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형 CEO, 마법사형 CEO
리 G. 볼먼,테렌스 E. 딜 지음, 신승미 옮김, 강경태 감수 / 명진출판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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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서야 결혼을 하는 친구가 있어 어제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기 위해 먼길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몇몇 가족과 함께 전세버스로 내려갔는데, 가는길 심심하지 말라고 기사가 영화를 틀어주었습니다. <투사부일체>와 <싸움의 기술>이라는 영화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건데 우리나라 영화 발전에 단 1%의 도움도 주지 않는 저는, 물론(?) 이 영화를 처음 봅니다. 영화 내용이야 제가 따로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저만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재미는 있었습니다. 눈요기는 충분했으며 때리고 맞고 터지고 찌르는 과정에서도 웃음이 터질 때가 있었습니다. 같이 갔던 친구 말로는 잘 만든 영화 축에 속한다고 했으나 저의 결론은 '제발 그만 싸워라!'였습니다. 제발 그만 때리고, 그만 찌르고, 그만 싸워라, 지겹다, 만약 저게 나의 현실이라면 지옥일 것이다, 제발!

전쟁의 기원과 역사를 논할 지식은 없지만, 아마도 인류 역사 이래 싸움과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로지 평화로웠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먹으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는 것만이 전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쟁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며 현대 자본주의의 생존 경쟁 또한 지긋지긋한 전쟁의 또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하며 탄생했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술집 또는 빵집 주인의 이타심 덕택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이렇게 예찬했습니다. 사익의 추구가 곧 공익의 추구와 같다는 것이 그의 주된 생각이었습니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그렸을 때 대중은 시포그란투스라는 공무원에 의해 감독됩니다. 아담 스미스는 토머스 모어를 비웃습니다. '공익을 위해 설치는 자들에 의해 어떤 좋은 일이 있었는지 나는 본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공무원이라 해도 그의 중앙집중적 계산 능력은 런던 골목 시장의 분배능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스미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대중을 역사 창조자로 우뚝 세웠습니다. 알아서들 잘하니 제발 참견 좀 하지마!

