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3 -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3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많이 또는 깊이 있게 읽어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다른 책들처럼 그냥 읽은 뒤, 책을 덮고 나면 막 화가 납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신들과 인간들의 이름들 중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고, 기억난다 해도 계통 없이 뒤죽박죽 엉켜버려, 하나도 '재활용'할 수 없게 됩니다. 저의 말과 글에 신화가 등장하는 경우는, 그래서 참으로 희귀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열광할까요?
'열광'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요근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가히 폭발적으로 팔리고 있으며, 예로부터 신화는 좀 쓴다하는 문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화는 말에 '권위'를 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단 뭔가 있어 보이니까요.
흔히 신화는 지혜의 보고라고 합니다. 저자 이윤기는 '신화의 진실'을 믿는다고 합니다. 이야기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신화 속에 담긴 그 의미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리아드네가 미궁 안으로 들어간 테세우스에게 건네준 실꾸리(실타래)와도 같이 '꼭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신화가 지혜의 보고인지, 평생토록 꼭 간직해야할 소중한 그 무엇인지, 저는 아직 잘 모릅니다. 신화를 몇 번 읽어도 늘 낯선 경험일 뿐입니다. 봐도봐도 헷갈리는 외화 속의 외국인 얼굴과 비슷합니다. 이는 물론 전적으로 경험의 부족 때문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화를 보지 않았고, 아직까지 제대로 각잡고(?) 신화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으니 매우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굳이 지금 신화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알아나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필요에 의하지 아니하고, 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의무적으로 읽는 책은 학창 시절의 교과서와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재미로 다가가기보다는 '유식함'으로 가는 필수 코스로서 택한 신화 읽기는 즐거움보다는 강박의 무게가 주는 고통이 더 컸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다 다가가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이윤기의 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몇번 읽다보면 어느새 신화가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변명이 좀 길었습니다. 각설하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통 그리스 로마 신화와는 다릅니다. 신화를 이윤기식 주제 분류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1권은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라는 이름으로, 2권은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라는 이름으로, 그리도 이 3권은 신들의 마음을 여는 12가지 열쇠라는 이름의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제가 산 것은 1권은 초판 142쇄, 2권은 초판 54쇄, 3권은 초판 1쇄입니다. 2권은 아직 못봤습니다.

3권은 1권에 비해 보다 에세이적입니다. 다른 신화학자의 책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전, 예를 들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고전도 군데군데 인용하고 있습니다. 4장에서는 이윤기의 딸이 쓴 수필도 길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느낌과 저자의 의견이 많습니다. 어찌 보면, 신화 자체보다는 신화를 '해석'하고 이윤기 식의 '교훈'을 만들기 위해 좀 지나치진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신화 책이라기보다는 신화 '참고서'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풀어 쓴 것도 좋지만, 마치 옛날 이야기하듯 소설처럼 구성한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먼저 한번 읽어보고, 이윤기의 책을 봐야 순서가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책이 어떠한 것이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큰 서점에 나갈 일 있으면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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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7-11-1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화를 읽으시려면 조금은 여유를 가지셔야 해요. 그리고 그리스 로마신화 읽으면서 정리 잘되는 사람도 있지만 안 되는 사람이 더 많아요. 오죽 했으면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같은 정리본이 나오겠어요.그런 책은 노트식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니까 혼선을 많이 줄여주지요. 그런데 조금 더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대체로 토마스 불핀치의 책을 기본으로 하지만 다른 작가들 책도 많고 조금씩 이야기가 틀려요.그리고 신화 읽기가 줄거리나 핵심정리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신화읽기는 양파껍질 벗기기와 같아서 같은 신화를 본다고 해서 같은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용어는 신화의 어떤 상황을 가르키는 것인가? 도대체 프로메테우스나 오디세우스의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따위의 실존적인 껍질도 볼 수가 있고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와 견훤 어머니의 실타래가 어떤 것을 상징하는가? 신데렐라의 구두와 콩쥐의 꽃신, 모노산들로스의 신발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비교 문화적인 껍질도 볼 수가 있고 도대체 신화적 사고가 현재의 사고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철학적 껍질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발꿈치를 올린 만큼 더 보는 거죠. 따라서 신화를 이해하려면 조금 시간을 가지고 편한 마음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가끔은 자신의 이야기 같은 때가 오고, 그게 신화 읽기의 시작입니다.

하늘연못 2007-11-15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 선생님의 책은 상당히 공부를 많이하고 생각도 깊이한 사람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곱씹은 흔적은 보여주기 때문에 의의가 있는 거라고 봐요.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것이 워낙 이질적인 문화의 산물이다 보니 줄거리 잡고 등장인물 이름 외기도 벅차죠. 그런데 사실은 신화의 맛이나 의미는 그걸 넘어서 있는 것인데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그걸 보기가 힘들죠.워낙 기본 교양이나 실력이 딸리니까요. 그런데 이윤기 선생님은 "이렇게 보면 어떠냐? 이런 뜻도 있다." 또는 "이게 다른 얘기가 아니고 우리나라 신화에도 있고 지금 우리 삶에도 있는 얘기다."하고 들려주니까 고마운 거죠.

하늘연못 2007-11-15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실컷 쓰고 보니까 손병목 선생님 싸이트군요. 만나뵈어서 반갑습니다. 종교학을 전공하고 신화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선생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저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이렇게 열광하는 것이 문화 사대주의 아니냐는 생각이 많았고 또 복잡하고 소용닿지 않는 신들의 이름을 외우며 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나 하는 의문이 많았으니까요. 조금은 생각이 달라졌음에도 퀴즈프로에 참가하는 사람들인양 단편지식으로 신화를 읽는 모습을 보며 지금도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여튼 선생님의 리뷰를 읽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머리가 나쁘다고 자탄하는 고충이 저의 모습인 것같아 너무도 공감이 갔어요. 너무도 진실된 고백이어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리라 생각했죠. 솔직한 선생님의 모습에 더 존경심을 품게 됩니다. 결국 상당히 무례한 내용이 된 앞의 글은 소용닿을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날마다좋은날 2007-11-16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모르는 걸 모른다 썼을 뿐 겸손 따위는 없습니다.
며칠 전에 이윤기 선생님을 직접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칭 크리스찬이, 그리고 실재로 얼마 전에 신학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신화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도 예수에 완전 귀의할 수 없는지 이유를 듣는 순간, 드디어 알게 됐습니다.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에 그리 천착을 하셨는지. 예수로 귀의하는 순간,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는 순간, 참다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 그분의 생각이었습니다.
감동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다가온다고 합니다.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이윤기 선생님의 여러 작품들,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하늘연못님 여러 말씀,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