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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햇볕의 집 - 오십, 지리산을 펼쳐 집 한 권 썼습니다
김토일 지음 / 미니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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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5일의 출장과 워크숍을 마치고 어젯밤에 집에 돌아와, 10시간을 잤다.

일어나 김토일님의 『바람과 햇볕의 집』을 읽는다. 오십에 지리산을 펼쳐 집 한 채, 책 한 권을 써냈다. 글이 따뜻하고 맛깔난다. 쉼표조차 온기가 있다. 분명 소주 한 병 들이키고 내뱉은 말일 텐데 허투루 쓴 문장이 없다. 그가 지은 집도 그러할 것이다. 그는 느리게 집을 썼고 나는 느리게 한 줄 한 줄을 마신다. 어떤 문장은 막걸리 같고 어떤 문장은 소주 같다. 서서히 취해간다.

문득 화개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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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0 (보급판 문고본) - 천하통일, 완결
장정일 글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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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이 <장정일 삼국지>를 읽었습니다. 어느새 10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을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자랑 삼아 삼국지를 열 번 읽었다는 사람도 있는 반면 삼국지는 두 번 읽을 가치조차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는 형편없는 영화라도 어떤 이는 대사를 욀 정도로 보고 또 본 영화가 있듯이 삼국지도 그러합니다.


   제   목 : 장정일 삼국지 (2)~(1) <문고판(HAND IN HAND LIBRARY>
   지은이 : 장정일
   펴낸곳 : 김영사 / 2008.5.1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각권 ₩5,500


만약 삼국지를 다시 읽으려면 시차를 좀 길게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몇 년의 간격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다시 읽을 때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줄거리를 기억하기조차 벅찹니다. 적어도 두 번 세 번 읽어야 줄거리에서 인물로 시선을 옮길 수 있습니다.

이번에 읽을 때는 유독 제갈량에게 관심이 쏠렸습니다.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제갈량에 관심이 쏠렸다가 몇 번을 읽으니 조조에게 관심이 넘어갔다가 이번에 다시 제갈량으로 돌아왔습니다.  주군보다는 참모에 더 관심이 갑니다. 이상하게도 유비나 손권 따위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제갈량이 평생을 바친 유비와 그의 촉한에는 참 인재가 없었습니다. 흔히 오호대장군이라 불리는 관우와 장비, 조운과 황충, 마초와 제갈량 사후에 군권을 맡았던 강유 정도가 전부입니다. 게다가 황충은 조조 밑에서 그리 중하게 쓰인 인물이 아니었고, 강유도 위나라 변방의 한 장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이들이 촉에 가서는 아주 중하게 쓰입니다. 조조가 인재를 못 알아봤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위나라에는 인재가 넘치고 촉은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재가 귀하다보니 촉의 거의 모든 일은 제갈량에게 집중됩니다. 내치부터 군사를 부리는 일까지 도맡아 하게 됩니다. 전장에서조차 20대 이상의 태형에 해당되는 죄수를 직접 문책할 정도로 잡일이 많았습니다. 잡무로 인해 밤늦도록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의는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확신을 합니다.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 때 사마의는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제갈량의 계책에 속아 사마의 3부자가 산속에서 모두 불에 타 죽을 뻔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그때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합니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성공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어쩔 수 없구나(某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
모사재인 성사재천(某事在人 成事在天)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그 후 갑자기 지병이 깊어져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제갈량의 사인을 흔히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폐결핵이라고 합니다. 얼굴은 희고 입술이 유난히 붉었으며, 이를 가리기 위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기력이 쇠해 전장에서도 말을 타지 않고 사륜거를 탔으며, 죽을 때 피를 토했다는 정황을 들어 폐결핵이라고들 합니다. 고우영의 삼국지에도 그런 식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과로사입니다. 인재가 부족한 나라에서 너무나 많은 일, 너무나 많은 고민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젊은 시절 그와 함께 전장을 누볐던 모든 이들이 저세상으로 가고, 유비의 늦둥이 어린 황제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 많은 일들을 홀로 처리해야 했으니 그 누군들 버틸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천자를 옆에 두어 명분을 얻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던 조조에게 관심이 더 갔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주군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2세 황제를 위해서도 몸을 아끼지 않다가 천명을 다 못 누리고 간 제갈량에게 더 마음이 쏠리는 까닭은 왜일까요? 조조가 죽자 제갈량을 죽인 군벌 사마씨들이 실권을 잡아 결국 사마씨의 의해 삼국이 통일됩니다. 유비가 죽자 사마씨와 마찬가지로 제갈량이 실권을 장악하지만 그는 유씨를 위해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합니다.

