 상황이 바뀌는 결과가 됩니다. 이 경우 전능할 수는 있으나 전지하지 못하게 되는 꼴입니다. 물론 이건 논리학 영역이며, 오늘의 주제는 아닙니다.

요 몇 주 책을 소개하는 신문지상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매우 비중 있게. 아마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탈레반에 의해 억류되어 있는 인질 사태가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이미 30년 전에 《이기적 유전자》를 발표해 최고의 지성 반열에 오른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이었다는 점도 이유가 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 저의 어렴풋한 의혹은 '거의' 해소되었습니다. 왜 '거의'라고 했냐고 하면 여전히 논리적이지 않는 그 무엇이 제 뇌에 남아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찌든 때는 빨아도 그 자국이 남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 표백 직전 상태입니다. 아마 리처드 도킨스의 전작 <눈 먼 시계공>까지 읽으면 완전 표백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6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의 압박만 제외하면, 이 책, 참 재미있습니다. '신은 존재한다'는 가설과 '종교는 필요하다'는 주장에 다소 지나칠 정도로 칼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지나치다'는 생각조차 우리가 이미 종교에 어떤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합니다.

책을 보니 미국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이미 '신정국가'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무신론자에게는 시민권도 주지말아야 한다는 투로 말하는 미국 대통령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대통령 후보가 무신론자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밝히면 이는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될 정도로 미국은 이미 신정국가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신' 자체를 공격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맥을 잇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주요 타겟이며, 종교적 망상(delusion)을 경고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현대 미국 사회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참, 이 책의 원재는 The God Delusion 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넘기면 바로 이런 문구가 보입니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


저자는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명백히 선언하고, 이 책의 목적이 지적인 무신론자로 만들기 위함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신에 대한 가설, 즉 "우주와 우리를 포함하여 그 안의 모든 것을, 의도를 갖고 설계하고 창조한 초인적, 초자연적인 지성이 있다"는 가설을 정면으로 공박합니다.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을 살피며 그 논증의 빈약함을 들추어 냅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핵심 논거로 삼아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증거를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종교의 발생과 발전 역시 다윈주의로 설명하며, 종교가 없다고 해서 악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근본주의와 절대론의 어두운 이면을 통해 왜 종교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하여 이 책의 목적인 종교로부터의 도피를 권하면서 마무리합니다.

참 끈질깁니다.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이 들까봐 저자는 끝까지 말꼬리를 놓치지 않으려 설명하고 또 설명합니다. 신은 아마 없을 것이고 도덕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신을 최후 수단으로 여기고 되돌아가려는 마지막 한 사람, 그들 마저도 붙잡으려 합니다. 이 점에서 도킨스는 열정적이며 집요합니다. 반면 저의 이 짧은 리뷰는 오히려 유일신을 믿는 분들에게 괜한 오해만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인터뷰 기사에 수백명이 달려들어 감정적인 댓글을 달듯이 말입니다.(리처드 도킨스 인터뷰 기사와 네티즌 댓글 보기) 혹시 비슷한 마음이 든다면 꼭 한 번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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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송도둘리 2007-08-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개신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신'에 대한 논쟁도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늘어났다기보다는 눈에 띄게 된거겠죠? 흥미로운 책에 흥미로운 서평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좋은 서평으로 소개해주세요. 추천합니다. ^^

차옹 2007-08-0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일꼬 갑니다

꼬마요정 2007-08-1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추천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