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 2 - 방화도에서 보낸 10년
김용 지음, 임홍빈 옮김 / 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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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습니다. 별것 아닌데도 괜히 눈물이 날 때. 하필 그때가 그럴 때였을 거라 위안합니다. 《의천도룡기》의 주인공인 장무기의 부모 장취산과 은소소가 죽습니다. 이연걸의 《의천도룡기》 영화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줄거리인데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영화는 1993년작으로 이연걸,구숙정,장민이 주인공으로 나왔었습니다.  《의천도룡기》 중 일부를 영화화한 것인데, 아쉽게도 속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났는데, 15년이 되도록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아마 더 이상의 기대는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막상 책을 읽으니 그 영화가 좀 형편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숙함은 고사하고 거의 반(半)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속편이 나오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반면 TV 드라마 시리즈는 제가 아는 것만 해도 4 종류 되는 것 같습니다. 1986년 양조위 주연이 처음인 것 같고, 그 뒤로 몇 해마다 한 번씩 주인공을 바꿔가며 만들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40부작 내외의 대작이라 아마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장삼봉의 100세 생일 잔치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책으로 보자면 2권 마지막 장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그 앞의 모든 이야기를 싹둑 잘라버리고 단 몇 분의 나레이션으로 대체했으니 제대로 감동이 전해질 리 만무합니다. 책을 읽다 하마터면 울 뻔했던 장취산과 은소소의 자결 장면이, 영화를 볼 땐 참 '어이없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요.

소설을 리뷰하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줄거리를 길게 소개하자니 다음에 읽을 독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될 것이고, 줄거리 언급 없이 소회만 말하자니 홀로 떠드는 꼴이 될 것 같습니다. 뒤이어 읽을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저의 감상을 정리하기 위해 다소 어정쩡한 리뷰가 될 수밖에 없음을 미리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깨친 작은 깨달음, 나중에 책을 읽으실 때 도움될 만한 주변 지식들을 위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2권 <빙화도에서 보낸 10년>은 《의천도룡기》의 주인공인 장무기의 탄생과 부모의 죽음이 주된 이야기입니다. 명문정파 무당파의 애제자 장취산과 사교 집단 천응교 교주 백미응왕의 딸 은소소가 강호를 피바람으로 물들인 금모사왕 사손과 함께 무인도로 떠나게 된 사연, 그 과정에서의 애증이 전반부의 내용입니다. 그 무인도의 이름이 '빙화도'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입니다.

장무기는 정(正)과 사(邪), 이유 없이 죽어간 이들의 원(寃)을 안고 태어납니다. 장취산과 은소소의 죽음은 곧 사(邪)의 단절과 원(寃)의 일부를 갚는 행위였으나, 그러나 앞으로의 이야기가 그들의 바람처럼 순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들 둘의 죽음으로 정과 사, 원한과 복수의 순환이 끊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얽히고 얽힌 불쌍한 군상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레미제라블》을 보는 듯합니다. '레미제라블'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뜻이라죠.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 훔치려다 19년을 감옥에서 산 장발장, 어린 딸을 위해 몸을 팔다 죽어간 팡틴, 사악한 양부모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라는 팡틴의 딸 코제트는 모두 불쌍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회개하고 깨우쳐 한없이 착한 삶을 사는 장발장을 지독하리만치 쫓아다니는 냉혹한 자베르 경감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 험한 난세에 독야청청 바른 길만 가려는 무당파(장취산), 사악한 짓만 골라하는 천응교(은소소), 개인의 복수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숱하게 죽인 금모사왕, 천하 명검 도룡도를 손에 쥐기 위해 더럽고 추잡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 무림의 수많은 정파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원죄로 안고 태어난 장무기. 이들도 역시 모두 불쌍한 사람들, 레미제라블입니다.

장발장이 코제트를 데리고 수녀원에서 보낸 십여년의 세월은 《레미제라블》 전체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코제트가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속세로 나오는 순간 불행과 갈등이 시작됩니다.
장취산과 은소소, 금모사왕이 빙화도에서 보낸 10년의 세월 역시 《의천도룡기》 전체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살아야 할 아들을 생각하여 속세로 나오는 순간, 불행은 모두에게 가차 없이 들이닥칩니다.