과연 그럴까요? 자본주의는 소박한 천재의 상상을 뛰어넘어 끝없는 무한경쟁의 전쟁터로 진화해왔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터럭 하나 남김 없이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는 지금, 우리의 사고는 이미 자본주의의 틀 안에 갇혀 있습니다. 아무리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일단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전략적' 사고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경영 전략, 마케팅 전략, 브랜드 확장 전략, 투자 전략, 심지어 결혼 전략^^ ……. 전략은 본디 전쟁에서 적을 속이는 술책을 의미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미 그 자체가 전쟁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장을 진두지휘할 리더에게는 전사로서의 자질이 필요합니다. 전사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전쟁의 역사에서 전사만 홀로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바깥에서 용감무쌍한 전사가 있었는가 하면, 안에서 냉철하게 사태를 분석하는 전략가가 있었고, 수많은 인재를 끌어안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언행으로 사람의 영혼까지 끌어 당기는 강인한 흡입력을 가진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리더라고 해서 모두 같은 성향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최근 나온 책 중에서 <전사형 CEO, 마법사형 CEO>라는 책이 있습니다. 리더십의 역할 모델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먼저 리더십의 네 가지 유형을 말합니다. 분석가 유형, 돌보는 사람 유형, 전사 유형, 마법사 유형. 그 중에서 이 책은 전사 유형과 마법사 유형을 주되게 다루고 있습니다.
창조한 것보다 파괴한 것이 많은 칭기즈칸, 반면 야심은 있었지만 그 야심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돕는 사명감으로 승화시킨 마더 테레사, 가장 본받고 싶은 리더로 꼽히기는 하지만 '페어 플레이'와는 전혀 거리가 먼 거대 독점 기업가 빌 게이츠, 냉정하고 분별 있게 정부와 협상하여 미국 전화의 80% 이상을 장악할 때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던 AT&T의 시어도어 베일, 6년 연속 최고의 CEO에 뽑혔지만 기업 문화를 경시한 채 심복들만 편애했던 HP의 칼리 피오리나, 펀(fun) 경영으로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허브 캘러허, 마법사가 되고 싶었지만 나락으로 떨어진 엔론의 케네스 레이. 이들이 바로 전사형 CEO, 마법사형 CEO로 이 책에 등장하는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주제는 쉽게 드러납니다. 득이 되는 유형과 해가 되는 유형, 득이 되는 기질과 해가 되는 기질, 해가 되는 면을 제거하고 득이 되는 면을 골라 현명한 마법사적 전사 CEO로 거듭나기. 마치 평화를 사랑했던 킹 목사가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투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고 그 주제를 알아채기는 쉽지만 역시나 문제는 행동이요 실천입니다.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충실합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1등 기업, 1위 조직을 만들기 위한 비법을 담고 있으니까요. 반면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저항과 반성의 싹을 품고 있습니다. 기업 가치를 40배 키우기 위해 11만 명을 해고한 잭 웰치, 윈도우만 쓴다면 세상이 석기시대가 돼도 상관없는 빌 게이츠, 그들에 대한 상식과 편견을 잠시 의심했다면, 이 책 제대로 읽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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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Power 잠들어 있는 시간을 깨워라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김동수.이성엽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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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기 계발 또는 자기 관리 서적 - 이제 이런 책이 그만 나옴직도 한데 계속 출간됩니다.
멀리 벤자민 프랭클린, 카네기, 지그 지글러, 맥스웰 몰츠 등으로부터 최근 우리나라의 공병호 박사나 구본형 소장 등의 저서를 몇 권만 읽어 보고 '실천만 한다면' 더 이상의 자기관리 서적은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짐작컨데 앞으로도 이런 책은 계속해서 출간될 것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잘 되길 원하지만 '당연한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 이런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늘 있을 테니까요.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참,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무척 싫어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엄격한 자기 관리' = '자기 통제' = '자기 억압' = '부자유 또는 부자연' = '행복하지 않음' 등의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는 단 한 번도 이런 류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이런 책을 들고 있는 것조차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일단 색안경을 벗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단 하나라도 실천해 보시라는 겁니다. (하하, 무슨 약 장수 같지 않나요? 일단 한번 먹어 보라니깐요....^^)

자기 계발(경영)은 일종의 기술서입니다. 그래서 '가치 중립적'입니다. 이 말은, 이 기술을 습득하는 대상이 누구든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혁명가든 반동 또는 보수주의자든, 경영자든 노동자든, 심지어 폭력배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자기 관리 기술(습관)을 익힌다면 누구든지 뜻한 바를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자기 관리 기술(습관)은 '도구'입니다. 요리사에게 칼은 최상의 도구이지만 강도에게는 흉기가 됩니다. 칼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물론 자기 관리 서적에서도 '가치관 세우기'를 시도합니다. 이 책만 하더라도 '인생 = 시간 관리'라는 가치를 제시합니다. '시간이 가치의 척도'라고도 합니다. '마음의 평화는 인간 최고의 선이요 모든 인간 활동의 목표다.'라고까지 단언합니다. 그러나 이 몇 마디 말로 가치관이 바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동의 또는 일부 동의, 아니면 심지어 부정하더라도 이런 책이 주는 효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책을 읽는 이의 가치관이 어떠하든, 자신이 뜻한 바를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 그것이 속세를 떠난 수양이 아니라면 - 자신을 돌아보고 시간을 관리하지 않고서는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한정된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오랜만에 리뷰를 쓰니 시작부터 뱀발입니다.

