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표정있는 역사 7
호사카 유지 지음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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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관한 책을 읽으려면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기 전 이미 유전자적 편향이 작용하여 내용을 왜곡하여 소화하지 않을까 스스로 경계해야 하고, 그 이면에는 일본에 대한 지식 수준이 천박함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치욕의 일제 35년의 역사를 들어내면 남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생각도 어쩌면 강박관념일 수 있습니다. 왜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제대로 된' 지식, '균형잡힌' 시각을 스스로 요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우리가 반드시 규명하고 넘어가야할 역사적 과거와, 우리보다 일찍 개화한 선진국으로서 배워야 할 현재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양면이 곧 주류와 비주류 의식이자, 구세대와 신세대의 의식을 나누는 기준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런 생각은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선비의 대일본 인식과도 비슷합니다. 조선 선비의 대일본 인식은 상대주의적 이적관(夷狄=예의를 모르는 오랑캐)에서 임란을 겪은 후에는 일본인을 잔인한 이류(異流=짐승)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어 성리학에 입각한 이적관이 체계화되었습니다. 18세기 조선의 주류파는 성리학적 이적관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의 정치와 군사에 관심을 가졌으며, 실학자를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 사회를 재평가하며 일본이적관을 부정하는 견해까지 나와서 대일본 인식이 다양해졌습니다.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의 저자 호사카 유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 선비의 대일본 인식 변화를 볼 때 1945년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 학자의 대일본 인식 변화와 비슷한 측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한국 비주류파는 일본을 한국보다 모든 분야에서 한 수 위인 존재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일본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부족하다. 현재도 한국 주류파는 일본의 정치와 군사에 관심이 많고 비주류파는 일본의 문화와 사회에 관심이 많을 걸 보면 조선시대처럼 각자 다른 일본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미국 등 일본 이외의 나라를 이해할 때는 정치, 군사, 사회, 문화 등으로 구성된 국가의 전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만은 유독 정상적인 이해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본에 의한 임진왜란과 일제 36년이라는 침략 사실 때문에 대립되는 일본관이 한국 안에서 형성됐다고 보아야 한다. (p.184~185)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선비'와 일본을 상징하는 듯한 '사무라이', 제목은 그럴 듯한데 도대체 무엇을 비교하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붓을 든 선비와 칼을 든 사무라이를 어떻게 동일한 비교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을지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책을 펼쳤습니다.

처음에는 선비가 무엇인지, 사무라이가 무엇인지, 고서에서 표현된 다양한 예를 통해 그 '정의'를 내립니다. 그런 다음 곧 이 책의 주제를 암시하는 말이 등장합니다.

니토베는 『무사도』를 썼다. (...) 니토베가 소개한 무사도의 정신은 원래 조선 선비의 정신이었다. (p.42)

무사도의 정신이 조선 선비의 정신이라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러한 시각의 참신함입니다.

선비가 칼을 차면 사무라이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1900년에 니토베 이나조가 쓴 『무사도』에서 소개한 '무사'의 규범에서, '무사'를 '선비'로 바꾸면 놀라울 정도로 그 정의가 통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무사도의 핵심 규범이 바로 조선의 성리학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입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의 유학자 강항이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사서오경, 이황의 성리학, 과거제도, 조선의 장례제도 등을 전수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비록 일본이 과거제도나 제례 등을 수용하지 않았고 완전한 유교국가도 되지 않았지만 에도시대에 성리학이 주류 학문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도요토미 일가를 멸망시켜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성리학을 관학으로 삼고 조선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약 270년간 걸쳐 지켜나가게 됩니다.

참, 저자인 호사카 유지는 한국인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대학을 졸업했지만, 한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체류 15년만인 2003년에 한국인으로 귀화하였습니다. 현재 세종대학교 인문대학에서 교양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 표현된 일제 36년은 일제 35년으로 바로잡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제 기간은 만 35년에서 약 일주일이 모자랍니다. 굳이 한국식 나이를 세듯이 36년이라고 늘려 부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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