빙화도에서 나오자마자 그들로 인해 무림은 발칵 뒤집힙니다. 도룡도를 가지고 있는 금모사왕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국 그 둘은 스스로 죽어 이 상황을 종료하려 했지만, 그들이 죽으면서까지 지켜야했던 아들 장무기는 이미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고 쓰러지고, 이로 인해 무림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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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 1~8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임홍빈 옮김 / 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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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의천도룡기》 제1권을 읽었습니다. 드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을 집어들까 말까 고민이 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집어들면 이내 빠져들어 잠도 오지 않고 내리 나머지 권들까지 모두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완역판  《의천도룡기》는 총 8권입니다.

반신반의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그러했습니다. 어제 출근길 차 안에서 1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2권을 내리 읽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습니다. 참고로 저는 가방에 늘 두 종류 이상의 책을 넣고 다니는데 어제는 《의천도룡기》 1권과 마케팅 서적 1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퇴근길 차 안에서도 2권을 미리 챙겨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의천도룡기》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신필(神筆) 김용의 소설이자 '무협' 소설입니다. 흔히 무협이라 하면 '싸구려' 취급을 하고 무협 영화 앞에는 늘 '3류'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습니다. 무협 마니아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으나 저 역시 그런 부류에 속했습니다. 아직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김용을 직접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저처럼 겨우 한 권을 읽고도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질 것입니다.

하기야 올 여름 신문에서 김용의 소설이 중국 중·고등학교 국어(語文)교과서에 실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노신(魯迅)의 《아큐정전(阿Q正傳)》이 빠지고 김용의 무협소설이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무협'의 개념과 의미를 더 잘 이해하도록 사마천 《사기(史記)》의 〈유협열전(遊俠列傳〉까지 필수학습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사실 《사기》의 백미는 열전이고 열전 중 가장 흥미있는 부분이 《유협열전》입니다. 무협은 무술이 뛰어난 협객을 말하고, 협객을 다른 말로 유협이라 하니 사마천의 《유협열전》이 명실공히 무협의 원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기》 전문가 김영수 교수는 《사기의 인간 경영법》에서 "《사기》 130권 중 《유협열전》은 통치자 및 상류사회에 대해 무정하고 격렬하게 비판한 가장 전투적인 부분에 꼽"힌다고 말했습니다. 유협들의 반체제적인 요소는 당시 정권을 늘 긴장시켰고, 이 때문에 권력층은 그들을 꺼려하고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존재였고, 사마천은 이 점에 눈을 돌려 《유협열전》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저 역시 사기 열전들 중에서 《유협열전》과 《자객열전》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천도룡기》를 무협소설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합니다. 신필이라는 그의 별명에서 느껴지듯 김용의 글은 신들린 듯 빨려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무협 소설 특유의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는 기본이고, 거기에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삶에 대한 통찰까지 느껴지는 깊이가 있었습니다.

1권 앞부분의 주인공은 장삼봉입니다. 중국 무학 사상 불세출의 기인이요 태극권의 창시자, 무당파의 시조인 장삼봉은 실존 인물입니다. 그리고 무당칠협이라 불리는 그의 일곱 제자 역시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 실존 인물입니다. 그 중 다섯번째 장취산의 이야기가 1권 후반부의 핵심입니다.

장삼봉(1247~1416)은 몽골 점령 시기에 태어나 명나라 건국 후까지 무려 169세까지 산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정확한 수명은 불확실하나 장수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합니다. 장삼봉은 독특한 무공을 창시한 무학의 대종사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그는 도를 깨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세운 무당파의 본거지인 무당산은 당시에도 저명한 도교 승지였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황제가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고, 그가 죽은 후에는 역대 황제들이 경쟁적으로 그에게 영예로운 작위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격화되어 훗날 민간에서는 신선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협객이 영웅인 까닭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고 신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얻으려고 애쓸 때 협객은 자신을 던져 의로움을 취합니다. 의리를 위해 초개처럼 자신을 버립니다. 다소 허황하다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여기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협객이 악(惡)을 제거할 때는 대리 만족을 느낍니다.

무협소설의 배경인 무림 또는 강호와 현실은 다릅니다. 협객 한 사람의 힘으로 사파(邪派)를 물리치고 정의를 되찾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누가 나서서 이 사악한 현실을 바로 잡아 줄까요? 그것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소설 속에서 협객을 찾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협객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수천년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천하의 명검 '도룡도'를 손에 쥔 금모사왕 사손에게 장취산은 겁도 없이 설교를 합니다. 마치 바른생활맨처럼. 이에 금모사왕이 비웃으며 말합니다.