각설하고, 이 책은 한 마디로 자기 계발서의 최신 종합판인 것 같습니다.
자기 계발과 자기 경영 분야의 권위자들인 벤자민 프랭클린, 카네기, 지그 지글러, 맥스웰 몰츠, 나폴레온 힐, 피터 드러커, 잭 트라우트와 알리스, 앨런 라킨, 스티븐 코비, 리처드 코치, 데이비드 알렌, 새뮤얼 스마일즈,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그리고 우리나라의 구본형, 공병호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소개된 대부분의 자기 계발(경영)에 관한 권위자들이 말한 행동 지침을 종합해 놓은 것 같습니다. (*하단 주석 참조)

거칠게 요약하면, "간절하게 바라고, 그 목표를 늘 반복하여 상상하고, 구체적으로 계획하여, 최대한 시간을 활용하여, 쉼 없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하십시오. 이 책은 속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고 줄거리를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행동하십시오. 책을 읽으며 당장 첫 장부터 행동에 옮기십시오. "큰 꿈을 꿔라"라고 하면 그 순간 바로 꿈을 꿔 보십시오. "목표를 현재형으로 기술하라"라고 하면 당장 연필을 들고 종이에 쓰십시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하면 책을 덮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쓰십시오.
책을 다 읽고 나중에 다시 해보겠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지금 당장 실천하라!" - 이것이야말로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머리와 손으로 직접 생각하고 쓴 것만이 남습니다.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건성건성 끝까지 읽어봐야 돌아오는 것은 시간 낭비 뿐입니다. 천천히 읽는 대신 단 몇 가지만이라도 바로 시작하십시오.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하나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어제 연휴 마지막 날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생각하고 필기하며 읽느라 꼬박 휴일 하루를 모두 썼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책장 모서리를 접어 놓는 버릇이 있는데, 접어 놓지 않은 곳이 거의 없어 너덜너덜합니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긋고 필요한 곳에 메모를 해 놓으니 처음 본 책 같지 않게 지저분해졌습니다. 그 순간, 이미 이 책은 나의 소중한 재산 목록에 올라갔습니다. 이와 비슷한 훈련을 이미 몇 번 한 바 있지만, 또 처음처럼 새롭습니다.

내일부터 나의 행동은 또 변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기대됩니다.

* 자기 계발(처세) 관련 대표 서적
벤자민 프랭클린 - 자서전, 데일 카네기 - 인간 관계론, 지그 지글러 - 정상에서 만납시다, 맥스웰 몰츠 - 사이코 사이버네틱스, 나폴레온 힐 - Think and Grow Rich, 피터 드러커 - 자기경영노트, 잭 트라우트와 알리스 - Horse Sense, 앨런 라킨 - 시간을 지배하는 절대 법칙, 스티븐 코비 -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 리처드 코치 - 80/20 법칙, 데이비드 알렌 -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 새뮤얼 스마일즈 - Self Help,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 몰입의 즐거움 등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TIME POWER 잠들어 있는 시간을 깨워라》는 위 모든 서적의 〈실천편〉을 종합해 놓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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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휴가 첫 날. 동주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으로 나의 휴가는 시작됐다.
어린이집이 방학을 했고, 아내의 일이 갑자기 많아져 - 책 만드는 일을 하는데, 가끔 마감 때면 매우 바빠진다 - 요 몇 일 동주를 외할머니께서 봐주고 계셨다. 겸사 겸사 장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딱 하루 아내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을 했었다. 어디를 갈까, 동주가 생긴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 계획 세우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를 미리 눈치 챘는지, 엄마 아빠 둘만의 시간은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그제 새벽에 열이 39.5도까지 올랐다. 해열제를 먹이고, 아침에 또 열이 올라 또 해열제를 먹이고 병원으로 갔다. 목감기에 축농증기가 좀 있다고 처방을 해주시는 대로 약을 지어 왔다.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열이 39도가 넘어 해열제를 먹였다. 다행인 것은 열이 올라도 아이의 표정이 밝고 노는 모습이 즐겁다는 것이다. 오로지 고마울 따름이다. 금방 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애들은 아프면 보통 일주일은 가는 것 같다. 그 일주일은 나의 휴가 기간이다. 으흐흐 ㅠ.ㅠ

