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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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반적으로 신이라 부르는, 초인적이며 세상을 설계한 '인격신'의 존재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그러나 '없다'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는 '거의' 무신론자입니다.

저는 불교에 관심이 많아 중학교 때부터 나의 환경과 내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면벽하여 경전을 외곤 했습니다. 불교 학생회에 참석하며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저는 더 이상 그 종교를 믿지 못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복(祈福) 신앙으로 전락한 그런 종교를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주된 기원 내용은 "1등을 하게 해주세요"였습니다. 학생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어느날 문득, 나의 석차가 오르면 필연적으로 다른 학생의 석차는 떨어지고, 나의 행복은 곧 다른 사람의 불행이 되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애초부터 기복은 불교적이지 않습니다. 기복 성격이 강했던 그 불교를 저는 믿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학생회를 지도하고 있던 청년이 나를 설득하였으나 내가 듣지 않자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하는 일마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는 크리스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입학하고 보니 학교가 그러했습니다. 주 1회 종교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들은 말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 시간에 저는 몇가지 질문을 했었고 선생님은 답변을 했지만 이해할 수 없어 또 몇 번 질문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선생님 왈,
"너는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있다."
이해가 안 돼 질문했던 것 뿐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오지만 당시에는 다소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그 무엇, 내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혹시 신이 아닐까, 나의 이 행동, 이 생각 하나하나를 모두 지켜보고 있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심지어 TV에서 지겹도록 재방영한 <슈퍼맨>을 보면서도 인간보다 더 우월한 그 무엇(혹시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신은 정말 바쁘겠다는 생각도 했고, 전지(全知)한 신이라면 굳이 지켜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켜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사실 전지와 전능은 양립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전지하다면 앞으로 벌어질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인데, 누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게되면 그것은 기존의 상황이 바뀌는 결과가 됩니다. 이 경우 전능할 수는 있으나 전지하지 못하게 되는 꼴입니다. 물론 이건 논리학 영역이며, 오늘의 주제는 아닙니다.

요 몇 주 책을 소개하는 신문지상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매우 비중 있게. 아마 현재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탈레반에 의해 억류되어 있는 인질 사태가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이미 30년 전에 《이기적 유전자》를 발표해 최고의 지성 반열에 오른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이었다는 점도 이유가 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 저의 어렴풋한 의혹은 '거의' 해소되었습니다. 왜 '거의'라고 했냐고 하면 여전히 논리적이지 않는 그 무엇이 제 뇌에 남아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찌든 때는 빨아도 그 자국이 남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 표백 직전 상태입니다. 아마 리처드 도킨스의 전작 <눈 먼 시계공>까지 읽으면 완전 표백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6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의 압박만 제외하면, 이 책, 참 재미있습니다. '신은 존재한다'는 가설과 '종교는 필요하다'는 주장에 다소 지나칠 정도로 칼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지나치다'는 생각조차 우리가 이미 종교에 어떤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합니다.

책을 보니 미국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이미 '신정국가'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지만 무신론자에게는 시민권도 주지말아야 한다는 투로 말하는 미국 대통령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대통령 후보가 무신론자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밝히면 이는 정치적 자살 행위가 될 정도로 미국은 이미 신정국가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신' 자체를 공격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맥을 잇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주요 타겟이며, 종교적 망상(delusion)을 경고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현대 미국 사회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참, 이 책의 원재는 The God Delusion 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넘기면 바로 이런 문구가 보입니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


저자는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명백히 선언하고, 이 책의 목적이 지적인 무신론자로 만들기 위함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신에 대한 가설, 즉 "우주와 우리를 포함하여 그 안의 모든 것을, 의도를 갖고 설계하고 창조한 초인적, 초자연적인 지성이 있다"는 가설을 정면으로 공박합니다.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을 살피며 그 논증의 빈약함을 들추어 냅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핵심 논거로 삼아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증거를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종교의 발생과 발전 역시 다윈주의로 설명하며, 종교가 없다고 해서 악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근본주의와 절대론의 어두운 이면을 통해 왜 종교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하여 이 책의 목적인 종교로부터의 도피를 권하면서 마무리합니다.

참 끈질깁니다.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이 들까봐 저자는 끝까지 말꼬리를 놓치지 않으려 설명하고 또 설명합니다. 신은 아마 없을 것이고 도덕에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인정하면서도 신을 최후 수단으로 여기고 되돌아가려는 마지막 한 사람, 그들 마저도 붙잡으려 합니다. 이 점에서 도킨스는 열정적이며 집요합니다. 반면 저의 이 짧은 리뷰는 오히려 유일신을 믿는 분들에게 괜한 오해만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인터뷰 기사에 수백명이 달려들어 감정적인 댓글을 달듯이 말입니다.(리처드 도킨스 인터뷰 기사와 네티즌 댓글 보기) 혹시 비슷한 마음이 든다면 꼭 한 번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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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송도둘리 2007-08-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개신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신'에 대한 논쟁도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늘어났다기보다는 눈에 띄게 된거겠죠? 흥미로운 책에 흥미로운 서평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좋은 서평으로 소개해주세요. 추천합니다. ^^

차옹 2007-08-0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일꼬 갑니다

꼬마요정 2007-08-10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추천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