"인간세상에서 진정으로 시비흑백이 가려지고 있단 말인가? 오늘날 이 세상을 보게. 몽골인들이 중원 땅에 들어와 황제 노릇을 하면서 우리 한족을 죽이고 싶으면 얼마든지 죽이는 판국일세. 그들이 시비를 가려 살육하던가? (……)
몽골족은 그렇다고 치세. 그럼 우리 한족은 시비흑백을 분명히 가리던가? 악비 장군은 대충신이었는데 송나라 고종은 어째서 그를 죽였는가? 진회는 천하에 둘도 없는 간신인데 어째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제 명대로 장수를 누렸는가?"

금모사왕과 장취산이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하다가 우리의 바른생활맨 장취산이 이렇게 탄식을 합니다.

"天道難言, 人事難知. 하늘의 도리는 말로 다하기 어렵고, 사람의 일 역시 모두 다 알 수 없다. 우리는 오로지 양심에 거리낌 없이 의로움에 바탕을 두고 할 바를 다하는 수밖에 없습지요."  (p.503~506)

* 이크!!! 벌써 출근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오늘 얘기는 두서가 없습니다. 맺음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마칩니다. 그러나 아직 일곱 권이나 더 남았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니 못다한 얘기는 차근차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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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일 법칙
스가야 요시히로 지음, 예병일 옮김 / 재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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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심찮게 '롱테일'이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롱테일, The Long Tail, 긴 꼬리라는 뜻입니다. 작년에 이 말이 회자되기 시작하여 '웹 2.0'이란 말과 함께 새로운 트렌드를 대표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롱테일'에 대해 다룬 책은 얼마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롱테일에 대해 소개한 일본 번역서 『롱테일 법칙(재인)』과 실제로 롱테일이란 용어를 최초로 만든 롱테일 이론의 창시자 크리스 앤더슨의 『롱테일 경제학(랜덤하우스)』이 있습니다. 이 두 권이 전부입니다. 마케팅과 전략의 새로운 트렌드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빈도에 비한다면 턱없이 적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정작 다른 서적들도 검색해보니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 마케팅', '다이렉트 마케팅', '1:1 마케팅', '검색 마케팅', '게릴라 마케팅', '프로슈머 마케팅', '스페이스 마케팅' 등 새로운 개념 또는 신조어로 된 마케팅 이론 서적은 거의 한 권밖에 없었으며 많아야 두 권 정도 있었습니다. 일반에 많이 회자되면 그와 관련된 서적도 많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저의 추측이 잘못되었음을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책은 일본인 스가야 요시히로가 쓰고 예병일이 옮긴 『롱테일 법칙』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최초의 롱테일 관련 서적입니다. 몇 달 뒤에 오리지널 롱테일 이론서인 『롱테일 경제학』이 나왔지만,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고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여전히 유의미합니다.

