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강의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만난다!
이중텐 지음, 양휘웅 외 옮김 / 김영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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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독서노트가 과거에 비해 참 뜸해졌습니다. 주 3회를 원칙으로 부지런히 보낸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월 3회나 될까싶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아마 작년 말 동양고전을 주제로 한 연재가 끝난 후부터인 것 같습니다. 독서의 양(量)보다는 스스로 내실을 기하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새벽에 쫓기듯 급하게 글을 쓰지 말고, 여유있게 읽고 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행태를 반성해보건데 주3회라는 나름의 양적 원칙을 가졌을 때에 비해 질적으로 더 나아진 게 없어보입니다. 약간의 여유, 그 사이로 게으름이 싹을 틔운 것 같습니다. 내 평생을 스스로 싸워야할 게으름은 아주 작은 틈도 놓치지 않고 씨를 뿌립니다. 몸을 씻고 구두를 닦는 데는 시간을 아끼지 않으면서 지식을 쌓고 마음을 닦는 데 인색해서야 되겠습니까. 독서노트는 지식을 쌓고 마음을 닦는 수단입니다. 최선을 다해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새벽이 즐거워 하루가 즐거워지고, 내가 즐거워 나를 둘러싼 많은 이들이 함께 즐거워지는 묘약입니다. 게으름의 틈을 메우는 보수공사를 서둘러 마치겠습니다.

요즘 몇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 KBS의 《유교, 아시아의 힘》, 데론 Q.듀몬의 《집중의 법칙》, 정승우의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등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입니다.

저자인 이중톈(易中天)은 인세 수입만으로도 중국 갑부 순위 안에 드는 스타 학자입니다. 이 책은 이중톈이 중국 국영방송인 CCTV에서 강의한 《삼국지》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지난 달(2007년 5월)에 출간된 것인데, 이달에는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저자의 《초한지 강의》도 나왔습니다.

중국에서의 폭발적인 반응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잠잠한 듯합니다. 중국에서는 스타 학자라도 아직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저자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타 저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이 책이 시금석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본국에서 누렸던 명성을 이곳에서도 누릴 가능성은 좀 적어 보입니다. 책 내용 때문입니다.

이 책은 문학 《삼국지》, 즉 《삼국연의》를 몇 번 읽어본 사람들이나 좀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입니다. 《삼국지》를 읽고 싶어하는 광범위한 독자들에게는 전혀 무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오로지 전에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들로 독자를 국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소설 《삼국지》 속의 여러 이야기의 진위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문학 속의 제갈량, 조조, 유비, 손권의 모습과 역사적 모습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당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정사 《삼국지三國志》보다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를 《삼국지》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아니고서는 진수의 《삼국지》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역사책에는 '감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를 떠나 '감동'과 '교훈'을 주는 소설 《삼국지》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보다는 김훈의 《칼의 노래》가 더 감동적이듯 말입니다. 《난중일기》는 필독서 목록에 올라도 건성으로 읽겠지만 《칼의 노래》는 필독서 목록에 없어도 소리 소문도 없이 퍼져나가 여러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난중일기》와 《칼의 노래》를 비교하여 그 진위를 밝힌 책이 과연 어느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책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물론 국영 TV의 삼국지 강의 후광 효과이겠지만, 반드시 그 이유만은 아닐 것입니다. 중국에서의 《삼국지》 위상이 《난중일기》와 비할 바 못되고, 저자 이중톈의 문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등 인문 전 분야를 넘나드는 지식에 매료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 책은 역사와 문학 사이를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인생의 교훈을 끄집어 냅니다. 역사적 사실이 명확치 않을 때에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재구성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읽어볼 만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킬지 모르겠으나, 매력적인 책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독서유감讀書有感]

이 책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는데, 이중톈과 같이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지식의 소유자를 '유목적 지식인'이라고 부른다면, 이와 반대되는 말이 '선무당'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무당은 서툰 무당이라는 뜻인데, 서투르고 미숙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다가 큰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일컬을 때 씁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인은 혜안과 감동을 주지만 선무당은 사람을 죽입니다. 경험적으로 보니, 선무당에게 결정적으로 모자라는 것은 지식의 한계가 아니라 그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자기 성찰의 부족과 그에 따른 겸양의 부족입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네》라는 책을 보면 선무당의 여러 악폐가 보입니다. 선무당의 최대 악폐는 사람을 죽이는 데 있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는 서툰 굿과 부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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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7-10-0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필독서에 올려놓아야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