삼국의 역사는 비록 위-진의 통일로 마무리되지만 <삼국지연의>는 삼국 중 가장 먼저 패망한 촉한을 정통으로 삼아 씌어졌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작자 역시 제갈량에게 끌리는 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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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 (보급판 문고본) - 황건기의(黃巾起義)
장정일 글 / 김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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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용의 부활>은 <삼국지>를 영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삼국지>를 재현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는 <삼국지>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유비, 조조, 손권은 아주 잠깐 등장하거나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갈량도 잠깐 등장합니다. 관우와 장비도 마찬가지. 정작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자룡'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삼국지>가 아니라 '조자룡전'이라 해야 어울립니다.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머리를 희끗하게 분장한 유덕화의 모습도 새롭고, 무엇보다 늘상 바라보던 방향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삼국지>를 바라보니 신선했습니다. 영화는 구름과 함께 시작합니다. 뭉게뭉게 구름이 떠오르고 흘러갑니다. 아마 조운의 운(雲)을 뜻한 것 같습니다. 곧이어 상산 출신 조자룡은 유비군 진영에 자원 입대합니다. 거기서 동향 출신으로 큰형(大哥)이라고 부르는 홍금보를 만나게 되고, 영화는 시종일관 이 둘의 시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불패장군이라는 별명답게 조자룡은 평생에 걸쳐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조조의 손녀 조영에게 패하고 맙니다. 통상 알고 있는 <삼국지>에서 큰 줄거리는 빌려왔되 이처럼 새롭게 그리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삼국지>라면 원전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이 영화를 본다면 '이게 무슨 삼국지야'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삼국지>는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픽션인데도 말입니다.



영화 <용의 부활>의 주된 배경은 유비, 조조, 손권 등 <삼국지>의 주인공들이 사라지고 그들의 2,3세가 각축을 벌이는 시기입니다. 천수를 다한 조자룡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시기를 무대로 그리기 때문입니다. 전장에서 평생을 보낸 조자룡은 죽음을 맞이할 봉명산에서 무언가를 깨닫습니다. 그곳은 그가 처음 유비군에 자원 입대했던 곳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커다란 원을 돌아 제자리로 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암시입니다.

오늘의 리뷰 주제는 <용의 부활>이 아닙니다. <삼국지>의 또 다른 판본, <장정일 삼국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문고판이 나와 가볍게 읽고 있습니다.

영화 <용의 부활>이 '여러 장수들 중의 하나'였던 조자룡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냈듯, <장정일 삼국지>는 기존의 <삼국지>에서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이들의 심리를 거의 조연 또는 주인공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장정일은 <삼국지>를 역사로 보기보다는 철저하게 소설로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로' 썼습니다. <장정일 삼국지>에서는 유비도, 조조도, 손권도 우리편이 아닙니다. 혹자는 유비 중심의 <삼국지>를, 또 누구는 조조 중심의 <삼국지>를 선호할 수 있겠지만 <장정일 삼국지>는 그 누구도 주인공으로 삼지 않습니다. 중국인의 눈으로 본 <삼국지>는 이미 많이 나와 있으니 굳이 장정일이 새로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제   목 : 장정일 삼국지 (1) 황건기의 <문고판>
   지은이 : 장정일
   펴낸곳 : 김영사 / 2008.5.1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5,500

제1권 <황건기의>는 거의 '동탁전'입니다. <용의 부활>이 '조자룡전'이라면 <장정일 삼국지> 제1권 <황건기의>는 '동탁전'입니다. 원전(?) <삼국지>에서 탐욕하고 어리석은 장수로 황제를 억압하여 권세를 잠깐 누리다가 사라진 변방의 장수였던 동탁이, 여기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동탁의 심리묘사가 중립적입니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양면성을 고루 그리고 있습니다. 동탁과 그의 사위이자 참모인 '이유'의 활약상을 비교적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그리고 있습니다.

'황건적의 난'은 누런 머리띠를 두른 도적떼들의 반란으로 그리지 않고 '의로움으로 일어선' 민중 봉기 성격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제1권의 제목이 <황건기의>입니다. 유비는 결코 유약하지 않습니다. 그는 '전술가'입니다. 뭐도 없는 환관이 나라를 망쳤다는 식의 서술이 아니라 후한말에 왜 환관이 등극하게 되었는지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흔히 악당 10인방을 그려지는 10명의 환관 '십상시'를 무작정 나쁜 인물들로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이쯤 되면 기존의 <삼국지> 독자들은 혼란스럽습니다. 도대체 뭐가 '진짜'인가?

'진짜'는 없습니다. <삼국지>는 원래부터 소설입니다. 구전된 소설을 누군가가 글로 적은 것이고, 그 중에서 나관중이 쓴 판본이 유명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역사적 왜곡과 편향된 해석이 가득 차 있습니다. 진수의 <삼국지>(이건 역사서입니다)와 비교해볼 때 소설 <삼국지(삼국지연의)>는 7할이 허구입니다.