롱테일을 설명하려면 반드시 파레토 법칙과 비교해야 합니다. 파레토 법칙은 '80:20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매출의 80%는 20%의 고객이 만든다, 매출의 80%는 20%의 상품이 만든다. 매출의 80%는 20%의 사원이 만든다, 고객불만의 80%는 20%의 고객이 만든다... 등 마케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법칙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콩 수확량의 80%는 20%의 콩깍지에서 나온다는 발견에서 시작된 파레토 법칙은 열심히 일하는 꿀벌과 그렇지 않은 꿀벌의 비율 등 인간사회뿐 아니라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법칙처럼 여겨져왔습니다. 웃기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20%의 꿀벌만 따로 모아놓으면 그 중에서 또 열심히 일하는 20%와 그렇지 않은 80%로 나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80:20 법칙에 반기를 든 것이 롱테일입니다. 80:20은 고객이 늘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늘던 '종량제' 시대의 산물이고, 인터넷의 발달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제로' 수준까지 떨어진 '종량제 커뮤니케이션 종말'의 시대에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롱테일은 그동안 의도적으로 버림받았던 다수(80%)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닷컴 전체 수익 중 절반 이상이 베스트셀러가 아닌 '나머지' 책들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이베이는 그 동안 무시당해왔던 영세 중소 사업자들과 소비자들을 연결해 주며 급성장했습니다. 구글은 포춘 500대 기업 같은 대형 광고주가 아닌 꽃 배달 없체, 빵집 같은 자잘한 광고주들을 모아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소한 다수(trivial many)'의 반란인 셈입니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롱테일의 핵심의 절반 이상이 설명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나머지는 롱테일의 구체적인 사례(사실 아직 별로 없습니다), 롱테일에 착안한 전략 전술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롱테일은 마케팅, 특히 온라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일 수 있습니다. 역시 문제는 응용에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응용이, 즉 롱테일 전략 전술이 단순히 '온라인'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프라인에도 통용되며, 정확히 말하자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온라인'이 핵심이 아니라 '자동화'가 핵심이라 합니다. 그 자세한 내용을 모두 기술할 수 없으니 더 궁금하시면 책을 참조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직 '법칙'이라 이름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롱테일 법칙은 결코 파레토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80:20 중에서 80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의미이지 80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20을 버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했다가는 사업 망합니다. 여전히 현실은 80:20 법칙이 지배하고 있으나, 거기에도 틈새가 있으니 그 점을 주의 깊게 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20을 있게 한 80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롱테일에서는 커버리지(coverage)의 확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자에 의하면 상품 수나 회원 수가 최소한 2만 이상의 되어야 롱테일이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2만 종 이상의 상품을 갖추려면 결국 온라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모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마케팅의 자동화'입니다. 그 모든 것을 일일이 관리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리피트(재판매)를 위한 자동화가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마케팅의 자동화란 영업 사원의 개인적 능력에 의존하는 시스템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마케팅이 자동화되어 있지 않다면 판매를 온라인화한다 해도 롱테일 전략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요즘 제 머릿속 화두 중 하나가 '롱테일'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주의 깊게 보고 있습니다. 마치 한 장 한 장 뜯어 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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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헤로도토스 역사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2
권오경 지음, 진선규 그림, 손영운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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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바로 저부터 그러합니다. 일전에 허영만 선생님을 만나뵐 기회가 있었는데, 여러 얘기 중에서 60,70년대 연례 행사 중 하나였던  '불량만화 화형식'이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어린이날이면 동대문운동장, 남산 등에서 만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량만화 화형식'을 했습니다. 지금은 어른들이 직접 만화책을 사서 읽게 합니다. 물론 이른바 '학습' 만화라 불리는 것에 한정되긴 하지만요.

따지고 보니 제가 최근에 접했거나 재미있게 읽은 것 역시 크게 보면 '학습' 또는 '역사' 만화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 시리즈가 그러하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고우영의 『삼국지』, 『초한지』, 『십팔사략』, 백무현의 『만화 전두환』, 『만화 박정희』 등이 그러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만화로 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서울대 선정 인문 고전 50선'이라는 부제가 달린, 선뜻 손이 가기 힘든 책들이지만 만화라서 부담이 없었습니다. 『군주론』은 예전에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지만,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이번에 만화를 통해 처음 접했습니다. 앞으로 나올 50선의 목록을 보니 제가 읽어본 책들보다 그렇지 않은 책들이 더 많았습니다. 약간의 자괴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지금 어른들 중에서 그러한 고전을 제대로 읽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에게도 입문서는 필요합니다.

혹자는 이러한 '입문서'가 저자의 주관적 평가가 심해 처음부터 고전을 곡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저는 이런 '입문서'야말로 꼭 필요한 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처음부터 매운 김치를 주지 않고 물에 씻어서 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에 씻은 김치가 무슨 김치냐고 하시는 분들 계시면 2~3살 애들에게 시뻘건 김치를 직접 한번 먹여보세요. 아마 십중팔구 그 애는 앞으로 영영 김치와 인연을 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논어』, 『맹자』, 『장자』, 『주역』, 『사기』 등을 읽을 때 처음부터 (물론 한글 번역본이지만) 두터운 원문부터 읽지 않았습니다. 해당 고전의 입문서로 적당한 책을 골라 그 책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 저자는 어떠한 사람이고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씌어졌는지를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두터운 고전이라도 원문을 꼭 읽고 싶다는 충동과 읽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읽고 싶고,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게는 수천 년 전에 씌어진 고전을 읽을 수 있게 만듭니다. 원본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 이것이 입문서의 가장 큰 역할이자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입문서의 폐단을 우려하는 전문가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예전에 동양 고전을 읽기 위해 여러 입문서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함량 미달의 책들이 참 많았습니다. 부피가 작다고 입문서가 아닙니다.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 내용, 가치를 곡해해서는 안 됩니다. 흥미 있는 일부의 내용만 소개하여 마치 그것이 그 책의 전부인 양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레 미제라블』의 극히 일부를 들어내어 『장발장』으로 소개한 예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은촛대를 훔쳤다가 밀리에르 신부의 자비로운 마음에 감동하는 것이 『장발장』 이야기의 끝인 줄 알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그 다음부터인데 말입니다. 원칙주의자 자베르, 비련의 여인 팡틴, 그의 딸 코제트, 코제트가 사랑한 공화주의자 마리우스,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있게 한 당시 시대적 배경 등.