뭐,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번 달 들어 좀 저조했던 책읽기를 해야겠다. 아이와 함께 놀면서 책읽기는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밤에 잠자는 시간에만 좀 읽어도 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어야겠다. 이번 기회에 완독해야겠다. 서해문집에서 나온 걸로 전체 3권짜리를 사뒀다.
범우 문고 중에서 《문장강화》 《소크라테스의 변명》 《북학의》 《모택동의 실천론 外》 등등을 읽고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까지는 꼭 읽고 싶다.
아는 분이 추천해준 《채굴과 제련의 세계사》라는 책도 시간이 되면 봐야겠다.
참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TIME POWER 잠들어 있는 시간을 깨워라》도 있었지. 흐흐, 시간이 만만치 않겠는 걸.

다행히 동주가 좀 일찍 나으면 어디 잠깐 가족끼리 놀러갔다 오면 좋겠다. 그건 딸의 건강 상태를 봐가면서 해야겠다. 괜히 무리했다가 탈나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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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이 두 가지를 두고 내가 어느 유형이냐고 묻는다면 아침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아침형 인간은 지지난해 말부터 작년 초까지 한창 유행했다. 이제는 한물 간 듯하다. 한물 간 유행일지 모르겠지만 내겐 진행형이다.

주위 사람들 중에는 - 아니 대부분 - 내가 선천적으로 잠이 없는 줄 안다. 네 시간을 자면 하루를 사는 데 별 무리 없고, 다섯 시간을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가끔 내 입으로 말하면서 반복하여 상기하니, 노인네처럼 잠이 없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세상에 어디 처음부터 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미 중고등학교 때 잠자는 것 역시 습관의 한 종류라고 생각했던 것이 수면 시간을 비교적 내 뜻 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 이유라면 이유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억지로 몇 번 새벽에 일어나 보니 그 성취감이 상상 이상이었다. 그 때는 열 두 시에 자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났는데, 새벽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하는 FM 라디오를 여유있게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이겼다'는 성취감과 '새벽의 여유'는 그 어떤 느낌보다 강렬했다. 새벽 시간에 특별히 공부한 것 같지는 않다^^. 중학교 때 시작한 '네 시간 자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별 무리 없이 진행됐다. 내 머릿속에 수면은 통제 가능하다는 인식이 깊이 박히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 습관을 되찾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교 때의 흐트러진 생활, 사회 초년기의 무작정 일하기 기간을 거치는 동안 '새벽에 일어나기'는 먼 옛날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기를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01년이었던 것 같다. 갑작스레 시작한 사업이 허무하게 실패로 끝나게 됐을 즈음, 그 실패가 주는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패배감을 긍정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 그 처음은 Windows2000 Active Directory.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액(?)을 들여 주말반 수업을 들었다. 겨우 몇 번 듣지도 않았고, 수업 내용도 크게 마음에 들지도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됐다. 처음 몇 번 들은 것을 정리할 필요가 생겨 개인 홈페이지를 새로 만들었다. 그 때 만든 것인 바로 ww.itmembers.net 이다.
서버에 남은 낡은 파일을 살펴보니, 2001년 9월 18일에 <재미로 배우는 윈도2000 액티브 디렉토리>라는 강좌를 처음 개설했다. 사실 '강좌'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민망했지만, 내가 아는 것을 조금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그렇게 붙였다. 이틀 뒤에 <재미로 배우는 리눅스 입문>, 몇 달 뒤에 <재미로 배우는 비주얼베이직 6> 등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인터넷 정보검색사, 오라클, PHP, XML, 자바스크립트 등등을 차례대로 시작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정리한 시간이 바로 새벽시간이었다.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무언가에 몰입하기 위해 '배웠고', 이를 정리하면서 '익혔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나의 지식을 '나누었다'. 전화위복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패배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배우고 익혀서 나누는 새로운 즐거움을 얻게 됐다. 소중한 나의 습관을 다시 찾았고, 새로 얻은 즐거움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세포분열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독서노트다. 홈페이지의 주제는 어느새 강좌에서 독서노트로 완전히 옮겨왔다.