장정일은 <삼국지>를 제3국인의 눈으로 쓰겠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삼국지>에 자주 등장하는 동호(東湖), 즉 고구려계 사람들의 눈으로도 보고, 중원이 아닌 변방의 장수들의 눈으로도 봅니다. 중국인들의 눈으로 보면 변방 장수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권에서 동탁을 다시 살려냈습니다. 황건적의 우두머리 장각을 고뇌하는 민중봉기의 지도자 장각으로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새롭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진짜' <삼국지>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 분이라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똑 부러지게 선악을 구분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기존의 <삼국지>에 익숙한 독자에게 <장정일 삼국지>는 죽도 밥도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삼국지>에 비해 흥행이 덜 됐나 봅니다. 새로운 해석보다는 아직은 '원조'가 중요한 시대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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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 내게 힘이 되는 사람들
오명철 지음 / 이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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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기자는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신문사 소속이냐에 따라 사람들은 그 기자가 쓴 글의 성격을 좌우로 쉽게 나눕니다. 이 당치도 않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아일보에서 20년이 훨씬 넘게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오명철 기자의 책은, 그래서 일찌감치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그른 것 같습니다^^ 새 정부 들어서 동아일보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으니까요.


   제   목 :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
   지은이 : 오명철
   펴낸곳 : 이레 / 2007.12.17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9,800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는 오명철 기자가 동아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 편집국 부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쓴 글 중 정치·사회적 내용보다는 일상에서 퍼올린 자잘한 내용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쓴 책이라는 느낌보다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여느 아버지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일상의 미시적인 일에 돋보기를 들이대면 거기에는 대개 좌도 없고 우도 없습니다. 그저 사람 사는 모습만 있을 뿐입니다. 오 기자의 이야기는 아주 사적인 곳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큰 물난리 때 돈 나가는 가재도구 대신 두 아들의 교과서부터 챙겼던 아버지의 이야기, "화가의 연인은 로맨틱하지만, 화가의 아내는 위대하다"는 말을 딱 들어맞는 장모에 대한 사랑 이야기, 형을 끔찍히도 아끼는 최고의 동생 이야기, 영화감독 지망생 아들과 외고 진학을 목표로 두고 있는 중학생 딸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의 가정사 이야기에 제가 푹 빠져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 동생의 이야기에 가슴이 저렸고,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 모든 아비의 마음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에 대한 글도 참 인간적입니다.

이 산문집의 제목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는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 간 스타 박중훈이 DJ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자 그를 위해 떠난 안성기를 찾으며 라디오 방송중에 울먹이며 한 말입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말입니다. 이 책의 성격이 참 잘 드러난 제목입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몇 편 읽으며 잔잔한 가슴을 안고 출근을 했습니다. 퇴근길 또 몇 편을 읽으며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동안 그래서 참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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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창비시선 284
신경림 지음 / 창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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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늙습니다. 늙는다는 말은 듣기가 편치 않습니다. 늙음은 곧 쇠퇴를 의미합니다. 좋은 시절 다 지나 곧 삶의 끝을 보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늙음은, 말을 하기도 듣기도 편치 않습니다.

문득 늙음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고, 늙음의 문턱에 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늙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행동에 앞서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젊음의 열정을 여전히 내 삶의 주된 코드로 삼으면서도 혹 그 부작용으로 오만함이 나타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그리고 바랍니다. 내가 늙음을 받아 들일 즈음, 그때는 나 스스로 성찰의 도를 완전히 깨친 후이기를 바랍니다. 마치 신경림 시인처럼 말입니다.




   제   목 : 낙타
   지은이 : 신경림
   펴낸곳 : 창비 / 2008.2.22 초판 발행, 초판1쇄를 읽음  ₩6,000



신경림 시인의 최신작 《낙타》를 읽으니, 이젠 그가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의 끈과 저승의 끈을 함께 붙들고 혹 이승의 끈을 놓더라도 그리 당황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면서 책장을 펼치면 바로 나오는 시 <낙타>부터 그러합니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시를 읽으며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번 시집의 모든 시를 다 읽었지만 예전의 신경림은 어디 갔는지 통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집 맨 끝에, 작가 후기처럼 실려 있는 산문 <나는 왜 시를 쓰는가>를 읽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시는 그 시대의 질문이요 대답이라는 명제도 그랬다. 그 시대의 삶에 깊이 뿌리 박는 것으로 충분하지 그 이상의 해답은 있을 수 없었고, 오늘의 내 삶, 우리들의 삶에 충실한 시를 쓰자, 이렇게 마음을 정하면서 나는 시 쓰는 일이 조금씩 편하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통일이나 노동 문제를 다루지 않은 시가 어찌 오늘의 좋은 시가 될 수 있는가라는, 강풍처럼 몰아치던 일부 과격한 질타를 차단하니 시 쓰는 일에 비로소 신명이 났고, 시에 활기도 생겼다.
고희를 넘긴 시인이 하는 말이니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번 시들은 모두 여행하면서 깨달은 바를 엮은 것입니다. 그러니 골방에 앉아 쓴 것이 없다는 시인의 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허전합니다. 허전한 걸 보니 저는 아직 늙음의 초입에도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냥 곱게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그때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푸른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독하리만치 외로웠던 그 시절에 나를 일으켜세웠던 시인이었음을 잊지 않습니다. 늙음을 가슴으로 받아 들일 때, 그때 다시 읽으면 시인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늘 시인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져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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