그런 의미에서 주말에 읽었던 만화 『군주론』과 『역사』는 입문서로서 충분한 함량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함량을 측정하고 평가할 만한 능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군주론』을 직접 읽고, 그에 대한 여러 소개서를 함께 보았던 적이 있기에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양의 텍스트가 포함된 촘촘한 그림을 보면서 마치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인문고전편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문가가 풀어 쓴 내용 또한 지루하지 않게 그 핵심적 내용과 배경지식을 익힐 수 있게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군주론』을 나름대로 흥미 있게 읽고 감명을 받았지만, 저라면 이렇게 풀어 쓸 능력이 없습니다. 두 책의  글쓴이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아들 딸에게 읽혔다거나, 읽힌다는 심정으로 썼다는 그 말이 머리말을 쓰기 위해 그저 뱉은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군주론』보다 『역사』를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이유보다는 『군주론』은 이미 전에 읽었었고, 『역사』는 이 만화를 통해 처음 접했기 때문입니다. 전체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장에서는 '역사(history)'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헤로도토스에 대해, 그리고 그 역사라는 말에 담긴 뜻에 대해, 『역사』라는 책의 의의에 대해 참 쉽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0장까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300〉에서 보았던 스파르타의 왕 레오디다스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지휘한 테르모필라이 전투는 이 책 9장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영화 〈300〉의 장엄함을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근육질의 배우들 대신 앙증맞은 캐릭터들이 주인공들입니다^^.

어른들이 먼저 교양 삼아 읽어봄 직합니다. 집에 만화책을 두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읽게 됩니다. 일석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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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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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여섯 살 난 딸이 있다. 이름은 동주다. 딸은 나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나는 딸의 의식주 비용과 교육 및 의료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내 딸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18세기에 살았던 다니엘 디포(『로빈슨크루소』저자)는 아이들은 네 살 때부터 생활비를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뿐인가. 일을 하면 동주의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는 지금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 모르고 지낸다. 아이는 자기 엄마와 내가 저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한가로운 생활을 보조하고 자신을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모른다.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더 많은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동 노동이 합법적이거나 최소한 묵인이라도 되는 나라로 이주를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더는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 정도만 해도 저는 충분히 미친 사람이라고 욕을 얻어먹을 테니까요. 위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107쪽 본문 내용 중 장 교수 아들의 이름을 제 딸 이름으로 바꾸었을 뿐 본문 그대로입니다.  장하준 교수는 자신의 아들 실명까지 들먹이며 주장한 이 터무니없는 예가, 개발도상국에는 급속하고 대대적인 무역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논지가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여섯 살 난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옳지 않지만, 마흔 살 먹은 어른에게까지 보조하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일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통해, 아니 이 책 전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발도상국의 산업이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혹자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기적의 세월은 한국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발전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한국 정부는 공산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시장을 말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 시장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새로운 사업들을 관세와 보조금으로 보호하고, 어떤 부문에는 외국인 투자를 전면 금지하고, 특허 상품의 '위조품 제조'를 눈감아 주기도 하고, 민간 기업들이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면 국영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모든 은행을 소유하고 있어 기업의 생명줄인 대출까지 관리하였습니다.

이런 '이단적인' 정책으로 부유해진 것은 한국뿐만 아닙니다. 오늘날의 선진국들 대부분 신자유주의 경제학과 배치되는 정책 처방을 토대로 해서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의 본거지라고 여겨지고 있는 영국과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영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지금의 선진국들의 과거에 행했던 일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과거에 이렇게 해서 성공해 놓고는 지금의 개발도상국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 즉 '우리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우리가 말하는 대로 하라'는 선진국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동조하거나 퍼뜨리는 사람들을 일러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지칭합니다. 성서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을 비틀어 표현한 것입니다.

1841년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영국이 자신들은 높은 관세와 광범위한 보조금을 통해서 경제적인 패권을 장악해 놓고서 정작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유 무역을 권장하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그는 영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적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고 비난하며 "정상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올 수 없도록 자신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걷어 차 버리는 것은 아주 흔히 쓰이는 영리한 방책"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장하준은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선진국들이 현재 개발도상국 및 후진국들에게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따라서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 경우가 많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책은 『사다리 걷어차기』의 속편, 또는 의 대중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꽤 학술적으로 접근하여 읽기가 만만치 않으니까요.