말이 샜다. 원래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여전히 힘들 때가 많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추억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면서 힘들어 할 때가 많다. 아마 주중에 최소 한 번 이상을 마시는 술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고 술을 마셨으니 오늘을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 타협하고 싶지 않다. 타협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의 내가 나를 무시하는 것 - 나는 그것이 싫은 것이다. 타협은 금연 중의 담배 한 모금처럼 한 순간에 좋은 습관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애써 다시 찾은 좋은 습관을 다시 잃어버리기는 정말 싫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새벽에 일어나기는 습관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훈련 프로젝트'이다.

성상근 습상원 性相近 習相遠 이라 했다.
가진 것도 없고 똑똑하지도 못한 내가 유일하게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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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3 (1부 3권) - 군자유종(君子有終), 군자에 이르는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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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공자의 마지막이 좀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자가 열국을 주유하기를 마치고 고향인 노나라로 오면서 이야기가 끝이 났는데, 뭔가 좀 허전하다 싶었습니다.
3권 첫 장은 2권에서 이어집니다. 아마 2권의 분량 때문에 조절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결코 현실 정치에는 접목시킬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공자. 그는 정치적 이상을 통해 국가를 바로잡으려는 외부적 노력보다 학문적 사상을 개발하여 내적 자아를 완성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부터 73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오로지 학문에 정진합니다. 그 6년의 시간 동안 공자는 수천 년 역사에 길이 남을 경전을 집필합니다.
오늘날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자의 묘에는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위대한 완성자, 최고의 성인, 문화를 전파하는 왕"

위대한 인격의 완성자요 사상의 완성자라는 말인데, 이 말은 결국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후 죽을 때까지 6년 동안 펼쳐 보인 눈부신 가르침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 장의 제목은 〈공자천주(孔子穿珠)〉입니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올 때 구슬을 하나 가져왔는데, 이 구슬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공자는 이 아홉 개의 구멍에 실을 꿰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쉽게 찾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불가한 일이라고 단정합니다. 공자는 아무리 진귀한 보물이라도 실로 꿰지 않는 이상 쓸모없는 물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곧 자신의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을 가졌을지언정 현명한 군주를 만나 정치적 이상을 드러낼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 말입니다.
어느 날 공자는 누에를 치기 위해 뽕 따는 아낙네를 만납니다. 아마 실 꿰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아낙네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용히 생각하십시오. 생각을 조용히 하십시오. 密爾思之 思之密爾"
공자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한 끝에 방법을 찾아 냅니다. 개미를 잡아다가 개미 허리에 실을 매고 한쪽 구멍에 개미를 밀어넣고 반대편 구멍에 꿀을 발라 개미를 유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개미로 실을 꿸 수 있게 됩니다. 공자는 아낙네의 말 중에서, 조용히(密)라는 말에서 꿀(蜜)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 장의 제목을 공자천주(孔子穿珠)로 한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13년의 천하주유가 아홉 개의 구멍에 실을 꿰어주는 군주를 만나기 위한 순회였다면 노나라에 있어 공자의 말년기 6년은 아홉 개의 구멍에 학문과 사상을 실로 꿰는 대발분의 절정기였던 것이다."
이 장에서는 공자가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역경》 《춘추》 《논어》 《효경》 등 9가지 경전을 정리 편찬한 시기를 그의 제자들 이야기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권의 본편인 퇴계 이황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저자는 조광조의 추적을 통해 그 개혁정신이 공자의 유가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공자로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공자의 천하주유를 통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것이 조광조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반면 그가 마지막 6년 동안 학문에 정진한 것이 퇴계 이황으로 이어졌다는 것 또한 알게 되어, 유림 제1부의 마지막을 이퇴계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퇴계를 공자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동양 최고의 학문적 제자라고 말합니다.