가장 대중적인 세계화 안내 책은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세상의 절반은 세계화 체제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국의 경제를 현대화하고 능률화하고 민영화하면서 보다 나은 렉서스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나머지 절반은 누가 어떤 올리브 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움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황금 구속복'을 입어야 하는데, 이 옷은 사이즈가 단 하나 뿐입니다. 무조건 이 옷에 맞춰야 합니다.

이에 대해 장하준은, 만약 일본 정부가 1960년대 초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말을 따랐다면 렉서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일본이 일찌감치 황금 구속복을 입었더라면 여전히 1960년대 수준의 3류 산업 국가로,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나라로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렉서스를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라 누가 뽕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싸우고 있었을 거라고 합니다. 뽕나무는 당시 주력 수출품이었던 견직물 생산을 빗댄 것입니다.

도요타는 30년 넘게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실시한 뒤에야 비록 하급차지만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게 되었고, 영국이 모직물 제조 부문에서 저지대국을 따라잡기까지는 헨리 7세 시대부터 시작해서 거의 100년이 걸렸으며, 미국이 관세를 폐지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질 만큼 경제를 발전시키기까지는 130년이 걸렸습니다. 이렇듯 시간을 길게 보는 시야를 갖지 못했더라면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견직물이, 영국에서는 모직물이, 미국에서는 면직물이 주력 수출 품목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희생 없이 미래는 개선되지 않습니다. 이런 충고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기겁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힘주어 말할 것입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

자유 시장은 각국이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에 충실할 것을 지시합니다. 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가난한 나라에게 현재 하고 있는 생산성이 낮은 활동을 계속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생산성 낮은 활동을 하고 있기에 가난하기 때문인데도 말입니다. 만일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이 나라들은 시장에 대항하여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보다 어려운 일을 해야 합니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그 외의 방법은 없습니다. 노키아가 그랬고, 삼성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키아는 벌목, 고무장화, 그리고 전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7년에 걸쳐 전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삼성은 직물과 제당 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이들이 만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것처럼 시장의 신호에 충실했더라면, 노키아는 아직도 나무나 베고 있고, 삼성은 여전히 수입된 사탕수수나 정제하고 있을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항하여 보다 어렵고 좀 더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부문에 진입해야 한다. (p.319)

장하준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위선적인 경고를 낱낱이 파헤칩니다. 그리고 무엇이 대안인지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장하준의 주장에 대해 노암 촘스키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장하준의 경고는 오싹하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도 듭니다. 장하준의 '정체는 뭐냐?'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경계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이런 문제의식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있나 봅니다.)
장하준의 글은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칼을 들이댑니다. 그의 글은 박정희식 산업 정책과 재벌 옹호로 비쳐질 수도 있고, 전작 내용까지 고려하면 소액주주 운동 등에 대한 비판까지 좌파의 신경을 거스르는 표현이 수두룩합니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처절하리만치 짓밟는 그의 논리에는 아무리 마음 좋은 우파라도 제편이라 생각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는 과거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반신자유주의와 반재벌 투쟁은 같이 갈 수 없다. 진보 진영이 ‘모든 것이 박정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박정희식 경제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따라서 대안은 재벌 시스템을 일정 부분 인정해주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이끌어내는 대타협이다.’ (2007.4 한겨레21)

이에 대해 김창근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장하준의 이론은 재벌을 위한 '국가 옹호론'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이론은 국가의 '발전'에, 김창근 교수의 비판은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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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경제학 : 1960년대에 처음 출현하여 1980년대 이후 경제학의 지배적인 견해가 되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유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의 능률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 나라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경우 정부 개입은 수입 제한을 통해서든 독점의 형성을 통해서든 잠재적인 경쟁자의 진입을 제한하여 경쟁의 압력을 감소시킨다는 이유에서 해로운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비록 신자유주의자들이 과거의 자유주의자들이 지지하지 않던 일부 정책과 제도(특허, 중앙은행의 독점적 화폐 발행, 정치적 민주주의)를 옹호하기는 하지만 과거 자유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자유 시장에 대한 열광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규제 철폐와 민영화, 그리고 국제 무역과 투자에 대한 개발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적 아젠다는 1980년대 이후 동일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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