퇴계의 본명은 이황(李滉). 퇴계(退溪)는 그의 호인데, 말년에 자신의 고향인 토계로 돌아와 마을 이름을 퇴계라 고치고 더 이상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과 완전히 손을 끊겠다는 의지를 《논어》에 나오는 '조정에서 물러나다(退朝)'에서 따온 '물러날 퇴(退)'자를 사용했던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퇴계는 평생을 통해 79번이나 벼슬자리를 사퇴했습니다. 말 그대로 물러나 계곡으로 나앉은 것입니다. 그 물러난 계곡(退溪)에서 오직 학문에 정진한 것입니다. 공자가 자기를 써 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주유한 것과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는 공자의 마지막 6년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또한 이황이 평생토록 사표로 삼은 주자(朱子)가 28세 때 모든 관직을 버리고 남악에 칩거하여 오로지 학문과 저술에 전념한 것을 닮았습니다. 공자보다 빠르고 주자보다 느렸으니,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셈입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이 글을 통해 퇴계에 대해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늘 보는 천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이자, 내 태어난 고향 안동의 대표적 인물이기도 한 이퇴계에 대해 너무나도 몰랐던 것입니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사실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야 함에도,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고질적인 시각으로, 과거는 고리타분하고 유교는 보수적이며 이황은 그 보수적인 유교를 대표하는 구시대적인 인물이라는, 지극히 원초적인 생각만을 갖고 있었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최인호는 명기 두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 퇴계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두향 - 단양 태생. 중종시대의 사람이며, 특히 거문고에 능하고 난과 매화를 사랑했고, 퇴계 이황을 사모했으며, 수절 종신한 기생.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좀 어리둥절하지요.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이라. 결국 성리학자든 누구든 남자라는 것들은... 쯧쯧쯧...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그 정도의 이야기였으면 제가 이퇴계에 대해 잘 몰랐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퇴계가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지 2년이 흐른 시간. 단양의 군수로 있을 때, 그 적요한 공방에서 명기 두향을 만납니다. 그 때 퇴계의 나이 48세, 두향의 나이 18세, 딸보다 어린 두향이었으니 나이를 초월한 남녀간의 상사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 짧은 9개월의 사랑. (생략합니다. 책 사서 보는 분을 위하여^^)

퇴계가 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 말은, 뜻밖에도 "분매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 5시 경에 와석을 정돈하라고 명하고 부축하여 일으켜 앉히니 조용하고 편안하게 돌아가시다'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분매(=매분=분재매화)는 짐작하셨겠지만 두향이가 준 것입니다.
이퇴계가 죽고 얼마 후 두향은 따라 죽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마치 신파 소설처럼 보여지겠습니다. 하하,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장황히 적자니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 같아, 후에 책을 직접 보는 분들께 우를 범할까 조심하고 있을 뿐입니다.

퇴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퇴계가 벼슬을 버리고 떠나와 7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도산서원에서 학문정진하는 시기를 제5권에서 다루겠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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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내어 도산서원에 가보고 싶습니다. 안동에서 태어났으나 도산서원에 한 번 가보질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63빌딩에 가보지 못하고 유람선을 타지 못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니 부끄럽네요. 어찌 한강 유람선과 도산서원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지척에 두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 도산서원에 다녀오기 전까지 내 고향이 안동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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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4,5,6권 예고 - 저자의 후기에서

제4권 : 공자에서 퇴계로 이어지는 유가의 계승자들이었던 맹자를 비롯하여 순자, 묵자, 주자, 왕양명 등
제5권 : 벼슬을 버리고 7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도산서원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던 퇴계의 은둔강학기
제6권 : 68세의 늦은 나이에 고향에 돌아와 73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불과 6년의 짧은 기간 동안 인류의 교과서라 불리는 경전을 편찬한 공자의 생애를 공자의 고향 공부를 통해 되살림.

언제쯤 책이 나올까,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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